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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74화 (274/430)

# 274화

회사 출입 기록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회사 직원들도 수상한 사람이 이사실을 드나드는 것은 본 적 없다고 했다.

‘그런데 회사와 이사실을 드나든 게 ‘나’라면 당연히 아무도 의심을 안 했겠지.’

최 비서를 제외한 사람들은 대표를 잘 인식하지 못했는데, 지금 내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대표를 보고도 나라고 인식했다는 건가?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와 머리가 지끈거렸다.

게다가 대표는 그저 나와 모습이 같은 것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정확히 노린 것을 봐서는.

‘스마트폰으로 마이 엔터를 플레이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

최 비서에게 ‘기분 나빠.’라고 한 것도 회사에 다니던 기억이 있어서인 것 같고.

내 모습을 하고 내 기억이 있다면…… 그건 그냥 내가 아닌가?

이 세계에서 대표로서 살아온 나, 그리고 다른 현실에서 들어온 나. 이렇게 둘이 이 세계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는 게 가장 설득력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이가 바로 앞에 한 명 더 있다.

“하나 더 물어보고 싶은데, 대표가 따로 있는데 최 비서는 내가 대표였다는 걸 어떻게 확신해?”

“방금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사님이 대표님이셨다고요.”

“그거 말고, 그 전에 말이야. 뉴레인 신인 기획 얘기가 나올 때.”

대표가 뉴레인에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것을 말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은 최 비서의 반응을 또렷이 기억한다.

나는 그걸 ‘회사 운영에서 물러난 줄 알았던 대표가 멀쩡히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라고 여겼지.

그러나 달랐다. 그는 사라진 줄 알았던 대표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이전까지 그는 나와 대표를 동일시해왔지만 대표가 따로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얼굴이 같아서 혼자 대표님이라고 오해했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던 거 아니야?’

애초에 이 세계를 살던 건 ‘신대표’이고, 나는 갑자기 나타난 존재인걸.

그런데 최 비서는 오늘 나타난 대표의 모습을 확인하고도 나를 대표로 보고 있다.

“실은…… 방금 이사님이 제게 ‘이사님을 아느냐’고 물으시기 전까지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믿어? 내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고…….”

“이사님은 거짓말을 잘 못 하시거든요.”

……그건 나도 알고 있긴 하지만.

나를 1년 넘게 지켜봐 온 그는 나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사담을 일절 안 하는 대표를 보면서도 취향을 알아챌 정도이니.

최 비서는 업무력뿐만 아니라 관찰력까지 우수했다.

“그러면 최 비서는 대표가 한 명 더 있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대표님은 모든 일의 예외 같은 분이셨습니다. 의심이 많았다면…… 이 일을 오래 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사님.”

그만큼 대표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왔다는 걸까?

나를 믿어줬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지금 그가 무슨 마음인지 가늠이 되지를 않았다.

“그럼, 대표가 다시 나타났다면 최 비서는…….”

만일 그게 대표를 향한 신뢰라면.

대표가 나타난 것을 알게 된 이상, 다시 대표의 편에 서는 게 아닐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말끝을 흐렸는데 최 비서는 내 생각이라도 읽은 듯이 입을 열었다.

“저는 대표님을 따르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따르던 분은 과연 어떤 분인지, 앞으로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 봤습니다만…….”

이전에 내가 대표의 사람이냐고 물었던 질문에 최 비서는 대답하지 못했고, 나는 최 비서가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서먹하게 지내왔다.

그런데 그동안 최 비서는 계속 이것을 생각해 왔던 모양이다.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일해 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요하지 않아……?”

“두 분 다 제가 알던 대표님과 같은 부분도, 다른 부분도 지니고 계셨고, 대표님도 이전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셨으니 진짜 대표님이 누구인지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최 비서는 그때 내가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지금 꺼냈다.

“그리고 역시, 이사님이 지향하시는 방향이 제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튜토리얼 캐릭터가 아니라 이 세계를 사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내가 가는 길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맙고 기쁜 일이다.

그러나 원래 살던 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 와서야 이런 감정을 여러 번 느끼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자꾸 이러면 다시 이 사람들이 없는 세계로 돌아가는 게 점점 망설여지잖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반대로 나는 갈팡질팡하고만 있었다.

보상을 떠나서 모노크롬을 더 위로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기에 내가 할 일은 바뀌지 않겠지만, 자꾸 마음이 느슨해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작게 한숨을 쉬자 이번엔 반대로 최 비서가 내게 질문을 해 왔다.

“이사님도 대표님처럼 이전의 기억은 없으신 겁니까?”

나는 최 비서에게 대표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대표라고 밝힌 지금,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최 비서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여기가 내가 플레이하던 게임 속이라는 걸 말해도 되나?’

당신이 현실인 줄 알고 살아오던 세계는 사실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였습니다, 하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게다가 소설이나 영화도 아니고 하필이면 오락성이 강한 게임.

비현실적인 일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인 최 비서라지만 갑자기 그런 소리를 들으면 크게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털어놓을 대로 다 털어놨는데 지금 와서 이걸 숨기는 것도 이상했다.

‘아니지. 내가 게임의 형태로 개입했을 뿐이지, 그냥 다른 차원일 수도 있잖아?’

나와 대표의 존재만 제외한다면 별다를 것 없는 세상인데 게임이라고 단언하는 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이 세계에 관해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다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실대로 말하면서 표현을 조금 순화하기로 했다.

