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75화 (275/430)

# 275화

‘혹시 그게…… 생일 소원으로 이뤄진 게 아닐까?’

제야의 종 소원이 이렇게 이뤄진 것보다야 덜 황당하긴 하지만…… 너무 극단적이잖아.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다고 했더라도 그건 다른 도시 정도였겠지. 최대한으로 생각해 봐도 다른 나라까지가 내 상상력의 한계다.

다른 차원이나 다른 세계를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야.

아무튼, 나는 그때 잠든 후 꽤 늦게 일어났다.

뻐근함을 느끼며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엄마에게서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와있었다.

엄마에게 걱정을 끼칠 것을 걱정하던 나는 그때까지 퇴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메시지를 보고 나는 자취방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길었던 머리를 자르고 핸드폰도 바꿨다.

충동적으로 본가로 돌아가 백수처럼 지냈지만 마음은 훨씬 편했다.

‘그런데 사실 그날, 내 세계선이 분리되었던 거야.’

하나는 이 세계의 대표, 하나는 그대로 현실에 남아 있던 나로.

나는 엄마의 메시지를 보고 현실에 붙어 있을 이유가 생겼지만, 대표는 그 메시지를 보지 못했기에 현실을 아예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대표가 나라면 많은 것들이 설명 가능했고, 또 많은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나니까.

‘대표도 당연히 뉴마에 신주인이 부임한 걸 알고 있었겠지만, 그냥 설정상 생겨난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커.’

대표는 대표라는 신분이 불편했겠지. 자신은 설정처럼 중년 남성이 아닌데 남성 신분으로 살아가야 했으니까.

게다가 자아가 생긴 후엔 출근도 하지 않았고 아예 해외로 나가버리기까지 했다.

아마 게임이라는 이유로 이 세계에서 대표가 저질렀던 과거를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나도 그간 내가 대표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여러 번 생각했잖아?’

컬러즈가 대표란 이름에 비속어를 붙여서 욕하던 것을 떠올려 보면…… 도피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 세계에는 신주인이라는 신분이 없어서 대표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주인이 나타났다.

대표는 이를 두고 언젠가 신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위해 준비된 더미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거든.

‘……이거 완전, 도플갱어잖아.’

신주인이라는 신분은 하나고, 사람은 둘.

만일 대표가 신주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어 한다면…… 내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아마 대표도, 신분을 차지하겠다고 사람을 해칠 인물은 되지 못한다.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 했겠지.

지금껏 대표는 아무 제스처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뉴레인을 운영하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 내 스마트폰부터 찾아서 부숴 버렸어.’

이건 분명 마이 엔터를 의식한 행동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뉴레인의 신인 기획을 방해했기 때문에. 내가 대표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어서.

내 행동이 대표에게 확실히 방해가 되었고 대표는 나와 마이 엔터를 연관시켰다.

‘혹시, 대표도 퀘스트 중인 건가?’

그리고 그 퀘스트 보상이 신분과 관련된 것이라거나.

그래. 최 비서의 이야기에 따르면 대표도 이곳에서 눈을 뜰지 몰랐기에 당황했을 텐데.

해외로 도망칠 정도면서 계속 회사를 운영해 왔다면 뭔가가 강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게임을 하듯이 아이리스를 자꾸 해외로 돌리던 것도 그렇고, 회사의 이익을 생각한 행동만을 취하는 것을 봐서는 뉴레인을 키우는 게 목표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생각하면 퍼즐이 어느 정도 맞춰져.’

그간 대표의 생각이 궁금했던 참이었다.

비록 대표가 먼저 날 인식했지만 이제 나도 대표를 인식했다. 상대가 확실하게 정보의 우위에 선 게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여기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결론은 이것이었다.

‘뉴레인을 방해하면 대표는 분명 다시 나타난다.’

모노크롬의 대상 수상과 동시에 내가 노려야 할 것이 정해진 그때.

[퀘스트 발생!]

“……뭐야?”

현실을 인지한 보상이라도 되듯이 게임 시스템이 또 뭔가를 던져줬다.

***

퀘스트가 온 것은 내 업무용 스마트폰.

하나는 고칠 수도 없게 부서지고 말았지만 스마트폰이 한 대 더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 내가 이 세계에 온 첫날에도 이랬잖아.’

