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은 신인의 데뷔 앨범이란 인상이 옅었다.
흑백이라는 컨셉에 맞추기 위해서인지 머리 염색도 없었고, 의상도 무채색 계열.
어떻게든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 스타일도, 노래도 발랄한 신인들 사이에서 차분한 이미지로 등장해 오히려 더 눈에 띌 정도였다.
그룹의 방향성을 이쪽으로 잡았는지, 다음 컨셉도 결이 비슷했다.
“이번엔…… 성숙한 컨셉이요?”
“다양하게 해 보고, 맞는 컨셉을 찾아가 보자신다.”
우형이 의문을 표하자 송준오 피디가 설명하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천장을 보라는 게 아니라 회사의 윗사람이 그렇게 정했다는 뜻이었다.
멤버들도 그 결정에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예상외라 당황하긴 했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 성숙함을 강조하는 게 대중들에게 와닿을까?
‘다섯 명 중에 고등학생이 두 명인데…….’
그걸 고려해서인지 섹시 컨셉이 아니라 성숙한 컨셉이란 설명이 붙긴 했지만, 고등학생 멤버가 소화하기 어렵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막내 준해는 18살. 6년이 지난 후에도 ‘준해에게 섹시 컨셉을 시켜도 되는가’라는 안건이 나올 정도로 앳된 얼굴이었다.
어쨌든 회사의 결정에 따르는 게 신인의 할 일.
회사가 정하는 대로 다음 음반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고, 데뷔 앨범 때와 다르게 이번엔 염색하는 멤버도 있었다.
“부럽다. 나도 아이돌 머리 하고 싶어.”
한이가 해랑의 머리카락을 만지자 해랑은 머리를 털었다.
“너도 염색하고 싶다고 해.”
“그런데 이건 좀. 형이라서 어울렸다. 래퍼 느낌도 나고.”
현재 해랑의 머리카락은 금발……이라기엔 너무나도 샛노란 색.
한이가 놀리는 건지 정말 부러워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이의 말대로 래퍼 느낌을 살리기 위한 색 같기도 했다. 컨셉에 어울리는지는 해랑조차 의문이었다.
처음부터 차분한 컨셉으로 데뷔해서인지 초기 컬러즈는 성숙 컨셉에도 놀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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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컨셉 자체가 어른스러운 쪽인가 보네 청량 컨셉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전 이것도 좋은 ^ㅠ^ 츄릅
└저도 좋긴한데 막내들 넘 꼬꼬마라ㅋㅋㅋ
└조심스럽게 다음엔 청량 한 표 손 들어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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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끼리도 아직 서로 덜 친했기에 빙빙 돌려 말했지만, 어쨌든 본심은 ‘신인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신인 그룹 팬 중에는 ‘이들이 신인이라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풋풋한 모습을 바라는 컬러즈의 바람과 다르게, 모노크롬의 다음 음반은 파워풀한 댄스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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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청량 컨셉 맡겨놨는데 언제 주시나요?(To. 뉴마)
└우리애들 이제 1년차 지나가는데 신인다운 컨셉 하나 없다니ㅜㅜ
└뉴마에게서 은은한 돌알못의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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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자기주장이 강해진 컬러즈는 회사 이름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멤버들이 자주 소통하러 와줬기에 풋풋한 매력도 즐길 수 있었지만, 모노크롬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소통 방송까지 챙겨보겠는가.
컬러즈들은 모노크롬이 신인 때 뜨지 못하고 어영부영 사라지는 그룹 중 하나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여러 시도를 해 보는 거야 좋지만 모노크롬은 데뷔 이후로 일관되지 않고 어수선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음반 컨셉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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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클이들 스케줄표 좀 보라고요ㅠㅠㅋㅋㅋㅋㅋ 전국구 아이돌 실존합니다
└완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사실은 홍길동 컨셉이었다?
└지방 살 땐 지방러라고 울었는데 수도 올라오니까 애들이 지방으로 내려가네여
└아니 전국 순회를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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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글로벌이나 케이팝이란 단어가 들어간 작은 합동 콘서트에 참여하기도 하고, 지방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하고.
낮 시간대 라디오 방송도 나가보고, 또 언젠가는 버스킹 공연도 하고.
그야말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라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흑백’이란 컨셉은 우선순위가 낮아졌는지 음반을 낼수록 모노크롬의 스타일링은 점점 알록달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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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을 컬러즈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컬러즈 색 모노크롬한테 다 뺏김
└그럼 이제 모노크롬은 저희가 하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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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의 흑백이 점점 컬러즈의 색에 물들어간다는 해석을 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기본 장비밖에 없던 게임 초보가 조금씩 룩덕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때와 닮아있었다. 그런데 돈이 모자라서 원하는 대로 완성은 안 되고 좀 어설픈.
[알록달록하기만 하고 청량 컨셉 한 번을 안 해주네]라는 의견이 지배적일 때쯤.
