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37화 (337/430)

# 337화

“형치고 의외로 쉽게 마음먹었네.”

해랑이 주서림의 살해예고장……이 아니라 곡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에 한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한 아티스트의 활동에 지장이 생겼고, 우리는 그걸 도와주려는 것이었다.

멤버들도 그 점은 수긍했지만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해랑이가 계속 피처링 제안을 거절하는 걸 옆에서 봐 왔을 테니.’

해랑에게 판단을 온전히 맡기기는 했어도 괜찮은 제안이 있었다면 내 귀에도 들어왔을 법한데.

그런 게 없었다는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찔러보는 제안이 많았다는 뜻이겠지.

그러다가 참여하기로 한 곡이 래퍼를 향한 맞디스곡.

우형이 옆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기에 나는 그를 안심시켰다.

“나도 가사를 봤는데 막 심한 말이 쓰여 있는 건 아니었고…… 서림 씨나 라솔 씨나 회사 이미지도 있으니까 처음부터 너무 거칠게 가진 않을 거래.”

서림이 내게 보여준 가사는 혼자 곡을 낼 때를 상정해 적은 것일 뿐.

피처링을 넣는다면 참여한 아티스트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조금 순화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것저것 뒤진다는 소리는 나중에 상대측에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면 그때 꺼내도 된다나.

그러니 이번 맞디스곡은 법정 공방으로 번지기 전에 내용증명을 보내는 행위와 비슷했다.

‘그런데 사실 순화한다는 것도 서림 씨 기준인 것 같아서…….’

그냥 잘생긴 것도 아니고 무지막지하게 잘생긴 후배를 동원하려는 것을 보면 상대방이 열 받을 만한 요소를 쏙쏙 골라 집어넣으려는 게 아닐까.

연인 관계였던 기간이 꽤 길었는지 그녀는 래퍼 더씬이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팬도 돌아선 팬이 가장 무섭다는데.’

사적인 면을 누구보다 잘 알 옛 연인을 디스한 그의 업보지. 게다가 서림의 성격도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아무튼 해랑의 결정에 모노크롬 멤버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 내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옆에 있던 준해는 여전히 다른 래퍼들을 떠올리는 듯, 입이 삐쭉 나온 상태였다.

“이걸로 계속 오던 피처링 연락들 확 끊기면 진짜 황당하겠다.”

재민은 준해의 말을 듣고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피처링 한다고 연락이 왜 끊겨?”

“다른 유명한 래퍼랑 척지면 불똥 튈까 봐 몸 사리는 거잖아. 지금까지는 만만해서 연락했다는 거고.”

“그건 진정한 힙합인이 아니잖아.”

그렇지. 유명 래퍼에게 사이버 죽빵을 날린 간 큰 메인보컬 도한도 있었는데.

힙합 업계인이 정말 이 일로 태도가 돌변하여 몸을 사린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 이번에 피처링 하고 나서도 연락하는 래퍼분 있으면 해랑 형은 같이 작업할 거야?”

“글쎄. 적어도 진짜 나랑 작업하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있겠지.”

재민의 질문에 해랑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대답을 남겼다.

해랑도 음악, 랩을 하는 사람이라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단지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무슨 마음으로 접근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거절로 일관해 왔을 뿐.

이번 피처링 건은 앞으로의 판단 기준을 세우기에도 좋은 기회였다.

“그래. 형 평소에 나한테 디스하는 것처럼 하면 지지 않을 거야.”

“내가 디스하는 게 아니야.”

한이도 해랑이 필요해서 제안을 받아들인 거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나 동생들과 다르게 우형은 여전히 표정에 걱정이 담겨 있었다.

‘만일 해랑이가 관심이 없어 보이면 우형이한테도 물어볼까 잠깐 생각했었는데.’

해랑만큼 인상의 임팩트가 강하지는 않더라도 컬러즈를 자주 처돌게 만드는 우형이 아니던가.

잘생긴 후배고, 모노크롬의 래퍼이기도 하고, 거기에 누나가 있으니까 남동생의 입장에 더 잘 이입하지 않을까 싶었지.

그런데 그룹의 리더로서 책임감이 있다 보니 더 조심스러운 걸까. 우형은 염려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역시 디스라는 게 좀 걸리나……?”

“아뇨. 그게 아니라…….”

우형은 동생들에게는 괜한 불안감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는지 작게 말했다.

“괜찮겠죠? 가끔 해랑이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서 일이 커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서요.”

“……그렇지.”

피처링은 괜찮은데 태풍의 눈 특성이 발동될까 봐 걱정한 거였나.

