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몬클이들 요새 뭐 할까?
얼굴 보고 싶다
└나도 ㅠㅠ
└나도 222 ㅜㅜㅜ
└후배 쪽은 정기적으로 뷰이라이브 해주던데ㅠ
└거긴 거기고 여긴 여기니까 비교는 ㄴㄴ
└뉴마 서랍놈들 수납이 특기잖아. 새해 인사 사진이 끝인 게 말이 되냐고.
━━━━━━━━━━━━
***
프로필 사진을 찍자고 하자, 마치 끌려온 듯한 표정이던 멤버들의 얼굴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사람들에게 새롭게 보여줄 모습이 필요하단 것. 그건 바로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렇게까지 의미부여를 할 생각은 아니지만, 회사가 이제부터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사표시에 가까웠다.
지금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모노크롬의 프로필 사진은 앨범 재킷 사진이었다. 그것도 그 <12345>!
나로선 당장이라도 내려버리고 싶은 사진이었다.
“스튜디오를 알아보니까 가장 가까운 날짜가 다음 주 월요일인데 이건 너무 빠르겠…….”
“아뇨!”
달력을 보며 얘기하는데 다급하게 우형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월요일 괜찮습니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우형은 가슴 앞에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그 표정은 결연하기까지 했다.
‘저렇게까지?’
그저 사진을 교체하려는 것인데 대단한 스케줄이라도 잡힌 것처럼 놓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늦어진다고 누가 뺏어가는 것도 아닌데…….
‘……설마 진짜 스케줄이 늦어졌다가 취소된 적이 많았던 건 아니겠지?’
또 마음속의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괴로움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상념을 털어내고 업무 모드로 되돌아갔다.
“바로 며칠 후인데 괜찮겠어? 다들 컨디션이 괜찮을 때 찍으려고 했는데.”
프로필 사진은 대중들에게 가장 첫 번째로 보이는 이미지, 간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에 사진을 찍으면 꽤 오래 프로필로 걸릴 수도 있고.
그룹의 공백기가 길었으니 촬영을 위한 관리 기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저흰 준비되어 있습니다.”
준비된 인재 어필이라니 무슨 면접장인 줄.
다른 멤버들도 같은 생각인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나왔다.
같이 얘기해 보자고 부른 건데 이것만 기다려왔다는 듯이 나오니 조금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얘기가 빨라 좋았다.
“오케이. 그럼 월요일로.”
내가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자 매니저도 다이어리에 받아 적었다.
나름대로 ‘우리’가 잡은 첫 스케줄이었다.
멤버들은 이번엔 기쁜 표정으로 이사실을 나섰다.
나가면서 자기들끼리 대화하는 소리가 문 너머로 슬쩍 들려왔다.
“근데 나 조금 살찐 것 같…….”
“빼!”
“이사님 말씀을 거역하지 마!”
그 ‘이사님’인 내게 들리는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마치 내 명령이 절대적이라는 듯한 말에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점점 멀어지는 소리 사이로 “으악!”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봐선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활기차 보이니까 나도 기분 좋네.
“저흰 잠깐 회의를 해 볼까요?”
멤버들이 나간 뒤 나와 윤희, 매니저, 이렇게 셋이서 소파에 앉았다.
스튜디오 예약을 잡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일정에 맞춰 헤어, 메이크업 샵 예약도 해야 하고 무슨 컨셉으로 촬영할지도 생각해봐야 하고.
‘스타일링이라…….’
내 옷 고르는 건 좋아하지만 남을 스타일링해본 적은 없었다.
좋은 생각이 있나 하여 마주 앉은 두 사람을 쳐다봤다. 팀마다 다르지만 매니지먼트팀은 대개 프리한 차림이었다.
나는 비즈니스 캐주얼이고, 윤희는 파스텔톤 니트에 바지, 매니저는 검은 후드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뭔가 남자 스타일을 논하기엔 이 셋으로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흐음. 좀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으려나.’
뉴마 엔터테인먼트는 외부 스타일리스트와 계약하여 일했다. 그래서 잠깐 의견을 구하겠다고 부르기는 어려웠다.
잠시 고민해 보니 내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있었지. 옷 잘 입고 잘 어울리게 스타일링 하는 사람.’
나는 이사실 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목표물을 캐치했다.
“최 비서. 도움!”
살면서 비서를 대동해 본 적 없으니 이런 일까지 도움을 받아도 되는 건진 모르겠지만.
따지자면 내 매니저 같은 존재니까 이 매니저 팀에 합류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는 2년 동안 숱하게 신세 지게 될 최 비서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
스케줄이 생겼다.
