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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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컴백 미뤄지는 거겠지?
몬클이들 보고 싶긴 하지만 건강이 먼저니까ㅠㅠㅠㅠ
└애들 얼마 전까지 안무 진짜 역대급이라고 연습 엄청 하고있다고 했는데ㅠㅠㅠ 레몬 ㅅX 무대 안전을 그따위로
└ㅎㅏ.. 우리 애한테 왜 이런 일이
└그냥 느긋하게 맘 편히 기다리게 공지나 빨리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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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티저 공개 일정은 내부적으로 정해져 있었으나 레몬 어워드 이후로 업로드를 잠시 멈췄다.
컬러즈는 원래 티저가 안 올라오는 날인지, 뉴마가 일부러 안 올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며칠이나 지나니 다들 뉴마가 일부러 묵묵부답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정확히 정해진 게 없어서 부상 공지 이후로 공식적인 안내를 하지 못했으니까.
‘팬들이 너무 불안해해서 멤버들이 소소하게 소식을 전해준 것 외에는…….’
후유증이 남을 정도의 부상은 아니라고 알려줬지만 컬러즈의 머릿속엔 아마 재민이 은퇴까지 해야 했던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겠지.
재민은 병원에 있는 것을 불편해해서 하루만 있다가 퇴원. 그 후엔 잠시 본가에 머물렀다.
멤버들과 아무리 형제처럼 지내더라도 부상 입은 재민을 케어하는 건 그들의 일이 아니었다.
숙소에 있던 재민이 본가로 돌아가는 것은 다리를 다쳤을 때, 그룹을 나갔을 때, 그리고 이번으로 세 번째였다.
‘하……. 어째 다 이런 일들뿐이야. 별일이 아니면 딱히 본가로 돌아갈 일도 없겠지만.’
재민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하나뿐인 아들이 자꾸만 몸 상하고 마음 상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얼마나 속상할까.
그리고 병원에 다니며 집에서 쉬던 재민은 며칠 만에 회사로 나왔다.
“저 이제 팔 완전히 올라가요.”
“아니, 꼭 보여줄 필요는 없고.”
나를 보자마자 멀쩡하다는 어필을 하고 싶은지 재민이 또 팔을 들어 올리려고 하기에 붙잡아 내렸다.
말로는 문제없다고 하지만 평소엔 티셔츠나 후드티를 입고 다니던 재민이 오늘은 셔츠 차림이었다. 팔이 불편한 상태로는 이게 더 입기 편해서 그런 거겠지.
컴백 관련해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멤버들과 직원들은 회의실에 모였다.
민형은 병원에 같이 가서 의사 소견을 함께 듣고 왔고, 이번엔 팀 미로 단장인 민후도 함께였다.
멤버들도 재민과 며칠 만에 보는 것이었다. 심하게 다친 게 아니라고 여러 번 말해주긴 했지만 최근 멤버들은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한 명 빼고 4인조로 컴백한다는 선택지는 최대한 피하고 싶어진단 말이지.’
그렇다면 생각보다 상황이 괜찮아서 그대로 컴백하거나, 아니면 컴백을 미루거나. 두 가지 방법뿐이었다.
멤버들도 솔직히 컴백을 미루는 게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멤버들의 의견은 회복하는 동안은 최대한 쉬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뭐래요?”
“계속 상태를 보긴 해야겠지만 회복이 느린 편은 아니라 기존 컴백일쯤엔 크게 불편할 게 없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네. 저 괜찮아요.”
민형이 조금 긍정적인 소식을 전하자 재민이 바로 끼어들었다.
재민도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따르겠다고는 했지만, 그대로 컴백을 진행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견이 확고했다.
“그래도 춤추는 건 다르잖아요?”
“네. 그래서 핸드폰으로 이번 안무 연습 영상 찍었던 걸 잠깐 보여드렸는데…….”
멤버들도 긴장한 얼굴로 민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잠시 할 말을 잃으시던데요.”
“…….”
역시 그렇겠지…….
환자에게 ‘지금은 피 나니까 팔은 못 쓰시겠는데요? 더 나빠지면 큰일 나는데요?’라고 할 의사는 없다. ‘나중에 경과를 보고 좋아지면 무리 없이 활동하실 수 있을 겁니다.’라고 하는 게 보통이겠지.
