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몸 쓰는 게 특기입니다 (3)
황조운이 미소를 띤 채로 나를 반겼다.
꽃미남 배우로 잘 알려진 황조운. 실제로 만나 보니 확실히 잘생기긴 했다.
그러나 인성은 외모와 비례하지 않는 듯했다.
나를 디스했음에도 불구하고 황조운은 천연덕스럽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마치 ‘난 그런 일 모른다.’라고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 철판 잘 깔았네.’
하지만 난 똑똑히 기억한다고, 이 양반아.
“인터넷에서 저에 대해 평가하신 거, 잘 봤습니다.”
“이런, 보셨군요. 좋은 내용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확실히 당사자가 보기에는 좀 그렇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강태오 씨라면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무엇을요?”
“시청자들 관심 끌려고 일부러 어그로 끈 거예요. 진심으로 태오 씨를 낮게 평가한 건 아닙니다. 인류의 구원자라고 불리시는 분인데, 제가 어찌 태오 씨에게 디스를 걸겠습니까? 시청률 올리려고 그랬던 거예요. 이해해 주실 거죠?”
프로그램 살리겠다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나를 제물로 삼아?
게다가 강압적으로 이해해 달라고 하니 오히려 더 괘씸해 보였다.
그래도 여기서 감정을 내세우면 추한 꼴을 보일 뿐이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어른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게 중요했다.
먼저 화내는 쪽이 지는 거니까.
오히려 나는 대범하게 나가기로 했다.
“충분히 이해하죠.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 촬영은 제가 당하는 쪽으로 포지션 잡으면 어떨까요?”
“당하는 포지션이요?”
“예. 조운 씨는 ‘출발 스타팀’에 꽤 많이 출연했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저한테 있어서 이 방송에선 대선배님이니까요. 저는 일부러 초보티를 많이 낼게요. 그때마다 조운 씨가 막 딴죽 걸고 그러면 웃긴 연출도 많이 나올 거 같고, 재미있지 않을까요?”
“어? 그거 좋죠! 사실 태오 씨가 먼저 말 안 하셨으면 제 쪽에서 그렇게 제안해 볼까 생각했었는데…… 잘됐네요!”
황조운은 애초에 날 놀림거리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짠 듯했다.
보자 보자 하니 내가 정말로 보자기로 보이나 보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조운은 신이 나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대신 서로 섭섭하게 생각하기 없기입니다? 어디까지나 ‘방송’이니까요.”
“네, 좋습니다.”
유독 ‘방송’이라는 단어를 강한 어조로 발음하면서 새끼손가락을 내민 황조운.
그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서로 약속하죠.”
“예.”
나도 새끼손가락을 걸어 줬다.
이것으로 오늘 방송에 대해 서로 원망하지 않기로 합의를 봤다.
그래, 잘됐다.
오늘, 이 양반한테 엿 제대로 먹여 줘야겠다.
* * *
마침내 녹화가 시작되었다.
라이벌팀으로 나온 멤버들은 2군 리그에서 뛰고 있는 축구 선수들이었다.
터질 듯한 허벅지, 그을린 피부. 한눈에 봐도 스타팀보다는 피지컬이 뛰어나 보였다.
‘국가 대표들을 데려와도 상관없는데.’
그만큼 난 자신 있었지만, 국대 선수들의 스케줄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겠거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이번 회 차의 장애물 코스는 스피드를 요구하는 형태였다.
난이도도 역대급이었다. 과거에 이런 부류의 코스가 몇 번 있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코스를 통과해 본 적이 없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시청자들 사이에서 붙은 별명이 있었다.
‘지옥 코스……였었지, 아마?’
솔직히 내 눈에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헌터와 일반인이 보는 시선은 다르니까.
촬영 진행 방식은 간단했다.
김수월이 오프닝 멘트를 하고, 이후 스타팀으로 참가하게 될 게스트를 한 명 한 명씩 차례차례로 소개한다.
마이크를 거머쥔 김수월이 목소리를 높였다.
“첫 번째로 모셔 볼 스타분입니다! 출발 스타팀의 카리스마 리더! 꽃미남 배우, 황조운!”