바로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이 세계에선 새로 설치가 불가능하던 마이 엔터만 돌아왔을 뿐, 엄마와의 대화창은 돌아오지 않았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친절하지는 않다 이거지.

‘게임 시스템 아래에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라는 거야?’

게임 시스템은 불친절하고, 주는 것도 없고. 그저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모노크롬의 대상 수상 퀘스트와 엄마와의 대화창만으로 내 목표를 설정하고 움직여왔으니까.

누군가는 나를 보고 신을 떠올렸다는데, 실은 시스템을 거스르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시스템이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이리스의 음반을 ‘대성공’으로 만들기…….”

아이리스를 집중해서 키울 땐 모노크롬 퀘스트를 주더니, 모노크롬을 키우는 지금은 갑자기 또 아이리스?

내게 더 어려운 목표가 뭘까 고민하면서 퀘스트를 던져주는 건가. 게다가 이번엔 지금껏 비활성화 상태였던 ‘성공도 시스템’까지 적용되었다.

대상 수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지만 ‘대성공’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것도 만만치 않은 목표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퀘스트 보상은…….

“아이리스의 유지?”

엄마와의 대화창이 아닐까 예상했는데, 대화창은 이전에도 시스템이 멋대로 만들어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보상으로 표시되지는 않았다.

대화창은 시스템의 지시를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고 희망만 품고 있어야 하나.

당장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 참담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다시 화면 속 문구에 집중했다.

아이리스의 유지. 언뜻 보면 당연한 얘기 같지만 심상치 않은 보상이었다.

그럼 내가 이 퀘스트에 실패하면 아이리스는…… 해체한다는 거야?

‘멀쩡하게 활동하던 그룹이 갑자기? 아니, 갑자기는 아니지.’

가장 최근 모습만 떠올려봐도 멀쩡하다고 부를 만한 상태는 아니었지. 퍼플이 크게 번아웃이 와서 자기 머리카락을 잘라 버릴 정도였으니까.

레드는 리더로서 뉴레인과 대화를 나눠보겠다고 했고 그 이후엔 따로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아이리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

시간이 너무 늦어서 당장 레드에게 연락을 해 볼 수도 없었기에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할 일이 많아졌으니 수면 부족인 상태보다는 멀쩡한 정신인 게 나았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어쩌다 보니 야근 아닌 야근을 한 최 비서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조만간 내가 뉴레인의 일에 좀 끼어들어야 할 것 같아.”

“뉴레인…… 말입니까?”

“응. 그래서 회사 일에는 신경 쓸 시간이 줄어들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최 비서에게 부탁해야 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최 비서는 어제처럼 이유는 크게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을 상담할 수 있는 상대가 생겼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 굉장한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말은 해 놨는데, 내가 아이리스의 음반 제작에 어떻게 참여하지?’

시스템은 목표만 덜렁 던져주고 끝이었다. 목표를 이룰 방법은 내가 알아서 찾아야 했다.

갑자기 뉴레인을 찾아가서 날 끼워달라고 하면 분명히 이상하게 볼 테고.

최근 내게 신인에 관한 의견을 구하고는 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뉴마의 이사고 뉴레인에게는 외부인.

내가 개입하는 것을 뉴레인 임직원들이 환영할 리가 없다.

‘역시 레드랑 대화해 보는 게 빠르겠지.’

출근한 나는 이야기 좀 나누자며 레드에게 연락했고 답장은 바로 왔다.

[지금 숙소인데 시간 괜찮으시면 바로 나갈게요! 저도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요.]

뉴레인과 뭔가 문제가 있는 듯한데 뉴마에서 만나기에는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우리는 따로 약속 장소를 잡아 점심에 만났다.

프라이빗룸이 있는 레스토랑. 내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으니 레드도 금방 나타났다.

“이사님!”

“어어. 왔어? 앉아.”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근황 얘기로 잠깐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며 나누기에는 무거운 화제였지만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전에 뉴레인이랑 협상해보겠다고 했던 거. 혹시 대화가 잘 안 됐어?”

레드가 내 질문을 듣고 입술을 작게 무는 것을 보니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뉴레인에서 뭔가 계속 반대를 해?”