그런데 그 환자가 아이돌 그룹의 메인 댄서고 화려한 댄스곡으로 컴백을 준비 중이라고 하면…… 의사 선생님도 어떻게 말할지 고민되었을 것이다.
환자가 회복에 전념할 수 있게 희망적인 전망을 말해 줄 수도 있지만 정확한 상태를 알려주는 게 본래 의사의 할 일.
그런 의사 선생님이 할 말을 잃었다는 것은 웬만하면 말리고 싶단 뜻이겠지.
“팔 많이 쓰는 부분 보여줘서 그래요. 이번엔 다리 움직이는 게 더 많은데…….”
재민이 또 불만스러운 얼굴로 끼어들었다.
다리를 많이 쓴다고 팔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메인 댄서인 그의 안무는 특히나 더.
보통 아이돌 그룹의 무대란 군무가 많은 법이지만, 이번 앨범엔 ‘체스’ 요소를 살리기 위해 각자 다른 체스 말의 역할을 맡은 것처럼 개개인의 댄스 파트가 꽤 달랐다.
그중에 재민의 고난도 파트가 이번 안무의 포인트 중 하나였다.
나는 그 안무를 함께 만든 민후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팔을 덜 움직인다고 해도 사람 몸이란 게 다 이어져 있어서요. 몸이 움직이는데 팔만 고정하겠다고 몸통에 딱 붙이면 오히려 힘이 더 들어갈걸요.”
“완전히 고정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냥 무리가 덜 갈 정도로만…….”
“메인 댄서 파트는 움직임이 특히 더 많고. 거기서 무리를 덜 하게 만들려면 난도를 확 낮춰야 할 텐데 넌 그렇게 완성시켜도 괜찮아?”
민후가 재민을 보며 물었다.
댄스로 무대를 채우는 게 메인 댄서의 역할. 앞에 나서서 특히나 어려운 안무를 수행해내고 그게 전체적인 무대의 인상을 만든다.
그런 그의 파트를 몸 상태에 맞추려고 쉽게 바꾸면 무대 전체의 인상도 바뀐다.
다 같이 만든 무대에 영향이 간다는 말에 재민은 차마 대꾸하지 못했다.
“너도 알잖아. 우리 단원들도 다친 상태에서 괜히 무리하면 예상보다 더 오래 쉬어야 했던 거.”
민후는 댄스팀을 이끌면서 누군가 다치는 상황을 몇 번 겪어본 듯했다.
‘결론은 의사 선생님이나 민후 씨나 둘 다 회의적이란 거네.’
그러면 이번 컴백은 역시 미루는 쪽으로 결정……. 이라고 회의를 정리할까 했는데, 고개를 수그리고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재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진짜, 저 때문에 다 망치는 거 싫단 말이에요.”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너 때문이야. 이번 앨범 안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미루는 거잖아.”
재민도 분명 의견을 들어보고 힘들다고 판단되면 미루는 것에 동의했는데, 정작 미뤄야 할 상황이 되니 아직도 수긍하지 못한 채였다.
가볍게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라 가만히 회의를 듣고만 있던 우형이 그를 설득하려 나섰다.
재민이 고개를 들고 멤버들과 민후를 쳐다봤다.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던 그 눈이었다.
“이번에 포기하는 수밖에 없으면 나는…….”
내가 결국 흔들렸던 그 말을 재민이 다시 꺼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재민이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은데 상황이 안 되는 걸 어떡해.
다들 재민의 고집을 들어주긴 어려웠지만 그의 마음은 이해하는지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정말 무슨 수가 없을까.’
재민의 파트를 쉽게 만들어서 전체적인 수준을 조정하는 건 재민 또한 원하지 않았다.
메인 댄스 파트를 유지한 채로 컴백도 미루지 않고 재민의 부담도 덜려면…….
“준해야.”
걱정스러운 얼굴이던 준해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네가 메인 댄스 파트를 맡자.”
“제가요?”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재민이와 준해 파트를 서로 바꾸는 거로 해요. 준해 파트는 재민이 팔에 덜 부담 가게 좀 바꾸고요. 그렇게 가능할까요?”
내 말에 민후는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는지 생각에 빠져들었다.
재민이 메인 댄스 파트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데 본인이 하기엔 부담된다면 누군가 대신 그의 파트를 맡아주는 수밖에 없다.
내가 처음 떠올린 건 재민이 없을 때 메인 댄서 포지션까지 맡았던 해랑이었다.
