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화
드라마 <기로>는 현재 시점과 함께 과거 시점도 스토리가 고조되어 갔다.
원래 드라마에서 과거 장면이란, 초반부에 아역 파트가 마련되어 있거나 회상 장면으로 잠깐씩만 나오기 마련.
하지만 이 드라마는 타임슬립물이라 현재와 과거의 사건이 같이 진행되었다.
과거에 알게 된 정보를 현재에 적용하고, 반대로 현재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를 과거로 돌아갔을 때 활용하고.
‘그래도 슬슬 한이 분량도 끝나가나 보네.’
드라마 속 주인공이 과거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수첩 덕분이다. 그러나 그 수첩의 기록이 마지막 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예고에서는 주인공이 한이가 연기한 최진우를 구하러 가는 듯한 장면이 흘러나왔다.
나는 드라마 본방송 시간을 기다리며 컬러즈는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구경했다.
최진우의 장수만을 바라던 컬러즈는 예상대로 열심히 기도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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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님 우리 진우 살려주세요ㅠㅠㅠ 우리 진우 열심히 살았잖아요
살아서 하고 싶은 일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가고 나랑 결혼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현재 주인공이랑도 만났으면 좋겠는데
└중간에 함정 뭐냐
└진우 죽으면 니탓이다 ㅠㅠ
└결혼은 빼고 살려주셨으면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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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는 한이의 촬영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이가 계속 나오지 않으리란 것은 이미 알고 있을 터.
그래도 최진우가 살기를 바라는 것은 한이를 더 보고 싶은 마음보다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 때문인 듯했다. 살아서 중년 역으로라도 나와줬으면 하는 마음.
작중 최진우가 어떻게 될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컬러즈뿐만이 아니었다.
드라마의 일반 시청자들도 과거 스토리의 마지막에 뭔가 중요한 사실이 나오리라 추측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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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 과거 내용은 슬슬 끝나는 느낌인가?
사실 과거 내용도 재밌어서 더 보고 싶긴 한데 ㅋㅋㅋ 한문호가 아직도 비중 애매하게 적은 게 좀 걸리네
└근데 타임슬립물에서 타임슬립 끝나면 거의 결말 아냐? 아직 화수 더 남았는데
└ㅁㅈ 한문호가 이상하게 비중이 적음 후반부에 현재 회장 얘기로 뭔가 터질듯
└이번에 쌍둥이 동생 살리고 같이 형 끌어내리는 전개인가??
└최진우 살아나서 현재에서 만난 서주완 알아보면 재밌겠다ㅋㅋㅋㅋㅋ
└최진우 은근 서주완이랑 성격 잘맞아서 진짜 알아볼지도ㅋㅋㅋㅋ 아 근데 자기가 몇십년 전에 본 사람이 미래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면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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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주인공 서주완과 최진우가 현재 시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했다.
처음엔 ‘저 배우 누구냐?’, ‘아이돌이냐?’ 하면서 연기 경력이 얼마 없는 한이가 제대로 드라마에 섞여들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반응들도 많았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되자 그런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싹 사라졌다.
‘이 정도면 이번에도 연기 레벨 상승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이 엔터의 능력치 레벨에는 사람들의 평판도 적용되는 듯했다. 많은 사람이 ‘잘한다’고 생각하면 레벨이 오르기 쉽다는 뜻.
<기로>는 TV 드라마니까 한이의 첫 작품이었던 웹드라마와는 시청자 규모부터가 다르겠지.
게다가 이번 드라마의 장르는 스릴러. 연기 데뷔 작품이었던 로맨스도 호평이었는데 다른 장르까지 잘 해낸다면 정말 연기 레벨이 오를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이번 <기로>를 촬영하며 한이의 연기 경험치가 많이 쌓였다.
한이가 현장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자화자찬하던 것은 사실인 듯했다.
‘으음. 그런데 이번에 연기 레벨이 오르면 보컬 레벨보다 높아지잖아?’
현재 한이의 연기 레벨은 8. 보컬 레벨도 8. 이번에 연기 레벨이 오르면 보컬 레벨을 추월하게 된다.
연기 레벨이 더 높아진다면 사람들은 한이를 ‘노래 잘 부르는 모노크롬의 메인 보컬’이 아니라 ‘연기 잘하는 배우’로 더 많이 인식할지도 모른다.