해랑과 오래 함께해 온 우형도 해랑의 주변에 이따금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형은 걱정을 떨쳐내려는 건지 머리를 가볍게 털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다는 것뿐이고 매번 그렇다는 건 아니니까. 설마 무슨 일이야 생기겠어요?”

“그 말 좀…… 플래그 같지 않아?”

“헙.”

우형은 말을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는지 제 손으로 입을 막았다.

***

전 걸그룹 멤버 주서림을 만나고 난 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걸그룹 정보통 그린이었다.

내가 그녀 이야기를 하며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린은 마침 쉬는 중이었는지 바로 확인하고는 전화를 걸어왔다.

[이거…… 사적인 통화라고 봐도 되겠죠?]

“응. 물론이지. 내가 일 때문에 연락한 건 아니니까.”

그린은 주저하는 말투로 이런 질문을 하더니 봉인이라도 풀린 것처럼 성을 냈다.

[걸그룹 중에서 래퍼 포지션으로 꾸준히 활동하시는 분이 얼마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한테는 더 상징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 대단하게 느껴지는 선배님인데요. 그런데 더씬?! 웬 망나니 같은…….]

순간 급발진이 뉴마 종특이냐던 예전의 한 커뮤니티 댓글이 생각났으나 이건 이유 있는 급발진이었다.

[일부러 그런 건진 몰라도 선배님이 이전 회사랑 계약 해지하느라 정신없는 사이에 그쪽에서 노래로 저격을 한 거예요. 진짜 싫어.]

더씬이 곡을 낸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서림은 이번에 라솔의 회사와 계약했으니 소속사 이전 시기가 겹쳤겠구나.

이전 회사를 나온 후 새 회사와 계약하는 사이에 공백기까지 있었다면 팬들은 더욱 불안했을 수도 있다.

그녀가 활동하는 모습을 더는 못 볼까 봐.

[그게 아니었으면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닌데. 당분간 조용하셔서 무슨 일 있는지 엄청 걱정했다니까요.]

“……팬들도 알고 있었구나. 서림 씨 성격.”

[아무래도 걸그룹 멤버가 래퍼로 활동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여기저기서 저격당하는 일이 많았어요. 선배님 정신력이 강해서 버틴 거죠.]

팬으로서가 아니라 걸그룹 후배로서도 그린은 그녀를 존경하는 듯했다.

서림이 ‘내가 한번 들이받았다고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면 그 사람 그릇이 작은 게 잘못.’이라고 말했던 것이 새삼스레 다시 떠올랐다.

‘그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나 봐.’

그럼 더씬도 그런 성격을 분명 알았을 텐데. 그래서 서림이 다른 데 정신이 팔린 틈에 디스한 건가.

그린이 팬 입장에서 분통을 터트릴 만도 했다.

나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린이 안심할 만한 이야기를 해 줬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활동하실 거야. 신곡 준비하고 계셨거든.”

[정말요? 곡 나오면 저도 SNS로 홍보할래요.]

연예인들도 친분이 있거나 응원하는 가수가 곡을 내면 SNS에 스트리밍 인증을 하곤 한다.

다만 그린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해맑았다. 그 신곡이 망나니를 향한 맞디스곡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디스곡…… SNS에 홍보해도 괜찮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스마트폰 스피커 너머로 “트윙클, 트윙클 스타~”라며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숙소에 옐로 있니?”

[네. 보라는 괜찮은데 옐로 언니가 트윙클 중독자가 됐어요.]

제이제이의 트윙클 챌린지 성공 이후, 옐로와 퍼플을 지도하던 로아도 박차를 가했다.

덕분에 옐로와 퍼플이 걸그룹 최초로 성공한 것까진 좋았는데, 옐로에게 챌린지 부작용이 생겨 버렸다.

아이들이 따라 부르기 쉽게 만들어진 노래여서 중독성이 강한 모양이었다.

챌린지 당시 준해도 자기도 모르게 트윙클스타를 흥얼거리다가 깜짝 놀라곤 했었지.

‘구조 요청이 왔을 때 잘 들어줄 걸 그랬나…….’

이미 트윙클 중독 증세를 보이는 이상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서림의 이야기를 들으려다가 뜻하지 않게 옐로의 후유증까지 접한 나는 걸그룹의 고생을 느끼며 복잡한 마음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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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국힙이지ㅋㅋㅋ

디스엔 디스로 맞선다? 선빵 맞았으면 못 참지ㅇㅇ

└주서림 성격에 왜 가만히 있나 했는데 응.. 대단한 걸 준비중이었구나 ^^

└조용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근데 백해랑은 원래 친분이 있었음?