메인 댄서를 할 정도의 실력이 있는 만큼 해랑도 재민의 파트는 어느 정도 커버 가능할 터.
‘그런데 서로 파트를 바꾸면 오히려 재민이한테 부담이 돼.”
해랑의 파트는 체력을 상당히 요했다. 보컬로 나서는 멤버들은 중간중간 움직임이 적어지기도 하지만 해랑은 랩 파트 외엔 계속 댄스를 이어나가기 때문이었다.
재민에게 부담이 되면 파트를 바꾸는 의미가 없었다.
래퍼와 보컬 포지션을 둘 다 지니고 있어서 중간중간 나설 파트가 많은 우형과, 메인 보컬이라 가장 숨이 덜 차야 하는 한이는 고려 대상 외였다. 재민의 안무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본인의 파트를 소화하기 힘드니까.
‘이 상황에서 누군가와 파트를 바꿔야 한다면 준해가 최선인 것 같아.’
메인 댄서인 재민, 메인 댄서였던 해랑. 그리고 또 ‘댄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서브 댄서인 준해다.
준해의 파트를 맡는다면 재민도 어느 정도 댄서로서 활약할 수 있으면서도 부담이 덜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문제인 건 준해가 메인 댄스 파트를 해낼 수 있느냐.
“재민이 형 파트를 제가…….”
준해는 자신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를 떠올린 이유는 그가 단순히 서브 댄서 포지션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준해는 자각할지 모르겠지만, 재민이랑 같이 붙어있으면서 댄스 경험치가 많이 올랐어.’
멤버들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멤버들끼리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능력치 면에서 멤버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준해였다.
현재 재민의 댄스 레벨이 10. 해랑의 댄스 레벨은 8에 가까운 7이다.
맨 처음 확인한 해랑의 랩 레벨과 우형의 작곡 레벨이 7이었으니, 레벨 7이 보통 ‘메인’ 포지션의 기준이라고 보면 될 듯했다.
그리고 현재 준해의 댄스 레벨은 7을 향해가고 있는 6.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선 멤버들의 시너지 효과를 믿고 싶어.’
이 레벨은 멤버들의 한계치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이 레벨 이상의 능력을 선보일 수도 있고 그 영향을 받아 실제로 레벨이 오를 수도 있다.
어쩌면 모노크롬에는 확실한 메인 댄서인 재민이 있으므로 준해의 댄스 능력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유아이 TV에서 그림자 안무 영상 컨텐츠를 찍었을 때, 준해의 댄스가 생각보다 훨씬 완성도가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으니까.
불확실한 도박일지 몰라도 지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들의 실력을 믿고 싶었다.
“이미 외운 안무가 있어서 아예 새로 익히려면 연습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봐요. 두 파트 다 더 개인에 맞게 수정은 해야겠지만요.”
민후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끝냈는지 ‘해볼 만하다’라는 의견을 남겼다.
춤에 있어선 웬만하면 양보가 없는 그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제법 희망적이었다. 아마 그라면 평소처럼 실력을 어떻게든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얼마나 부담될지 알기에 멤버들도 응원이나 격려를 하기보다는 준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렸다. 기존 일정대로 컴백하기 원하며 계속 끼어들던 재민도 이번엔 미안한 마음이 컸는지 조용했다.
“이건 그냥 내가 방금 떠올린 방법일 뿐이고, 좀 더 시간을 들이면 다른 대안이 떠오를 수도 있으니까 준해 너도 조금 더 생각해보고 알려줄래?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은 건 너도 마찬가지니까.”
“저…….”
너무 갑작스럽게 부담을 줬나 싶어서 본인에게도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주려 했는데 생각에 빠져 있던 준해는 바로 입을 열었다.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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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monochrome) <체크메이트> Concept Trailer (링크)]
모노크롬 공식 SNS 페이지에 공개를 잠시 미뤘던 티저를 올렸다.
레몬 어워드에도 재민의 사고를 목격한 스태프가 많았고, 병원에서도 재민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터넷엔 ‘재민이 어느 정도로 다쳤다’는 부정확한 글들이 올라가기도 했다.
컬러즈가 그런 정보를 전부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상 그대로 컴백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 상황에 올라온 티저. 이는 컴백을 그대로 진행한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런 뉴마의 태도를 두고 컬러즈는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