제2장. 몸 쓰는 게 특기입니다 (1)
금요일 저녁 11시.
이번에도 어김없이 도정수의 미팅 타임이 시작되었다.
사실 김 PD로부터 사전에 최종 완성본을 받아 확인을 했기에 굳이 또 볼 필요까진 없었다.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 타임으로 방송을 시청하려는 이유가 있었다.
“신기하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내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받아 본 영상본을 보는 것과 이렇게 리얼 타임으로 TV 앞에 앉아 보는 것은 맛이 다르다.
미리 시켜 둔 치킨 한 마리를 뜯으며 TV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오프닝곡과 함께 방송 시작. 이후, 내 등장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보통 게스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5분가량 도정수와 이진주의 가벼운 토크로 시간을 때운다. 하나 내가 등장하는 편에서는 약 2분 정도뿐이었다.
김 PD도 잘 알고 있었다. 화제성 짙은 인물은 최대한 많이 등장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게다가 기사로 대중의 관심을 잔뜩 집중시켰다. 시청률은 이미 보장되어 있었다.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문제의 여성 시청자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첫마디부터 헌터들을 싫어한다는 자극적인 발언. 연출이 가미되자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
‘이 집, 편집 맛집이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반응을 체크했다.
처음에는 여성 시청자를 향해 ‘영웅한테 그따위 말을 하냐!’라든지 ‘국민 영웅을 몰라보네.’라는 맹렬한 비난이 이어졌다.
그러나 여성이 개인사를 읊을 때, 대중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
남편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고 살고 있는 터전이 없어졌다는 사연이 등장할 때, 구슬픈 BGM이 배경으로 깔렸다.
몇몇 시청자들은 이 부분에서 깊은 공감을 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는 반응도 보였다.
이후 내가 개인적으로 후원금을 내 주겠다는 말을 하는 부분에선 가히 폭발적이었다.
검색 순위 1위, 강태오.
검색 순위 2위, 도정수의 미팅 타임.
덩달아 이진주의 이름까지 7위로 랭크되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이 정도 화제성이라면 내가 목표로 잡았던 기준치에 충분히 도달했다.
본래는 이진주를 띄워 주려고 했었는데, 본의 아니게 내가 더 많이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건 내 의도와 조금 달랐다.
그래도 상관없겠지. 이 정도만 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7위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니까.
방송이 끝난 이후에도 SNS와 커뮤니티는 내 이름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어딜 가든 강태오라는 이름 세 글자를 볼 수 있었다.
‘헌터로 뛸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뭐랄까. 약간의 희열도 느껴졌다.
동시에 재미있었다.
사람들에게서 내 이름이 계속적으로 거론된다는 게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사실 헌터 생활을 관둘 때부터 난 한편으론 이런 걱정이 들었었다.
이대로 난 과거의 인물로 묻히는 건가?
그러나 이번 방송을 통해 다시금 내 존재감을 입증했다.
“…….”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때, 승훈이 형한테서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다.
-태오야, 들었냐?
“뭐를?”
-이번에 네가 나온 편, 시청률 대박 쳤더라.
“정말?”
-그래! 김 PD님이 너한테 꼭 보답하고 싶다고 하더라. 너, 진짜 이대로 연예인 해도 될 거 같은데?
뭐, 이 정도야 기본이지.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승훈이 형.”
-응? 왜?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한 이상.
“다음 방송 스케줄, 바로 잡아 줘.”
지체하지 않고 쉼 없이 달려가고 싶다.
내 말에 승훈이 형이 짧게 웃었다.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어차피 방송국 PD들, 다 너 섭외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 * *
“…….”
정신을 집중했다.
천천히 몸과 정신을 주변에 떠다니는 것의 흐름에 맡겼다.
소위 말해서 마나라는 존재였다.
헌터로 각성한 이는 마나를 통해서 탈인간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이것을 신체 강화에 사용하고, 어떤 이는 이것을 공격 마법으로 바뀌어 활용했다.
나 같은 경우는 주로 신체 능력을 각성시키는 데에 사용하곤 했었다.