드디어 컬러즈가 원하던 청량 컨셉이 등장했다.
모노크롬의 2년 차. 청량의 계절인 여름이 지나고 애매한 시기에 발매한 미니 앨범 <생각이 안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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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지!!
뉴마 드디어 감 잡았네! 속이 뻥~~ 앞으로도 잘 좀 합시다 네??
└꺅! 진심은 통한다ㅠㅠㅠ 청량 너무 기대돼요
└신인=청량 이걸 팬들이 말해야 알아듣는다는 게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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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는 그렇게 바라던 청량 컨셉을 쌍수 들고 환영했다.
미래의 컬러즈가 봤다면 ‘어휴. 그렇게 기뻐할 때가 아닌데.’ 하면서 안쓰럽게 바라볼 광경이었다.
역시 신인은 청량이란 공식이 맞았는지 <생각이 안 나>는 케이블 음악 방송의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신인 때부터 응원한 아이돌이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이제 올라갈 길만 남았구나!
기대감에 젖은 컬러즈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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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안나 잘 되긴 했나 봄ㅎㅎ 두번 연속 청량컨셉이라니!!
└아ㅋㅋ 뉴마 청량 알레르기라도 있는 줄 알았자나요
└청ㅋ량ㅋㅋ알레르기ㅋㅋㅋㅋㅋ
└그딴 알레르기 있으면 엔터 사업 접어야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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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본인들이 악동 알레르기에 걸리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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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테일 그간 모노시리즈 세계관 집대성한것 같아서 너무 좋다
현실의 나/필름속의 나 이렇게 나눠져서 데뷔 앨범부터 쭉 이어지는 거
몬클이들도 데뷔 앨범부터 이렇게 쭉 이어질 거 예상했을까?
└ㄹㅇ 어케 데뷔 컨셉을 지금까지 이어올 생각을 하지
└이렇게 꾸준한 그룹 또 없다
└그런데 중간에 악..ㄷㅗ..ㅇ..
└예? 뭐라고요? 컬러즈 같은 청량 앨범도 좋다고요?^^ㅎㅎ
└누가 악ㄷ..소리를 내었어
└~어둠의 악동단 지나갑니다~악동도 아이다~아이를 지켜줍시다~
└이제 다들 배부르니까 기억 미화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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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랑이 거울 앞에 서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의 현재 머리카락 색은 회색. 정확히 말하자면 늑대의 털빛이었다.
두 번째 정규 앨범 의 스토리에서 해랑은 달을 찾은 늑대였기 때문이다.
해랑이 안무실 벽의 거울 앞에 붙어 머리카락을 살피고 있자 옆에서 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있는 사람이 더하다니까. 거울 보면서 감탄하는 거 봐.”
“…….”
해랑은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이번엔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이번엔 우형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설마 머리카락 많이 빠져……?”
신체발부 수지부모라지만 아이돌의 머리카락은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와의 공유자산이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했다.
해랑이 염색할 때마다 주인이 두피 괜찮냐며 열 번씩 물어보곤 했는데, 역시 무리가 갔던 걸까.
얼마 후 있을 팬미팅에서도 저 머리 색을 유지하려면 또 탈색과 염색이 필요할 텐데.
회사와 상의해야 하나 고민하는 우형의 표정을 보고 해랑은 거울에서 시선을 뗐다.
“아니.”
두피가 튼튼해서 다행이었다. 머리카락이 뚝뚝 끊기지도 않았다. 해랑은 그걸 확인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염색했더라, 그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그건 왜?”
“데뷔 초 꿈을 꿨나 봐. 거울 보니까 기억났어.”
샛노란 색으로 시작하여 기나긴 새빨간 머리 시절을 보냈던 해랑.
꿈은 흑백이 많다던데, 그가 과거 꿈을 꿀 때면 꿈속의 자신은 항상 알록달록 총천연색이었다.
“얼마 전엔 준해가 모노크롬이 김밥 되는 꿈을 꿨대.”
“난 참치김밥.”
재민의 말을 듣고 한이는 냅다 최애 김밥을 선점했다.
꿈의 주인인 준해는 내용을 정확히 정정했다.
“김밥이 되는 꿈이 아니라 김밥 재료 사이에 낀 꿈이었어.”
“맛있겠다.”
오늘 점심 메뉴는 자연스럽게 김밥이 될 듯했다.
“숙소에 수맥이라도 흐르나?”
“형도 요즘 이상한 꿈 꿔?”
“아니…… 예전 숙소에서 일어나는 꿈은 자주 꿔.”
대답하는 우형의 눈이 아련해졌다.
새로 옮긴 숙소도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7년이나 살던 곳이 쉽게 잊힐 리가 없었다.
이건 전 멤버가 겪는 현상인지 다들 동감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힘들었던 시기를 그곳에 묻어두고…… 물론 새 입주자에게 액운을 떠넘길 수는 없으니 그런 기분만 내고, 새 출발 하는 마음으로 숙소를 비웠으나.