“이제 재계약도 생각해야 하고, 저희도 신인이 아니니까 어느 정도 요구할 위치는 된다고 생각해서 이번에 해외 말고 국내 활동이 하고 싶다고 했어요. 멤버들도 해외 이동이 너무 잦아서 피곤해했거든요.”

퍼플의 번아웃, 그리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해외 유닛 활동 계획은 올스탑.

그렇다고 다른 이로 대체하기에는 다른 멤버들도 해외 활동에 부정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국내 활동과 해외 활동은 부담감이 차원이 다르다. 중간중간 해외의 호텔에서 쉰다고 하더라도 ‘색다른 휴식’이 될 뿐이지, ‘내 집 같은 편안함’은 아닐 테니까.

“그래서 회사가 내놓은 방안은 일본에서 활동했던 타이틀곡을 한국어 버전으로 번안해서 내는 거였는데, 그건 싫었어요. 좀 더 제대로 된 컴백을 원했거든요.”

일본 활동 직후에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한국어 버전 음원을 냈다면야 모르겠지만, 국내 컴백을 하고 싶다는데 대안으로 내놓은 게 번안곡이라니.

지금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면 원래부터 양국에서 활동할 예정이었던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돈 아끼려고 그런 거 아니야?’

작사는 다시 해야겠지만 곡과 안무는 나와 있고.

계약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선스 비용이 작곡비보다 많이 들지는 않을 거 아냐.

뮤직비디오는 일본어 버전을 촬영할 때 한국어 버전도 같이 찍은 게 아니라면 완전히 새로 찍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뮤직비디오가 있는데 한국어 버전의 뮤직비디오를 새로 찍으려 할까? 회사의 이익을 생각해 보면 아니겠지.

찍는다고 해도 정식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세트장 하나만 활용한 스페셜 영상으로 끝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즉, 뉴레인은 국내 컴백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왜 아이리스를 데리고 모노크롬의 전철을 밟고 있는 거야…….’

적어도 대표의 퀘스트 내용이 ‘아이리스 망치기’는 아닐 텐데.

생각해 보면 완전체 해외 활동을 계속하다가 유닛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래.

모노크롬을 두고 윤환의 솔로 활동만 진행했던 내 플레이와 똑 닮아 있었다.

“그것 때문에 계속 의견 충돌이 있었어요. 자꾸 싫다고만 하면 저희 프로듀싱해 줄 사람은 없을 거라고. 저희가 알아서 찾아보라고…….”

“…….”

회사가 당연히 할 일을 안 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아이리스가 일본 곡을 거부하자 그 일본 앨범 제작에 참여했던 프로듀서는 기분이 나빴는지 손을 놔 버리고, 회사가 그 책임을 아이리스에게 돌렸다고 한다.

송준오 피디가 뉴마로 돌아온 이유가 다시 떠올랐다.

지금 뉴레인은 기획을 아티스트에 맞추는 게 아니라 프로듀서에 맞추고 있었다.

“그럼 프로듀서를 찾아오면, 활동 시켜주겠대?”

“그냥 안 된다고 하면서 지나가듯이 얘기하신 거라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빈말이더라도 여러 상황상 뉴레인은 결국 아이리스를 아예 무시하지는 못한다.

지금 신인 데뷔 서바이벌이 방영 중이라 비난 여론을 신경 써야 할 테고.

회사는 아이리스의 활동을 서포트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을 텐데 그걸 포기해 버리면 계약 이행 불성실로 문제가 생기는 상황.

게다가 내게 도착한 새 퀘스트까지.

이 모든 상황이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대표님과 결판을 낼 게 있는데 말이야…….”

내가 대표 이야기를 꺼내자 레드는 큰 눈을 깜빡였다.

모노크롬의 다음 앨범은 콘서트도 함께 기획하기 위해 준비 기간을 길게 잡아뒀다.

게다가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일을 잘해내고 있고.

모노크롬의 자립을 준비하기 위해 멤버들의 참여도를 올리기도 했다. 그만큼 내가 관여할 부분은 이전보다 적다는 얘기고.

총괄 프로듀서로서 내가 결정해야 할 것들은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는 레드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 프로듀서 역할, 가능하다면 내가 맡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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