“예전의 대표와 나는 뭔가의 매체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내가 개입할 수 있었던 건 회사 일뿐이라고 해야 하나. 업무에 대한 기억은 있는데 그 외에는 전혀…….”

“그렇군요.”

이런 추상적인 대답을 듣고도 최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고민해서 대답을 쥐어짠 보람을 느낄 새도 없는 빠른 납득이었다.

“……이것만 듣고도 믿는 거야?”

“원래 평범한 분이 아니셨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단순히 ‘평범하지 않다’고 표현하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소소해지는 것 같지 않아?

최 비서는 업무력, 관찰력에 이어서 현실에 순응하는 능력까지 엄청났다.

“사실 신 같은 존재가 아닐까 멋대로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만…….”

“……아니, 내가 그렇게 대단한 뭔가는 아닌데.”

“이사님은 그렇게 생각하셔도 제가 보기에는 말입니다. 이사님의 주변 사람들이 항상 뭔가를 이루는 것을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건 내 토템설을 멋지게 표현하는 건가…….

룸미러로 보이는 최 비서의 눈이 살짝 웃고 있어서 농담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예전에 비슷한 얘기를 들어봤던 것 같은데 언제였더라…….’

맞아. 작년에 준해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지.

내가 모노크롬의 해체를 막기 위해 온 것 같다고. 그리고 다른 존재가 자신들을 도와주는 것 같다고.

‘내가 이 세계에 온 건 어쩌면 그런 걸 위해서일지도 몰라.’

처음엔 퀘스트 때문에 강제로 행동하게 되었지만,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의 존재 의의에 윤곽이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시간이 많이 늦었기에 최 비서를 돌려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나 나는 쉬는 대신 책상에 앉기를 선택했다.

머리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온 탓에 피곤했지만 지금 당장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일단, 내가 이 세계에 들어온 건 1월 1일이지.’

잠결에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소원을 빌었고, 눈을 떴을 때는 바로 이 집 안이었다.

내가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여기기에는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평범한 소원을 빌었는데 느닷없이 엄마와 헤어져 버렸으니까.

단순히 게임 속 시작일이 1월 1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런데 오늘 최 비서와 대화를 나눠보니 소원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전에, 대표한테 자아가 생긴 날이…… 내 생일이라고 했어.’

처음에는 그저 내 마지막 플레이와 1월 1일 사이에 공백이 생겼고, 그 기간에는 플레이할 플레이어가 없어서 대표에게 임의로 자아를 부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일이라고 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

이전에 다녔던 그 거지 같은 회사에서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옥 같던 회사에서 벗어난 건 좋은데 마치 도망치듯이, 그리고 쫓겨나듯이 나온 것이라 후련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출퇴근을 하지 않고 내 자취방에 24시간 붙어 있으니 사람이 그렇게 쓰레기처럼 느껴질 수가 없었다.

집에만 있어서 더 우울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생일 전날, 연극을 보러 나갔다.

‘전날에 털어낼 감정은 전부 정리해서 버려버리고 생일부터 새사람이 되어보자는 생각이었지.’

생일이라고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계기로 삼기에는 적절했다.

지금이 11시 45분이니까 깔끔하게 맞춰서 12시부터 할 일을 하자. 그런 것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취미까지는 아니지만 평소에도 가끔 연극을 보러 가고는 했다.

현실이 아닌 다른 인물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극장이라는 환경도 좋았다.

그런데 같은 한국에 같은 서울, 거기에 약속 장소로 애용되는 극장가에선 아는 사람을 마주칠 확률이 높다는 것이 문제였다.

[주인아!]

살갑게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 그녀는 내 대학 동기였다.

그리고 우연히 같은 회사에 입사해 함께 일하던 회사 동료이기도 했다.

옆에는 친구인지, 모르는 얼굴이 함께 있었다.

[퇴사할 때 인사도 못 했는데 여기서 만나네. 혼자 온 거야?]

[어어…….]

[그렇구나! 잘 놀다 들어가~.]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인사하고는 금방 손을 흔들며 친구에게로 돌아갔다.

[누구야?]

[내가 예전에 말한 대학 동기 있잖아.]

[아, 그 유부남?]

회사에는 내 말을 들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대학 동기여서 입사 초에 친하게 지냈던 그녀도 말이다.

그녀는 내 표정을 구경하려고 살갑게 다가온 것이었다.

기분 전환 겸 맛있는 저녁이라도 먹고 들어갈 생각이었던 나는 기운이 쭉 빠져서 바로 자취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이제 어디서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무서워서 나가지도 못하는 거 아닌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누워있던 나는 모르는 새 잠이 들었고, 알림 소리에 얼핏 잠이 깼다.

그리고 무심결에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했다가 헛웃음을 쳤다.

[마이 엔터: 생일을 축하합니다! 생일 기념 보너스를 확인해 보세요!]

자정이 되자마자 그 누구도 아니라 게임 속 세계에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다니.

마이 엔터를 시작할 때 생일을 입력하는 단계가 있었다.

아무렇게나 입력해도 상관없었지만, 사명도 본명에서 딴 ‘뉴마’로 결정한 나는 내 생일을 착실하게 입력했더랬지.

나는 힘이 빠져서 다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다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차라리 아무도 날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

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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