└ㄴㄴ주서림 남동생이 더씬땜에 너무 억울해해서 대역으로 세웠대

└남매 사이 엄청 좋은가보네ㅋㅋㅋ 누나 일에 화내는거보면

└아니 더씬이 남동생한테 주서림이랑 만나는 놈이냐고 해서 척수반사로 욕했다함

└찐남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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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랑은 원래 바운더리가 매우 좁은 사람이었다.

폐쇄적으로 본인에게만 집중한 곡을 쓰던 그는 팬들에게 들려줄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고 동료들과 함께 부를 노래도 만들게 되었다.

빠르게 본인의 범위를 넓히며 성장해가는 그에게 서림과의 콜라보는 생각보다 좋은 경험이 된 듯했다.

“같이 작업하기 좋은 사람이라면…… 기존에도 다른 가수들이랑 자주 작업하던 사람, 아니면 방송에 자주 나오는 사람, 연예인 지인 다양하고 확실한 사람? 내 경우엔 그런 래퍼들이랑 같이 작업했을 때가 가장 괜찮았어.”

피처링 작업에 앞서서 서림은 내용을 조율하고자 뉴마로 찾아왔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샌가 해랑의 고민 상담 시간이 되었고 서림은 본인의 경험을 떠올리며 대답해주었다.

아이돌 래퍼도 자주 무시당하고, 여성 래퍼는 다른 범주로 취급받고는 하는데 서림은 그 둘을 섞은 여성 아이돌 래퍼.

그런 조건을 지니고 힙합씬에서 버텨온 그녀의 조언은 해랑에게 상당히 실용적이었다. 해랑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서림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생각해 보니까 래퍼 선배는 처음 생긴 거 아니야?’

친한 선배가 생기려면 같은 소속사거나, 방송 등을 같이 하면서 얼굴을 많이 마주쳐야 하는데 모노크롬은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까.

마침 고민에 빠져 있던 해랑에게는 서림의 피처링 제안이 타이밍 좋게 들어왔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래퍼와의 첫 피처링 작업. 기왕이면 잘되는 게 당연히 낫지.

의미 있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해랑과 미리 상의했던 내용을 말하려고 운을 뗐다.

“아이리스가 예전 뉴마 소속이어서 자주 연락하거든요. 그린이한테 얘기했더니 서림 씨는 정말 존경하는 선배라고, 활동이 기대된대요.”

“정말요? 고마워라.”

그린이 그렇듯이 서림도 걸그룹으로서 동지애 같은 것을 느끼는 듯했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모교 후배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그래서 곡 나오면 꼭 SNS에 홍보하고 싶다고도 하던데요.”

“으음……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괜찮은데.”

기쁘게 그린의 이야기를 듣던 서림이 이 이야기에는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혼자라면 거리낌 없이 할 일도 다른 사람이 엮이면 책임감이 생기기 마련.

서림은 걸그룹 출신이라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조심스러워지는 아이돌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곡의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피차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서림은 오늘도 이렇게 내용을 조율해 보자고 찾아온 것이었다. 선의로 참여하는 해랑에게 최대한 악영향이 가지 않게 하려고.

‘그런데 이건 여론전이라 서림 씨를 편들어주는 사람이 많은 게 가장 효과적일 텐데.’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면 그녀에게 힘이 된다.

서림이 걸그룹에게는 상징성이 있는 선배라고 했으니 그린처럼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도 많을 터.

그런데 서림도, 주변인들도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래서 말인데요. 디스곡 외에도 곡 하나를 더 내는 건 어떨까요?”

누구나 좋아하는 원 플러스 원.

두 곡을 같이 내려면 곡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 당연한 문제가 생기지만 이것도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앨범 내려고 준비 중인 곡이 있긴 한데…….”

“네. 전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생각나서 제안 드려보는 거예요. 대외적으로 내세우기 편한 곡이 같이 있으면 서림 씨나 다른 분들이나 홍보하기에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 해서요.”

그녀를 지지하지만 대놓고 디스곡을 건들기에는 주저되는 사람은 다른 쪽의 곡만 홍보해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응원이 될 것이다. 서림도 책임감을 덜 느껴도 되고.

“그럼 제가 디스곡에만 후배를 끌어들이고 혼자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요.”

피처링도 원 플러스 원.

파격적인 혜택에 서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림도, 라솔의 회사도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지 우리의 제안은 수월하게 통과되었다.

그리고 음원 공개 날, 두 곡이 동시에 공개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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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갓 리틀 지오엘 이즈 히얼

└ㅋㅋㅋㅋㅋ더씬 새 랩네임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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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랑의 태풍의 눈 특성이 기어코 발동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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