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7화 (7/430)

# 7화

마이 엔터의 스타일링 창에서 처음 해랑의 캐릭터를 봤을 땐 못 알아볼 뻔했다.

메인 래퍼라는 그의 포지션을 의식한 것인지, 과거의 나는 그를 아주 강렬하게도 꾸며놨더란다.

새빨간 색상에 앞머리까지 삐죽빼죽하게 세운 머리. 눈썹도 헤어 색상을 따라 빨간색으로 염색되어 있었다.

“무슨 통키냐고!”

마치 피구를 잘할 것 같은 헤어스타일을 보며 머리를 짚고 있을 때, 모노크롬 멤버들의 실제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빨간 머리가 없었지?’

그래도 내가 이사라고, 이사실에 들어오면서 모자를 쓰고 있던 멤버는 모자를 벗으며 들어왔었다.

분명 내가 봤을 땐 이토록 머리카락 색이 강렬한 멤버는 없었다. 해랑을 포함해서.

이 의문은 다음 날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 나나 어차피 같은 건물에 있기에 몇 층만 내려가서 찾으면 될 일이었다.

연습실과 작업실 등 방음이 필요한 공간들은 아래층에 몰려있었다.

쿵쿵 뛰어야 하니 나름 층간소음을 고려한 구조인가.

이사실이 있는 층 외엔 처음 내려와 봐서 신기하게 구경했다.

사람이 있는 방이 많지 않아 슬렁슬렁 둘러보면서도 금방 그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백해랑?”

해랑은 우형과 함께 한 작업실에 있었다.

내가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 부르자, 두 사람은 하던 일도 멈추고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렇게까지 안 어려워해도 되는데 말이지.

나는 해랑만 잠시 작업실 밖으로 불러냈다.

‘가까이서 보니까 키가 엄청나게 크네.’

아마 멤버 중에서도 키가 제일 크던가. 머리를 살펴보려면 올려다봐야 했다.

모자를 쓰고 있는 데다가 복도가 밝지 않아서 머리카락 색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 그림 같은 새빨간 색상은 아니었다.

“잠깐만.”

“……?”

나는 손을 뻗어 해랑의 모자를 벗겼다. 그는 의아한 듯이 내 행동을 지켜봤다.

그리고 의문은 바로 풀렸다.

머리카락 색이 바뀐 것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원색이라 물 빠짐이 심하다는 것.

모자를 벗겨 보니 머리카락 끝부분에만 색 빠진 적갈색 머리가 남아 투톤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마이 엔터의 스타일링 창에 있는 건 ‘현재’의 모습이 아니란 거네.’

예상컨대 스타일링이란 메뉴명이 붙어 있는 걸 보아선 헤메스, 즉 헤어와 메이크업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의 손을 거쳐 세팅된 모습이 표시되는 게 아닐까?

아무튼 이런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동시에 이 정도로 염색이 빠진 것을 보니 공백기가 얼마나 길었을지 짐작이 갔다.

내 눈썹이 팔자를 그리자, 해랑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너 머리카락 괜찮니?”

그 새빨간 색상은 탈색 없이는 불가능했다.

내 게임 화폐 벌이를 위해 의미 없는 앨범 발매가 이어지는 기간도 있었다. 그럼 그 머리를 몇 달 내내 유지해야 했을 것이다.

‘두피 어쩔 거야?!’

두피는 관리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데. 하필 또 머리가 자라면 바로 티 나는 색상이라 그 독하다는 탈색을 계속 반복했을 거고.

그러나 해랑은 내 말을 다른 뜻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탈색할까요?”

“아니!”

하긴 활동기만 되면 탈색을 시켜댔으니 또 탈색을 해야겠거니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탈색은 이제 그만! 두피 보호!

나는 그에게 모자를 다시 씌우며 특별 요구 사항을 하나 전달했다.

***

프로필 사진 촬영 순서는 중간에 나갔다 와야 하는 윤환이 제일 먼저, 시험이 있다는 준해가 제일 뒤.

듣기로는 준해가 시험을 안 봐도 된다며 잠시 고집을 부린 듯했지만, 1교시여서 큰 무리 없이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1교시면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가 가지.’

