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8화
서림이 공개한 곡의 타이틀은 와 .
는 누군가의 예쁜 트로피나 훈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트로피를 쟁취하겠다는 그녀의 포부를 담은 곡이었다.
‘여기서 이 ‘누군가’를 특정한다면 이것도 디스곡으로 해석할 수야 있겠지만…….’
다른 누구를 생각해서 만든 곡이라고 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그녀의 마음가짐에 집중한 노래였다.
원래는 앨범에 들어가려던 곡이었고, 전략적으로 해랑의 피처링을 추가했기에 당초 계획과 다르게 완성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를 하는 곡이기에 피처링 파트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라솔 씨 곡에 피처링했을 때 느낌에 가까워.’
이 곡에선 둘 다 래퍼라기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까웠다.
랩보단 노래 파트가 많았고 해랑의 저음은 서림의 목소리를 꾸며주듯이 들어갔다.
해랑과 여성 아티스트가 협업하면 이런 시너지가 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곡이었다.
그에 비해 래퍼 느낌이 물씬 나는 곡이 바로 처음부터 낼 계획이었던 디스곡, 였다.
이 곡은 길이부터가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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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는 4분인데 롱넘버는 왜 길이가 반도 안 됨?
내용이 알차긴 하다만ㅋㅋㅋㅋㅋㅋㅋ
└디스하는 데 시간 많이 쓰기도 아깝다는 거지
└와우 ㄹㅇ 잘 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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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의도를 잘 알아챈다니까.’
이 정도면 다들 마음속에 힙합인을 한 명씩 품고 있는 건 아닐까.
는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구간을 줄여서 2분이 채 안 되는 길이로 완성되었다.
곡을 하나 더 공개하기로 했으니 시선이 분산될 것을 고려하여 결정한 사항이었다.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것처럼 ‘더씬 이야기를 하기엔 시간도 아깝다’라는 의미도 있었고, 길이가 짧을수록 사람들이 클릭하기 쉬우니까.
두 곡은 음원과 함께 라이브 클립도 공개했는데, 해랑은 의 라이브 클립에만 등장했다.
‘서림 씨가 특별히 잘생긴 후배를 요청한 이유가 있는데 음원으로만 공개하기엔 아깝지.’
도발 목적으로 섭외된 해랑의 얼굴은 역시나 클릭 유도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덕분에 대외적인 홍보는 로 하면서 화제성은 가 가져가는, ‘나는 내 음악을 할 뿐, 더씬은 뒷전.’이라고 주장하기 좋은 훌륭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서림을 응원한다던 그린도, 주변인들도 부담 없이 서림의 신곡이 나왔다며 SNS에 홍보할 수 있었다.
‘그린이처럼 두 곡이 같이 나오는 화면을 캡처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 같고.’
그린은 지금 공중파 예능에 출연 중이라 이목이 많이 쏠릴 시기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더 신경 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아이였다.
<타임스테이지>에 그린과 함께 출연하는 새민도 서림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2세대 걸그룹으로서 친분이 있었는지 같이 홍보에 나섰다.
이 곡들에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히 서림과 해랑의 지인들, 선후배들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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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랑이 피처링한 곡 들으니까 갑자기 작년 밀렵꾼 생각나네^^
어리둥절 레전드였던 그날.. 잊을 수 없어
└ㅋㅋㅋㅋㅋ아이돌 동네북이냐고
└덧신인가 그 사람도 밀렵꾼이랑 같은 쉐도우복싱 학원 다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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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는 한번 당한 일은 평생 잊지 않으려는 듯했다.
커뮤니티에서는 지오엘이 회개했다며 회개힙합인 등으로 불렀지만, 컬러즈에게 그는 여전히 밀렵꾼이었다.
당시 지오엘이 해랑을 디스했던 곡의 제목이 <사냥꾼>이어서 붙은 별명이었다.
‘컬러즈 반응도 걱정이었는데.’
모노크롬이 다른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 덕분에 컬러즈는 타 연예인에게 마음이 열려 있는 편이었다.
거기에 래퍼에게 한번 당한 적이 있는 컬러즈는 동병상련을 느꼈는지 감정 이입이 빨랐다.
‘그 이후로 힙합계랑 더는 안 엮이길 바라는 컬러즈도 있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우리 편이 이기는 게 낫지.
서림과 더씬의 대립에서 서림이 유효한 대미지를 날리며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고, 이기는 편에 속하게 된 컬러즈는 이 상황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듯했다.
그렇게 걸릴 것 하나 없이 잘 넘어가려는데.