근력이나 몸의 속도를 강화시켜 몬스터를 때려눕히는 스타일의 헌터였다.
왜냐고?
그냥 패는 손맛이 좋아서였다.
“후우.”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빠르게 회전하던 마나의 흐름이 다시 천천히 본래의 속도를 되찾았다.
“온몸이 땀투성이네.”
명상을 하면서 마나를 다루는 일은 현역 헌터로 활용할 때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늘 하던 준비운동이다.
습관이 되어 버려서인지 레이드 시대가 끝난 지금도 생각이 날 때마다 하곤 한다.
가볍게 몸을 풀며 주방으로 향했다.
현재 시간, 오전 9시 반.
때마침 스마트폰이 띠링! 소리를 내며 문자 도착을 알리는 소리를 들려줬다.
이른 아침부터 누구일까 하며 액정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잘 잤냐, 태오야. 니가 말한 대로 나갈 만한 TV 프로그램 몇 개 골라 봤다. 점심때 회사로 함 와라. 그거에 대해서 말할 것도 있고, 그리고 대표님이 간만에 너랑 같이 식사나 하자고 하시더라. 어때, 콜?]
승훈이 형이었다.
도정수의 미팅 타임 이후, 방송에 재미를 느끼게 된 나는 승훈이 형한테 직접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방송 스케줄 더 잡아 달라고.
그 부탁을 한 지 고작해야 3일밖에 안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후보 목록을 작성했다고 하니.
“하여간 형도 부지런해.”
매니저로서 굉장히 유능한 형이었다.
만약에 내 앞에 승훈이 형이 있었다면 엄지를 추켜올려 줬을 텐데.
그게 좀 아쉽다.
* * *
헌터 매니지먼트 전문 업체, BOO.
나를 비롯해 약 150여 명의 헌터를 관리하는 회사였다.
원래는 데이브도 나와 같은 헌터 매니지먼트 업체에 속해 있었지만, 작년에 다른 업체와 손을 잡기로 하고 나가 버렸다.
아마 나 때문일 것이다.
내가 계속 BOO에서 특별 대우를 받고 이러니까, 그게 꼴 보기 싫어서 나간 것일 수도 있다.
나야 상관없지만 말이다.
회사 건물 로비에 들어서자, 젊은 경비원이 곧장 나를 알아본 듯 먼저 말을 걸어왔다.
“강태오 씨 아닙니까?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통 안 보이시던데, 잘 지내셨죠?”
“네, 이것저것 하면서 지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방송 나오셨었죠! 잘 봤습니다.”
“하하, 고마워요.”
도정수의 미팅 타임, 강태오 편은 본방이 끝난 이후로도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했었다.
인류의 구원자라 불리는 나, 강태오의 근황과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리고 드래곤과의 목숨을 건 사투를 비롯해 2억 기부 사건 등 흥미진진한 화제들의 집합체였다.
시청률도 도정수의 미팅 타임이 방송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잘 나왔고, 다시보기 수치도 역대급이라고 하니, 출연한 사람으로서 뭔가 뿌듯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최상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기다란 복도가 이어졌다.
복도 끝에 있는 대표 사무실의 문을 노크했다.
“누구세요?”
승훈이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형.”
“어, 잠시만. 문 열어 줄게.”
문이 열림과 동시에 승훈이 형이 나를 반가이 맞이했다.
“아침부터 오느라 고생했다.”
“수고했다, 태오야.”
승훈이 형의 뒤를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남성.
깔끔하게 정돈된 턱수염에 서구적인 외모가 굉장히 인상적인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이 남자가 바로 내 소속사인 BOO의 젊은 대표, 연수하다.
승훈이 형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헌터로 활동했었으며, 랭크도 꽤 높았던 헌터였다.
아마 나보다 한 단계 낮은 SS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지금은 BOO를 차려 대표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은퇴는 여전히 돌이켜 봐도 뜬금없었다.
승훈이 형처럼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어쩔 수 없이 헌터직을 내려놓은 것도 아니고.