하지만 학생이고 졸업은 해야 하니 다녀오라고 했다. 시험 안 보고 오면 촬영장에 못 들어오게 하겠다면서.

진짜로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한 방이었는지 준해는 입을 턱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이 연습실에 있는 동안, 빈 회의실에서 공부했다고 들었다.

오늘도 착실하게 학교를 갔는지 다른 멤버들이 도착했을 때 준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스튜디오는 제법 규모가 있어서 촬영장 옆에 탈의실과 메이크업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출장 헤어 디자이너, 메이크업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가 도착하니 제법 현장이 복작복작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모노크롬 그룹 담당 매니저 외에도, 윤환의 이동을 위한 매니저가 한 명 더 붙어 있었다.

‘정말 연예계는 보이는 것 외에도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구나.’

내겐 이 모든 것이 신기했다.

말은 진두지휘라고 했지만, 이곳에서 내 포지션은 거의 구경꾼이었다.

난 가장 먼저 시작된 윤환의 촬영을 뒤에서 구경했다.

“와. 연예인이다.”

카메라 앞에 서자 곧바로 능숙하게 포즈를 잡는 게 확실히 연예인은 연예인이었다.

게다가 메이크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부기가 남아 있다면서 다른 멤버들까지 나서서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물병을 대고 있었는데.

지금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부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완성된 얼굴이었다.

내가 연예인 처음 보는 촌뜨기처럼 기웃거리고 있는데, 윤희가 캠코더를 들고 옆에 섰다.

“그건 뭐예요?”

“찍어놔야 나중에 비하인드로 올리죠.”

“오.”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는구나. 역시 일하던 사람은 달라.

나는 감탄하며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어딘가 부스스한 듯 세팅된 생머리 사이로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의 귀걸이가 늘어졌다.

심플한 흰 셔츠를 입었는데도 얄쌍한 눈매와 반짝거리는 귀걸이가 화려함을 더해 누가 봐도 아이돌처럼 보였다.

이번 프로필 촬영의 컨셉은 직설적인 윤희의 의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저번 회의 때 윤희가 짧고 강렬하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스타일링에 대한 팬들의 의견을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악동 컨셉 그만두면 모노크롬 숙소 방향에 대고 108배 인증합니다. 아니면 뉴마 뚝배기 깨러 감.’이란 반응이 있네요.]

뒤에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까지 있는 것 같았지만 팬들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었다.

그 캐주얼한 스타일링은 악동이라고 요약되는 모양이었다. 몇 년 내내 활발한 청량 컨셉을 유지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건가…….

그간 같은 컨셉으로 나온 노래 가사들은 대개 비슷했다. 화자는 연하남이고 사랑하는 상대방을 빼앗기는 게 무서워. 뭐 이런 식.

이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나도 진심으로 동의했다.

연차를 고려해서 어른스럽게 가자! 그렇게 생각해서 나온 아이디어가 이 셔츠 스타일이었다.

모노크롬. 흑백. 블랙과 화이트라고 하면 수트! 셔츠!

최 비서의 정장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그의 칼정장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이번엔 모든 멤버의 의상을 모노톤으로 통일했다.

마치 모노필름, 흑백영화를 컨셉으로 내세웠던 데뷔 때처럼.

어찌 보면 지금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개인 촬영은 두 가지 의상으로 진행됐다. 셔츠로 하나, 좀 더 편한 차림으로 하나.

두 번째 의상인 회색 니트를 입고 촬영을 마친 후, 윤환은 곧장 인터뷰 장소로 이동했다.

다음은 우형의 차례였다.

나름 얼굴을 한 번 더 본 멤버라서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연예인!

“오. 잘생겼다.”

난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그대로 내뱉었다.

카메라 앞에 서서 자리를 잡던 우형이 그 말을 듣고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다들 본판도 일반인과는 확연히 달랐지만, 메이크업과 헤어 세팅을 완료한 모습은 정말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졌다.

꼬리가 올라간 눈매는 표정에 따라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고 부드러워 보이기도 했다.

‘저런 표정도 나오는구나.’

당황하거나 어려워하는 듯한 표정을 자주 지어서인지 머릿속에 그런 인상으로 남아있었는데, 연예인 모드인 그는 또 달라서 새삼스러웠다.

