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8화
“사람 아니고 늑대입니다.”
“이게?”
조화로움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파격적인 스타일에 우형이 해랑을 ‘이거’라고 부르면서 신기하게 바라봤다.
리허설은 사복으로 진행했고, 대기실에서도 머리띠와 장갑만 착용하고 있었기에 이런 모습으로 등장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해랑은 대답 대신 미러볼을 작동시켰다.
대표 비주얼 멤버의 수상한 비주얼. 거기에 갑자기 무대가 현란해지자 컬러즈는 빵빵 터졌다.
‘역시 컬러즈의 웃수저.’
미러볼의 색색 빛이 퍼지자 우형이 눈을 가렸다.
“아! 정신 사나워!”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와. 뻔뻔한 것 봐.”
예전엔 미러볼의 반짝임을 거부하던 해랑이었지만, 선글라스가 미러볼의 어지러운 조명 빛을 차단해 주는지 그는 아무 타격이 없어 보였다.
우형은 이 장면을 기록해두고 싶었는지 다시 태블릿을 들었다.
스태프에게 말해 다시 전광판에 태블릿 화면을 연동시키자 우형의 시선에서 본 수상한 늑대 해랑이 크게 화면에 잡혔다.
전문 카메라 감독은 쉽게 할 수 없는 과감한 카메라 워킹과 줌인. 게다가 사진도 아닌 동영상 촬영이었다.
“이건 지금 올리면 스포일러 되니까 나중에 올려야겠다.”
귀한 자료를 개인소장하지 않고 풀어준다는 소리에 컬러즈는 또 환호했다.
공연 DVD가 나오기 전에 알아서 명장면을 박제해 주는 아이돌. 효자 아이돌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그였다.
다음 순서는 당연히 나이순으로 셋째인 한이.
앞 순서와는 달리 상큼한 청량음료 광고에 나올 것 같은 등장 BGM이 깔렸다.
한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사랑하는 나르키소스 역할.
분신인 그림자를 현실 무대 위에 만들어 내기엔 어렵고…… 대신 한이는 손거울을 들고 등장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잘생겼니?”
리허설 때 같이 대본이라도 맞춰본 듯이 “유한이!”라고 대답하는 컬러즈들.
우형은 한마디를 얹으려다가 뒤로 물러섰다.
“해랑이가 이 상태라서 반박할 수가 없다…….”
전광판에 선글라스 늑대 해랑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컬러즈는 또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만으로 웃길 수 있다니, 대체 얼마나 발전한 거야.’
이제 레벨을 볼 수 없지만 정확한 수치를 본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예능 레벨 3이라는 숫자가 머릿속에 자꾸만 맴돌았다.
비주얼 개그는 취향 맞는 사람이 아니면 분위기가 숙연해지기 십상인데 해랑의 비주얼은 컬러즈의 취향을 저격해서인가.
해랑은 컬러즈가 자신의 얼굴만 보고 웃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지 덤덤하게 한이의 소개를 진행했다.
“너는 캐릭터가 아니고 그냥 유한이 본인 아니야?”
“아니지. 사실 모노크롬의 나르시시스트는 따로 있잖아요.”
컬러즈도 아는 사실인지 응원봉을 흔들고, 우형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누군데?”
“누군지 궁금하면 이 마법의 거울을 보세요.”
한이가 손거울을 돌려 우형에게 보여줬다.
알고 보니 우형이 팬 사인회에서 자기 얼굴에 잘생김이 묻었다고 한 게 한 번이 아니었다나.
우형의 의도치 않은 나르시시스트 발언을 모은 팬 메이드 영상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팬 사인회를 할 때면 우형은 컬러즈에게 잘생겼단 소리를 특히 자주 듣는 듯했다.
‘한이가 열심히 주장해서 정착된 캐릭터 같긴 한데…… 재밌으면 됐지.’
진짜 나르시시스트는 누구인가 하는 결론 없는 토론을 마친 후, 다음으로 등장한 것은 재민이었다.
재민은 체스판 위에 홀로 남은 킹.
외로우니 백성이 필요하다는 재민의 요청에 따라…….
“손에 그거 뭐야?”
“재민 왕국의 백성들이에요.”
그의 손에는 굴비처럼 엮인 미니크롬 세트가 들렸다.
“누가 백성을 저렇게 들고 다녀?”
“폭군이다!”
한이에게 폭군 취급을 당한 재민은 “뚜쉬.” 하면서 한이 인형의 배를 쿡 찔렀다.
‘저주 인형이야?’
그 와중에 한이는 복부를 감싸 쥐며 원격으로 공격받은 연기를 펼쳤다.
