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화
“누가 주인 님 부르는데요?”
“네? 설마요.”
열심히 숨어다녔는데 컬러즈가 날 어떻게 알고.
모노크롬의 매니저인 민형을 알아봤다고 해도 그 옆에 있는 사람을 스태프라고 생각하지, 주인님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터였다.
“주인아……. 아닌가?”
한 번 더 들려온 목소리에 민형이 다시 나를 바라봤다.
“방금 또 불렀어요. 들으셨어요?”
“‘쥐나!’라고 한 게 아니라요?”
객석 입장 시간까지 대기하느라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다 보면 다리에 쥐가 났을 수도 있지.
가까이서 들려온 것도 아니라 기를 쓰고 부정하고 있는데, 이번엔 목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점점 다가오는 누군가. 나도 고개를 돌려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아! 너 역시…….”
‘컬러즈였구나!’라는 듯한 표정.
친하지도 않으면서 반가운 얼굴로 다가오는 건…… 전 회사 동료였던 대학 동기, 그녀였다.
신입 컬러즈지만 ‘주인 님’은 모르던 그녀!
나를 부르는 높은 목소리에 주변 컬러즈 몇몇은 그녀에게 흘끗 시선을 보냈다.
“닉네임이 주인인가 봐.”
“내 지인 중에 쥔님 538명.”
“난 몬클 노예 해야지.”
지인의 닉네임을 부른다고 생각해서인지 내게 주목하진 않았지만, 내 옆엔 얼굴이 알려진 민형이 있다.
매니저 옆에 있는 주인이라니. 누가 봐도 그 ‘주인님’이잖아.
나는 촬영 완료한 미니크롬 세트를 빠르게 쇼핑백에 집어넣었다.
“저 이거 들고 먼저 들어갈 테니까 나머지 찍고 와 주시겠어요?”
“누군데 그래요? 빚쟁이예요?”
“따지자면 쟤가 저한테 빚을 지긴 했는데…… 아무튼 부탁해요!”
잘못한 것 하나 없지만 나는 빚진 사람처럼 후다닥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민형을 두고 먼저 관계자 구역으로 돌아가려던 것은 판단 미스였다.
아까까진 일행이 있어서인지 천천히 다가오던 그녀가, 내가 혼자 빠져나오니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쟤는 왜 저렇게 날 반가워하는 거야!’
저번에 잠깐 만났을 때 모노크롬 이야기를 나눈 게 괜한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고 만 모양이다.
다시 민형과 합류할까? 그러면 컬러즈와 동기 사이에 껴 버릴지도 모르는데.
이런 곳에서 그녀와 일대일로 마주치고 싶지는 않아서 어디 숨을 곳이라도 없나 주위를 살펴보는데, 패션쇼 부스 앞에 서 있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준해 동생!’
이름이…… 현유나랬지. 말간 얼굴에 준해의 동글동글한 이목구비를 닮은 그녀가 있었다.
“어!”
“공연 시간 한참 남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
내가 바짝 붙자 유나도 날 기억하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슬쩍 옆을 보니 다가오던 동기는 발을 멈췄다.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시작하자 바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드는 게…… 다가오는 대신 내게 메시지를 보내려는 듯했다.
‘이번엔 읽음 표시 안 뜨게 조심해야지.’
어찌어찌 위기는 모면했고, 난 다시 유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준해 동생이 벌써 공연장에 도착했는지는 진짜로 궁금했으니까.
“오빠가 공연 언제 끝날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그래서요. 부모님이 그러면 시작 전에 보는 게 낫겠다고 하셔서.”
“아아. 팬미팅이 콘서트보다 긴 편이라.”
저번 팬미팅이 6부 구성이었지. 그땐 유나도 왔었고.
컬러즈는 공연이 길어질수록 신나겠지만, 부모님은 공연장에 몇 시간이나 앉아 있기 힘드실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일찍 출발한 듯했다.
“그런데 왜 밖에 나와 있었어?”
“이거 궁금해서 잠깐 보러 나왔어요. 다 구경해서 다시 들어가려고요.”
유나가 미니크롬 패션쇼 부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부스 앞에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미니크롬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게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저번 콘서트 때도 미니크롬 패션쇼를 구경하다 친구를 마주쳤다고 했었는데.
“인형 좋아해?”
“인형도 좋지만, 그것보단 옷이요. 이렇게 정교한 건 패턴을 어떻게 짰나 하고요.”
“잘 아나 봐?”
“저…… 패션디자인 전공하거든요.”