되돌아보면 꼭 힘든 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 특히 데뷔 초엔 모든 일에 서툴러서 우당탕하면서 어떻게든 활동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즐거운 기억이었다.
그때가 너무 그리워서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니 과거의 기억들이 미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같은 고난과 같은 기쁨을 겪은 다섯 명은 금세 데뷔 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런데…….”
하지만 수다도 잠시. 재민이 이제 앉아 있는 건 질렸다는 듯이 기지개를 켰다.
“연습 안 해?”
“…….”
들켰나.
추억을 꺼내며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하는 건 작년에 이터널에게서 배운 스킬이었다.
그러나 재민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건 약 10분이 한계인 모양이었다.
“해야지. 연습.”
재민이 재촉하지 않아도 어쨌든 공연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 연습은 해야 했다.
오늘이 덜 힘들면 내일이 더 힘들다. 그런 생각으로 모두 일어나 자리를 잡았다.
***
큰 행사에 전야제가 있듯이, 모노크롬의 공연에도 입장 전, 대기 시간의 꽃이 있었다.
바로 모두가 함께하는 미니크롬 패션쇼.
‘원래는 컬러즈가 입후보하면 모노크롬이 나중에 시상식 영상을 찍는 시스템인데.’
이번엔 그 반대도 해 보기로 했다.
모노크롬이 참여하고 컬러즈가 평가하는 거지.
“익명으로 참여해서, 컬러즈의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패션을 뽑을 거야.”
미니크롬 제단 관리자 재민은 이 기획을 듣고 바로 의욕을 보였다.
“상품도 있어요?”
“나중에 그 의상을 실제로 제작해서 미니크롬 시상식 영상 찍을 때 입을까 하고.”
“이상한 옷이 1등으로 뽑히면요?”
“그럼…… 재밌는 거지.”
물론 컬러즈는 모노크롬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미니크롬 사진만 보고 평가한다.
지난 미니크롬 패션쇼를 살펴보니, 우리의 컬러즈가 밑바닥까지 싹싹 훑어보며 좋아요 하나씩은 꼭 눌러주길래 기획한 것이었다.
‘좋아요를 많이 받지는 못해도 다섯 명 안에서 순위를 매길 순 있겠지.’
혹시라도 1위가 안 나오면 따로 투표를 진행해도 되고.
“난 한이 인형만 좋은 옷 입혀야지.”
“그럼 좋아요 많이 못 받을걸?”
미니크롬 패션쇼 시상식엔 단체, 유닛, 개인 부문이 따로 있다.
그런데 미니크롬 다섯을 데리고 하나만 톡 튀게 입히면…… 컬러즈는 ‘한이가 입혔나 보다.’가 아니라 ‘개인팬인가?’라고 생각하겠지. 멤버가 직접 참가하는 줄은 모를 테니까!
컬러즈가 좋아요를 누르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예쁘게 입히든, 재밌게 입히든.
그렇게 찾아온 팬미팅 당일.
나는 민형과 미니크롬 다섯 세트를 나눠 들고 미니크롬 패션쇼 부스로 향했다.
“컬러즈 몰리기 전에 빨리 찍고 다시 들어가죠. 컬러즈가 민형 씨 얼굴은 알잖아요.”
“애들이 참여하는 줄 알면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그거야 상관없지만……. 제가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요.”
내가 이 이벤트의 기획자라서 직접 나오긴 했는데, 사방이 컬러즈라 첩보 작전을 펼치는 기분이었다.
“이사님 진짜 컬러즈한테 빚진 거 있죠?”
“여기선 이사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왠지 컬러즈가 보는 기분이라.”
“아, 네. 주인님.”
“…….”
나는 패션쇼 부스에 입성하여 들고 온 봉투에 담긴 미니크롬을 빠르게 꺼내놓았다.
각 봉투에 어느 멤버의 미니크롬 세트가 담겼는지는 나조차도 몰랐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재민이 거야.’
첫 번째 멤버 참가작은 동물 왕국.
다양한 동물 옷 사이에서 재민 인형은 갈기가 달린 사자 옷에 빨간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마침 이번 팬미팅에서 재민의 역할은 체스 킹. 여기서도 동물의 왕을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입을 수도 있단 걸 잊은 걸까? 아무리 봐도 상당히 더워 보이는데.’
이렇게 알기 쉬운 참가작이 있는 한편, 전혀 예상치 못한 참가작도 있었다.
‘누가…… 누가 이렇게 악동을 잘 재현해 놓은 거야?!’
저번 신셋 컨셉 회의로 악동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컨셉’ 신세를 벗어났지만, 설마 멤버에 의해 이런 완벽한 악동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이 악동 미니크롬이 1위를 하게 되었을 때 미칠 파급을 상상하고 있는데.
“어? 주인아! 맞지?”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