단체로 준비해야 할 스케줄은 정말이지 오랜만인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재계약 후 처음으로 하는 일이었다.
남들은 새해라고 분주할 때, 어딘가 우울한 분위기가 남아 있던 모노크롬의 숙소는 오랜만에 활기찬 분위기로 돌아왔다.
식탁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우형이 채윤환을 보고 입을 열었다.
“시간 조정은 잘 됐어?”
“응. 제일 먼저 개인 촬영 하고 다녀와서 단체 사진 찍기로.”
냉장고에서 작은 생수병을 꺼낸 윤환이 우형의 맞은편 빈자리에 앉았다.
프로필 사진 촬영일인 다음 주 월요일. 그날은 하필 윤환의 잡지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래도 다섯 명이 한 날에 촬영하는지라 멤버 개인에겐 비는 시간이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겹치지 않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얼굴 부으면 어떡해?”
“밤새우고 갈까 봐.”
“퀭하게 잘 나오겠다.”
윤환은 아침에 유독 얼굴이 잘 부었다.
그걸 아는 우형이 물어보자 윤환도 고민이 많은 듯 진지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검색을 시작했다.
‘아침 부기 빼는 데 시간 얼마나…….’
그러는 사이 냉장고로 다가온 유한이는 뭔가를 꺼내 거실로 나갔다.
목을 빼고 뭘 가져가나 지켜보던 우형은 바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유한이! 너 이거 먹지 마.”
“아, 왜!”
“살찐 것 같다며.”
“아냐. 다 빠졌어. 이것 봐.”
우형이 거실 소파로 다가와 한이가 마시던 커피 우유를 뺏었다.
한이가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대고 홀쭉해졌다며 주장했지만, 우형은 무시했다. 그리고는 뺏은 커피 우유를 전부 마셔버렸다.
“그냥 뺏어 마시려고 온 거 아냐?!”
“관리를 섣불리 한 네 죄다.”
“아니. 옆에 해랑이 형은…….”
먼저 소파에 앉아 있던 해랑은 한이와 눈이 마주치자 들고 있던 자신의 커피 우유를 급히 원샷해 버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신은 뺏기지 않겠다는 듯이.
“하. 진짜 박하네.”
한이는 구부정하게 자세를 낮춰 앉았다.
리더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쪼잔하게 구는 건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에겐 차근차근히 준비할 시간은 따로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언제 무슨 일이 들어와도 괜찮을 정도로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한이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고 관리를 게을리 한 것도 아니지만, 마음이 풀어져 농담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한이의 옆, 해랑이 비운 자리를 막내 준해가 차지하고 앉았다.
“너 공부 안 해?”
“응.”
준해는 뭔가 후련한 표정으로 TV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렸다.
그런 모습을 본 한이가 이상하단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멤버 중 가장 막내인 현준해는 현재 23살. 대학교 재학 중이었다.
게다가 들쭉날쭉하던 스케줄 탓에 학점을 제대로 못 채우고 계절학기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곧 시험이라고 공부를 했는데…….
“촬영 날 시험이라 그냥 시험 안 보려고!”
우형과 한이는 그 말을 듣고 입을 떡 벌렸다.
“인마! 매니저 형한테 말해서 순서를 뒤로 바꾸든가 해야지!”
“그냥 안 보면 간단하잖아! 시험 한 번 안 본다고 안 망해!”
“들어가서 공부해!”
“악!”
한이가 황당하다는 듯이 외치고 뒤이어 우형이 등짝을 때렸다.
그래도 형들의 말은 잘 듣는 막내는 투덜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두 번이나 자리의 주인이 바뀐 소파에 이번엔 우형이 걸터앉았다.
“촬영 끝나고 다 같이 뷰이라이브 하자.”
“안 한 지가 좀 됐네.”
“응.”
평소엔 스케줄이 없는 날에도 우형의 주도하에 짤막하게 팬들과의 소통 방송을 하곤 했었는데, 최근엔 그 빈도가 확연히 줄어 있었다.
안 했다기보단 못 한 것에 가까웠다. 재계약과 회사 분위기 등등 여러모로 상황이 뒤숭숭했기 때문에.
최근 공식적인 소식이 없었으니 팬들 분위기도 뒤숭숭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며칠은 더 기다리게 해야 했다.
“깜짝 놀라게 해줘야지.”
오랜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그것도 풀 세팅한 모습으로.
우형은 그날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
퇴근 후. 며칠 지났다고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한 혼자만의 공간.