예체능 계열일 줄 알았던 준해는 알고 보니 사회대였고, 대신 동생이 예체능 전공이라니. 여러모로 반전이 있는 남매였다.
‘패디과라니. 설마 스타일리스트의 새싹?’
어쩐지 볼 때마다 옷을 귀엽고 잘 어울리게 입고 온다 싶더니…….
아니, 패션도 장르가 다양하니 내가 섣불리 눈독을 들이면 안 되겠지.
그보다 전공을 알게 되니 다른 게 궁금해졌다.
“준해가 그 두꺼운 안경 쓰고 다닐 때 신경 쓰이지 않았어? 패션 전공자의 시점에서.”
무려 고등학생 때부터 쓰고 다녔다고 들었는데.
데뷔 이후로 숙소에서 지냈다고는 해도 그렇게 오래 애용한 안경이면 가족들도 봤을 거 아니야.
‘쓰지 말라고 말렸을까? 아니면 참았을까. 어쩌면 패션 전공자의 눈엔 이상해 보이지 않았을 수도……?’
궁금했는데 유나의 대답은 심플했다.
“오빠가 뭘 입고 뭘 쓰든 딱히 관심이 없어서…….”
“그렇구나.”
그렇구나. 이게 남매구나.
지적하거나 이해한 게 아니라 그냥 관심을 둘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 모노크롬 의상은 네가 보기엔 어때?”
연예인 스타일리스트가 아닌 패션 전공자는 처음 봐서 질문이 계속 생겨났다.
매번 미니크롬 패션쇼를 구경할 정도로 옷에 관심이 많다면, 오빠의 활동을 보면서도 무언가 느낀 점이 있지 않을까.
대상이 준해로 한정된 게 아니라 모노크롬 전체여서인지, 유나는 다행히 조금은 관심을 보였다.
“단체 의상에 디테일 요소를 넣어서 변주를 주는 게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최근 의상들은 다 그렇게 제작하시는 것 같아서.”
“……그럼 예전에는?”
“연예계는 유행이 빠르게 지나가는데 계속 같은 컨셉을 유지한 게 신기했다고 할까…… 패션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려는 노력? 같은 게 느껴졌어요.”
“으흠. 그런 해석이 가능하구나.”
같은 패션 컨셉을 몇 년 동안 유지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노리는 건 패션인이 아니라 팬들이니까 욕먹었지만.
‘일반인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현대예술 같은 걸까…….’
물론 그 스타일을 지정한 나도 이해 못 하는 일반인에 속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방금 멤버가 구현한 악동 미니크롬을 보고 와서 이런 해석을 들으니 그럴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요즘은 장난인지 진심인지 ‘악동단’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컬러즈들도 활동하던데.
‘설마 유행이 돌고 도는 것처럼 악동도 부상하는 거 아냐?’
나는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악동 미니크롬의 좋아요 수가 조금씩 오르는 것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했다.
***
이번 팬미팅 티켓도 승차권처럼 디자인했다.
저번 콘서트 티켓 행선지가 스페셜 앨범의 마지막 트랙 제목인 이었다면, 이번 티켓의 행선지는 이번 앨범의 인트로 트랙 제목인 <에메랄드 시티>.
은 모노크롬이 소원을 이루는 스토리니까 컬러즈도 함께 소원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티켓팅에 성공한 컬러즈만 이 티켓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가슴 아프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해서 의 앨범 구성품에 에메랄드 시티 초대장을 넣었으니 공연에 못 온다고 낙오될 일은 없겠지.
오늘의 팬미팅은 동화 컨셉이니만큼 무대가 상당히 아기자기했다.
“포스터 의상 그대로 입고 나올까요?”
“아, 존X 귀여워.”
멤버들이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상상만으로 벌써 귀엽다는 컬러즈들.
대상 아이돌 팬덤은 교양 있게 마음속 망태기를 펼쳐 들고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정각이 되자 공연장이 암전되었고, 무대 전광판에 오프닝 영상이 재생되었다.
오프닝 영상은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를 아동용 느낌으로 각색한 것.
‘팬미팅이라면 귀여워야지!’
기존 뮤직비디오는 흑과 백의 오브제를 사용하여 착시 효과를 주는 등 아티스틱한 느낌을 강조했다면.
오프닝 영상은 일부러 어설픈 소품들을 사용하여 어린이 연극처럼 연출했다.
(흩어지는 Raindrop, 또 터지는 불빛이-)
예를 들면 검은 우산을 타고 흐른 검은 물방울이 하얀 바닥에 떨어져 파문처럼 퍼져나가는 이 장면.
