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52화 (252/430)

# 252화

이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모노크롬과 SPID는 멘토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은 더 많은 역할을 맡았다.

시청률을 끌어온다는 면에선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겠고, 가끔 참가자들에게 미션을 전달하는 역할도 해야 하고, 각 미션마다 멘토의 심사 점수도 들어가기에 심사위원 역할도 있으며, 정식 트레이너는 따로 있지만 방송을 위해 잠시 트레이너 역할로 나서기도 해야 한다.

그래도 전원이 매번 출연하는 것은 아니고 모노크롬 멤버 다섯 명, SPID 멤버 일곱 명이 적절히 역할을 분배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무슨 역할로 이들 전원이 찾아왔냐면, 본질적인 멘토 역할이었다.

“연습생 시절에는 가끔 싸우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다 나중에 팀워크의 토대가 되는 거니까.”

“유한이 네가 그걸 당당하게 말하니까 내 기분이 좀…….”

한이의 조언에 우형이 고개를 갸웃하며 어깨를 긁적거렸다.

연습생 시절 얘기, 데뷔 후 좋았던 점이나 고충 등 이야기도 들어보고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

데뷔를 앞둔 연습생들에게 조언과 희망도 주고, 두 그룹의 에피소드를 풀며 팬들을 시청자로 끌어 모으기 위한 코너였다.

사실 아이돌 생활을 하며 겪은 고충이라 하면 두 그룹 다 할 말은 많았으나, 방송에서 하지 못할 얘기도 많았기 때문에 적당히 대본에 적힌 이야기들만 꺼냈다.

“에이펙트도 팀워크를 엄청 많이 봐요. ‘누가 누구보다 더 잘났냐’보다는, ‘얘와 얘가 같이 데뷔하면 오래 갈 수 있나’를 더 본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연습생 기간에 이런저런 조합으로 유닛을 엄청 많이 짜요.”

“오…….”

두 회사의 연습생 관리 시스템은 달랐기에 모두가 흥미로운 듯이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에이펙트 연습생들은 본인이 해온 것들에 그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뉴레인 연습생들은 다른 회사의 연습생들이 어떤 경험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모노크롬 멤버들 또한 해랑이 SPID 데뷔조에서 떨어지게 된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에이펙트 참가자들도 회사에서 짜주는 대로만 이리저리 옮겨 다녔지, 직접 유닛을 짜 본 적은 없죠?”

“네.”

“그걸, 여기서 하게 될 겁니다.”

하범의 말이 신호라도 되듯이, 이들이 모여 앉은 강당의 뒤쪽 벽에 빔프로젝터 화면이 내려왔다.

곧이어 모노크롬과 SPID 멤버들이 연습실에서 춘 안무 영상이 흘러나왔다.

5인조에 맞춘 댄스곡이 네 곡. 지금 여기 모여 있는 연습생 스무 명이 다섯 명씩 네 조로 나눠서 추게 되는구나. 따로 설명이 없어도 영상을 본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연습생들이 주목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저거 나도 아는 노랜데 원래 안무가 저렇지 않았는데……?”

“훨씬 어려워지지 않았어?”

연습생 시절엔 본인들의 곡이 없으므로 선배들의 곡을 다양하게 연습해보기 마련.

이중엔 지금 나오는 곡의 안무를 이미 알고 있는 연습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영상에 나오는 안무는 기존 안무와는 달랐다.

원래 이 미션은 ‘연습생들끼리 유닛을 짜서 무대를 한다’가 끝이었으나, 미션 내용을 미리 전달받는 회의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이 미션 말인데요. 이미 안무를 아는 연습생이 있으면 유리하지 않을까요? 안무를 익히는 시간에 차이가 생기니까.]

회의 자리에는 모노크롬 대표로 주인과 우형, 준해가 출석했고 이 말을 꺼낸 것은 주인이었다.

특정 연습생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을 만한 미션 내용이 있는지 빠르게 훑은 세 명은 조용히 얘기를 나누다 이 부분을 콕 집었다.