폭군 재민은 신났는지 우형 인형, 해랑 인형도 공격하고…….
“저건…… 무지개 반사?”
해랑이 미러볼을 작동시키자 당황하여 공격을 멈췄다.
아까부터 내내 미러볼 원툴이었으나 효과는 확실했다.
“아, 나도 거울 반사 할걸.”
“유치하다. 유치해.”
우형은 유치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우형 인형의 입이 막히자 본인도 입을 가렸다.
여전히 자기들끼리 잘 노는 모노크롬이었다.
마지막 순서인 막내의 입장 전, 재민이 슬쩍 스포일러를 했다.
“올라오기 전에 봤는데 저기 아래 꼬마애가 하나 있었어요.”
“그 꼬마 혹시 안경 쓰고 다니는?”
준해는 우주를 꿈꾸는 꼬마 기관사.
인상만큼이나 동글동글한 안경을 쓴 준해는 아동용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등장했다.
뒤에는 끈으로 기차 장난감을 달아 덜그럭덜그럭 요란한 것이 포인트였다.
막내 등장과 동시에 ‘오구오구 잘한다’ 모드로 훈훈하게 웃는 멤버들과 컬러즈.
“면허 없는데 운전해도 돼?”
해랑의 특기, 면허 디스가 날아오자 준해는 느릿느릿한 속도로 해랑에게 다가가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열심히 핸들을 돌려 후진 주차까지!
멋지게 주차를 마친 준해가 의기양양하게 관객석을 바라봤다.
“컬러즈, 뒤에 타!”
“오오, 박력.”
물론 장난감 자동차는 아동용이라 운전석 외에는 미니크롬이 탈 정도의 공간밖에 없었지만.
컬러즈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내겠지.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대학원생처럼…….
그만큼 작은 장난감 자동차에 몸을 구겨 넣고 있던 준해는 차에서 내려 관객들에게 정식으로 인사했다.
그의 인사 뒤에는 특별한 소식이 하나 붙었다.
“여기서 처음 밝히는 건데…….”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진지해진 표정.
모두가 준해의 말에 집중하여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준해가 이렇게 운을 띄우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건 학교 축제에서 ‘나 아이돌 맞아’라고 선언했을 때 정도.
컬러즈는 그만큼 놀라운 소식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저 사실 연습면허가 있어요.”
그리고 그 기대에 보답하듯이 준해는 무려 연습면허 취득 사실을 최초 공개했다.
준해의 무면허에 관한 이야기는 멤버들 입에서 꽤 여러 번 나왔던 터라 컬러즈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모르는 사이에 무면허 속성을 벗어났다고 하자 컬러즈는 상이라도 받아온 것처럼 환호를 보냈다.
‘여기엔 조금 슬픈 배경이 있었지…….’
스튜디오 어스가 제대로 운영되기 전, 모노크롬이 소속사 문제로 잠시 활동을 못 하던 시기가 있지 않았던가.
물론 뒤에선 음원도 준비하고 새 회사와 계약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평소보다 여유가 있었던 건 사실이었고, 준해는 그사이에 짬짬이 시간을 내 기능시험까지 야무지게 마쳤다.
그래서 컬러즈에게 지금에야 알려준 것이었다.
“그러니까 저한테 도로주행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은 저랑 같이 차에 타도 돼요!”
차에 타라는 멘트는 그냥 한 말이 아니라 합법적인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한이가 냉철하게 모순점을 지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옆에 누가 타야 네가 운전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게 그거잖아!”
“그럼 준해가 컬러즈한테 같이 타 달라고 부탁해야지.”
이어서 재민이 말하자 준해는 양손을 모아 마이크를 쥐고 간식을 요구하는 강아지 같은 눈으로 객석을 바라봤다.
“같이 타 줄 거죠……?”
그러자 “아, 미쳤나. 당연하지.”라며 격하게 반응하는 관객들.
물론 ‘미쳤다’의 주체는 준해가 아니라 과도한 귀여움이었다.
부탁하지 않아도 나서줄 면허 소지 컬러즈, 그리고 내일 당장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겠다는 무면허 컬러즈가 속출했다.
“그런데 운전 가르쳐주는 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그…… 입이 걸걸해지잖아.”
뒤에 “우리 누나도…….”라는 말이 작게 덧붙었다. 또 등짝 예약이겠군.
우형의 말에 다급히 무어라 무어라 주장하는 컬러즈.
“아-, 컬러즈는 안 그래요?”
“네에-!”
방금까지 계속 칭찬에 접두사로 ‘개’를 붙이거나 미친다고 하던 컬러즈는 어디 갔을까.
어느샌가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학생처럼 순한 양들만이 남아있었다.