“제가 플래그를 세운 건 아니겠죠……?”
“그건 아닐걸……. 아마도.”
우형이 자신이 괜한 말실수를 한 게 아니냐며 걱정을 했으나 이건 그의 탓이 아니다.
우형이 말하기 전부터 플래그는 이미 서 있었을지도 몰라.
사람마다 성향은 다르겠지만 래퍼는 일반적으로 자존심을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서림이 도발을 건 이상, 더씬도 가만히 있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겠지.
‘뭐 한 놈이 되레 성낸다더니.’
잘잘못을 따지자면 더씬이 불리해지겠지만, 그런 걸 생각하는 사람이면 애초에 먼저 서림을 건드렸겠어?
더씬은 본인의 오디오 클라우드에 곡을 공개했다. 본인은 소꿉장난에 끼기에는 수준이 맞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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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vs래퍼 2차전인가ㄷㄷ
작년에 이어서 머선일이냐 진짜ㅋㅋㅋ
└ㄴㄴ래퍼vs래퍼
└아 맞네
└1더씬=0.5지오엘
└이건 또 무슨 단위여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나가던 지오엘 1패
└아니 어떻게 보면 1승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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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과오가 1년이 넘도록 계속 끌려 나오는 기분은 어떤 걸까.’
하지만 지금은 지오엘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지오엘의 <사냥꾼> 해석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던 윤희가 이번에도 더씬의 비유들을 깔끔하게 해석해줬다.
“그러니까 래퍼로서 자리 잡은 본인과 다르게 서림 씨랑 해랑이는 힙합계에선 어린이나 다름없다 이 소리죠.”
“……와. 연차 공격 치사하네요.”
유치한 대응이었으나, 힙합계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어려운 조건을 지닌 두 사람에겐 자존심 상할 만한 소리이긴 했다.
해랑은 <세대공감 아이+돌>에서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 느닷없이 다시 어린이 취급을 받게 되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윤희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듯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한쪽 입에서 ‘어린놈이’라는 소리가 나오면 사실상 논리로는 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할 말이 없으니까 ‘뭐 어쩌라고’만 반복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무논리로 나오면 똑같이 무논리로 나가지 않는 이상 대꾸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이 정신 승리를 하고 말 텐데.
하지만 서림은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seo-reem: I got it. :)]
서림이 SNS에 같이 올린 사진들은 이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녀의 일상 사진이었다.
‘영어를 해석하자면 이해했다는 뜻인데…….’
그린이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제는 나도 잘 안다. 그녀는 이렇게 순순히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의아해하자 이번에도 윤희의 통역이 붙었다.
“아뇨. 이건 아가리라는 뜻이에요.”
“세상에.”
이게 진짜 래퍼의 소통방식……?
작년에 도한과 지오엘이 서로 사과문을 올리면서 ‘손잡고 화해해’ 엔딩으로 평화롭게 끝난 것은 기적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지개 반사를 날린 서림은 그렇다 치고, 같이 디스 당해버린 해랑은 어쩌지?
해랑을 찾아 모노크롬의 안방처럼 쓰이는 연습실로 내려가 보니, 그는 성을 내는 준해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아! 진짜 짜증 나. 뭔데 자꾸 무시하냐고!”
“이거 마셔.”
준해는 해랑에게 컵을 하나 건네받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준해한테 뭘 주는 거야?”
“차분차요.”
그러나 차분차는 효과가 없었는지 준해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차분차의 개발자인 재민은 준해의 옆에서 그를 부추겼다.
“그 분노를 몸으로 표출해 보는 거야!”
연기 수업에서나 들을 법한 지시였으나 준해도 재민에게 물든 지 오래였다.
두 사람은 거울 앞으로 가더니 펄쩍펄쩍 뛰며 신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트윙클 챌린지 후유증인가……?’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푸는 건 좋은 방식이었으나 어쩐지 우리의 참지 않는 치와와…… 아니, 도한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멤버 모두가 그렇겠지만 준해는 특히나 다른 사람이 모노크롬을 건드리는 것을 정말 질색했다.
준해의 저런 모습을 보고 나니 별 표정이 없는 해랑이 상대적으로 더 차분하게 보였다.
“해랑이 너는 별로 화 안 나?”
“네. 별로……. 저번에는 그룹 얘기까지 나왔는데 이번엔 그런 것도 아니라서요.”
해랑은 정말 더씬에 관해 아무 생각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신경 쓰는 바운더리가 좁아서일까. 바운더리의 바깥에 있는 더씬은 그에게 관심조차 얻지 못했다.