황조운의 등장에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참고로 스타팀의 리더는 황조운으로 일찌감치 결정되었다. 그를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오늘이 첫 출연이거나, 아니면 이제 막 고정이 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황조운은 그야말로 출발 스타팀이 낳은 슈퍼스타라 할 수 있었다.
즉, 이곳은 그의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다.
“안녕하세요, 황조운입니다!”
손을 번쩍 들며 인사하자 팬들이 더욱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엄청난 인기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그건 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난 이제 막 연예계에 발을 들이민 초짜니까.
황조운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오늘 참가할 멤버들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를 도맡게 된 인물이 바로…….
나, 강태오였다.
“지구를 구한 사나이! 슈퍼 히어로! SSS급 헌터, 강태오!”
가볍게 몸을 푸는 시늉을 하며 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번에도 팬들의 함성은 뜨거웠다.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황조운보다는 그 열기가 뜨겁지 못했다는 것 정도일까?
그래도 상관없었다.
오늘, 난 황조운의 홈그라운드라 불리는 출발 스타팀에서 그를 철저하게 무너뜨릴 생각이니까.
이미 머릿속에는 모든 플랜이 짜여 있었다.
이제 실행만 하면 된다.
‘오늘 방송, 재미있겠어!’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오려고 했다.
참느라 고생 좀 할 것 같았다.
* * *
스타팀 멤버들의 소개 이후, 라이벌팀의 소개가 이어졌다.
비연예인이었기에 스타팀에 비해 함성 소리가 그리 크진 않았다. 그래도 저들은 딱히 주눅 들거나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일반인 팀이었으니까. 인지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오늘 참가할 선수들입니다!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보내 주세요!”
김수월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추가 멘트를 날렸다.
관객 수가 꽤 됐다. 본래 이 정도는 기본으로 오는 건가?
‘관객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야 좋긴 하지만.’
여하튼 보는 눈들이 많다는 점 때문인지 몰라도 스타팀 멤버들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보통 촬영을 할 때에는 스태프와 출연진만 있는 게 대다수였다. 그러나 이처럼 공개 녹화 촬영에는 연예인들을 보기 위해 현장을 찾는 시청자들이 꽤 되는 편이었다.
마이크를 든 김수월이 곧장 진행을 이어 나갔다.
“한 명 한 명씩 인터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황조운 씨부터!”
황조운이라는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사람들이 또다시 우렁찬 소리를 자아냈다.
“얼마 전에 모 인기 드라마에 캐스팅되었다는 기사, 잘 봤습니다. 바쁘실 텐데 어떻게 준비는 잘해 오셨나요?”
“준비랄 것까지야 없고요. 그냥 평소대로 하는 거죠, 뭐.”
“오늘도 최단시간 클리어, 기대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각오를 다지는 황조운.
그의 말에 따라 응원의 함성이 커졌다.
황조운은 출발 스타팀에 등장한 횟수만 해도 자그마치 20회가 넘었다.
그 20회의 도전 동안 황조운에게 있어서 실패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피지컬 좋은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한 번 정도는 실패할 만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조운은 불리할 때마다 코스를 클리어하며 역전의 용사가 되었다.
이 활약 덕분에 순식간에 예능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거론되었다.
그가 단 한 번도 코스에 실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딱히 운동신경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물론 내 기준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적이 없다는 게 좀 수상하다.
‘뭔가 있을 거 같은데.’
있다면 조만간 알게 되겠지.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니기도 하고.
잠시 다른 생각을 했더니 어느새 내 차례가 돌아왔다.
“강태오 씨! 오늘 저희 프로그램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곳까지 오시게 된 건가요?”
“평소에 자주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어서요. 나오고 싶어도 몬스터 잡느라 바빠서 못 나왔는데, 이제 레이드 시대가 종결되었으니 타이밍도 맞고 해서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 예전부터 저희 프로그램, 보셨군요!”
“네, 매주 챙겨 봤습니다.”
미안합니다. 사실 거짓말입니다.
몬스터와 목숨을 걸고 싸우느라 바쁜 사람이 한가하게 TV 따위를 볼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방송을 위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아마 김수월도, 그리고 PD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 말이 빈말이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김수월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이어 갔다.
“가장 재미있게 본 편이 있으신가요?”