원곡자 측 회사에 안무를 사용한다고 이미 허락까지 받은 터라 곡 라인업을 변경할 수는 없었다. 곡을 미리 알고 있다면 확실히 유리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점은 미션 내용을 기획할 때부터 얘기가 된 사항이었는지 제작진은 바로 대답했다.

[이건 유닛 미션이니까요. 한 명만 특출하게 잘한다고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미 안무를 아는 연습생이 있다면 다른 연습생들을 도와주는 데에 그만큼 시간을 더 쓰게 되겠죠.]

하지만 유닛 전체가 안무를 이미 연습해서 알고 있다면 그런 시간 낭비가 생기지 않겠지.

주인을 포함한 뉴마 측은 계속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으나 제작진들은 그렇지 않았다.

너무 이 점을 파고드는 것도 수상해 보일 터였기에 주인은 방향을 틀었다.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그리고 미션 제시할 때 쓸 안무 영상을 저희가 찍는다고 되어 있는데요. 영상을 찍을 때 안무에 조금씩 변화를 줘서 연습생들이 알아채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오. 그거 특이하고 좋네요. 찍는 저희도 재밌을 것 같아요.]

SPID 대표로 나온 윤규가 재밌겠다며 눈을 번뜩였다. SPID의 메인 댄서인 그는 재민과 비슷한 타입이라 이런 내용에는 곧장 흥미를 느꼈다.

기존 기획을 유지하면서 조금만 바꾸는 것으로 방송이 재밌어진다. 그 말은 제작진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결국 제작진은 SPID의 동의를 받아 뉴마의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뉴마의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기 프로젝트’를 위한 첫 번째 개입이 바로 이것이었다.

메인 댄서들과 안무가들의 할 일이 갑자기 늘어나긴 했지만 춤에 죽고 사는 이들에게 이 정도의 일거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야, 이건 우리가 힘든데……?]

안무 영상을 찍기 위해 재민이 수정한 안무를 속성으로 배우던 한이가 지쳤다는 듯이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어쩐지 드라마 촬영이 끝난 후에 조금 쉬었는데도 힘이 넘친다 싶더니. 재민의 하드한 연습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이는 뒤늦게 깨달았다.

[원래 안무는 일주일에 몇 번이나 출 수 있게 만든 안무고, 이번엔 딱 한 번만 추는 거잖아. 이 정도는 해야 재밌지.]

메인 댄서가 생각하는 재미와 제작진이 생각한 재미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소소한 수정’은 상당한 난이도 변화를 불러왔고, SPID의 안무 영상도 모노크롬의 안무 영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두 그룹이 똑같이 난도 높은 영상을 찍어오자, ‘프로 아이돌에겐 이 정도가 기본이구나’ 하고 생각한 제작진은 별말 없이 그대로 진행했다.

‘얼마나 잘하는지’를 보기 위한 미션은 어느새 ‘이걸 따라올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한 시험이 되어 버렸다.

“오오. 저기에 회전을 넣는다고?”

“와. 동선을 아슬아슬하게 짰네.”

안무의 난도를 올려놓은 당사자인 각 그룹의 메인 댄서 재민과 윤규는 붙어 앉아서 서로가 수정한 안무를 구경했다.

마음 편히 보는 그들과 달리 연습생들은 복잡한 눈으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십여 분간 네 곡의 안무 영상 재생이 끝나고, 준해가 큐 카드 한 장을 들고 일어섰다.

각 그룹의 막내들은 연습생 중 연장자들과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나이가 비슷한 선배가 나서면 연습생들도 더 의욕을 불태울 것이란 의견이 있어서, 이번 미션 안내는 준해가 맡게 되었다.

“이번 미션을 위해 같은 소속사 연습생들끼리, 포지션 분배를 잘 생각해서 다섯 명씩 유닛을 짜 주세요. 그리고 같은 포지션에 지원하는 사람이 둘 이상일 경우엔…….”

아직 촬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다른 소속사의 연습생은 누가 있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우선 서로를 잘 아는, 같은 소속사 연습생들끼리 유닛을 짜게 되었다.