같은 파트가 오프닝 영상에선 투명 우산을 든 우형 옆에서 멤버들이 분무기를 뿌리는 장면이 되는 식이었다.
분무기 공격에 물 속성 여우가 된 우형이 우산으로 동생들을 물리치는 장면까지 편집되지 않고 가감 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멤버들은 오프닝 영상과 같은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화면을 찢고 들어간 남자들을 이은, 화면을 찢고 나온 남자들.’
저번 팬미팅과 달리 이번 등장 순서는 우형부터 나이순이었다.
우형이 이번 앨범에서 맡은 캐릭터는 ‘흑백 필름 속 세계에 살아 색을 모르는 화가’.
그는 화가답게 셔츠에 멜빵바지, 베레모를 착용했다. 우형은 이런 모자가 특히 잘 어울리는 타입이었다.
“빵모자 귀여워!”
“배웠다.”
컬러즈가 모자 우형을 망태기에 집어넣는 사이 우형은 무대 옆에 준비된 자신의 전용 아이템을 가져왔다.
의상으로 정통적인 화가의 이미지를 구현한 것과 다르게 도구는 신식이었다.
이젤과 캔버스 대신, 이동식 스탠딩 테이블과 태블릿.
“오늘 제 역할이 화가라서 뭐라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은데.”
“오오오-.”
“눈앞에 보이는…… 컬러즈를 그려볼까요?”
우형이 관객석을 훑어보며 말하자 좋아하며 응원봉을 흔드는 컬러즈와 경악하며 얼굴을 가리는 컬러즈로 반응이 나뉘었다.
발표 시간에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는 학생의 마음일까.
‘그래도 재민이가 아니라서 그런가, 기대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네.’
재민은…… 현대예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니까.
아무튼 우형이 컬러즈 한 명을 콕 집어서 그리겠다는 건 아니었다.
우형은 태블릿을 들어 스케치 어플을…… 구동하는 대신 카메라 어플을 켰다.
태블릿은 전광판 화면에 연동되어 있어서, 컬러즈도 우형이 보는 화면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한테 컬러즈가 어떻게 보이는지 보여요?”
“네에에!”
색다른 구도에 컬러즈는 응원봉을 흔들었고, 화면 속의 컬러즈는 더욱 반짝반짝 빛났다.
우형이 장난스레 줌인을 최대로 하자 화면에 잡힌 컬러즈는 반쯤은 화들짝 놀라며 피했고 반쯤은 적극적으로 팬심을 어필했다.
“이거 3층까지 확대가…… 아, PPL은 아니에요.”
어쩐지 카메라 기능 홍보 같아지자 우형은 다시 줌인한 화면을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객석 어디에선가 “광고 모델 시켜줘!”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래. 시켜줘. 대상 아이돌이니까.’
내가 광고왕 모노크롬을 꿈꾸는 동안 우형은 무대 위에서 본 반짝이는 관객석을 찍어 공유 기능으로 모노크롬 공식 SNS에 업로드까지 마쳤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팬들이 찍어 올린 좌석별 시야 참고 사진이 있던데, 무대 위 시야 사진은 또 처음이겠지.
우형이 업로드 버튼을 누르자 관객석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알림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자기 시야까지 공유해주는 효자 아이돌.”
“그런데 저희 이렇게 다 폰 보고 있어도 돼요?”
컬러즈는 그런 의문을 표하면서도 공식 SNS 업로드는 놓칠 수가 없는지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었다.
연예인이 무대 위에 있는데 관객들이 단체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이상한 광경.
우형은 응원봉 옆에 스마트폰 화면 빛이 더해져 광원이 두 배가 된 관객석을 다시 한번 찍었다.
다음 등장 멤버는 해랑이었다. 해랑의 캐릭터는 ‘달을 찾는 늑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늑대 귀 머리띠가 이곳에서 재등장했다.
오프닝 영상에선 늑대 귀와 늑대 장갑 정도였는데, 무대에선 아이템 몇 개가 더 추가되었다.
“손에 든 건 뭐야?”
“달……인데요.”
해랑의 손에 들린 것은 달……을 비유한 미러볼.
도한의 집들이 선물과 재민의 생일 선물로 몬클하우스에 두 개나 있던 것을 하나 가져왔다.
거기에 달이 뜨는 밤, 어두운 시야를 표현하기 위해 선글라스까지.
“너 되게 수상한 사람 같아, 지금.”
지난 팬미팅의 칼정장 백해랑 팀장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이미지 변신이었다.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