요즘 한이가 걱정하던 게 바로 그 점이었기 때문에 더욱 신경 쓰였다.
‘레벨이 오르는 건 좋은 일인데……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라니.’
지금껏 레벨이 오르는 것을 걱정해 본 적은 없었는데. 다음엔 보컬 레벨 상승을 적극적으로 노려봐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이내 드라마 본방송 시간이 다가왔다.
드라마가 시작되자 내용에 집중하느라 걱정은 머리에서 잠시 지워졌다.
주인공은 과거의 교통사고에 관해 알아보고, 동료 형사는 그가 자꾸만 평화그룹 오너 일가를 조사하고 다니자 걱정을 내비친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것을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표현하며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그리고 그는 과거로 이동하여 교통사고 현장에 끼어드는데.
“뭐, 뭐야. 이게?”
빗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주인공 서주완과 최진우의 숨소리.
교통사고 현장에서 최진우가 주인공의 팔을 붙잡아 막고, 대사 하나 없이 빗소리와 숨소리만이 들리는 신이 10초가 넘게 이어졌다.
마치 시청자들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주듯이.
화면 속 두 사람은 말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그 장면엔 아주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캐릭터가 죽느냐는 질문에 한이가 “보시면 알아요.”라고 대답했던 게…….’
최진우는 살았지만 죽었다. 최진우라는 신분은 죽었지만 그는 계속 살아간다.
지금까지 쌓아온 요소들이 이 장면에서 비로소 터진 것이었다.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시청하며 감상을 올리던 사람들은 이 장면이 지나자마자 물음표를 올려 나갔다.
[헐 이렇게 된다고?]
[(스포주의)그럼 한문호가 원래]
[????주인공 표정 나랑 똑같았음]
[기로 뭔일 남?]
그리고 당황한 건 컬러즈도 마찬가지였다.
[ㅔ?]
[아니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하긴 했는데..??]
컬러즈의 소원은 ‘최진우가 살았으면 좋겠다’.
그 소원이 이뤄진 것은 기쁜 일인데 너무나도 예상 밖의 전개로 이뤄지자 다들 당혹스러워했다.
오늘 방영분은 이 장면이 끝이 아니었다.
장엄한 BGM이 흘러나오고 마치 이 모든 일의 배후처럼, 현실의 최진우이자 최진수를 연기하는 한문호 배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마무리된다.
충격적인 장면이 바로 앞에 있었는데도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하는 연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출에 하마터면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알림 소리마저 놓칠 뻔했다.
***
“허억.”
드라마를 시청하던 재민이 숨을 들이켜며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하는 재민은 이미 <기로>의 애청자가 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한두 마디씩 던지며 드라마에 몰입하던 그는 후반부에 가서는 화면에 빠져들 것처럼 말없이 열중했다.
그러다 그 문제의 반전 장면을 보고 입을 막은 재민은 옆에 앉아 있던 한이를 바라봤다.
“형이 형이었어?!”
표현이 많이 함축되었지만 ‘한이가 연기한 동생 최진우가 형 최진수가 되는 전개냐’라는 질문이었다.
그 뜻을 용케 잘 이해한 한이는 뿌듯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때. 내 연기가! 또 김형운 선배님 닮았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한이가 오늘 회차는 꼭 봐야 한다며 멤버들을 끌고 와 앉힌 덕에 다들 TV 앞에 모여있었다.
우형은 소름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제 팔을 쓸며 대답했다.
“근데 방금은 진짜로 닮아 보였어. 소름 돋는다, 야.”
촬영 당시 주인공을 연기하던 남상현이 느꼈던 감정을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꼈다.
김형운의 닮은꼴이 된 것은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이 장면에서만큼은 의도하며 연기한 것이 맞았기에 한이도 우형의 말을 듣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 반전에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작년에 웹 예능을 촬영하며 한이의 연기에 배신당한 적이 있던 준해는 다시 한번 그날을 떠올렸다.
“역시 뒤통수치기 전문, 뒤통수의 아이콘…….”
“내가 언제 뒤통수를 쳤냐? 어루만져 준 적은 있어도.”
한이는 감은 후 말린 지 얼마 안 되어서 보송해진 준해의 뒷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준해는 소름이 돋는다며 몸을 움츠려 피했다.
그 옆에서 해랑도 나지막이 연기에 대한 감상을 내뱉었다.