계속 헌터 활동을 했으면 충분히 잘 해냈으리란 전망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 대표는 헌터를 관뒀다.
이유는 그가 나에게 직접 말해 줬다.
헌터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싶었다고.
이 때문에 연 대표는 최초의 헌터 매니지먼트, BOO를 설립했다.
뭐, 이제 와서 생각해 보자면 연 대표가 서포터 역할로 빠진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만약 그가 먼저 헌터들을 위해 총대를 메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더 힘든 여건 속에서 몬스터와 싸워야 했을지도 몰랐다.
“앉아서 이야기하지.”
“네.”
연 대표가 나에게 앉기를 권유했다.
자리를 잡자, 연 대표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방송 잘 봤어. 너한테 그런 방송적 감각과 센스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그냥 운이 좋았던 거죠, 뭐.”
“승훈이한테 들었다. 당분간은 계속 TV 프로그램 출연 쪽에 전념하고 싶다고?”
“네.”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연 대표는 나의 방송 활동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BOO에 소속되어 있는 헌터들 중 과반수는 은퇴를 선언했다.
어차피 평생 먹고살 돈은 모아 뒀으니, 여생은 몬스터니 뭐니 그런 거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편하게 보내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었다.
남은 헌터들은 은퇴 결정만 내리지 않았을 뿐, 실질적으론 거의 은퇴 쪽에 마음이 기울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를 포함한 몇몇 헌터는 방송이라든지 강연, 출판이나 라디오 출연 등 이런 쪽으로 당분간 활동을 굳힐 것으로 보였다.
“태오, 너는 예전부터 말빨이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게다가 외모도 준수한 편이고. 도정수의 미팅 타임 같은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 내비치면서 방송 쪽 활동을 하면 팬들도 꽤 많이 생길 거다. 특히 여성 팬들.”
“그렇게 된다면 좋겠네요.”
“게다가 헌터로 데뷔하기 전에는 가수 지망생이었다며? 그렇게 되게끔 우리도 너한테 서포터를 많이 붙일 거야. BOO를 폐업할 생각은 없으니까. 지금은 헌터 매니지먼트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헌터 매니지먼트라는 회사가 필요 없어졌잖아. 그렇다고 우리와 같이 일하는 헌터들을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상황에 맞춰서 우리도 그에 걸맞은 업종으로 변경할까 생각 중이다.”
연 대표는 사업적 수완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다.
돈이 될 것 같은 쪽으로 촉이 좋은 사람이기에 믿을 만했다.
“너는 어떻게 할래?”
연 대표가 직접적으로 나에게 생각을 물었다.
이 질문을 해 올 줄 알고 있었다.
“저도 대표님하고 같은 생각입니다.”
이미 방향을 결정했는데.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
연 대표는 매우 흡족하단 미소를 내게 보냈다.
“천천히 고민해 봐. 너는 현재 방송업계에서는 엄청난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으니까. 땡길 수 있을 때 확 땡기고, 그 이후부터는 천천히 나아가는 쪽으로 해도 나쁘지 않지. 물론 내가 널 많이 도와줄 수도 있고.”
이후, 연 대표는 승훈이 형에게 시선을 돌렸다.
“승훈아, 그거 보여 줘 봐.”
“예, 대표님.”
테이블에 프린트물 몇 장이 세팅되었다.
승훈이 형이 프린트물을 가리켰다.
“아까 말했던 거다. 네가 출연할 만한 방송 목록 뽑아 봤어. 한번 골라 볼래?”
“흐음.”
가수 지망생 때에는 전혀 누리지 못했던 호사.
이걸 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복이 많은 놈이구나.’라고 말이다.
어떤 연예인은 방송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하던데, 나는 오히려 여기저기 불러 줘서 내가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니, 이런 게 복이 많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선택권은 내게 있다 하더라도 막상 나가서 나의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다면 말짱 꽝이다.
내가 대활약을 펼칠 수 있게끔 내게 맞는 방송을 골라야 한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고르도록 하자!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척척박사님!
“이게, 좋겠네요.”
난 가장 가운데에 있는 프로그램 타이틀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