난 TV를 보며 남자 연예인들이 어떤 머리 스타일이고 어떤 옷을 입는지를 살펴봤다.
예전엔 아무 생각 없이 보기만 했는데, 일이 되니까 그저 헤벌레 하고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냥 전문가한테 맡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온전히 남의 손에만 맡기기엔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남았다.
‘이제 시작이니까 최대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야지.’
인터넷을 보다 보면 그런 사진들 있지 않은가. ‘스타일리스트와 싸운 연예인.jpg’ 같은 것.
유명 연예인들도 종종 메이크업이나 헤어가 안 어울린단 소리를 듣는 것을 보면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이미지라도 자세한 요구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행에 편승하지 않으면서 세련되고, 심플하면서 밋밋하진 말아야 하고, 눈에 확 띄는…….’
디자이너가 들으면 식겁할 요구사항을 떠올리던 그때였다.
이 세상에 적응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번뜩 떠올랐다.
“마이 엔터!”
마이 엔터엔 스타일링 메뉴가 있었다.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 줄여서 ‘헤메스’를 직접 골라 적용할 수 있는 메뉴.
아이템의 종류가 매우 많고 색상도 직접 지정할 수 있는 등 자유도가 높아서 헤메스만 집중하여 플레이하는 유저도 있을 정도였다.
‘모노크롬 스타일링 창은 오랜만에 켜는 것 같네.’
멤버들의 얼굴이 눈에 익은 상태에서 마이 엔터의 캐릭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캐릭터는 만화체에 가까웠지만 눈매나 입매, 얼굴형 등을 보면 확실히 실제와 닮아 있었다.
정말 게임 캐릭터구나 싶어서 조금 소름이 돋으려던 찰나. 설정해둔 스타일이 <12345> 앨범의 재킷 사진, 그러니까 현재 프로필 사진과 똑같은 것을 알아챘다.
‘이제 그만 12345에서 벗어나게 해 줘!’
방심한 채로 마주한 <12345>의 망령에 머리를 쥐어뜯는데,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또 하나 떠올랐다.
나는 아이리스를 결성한 이후론 이 모노크롬의 스타일링 창을 열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럼 같은 스타일을 몇 년 동안이나 유지했단 거야?!’
디스코그래피를 확인할 땐 내가 너무 괴로워서 차마 전부 보지를 못했었다.
그러나 얼핏 남은 기억을 떠올려 보면, 요 몇 년간의 앨범 재킷 사진들이 의상만 좀 다르고 다 비슷비슷했던 것 같긴 했다.
“미쳤네. 미쳤어.”
나는 머리를 또 팍팍 쳤다.
당시에도 게임 내 컨텐츠에 다 적응하지 못한 상태여서 그냥 눈에 띄는 아이템으로 멋대로 설정한 듯했다.
적용된 아이템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나름 캐주얼이란 통일성은 있었지만 어딘가 하나씩은 어색했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친 느낌이었다.
“이거 설마 내가 변경하면 실제로도 뿅 하고 바뀌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지금 숙소에 있을 당사자가 얼마나 놀라겠는가.
혹시 모르니 헤어 색상만 아주 살짝 변경해 보기로 했다.
‘변경…….’
[변경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헤어 색상을 바꾸고 변경 버튼을 눌러도 적용까지는 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비현실적인 일을 여럿 겪긴 했어도 실제로 목도하면 무서울 것 같으니까.
실제로 바뀌지 않는다면 이 기능이 쓸모가 있었다.
‘이걸로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지 예상해 볼 수 있겠어.’
실제 스타일링은 해본 적 없지만 캐릭터 꾸미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아이리스로 단련된 가상 스타일링 실력!
나는 한창 게임에 빠졌을 때처럼 스마트폰을 붙잡고 열중했다.
2D였지만 슬슬 머릿속에 멤버들의 이미지가 잡혀갔다.
***
며칠이 지났다.
별일은 없었고 이 게임 속 세상과 나에게 부여된 설정과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모노크롬의 프로필 사진 촬영 날이 금방 다가왔다.
나는 촬영 현장까지 직접 나섰다.
이사란 높은 직급을 달고 직접 나서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금 누굴 믿고 일을 맡겨야 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일해 온 사람이라고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모노크롬의 망한 과거에 동참했던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윤희처럼 진심으로 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내가 진두지휘하기로 했다.
스튜디오에 먼저 도착해 있으니 곧바로 모노크롬 멤버들도 도착하여 차례대로 들어왔다.
나는 그 사이에서 한 멤버를 발견하고 씨익 웃었다.
“백해랑.”
개인적으로 가장 변화가 기대되는 멤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