“네. 여의도 쪽 종합운동장에서 했던 특집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 그때도 우리 황조운 씨가 대활약을 했었지요!”
“그랬었죠. 저도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마치 리얼 타임으로 챙겨 봤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이것도 물론 거짓말이지만 말이다.
황조운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김수월의 멘트가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향했다.
“황조운 씨, 방금 말 들으셨나요?”
“예. 설마 인류의 구원자님께서 제 팬이셨을 줄은 몰랐네요. 영광입니다.”
팬은 무슨. 확 주둥아리를 꿰매 버릴라.
그러나 여기서 정색하게 되면 프로가 아니다. 방송인으로서 멘트를 받아 주는 식으로 가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보는 눈도 많았으니까.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오늘도 맹활약 보여 주시는 거죠?”
“물론이죠! 오늘 코스는 헌터라 해도 힘들 테니까, 저를 잘 보고 따라 하세요.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라면 몰라도, 방송에서는 무기만 휘두를 줄 아는 헌터보다 제가 더 나을지도 모르니까요, 하하하!”
‘지금 헌터 비하 발언 하신 겁니까?’라는 말이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지만, 이내 꾹 삼키기로 했다.
헌터를 무시하는 것도 유분수지. 기본적으로 마나를 다룰 줄 아는 헌터가 고작 저딴 코스에 애를 먹을 거라고 생각했나?
아무래도 황조운, 이 사람은 헌터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 * *
녹화가 잠시 중지된 틈을 타 스태프들이 코스의 안전 점검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동안 나는 목을 축였다.
때마침 다가온 승훈이 형이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저 황조운이라는 사람, 말하는 게 엄청 싸가지없더라.”
“난 처음부터 대충 눈치 깠어.”
“흠, 그러냐.”
승훈이 형도 전직 헌터였다. 그러니 헌터를 싸그리 얕잡아 보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황조운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헌터는 그냥 무식하게 싸움만 할 줄 아는 부류다. 황조운의 머릿속에는 그런 식으로 이미지가 박혀 있었나 보다.
그렇다면 단단히 착각한 거다.
단순히 싸움질만 할 줄 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몬스터와의 싸움에선 체력, 지력 모든 것들이 골고루 갖춰져야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인간보다도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몬스터들도 꽤 많았다.
단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렇다고 모두 이런 걸 알아 달라는 뜻은 아니다.
모를 수도 있다. 직접 헌터로 뛰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기분, 그 감정, 그 공포를 알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공식 선상에서 비하 발언은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게 예의이자 매너잖아.
황조운의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일까, 내 시선이 절로 그에게 향했다.
의자에 앉은 채 매니저 그리고 스태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황조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스태프랑 뭔가 이야기할 게 있나?
그때, 신경 쓰이는 일이 발생했다.
서로 뭔가 긴히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스태프가 코스 쪽으로 향했다.
“잠시만요.”
코스를 점검하는 스태프 몇몇을 불러 모았다. 이후 자기들끼리 긴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코스 쪽으로 향한 이들이 주변 스태프들의 눈치를 살폈다.
코스 점검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치를 살펴야 할 이유가 있나?
그리고 왜 점검 과정에서 황조운 측과 논의를 한 거지? 스태프가 아니라?
“수상한데.”
“뭐가?”
“아니, 그냥 좀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
승훈이 형한테는 대충 얼버무렸다.
심증만 있을 뿐이지, 무엇 하나 확인된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멋대로 사람을 의심하는 건 좋지 않다.
그러나.
‘저건 의심해 볼 만한 거 같은데.’
만약 심증이 있다면.
내가 그것을 직접 확증으로 만들면 되지 않겠나.
“승훈이 형.”
“어?”
“잠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결국 승훈이 형에게 부탁을 하기로 했다.
무대 뒤에서 내 생각대로 움직여 줄 만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내 속닥거림을 전해 들은 승훈이 형이 미간을 찡그렸다.
“에이, 설마. 그렇진 않겠지.”
“그래서 나도 확인해 보고 싶은 거야. 신경 쓰이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내 승훈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확인해 보고 너한테 바로 말해 줄게.”
“땡큐.”
어디, 우리 잘나신 황조운 님이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나.
한번 조사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