더씬은 어린이라고 놀렸는데 그 어린이는 ‘뭔데요, 아저씨.’ 하고 그냥 갈 길을 가는 상황. 어린이를 놀리는 어른만 이상해진 거지.
‘알고 보니 해랑이도 기 엄청 센 거 아니야……?’
서림이 기가 매우 세다는 ‘기존쎄’라는 별명을 얻었던데, 해랑도 만만치 않은 거 아닐까.
“하긴 다른 래퍼들한테도 거절로 일관해 왔는데 지금 굳이 대응할 필요는 없겠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무시해.”
“네.”
해랑은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방 뛰고 있는 준해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래도 컬러즈가 저렇게 화내고 있을 것 같은데…… 뷰이라이브를 할까요?”
“그래. 그게 낫겠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거, 아름다운 걸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낫지.
차분차보다 더 확실한 해랑의 진정효과가 일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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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랑이 오늘 표정 뭐야
채팅에서 더ㅆ얘기 나오니까 가소롭다는 얼굴로 잠깐 웃고 지나가는데 내가 치여버림
└너=나 간만에 어둠의컬러즈 깨어남 ㅈㄴ짜릿해..
└여기 나 같은 애들 많구먼 홀홀~~
└와 이게 뮤비나 화보가 아니라 현실이라니
└덧신아 고맙다 ^^ 아니 안 고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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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과 해랑, 컬러즈는 별 타격 없이 정상 운행 모드로 돌아갔지만 아직 분노하는 이는 있었다.
[진짜 싫어요! 선배님이랑 연애할 땐 이해심 넓은 사람인 척하더니 결국 속으로는 계속 그렇게 낮잡아 보고 있었다는 게.]
스마트폰 너머의 그린이 진저리를 치며 더씬을 매도했다.
그린의 머릿속, 더씬은 망나니에서 망발 제조기로 진화했다.
결국 이 일은 더씬이 아이돌은 자신과 수준이 안 맞는다면서 센 척을 한 게 문제였다. 현직 걸그룹인 그린이 더 화를 낼 법도 했다.
‘이러다가 그린이가 제2의 힙합인이 되어버리겠어.’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른 화제를 꺼냈다.
“전에 서림 씨 만났을 때 그린이 네 얘기도 했는데.”
[앗, 정말요?]
그린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역시 덕후에게 최고의 진정제는 덕질 대상이지.
그런데 이런 아이리스의 분노를 느꼈던 것일까. 마무리되어가려는 디스전에 느닷없이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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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힙합러 등판ㄷㄷㄷㄷ
노선 확실하네 ㅋㅋㅋ
└그때 그 호랑이 사냥꾼 어디갔냐고ㅋㅋㅋㅋㅋ
└호랑이 있을 적이면 조선 시대니까.. 현대에 환생해서 회개인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는게 맞을듯
└다음엔 빙의냐
└옛날이랑 너무 달라진 거 보면 이미 뭔가 씌인 것 같긴 한데
└1지오엘=10더씬(실시간으로 환율 조정중)
└지오엘 코인 떡상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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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엘의 오디오 클라우드에 올라간 곡 제목은 <씬스틸러>.
‘작년에 라는 방송 섭외 때문에 해랑이를 디스했던 걸 이렇게…….’
자조적인 네이밍이었으나 그의 회개힙합 이미지에는 매우 탁월하게 작용했다.
더씬이 요즘 ‘리틀 지오엘’이니 ‘0.5 지오엘’이니 하는 별명을 얻게 되었으니, 더씬의 이름은 자기가 가져가겠다는 의미의 ‘씬’ 스틸러였다.
해랑의 코웃음 한 번으로 ‘남의 일’ 취급하기로 한 컬러즈는 이 사건들을 강 건너 불 보듯이 구경하기 시작했다.
제삼자가 나타나 적을 알아서 때리고 있으니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긴 했다.
‘컬러즈도 서서히 진화하고 있어…….’
무논리 더씬에, 무지개 반사를 날린 서림, 무시로 일관하는 해랑. 여기에 반사 이익을 누린 지오엘까지.
커뮤니티를 불타오르게 했던 이 디스전은 한쪽의 확실한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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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디스전이랑 이번 디스전에서 특이한 점
중심에 있는 백해랑은 사실 아무것도 안 함.
└그러네 디스도 서림이 했지 백해랑은 걍 재연배우 역할이었는데
└사실 백해랑이 힙합씬 다 조종하는 거 아님?
└흑막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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