준해는 큐 카드를 든 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쪽 1연습실로 오시면 저희 멘토들이 판단해 드립니다. 최종 결정은 오후 6시까지. 그러면 서로 잘 이야기 나눠주세요!”

준해의 멘트를 끝으로 메인 카메라가 꺼지고, 연습생들은 곧바로 웅성거리며 뭉쳤다.

난도 높은 댄스곡에 대한 연습생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댄스 주력 멤버들은 여기가 본인의 끼를 발산할 곳이라며 눈을 번뜩이고, 댄스가 약한 보컬 주력 멤버들은 보컬 포지션을 잡지 못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어느 조로 들어가야 할지 눈치 싸움을 시작했다.

연습생들을 강당에 남겨두고 모노크롬과 SPID는 방금 말한 1연습실로 자리를 옮겼다.

포지션 쟁탈전을 벌이기 위해 연습생들이 오기 전까지는 대기하며 자유시간을 즐기면 되었다.

“와. 난 윤규가 이상한 줄 알았는데 모노크롬도 만만치 않았네.”

“우리는 재민이가 과하다고 생각했다니까.”

두 그룹의 멤버들은 연습생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난 뒤에야 방금 본 안무 영상에 대한 감상을 내뱉었다.

연습생들 앞에서 말했다간 ‘선배들한테도 어려운 걸 왜 우리한테!’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참고 있던 말이었다.

이미 친한 두 그룹의 멤버들이 그런 대화를 편하게 나누는 동안, 하범이 우형과 해랑 옆으로 다가와 슬쩍 물었다.

“네 동생을 네가 직접 평가해야 하면 난감하지 않아? 동생이라 특별 대우한다고 말 나올 수도 있고.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범은 믿을 만했지만, ‘뉴레인이 데뷔조 조작 중이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것은 하범을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모노크롬의 일에 신경 써 주는 그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었다.

해랑은 우형과 눈을 한번 마주치고 하범에게 대답했다.

“굳이 연찬이를 회사로 데려온 것도 그렇고, 어쩌면 뉴레인이 좀 밀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혹시 그런 것 같으면 다른 연습생들한테 더 신경 쓰려고.”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한 범위였는지 하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속사가 기계가 아닌 이상 모든 연습생에게 똑같은 양의 관심을 줄 수는 없다.

뉴레인도 에이펙트도 회사 입장에서 더 마음에 드는 연습생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걸 얼마나 티를 내느냐의 문제였다.

“필요한 거 있으면 개인적으로 연락해. 우리 회사에는 내가 슬쩍 찔러볼 수 있으니까.”

에이펙트 엔터가 있기에 유리한 점도 있었다.

SPID 멤버들을 통해 에이펙트 엔터에도 어느 정도 협조를 구할 수 있다는 것. SPID가 모노크롬에게 상당히 호의적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해랑이 그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웃어 보였다. 그의 미소 공격도 이제 조금 익숙해진 하범은 다른 본론을 꺼냈다.

“대신.”

하범은 이번엔 우형 쪽으로 상체를 숙이고 소곤거렸다.

“저도 곡 하나만 줘요.”

어디서 우형이 성운과 함께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우형은 하범과 똑같이 상체를 숙이고 말했다.

“해랑이가 곡 만들면 연락해 줄게.”

“아니, 백해랑 말고 형이 만든 거로…….”

하범은 SPID의 메인 보컬. 웬만하면 고음을 뽐낼 수 있는 곡이 좋았다.

해랑의 다크한 곡은 해랑과 같은 저음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소화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곡이 이리저리 거부당하는 모습을 본 해랑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하범을 힘으로 내쫓았다.

“아, 장난이라고! 진짜 쪼잔하네.”

“해랑 형이 왜 쪼잔해?”

옆에 있던 한이가 하범이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 이쪽 대화에 관심을 보였다.

“백해랑이 만드는 곡 너무 어두워서 싫다고 하니까…….”

“아-.”

똑같은 이유로 해랑의 곡을 거부한 전적이 있던 한이는 바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랑도 작곡을 계속하려면 스타일에 변화를 한번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런데 두 메인 보컬의 자극 요법 덕분에 그 생각이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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