“역시 너는 믿으면 안 되겠어.”
“아니, 왜 다들 연기 잘한다는 칭찬을 그렇게 하냐고.”
분명 드라마를 촬영할 때 스태프들은 ‘잘생겼다, 눈빛이 좋다, 감정선이 뛰어나다’ 등의 칭찬을 해 줬는데 멤버들이 입에서 나오는 건 ‘소름 돋는다, 뒤통수의 아이콘, 못 믿겠다’와 같은 것들뿐이었다.
그래도 다들 드라마에 몰입했으니 그런 감정들을 느낀 것일 터였다. 그만큼 한이가 최진우를 잘 표현해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형한테 봤냐고 메시지 보내야지~.”
“형님 무서우시겠다…….”
한이가 스마트폰을 드는 것을 보고 우형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친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면이 방영된 직후에 진짜 친형에게 연락하겠다니.
그도 본방송을 보고 있었다면 한이의 메시지를 받고 소스라치게 놀랄지도 모른다.
“근데 신기하다. 맨날 보는 얼굴이 이렇게 드라마에 나오니까.”
드라마가 끝나고 광고가 흘러나오자 준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멤버들도 TV 프로그램에 여러 번 출연해 봤지만 드라마는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인식했기에 신기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전까지는 선한 얼굴의 최진우만 나왔기에 한이의 이미지와도 얼추 비슷했는데, 오늘 방영분에서 갑자기 이미지가 바뀐 탓에 더 새삼스레 느껴지기도 했다.
동감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해랑은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한이의 뒤통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차기작 얘기 들어오기도 해?”
“흐음. 글쎄. 지금은 막연한 이야기들뿐이라서. 뭐, 적어도 우리 활동이랑 겹칠 일은 없을걸.”
물론 작품이 모노크롬의 스케줄을 고려하며 들어오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이는 가수 활동을 우선할 예정이었다.
연기 활동도 재밌지만 그리 절박하지 않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배우팀에선 이런 태도 별로 안 좋아하겠지만.’
결국 모노크롬 책임자는 이사님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한이의 마음속엔 ‘복잡한 일은 이사님의 의사에 따르면 대충 잘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생겨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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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자 반응 난리 난 기로 반전 연출
(GIF 이미지)
…
└이건 영상으로 봐야함ㄹㅇ
└구구절절 설명 안 하고 대사 하나 없이 서로 보다가 끝나는 게 미쳤음
└이거 직후에 한문호 나오는 것까지가 완성이야ㅋㅋㅋㅋㅋㅋㅋ 간만에 드라마 보다가 소름돋았다
└남상현 말고 다른 배우 혹시 모노크롬 멤버임? 얼굴이 낯익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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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온라인상에서도 어제 <기로> 방영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이렇게 화제가 되고 있는데 한이의 분량도 거의 끝나가서 아쉽지만.
‘아니, 아쉬워하지 말고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반응을 보다 보니 의외로 반전 전개를 먼저 예상한 사람들도 있었다.
단순히 일란성 쌍둥이 설정 때문이 아니라,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요소가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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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최진우가 형 행세하는 거 예상했는데
최진우 연기할 때 한문호 말할 때 손가락 움직이는 거나 호흡 넣는 거 그런 버릇이 똑같음
보면서 쟤가 힌트 주는구나 싶었음
└헐 진짜?
└잠깐 성대모사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걸 연기하면서 계속 따라한다고?ㅋㅋㅋ
└그건 그냥 배우 버릇이 우연히 겹친 거 아니냐
└ㄴㄴㄴ내 친구 몬클 팬인데 전작에선 전혀 그런 버릇 없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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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자 연기에 대한 반응과 이런 이야기가 쌓여서 사람들은 한이를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쟤는 배우로 나가도 되겠다.
워낙 임팩트가 강했기에 연기 레벨이 오른 것이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되면 보컬 레벨이 신경 쓰이는데…… <송투유>도 반응이 터져서 오르면 좋겠다.’
웹드라마에서 TV 드라마로 옮겨온 덕분에 한이의 연기를 본 시청자층이 확 넓어진 것처럼,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천상식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 더 많은 사람이 한이의 노래를 듣게 되겠지.
레벨이 그리 쉽게 오르는 건 아니라지만 재능이 넘치는 멤버들 덕분에 기대가 자꾸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