특별히 공수한 장난감 자동차를 입장용으로만 쓰고 치우기엔 아까웠으니, 멤버들은 ‘누가 가장 운전 선생님으로 적합한가’를 주제로 장난감 자동차 시범 운행 쇼를 펼쳤다.
긴 다리 꾸깃꾸깃 집어넣기 콘테스트 같기도 하고.
에메랄드 시티로 간다는 목적은 잊었는지 옆길로 한참이나 새는 멤버들이었다.
***
“오즈의 마법사에서 일행들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에메랄드 시티로 가잖아요.”
인트로 트랙 <에메랄드 시티>의 곡 제목을 정한 준해가 설명에 나섰다.
“양철 나무꾼은 마음이 없고, 사자는 용기가 없고.”
“사자는…… 동물의 왕인데?”
재민이 갑자기 사자를 옹호하고 나섰다.
재민 인형에게 사자 옷을 입혔던 것을 이렇게 티 낼 수가.
“그러니까 용기를 찾으러 가는 거지.”
이번 앨범 설정도 비슷했다. 멤버별 캐릭터마다 하나씩 결여된 요소가 있었고, 그걸 찾는 게 주된 스토리였다.
“이번 앨범에서 멤버들에게 없는 게 뭔지 발표해 주세요.”
“1등 당첨 복권?”
한이가 한이다운 대답을 꺼내자 다른 멤버들도 금세 동화되어 하나씩 이상한 대답을 내놓았다.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는 성실한 메인보컬.”
“성실하고 잘생긴 메인보컬 여기 있는데요?”
“……양심?”
“와. 디스하는 것 봐. 형들이 나 괴롭혀요!”
우형에 이은 해랑의 2연타에 한이는 컬러즈에게 편을 들어달라며 고자질했다.
해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엔 준해를 타겟 삼았다.
“준해는 정식 면허.”
“도로 주행 시켜 줄 컬러즈를 찾습니다…….”
“저는 저 미러볼 갖고 싶어요.”
“아이템 뺏기가 아니야.”
여기에 미러볼의 원래 주인 재민의 참전까지.
와글와글 시끄러워진 현장에 준해가 다시 정리에 나섰다.
“지금부터 설명 끝날 때까지 다른 소리 하는 사람은 다 벌점 만 점씩 줄 거야.”
“헙.”
우형의 벌점은 멤버들의 반항 심리만 자극하지만 준해의 벌점은 꽤 효과가 있었다. 다들 폭군 리더 막내를 겪어 봤으니까.
멤버들은 바로 성실한 청취자 모드로 들어갔고 재민은 인형 백성들을 껴안고 오들오들 떨었다.
“거기, 빵모자 화가는 뭐가 필요하죠?”
“저는 흑백 필름 속에 살아서 색을 모르는 화가인데, 그래서 준비한 코너는…….”
빠밤! 하는 효과음과 함께 전광판에 코너 제목이 떠올랐다. 이번 코너는 바로 [컬러즈의 마음을 얻어라].
색이면 컬러즈, 컬러즈면 색. 그러니 컬러즈의 마음을 많이 얻으면 멤버들이 색을 깨닫게 된다는 설정이었다.
“전광판에 다양한 상황이 나올 텐데, 그러면 컬러즈 마음에 들 만한 대답을 해 주시면 돼요.”
상품은 소소하게 [사장님에게 원하는 메뉴로 식사 대접받기 소원권]이었다.
컬러즈에게 사랑받는 소속사가 되기 위해, 스튜디오 어스의 사장이 된 송준오 피디에게 반강제로 동의를 얻어 구해온 상품이었다.
“물론 컬러즈가 채점해야겠죠? 다들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오면 응원봉으로 호응해 주세요!”
컬러즈가 알겠다며 응원봉을 열심히 흔들었다.
“건전지 떨어지면 어떡해요?”
아직 공연 초반이었기에 모두의 응원봉은 쌩쌩하게 살아있었지만, 재민이 혹시 모를 상황을 언급하며 질문했다.
본 게임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한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도전! 해랑 형의 미러볼을 대신 빌려준다.”
소중한 미러볼을 건네주겠단 소리에 컬러즈는 환영한다는 듯이 좋아했다.
해랑이 “빌려주는 건 네가 아니라 나인데?”라며 황당해하는 것은 덤이었다.
동생들이 컬러즈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갑론을박하는 것을 지켜보던 우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전제가 틀렸어.”
“왜?”
“컬러즈는 응원봉이 없어도 항상 빛이 나니까.”
이 정도의 환호성이면 벌써 이긴 게 아닐까.
색을 모른다던 화가는 알고 보니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