의상을 체인지하여 검은 폴라티를 입은 우형이 이번엔 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확실히 웃는 게 좋네.’

한이는 세팅이 먼저 끝났는지 아까부터 사진을 같이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넌 배우 해도 되겠다.”

이마를 반 정도 드러내도록 세팅한 앞머리 사이로 그의 진한 눈썹이 드러났다.

우형과는 다르게 눈꼬리가 처졌다고 해야 하나, 쌍꺼풀이 있어 진하면서도 순한 눈매였는데 지금 얼굴을 잘 살펴보니 배우상에 가까웠다.

“잘생겼다, 는요?”

“응? 잘생겼지.”

“야! 버르장머리 없게.”

촬영이 끝난 우형이 모니터 뒤로 합류하여 한이의 등짝을 때렸다.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인지 이런 투닥거림도 익숙해 보였다.

몰랐는데 한이는 원래 이렇게 서글서글한 성격인 듯했다.

잘생긴 녀석들이 지들끼리 잘생겼느니 뭐니 하는데 참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그런 얼굴로 살면 무슨 기분일지.

우형이 섰던 자리에 교대하듯이 이번엔 한이가 가서 섰다.

‘조명의 힘도 엄청나구나.’

아직 겨울임에도 조명의 열이 강렬하여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열을 내는 힘에 감탄한 것은 아니다.

새하얀 배경이 세워진 그곳은 정말 카메라에 담기는 피사체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같은 얼굴인데도 바로 옆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반짝임이 있었다.

마치 모니터 화면 너머로 보는 느낌이랄까.

‘눈웃음이 시원하네.’

일하러 오긴 했지만 얼굴을 감상하는 일은 꽤나 재미있었다.

다양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각자의 매력 포인트도 알 수 있었다.

보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처음 모노크롬의 프로필 사진을 봤을 땐 특출하게 인상에 남는 이미지가 없었는데.

얼굴로 다 되는 판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들 외모가 빠지지 않는데 왜 뜨지를 못했을까.

‘……는 무슨, 내 탓이지.’

이 아까운 원석들을 원석 상태로만 방치해 둔 게 나였다.

뉴마 엔터테인먼트도 바보야. 직원들이 있는데 어떻게 대표 의견 하나로만 돌아갈 수가 있냐고!

윤희가 사직서를 내밀며 했던 말이 정말 옳았다.

아티스트가 아무리 열심이라도 소속사가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다 물거품이 될 수도 있구나.

다시금 내 자리의 무게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사진 촬영 현장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중간중간 의상 교체도 하고, 좀 더 어울리는 구도를 찾아보기도 하고.

촬영 후엔 사진들을 확인하며 괜찮은지 체크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윤희는 중간중간 매니저와 교대도 하면서 촬영 현장의 이곳저곳을 찍으러 다녔다.

이제 학교 간 막내를 제외하고 남은 건 백해랑.

그가 큰 키를 자랑하며 촬영 현장으로 들어서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주목되었다.

***

“고생했다. 윤환아.”

“뭘요.”

잡지 인터뷰를 끝내고 다시 스튜디오로 이동하는 차 안.

매니저는 백미러로 슬쩍 웃어 보이며 그를 격려했다.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계속 이동했으니 피곤할 법도 한데, 또 얼굴이 붓는다며 잠시 눈을 붙이지도 않았다.

그는 윤환의 그런 모습이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매니지먼트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윤환의 개인 활동 매니저로 나서곤 했다.

그룹을 담당하는 매니저가 있으나, 이렇게 종종 윤환이 따로 개인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차 안은 둘뿐이었기 때문에 조용했다.

매니저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너. 그…… 허용석 실장님 알지?”

“알죠. 뉴레인으로 옮기셨잖아요.”

윤환은 매니저가 말하는 인물의 얼굴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작년까지, 일수로 따지자면 며칠 전까지 뉴마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조만간 나랑 뉴레인에 잠깐 다녀오자.”

윤환이 무슨 의미인지 뜻을 파악하지 못한 듯 대답이 없자, 매니저가 이어서 말했다.

“실장님이 미팅을 한번 하고 싶다고 하셨어.”

“저희랑요?”

“아니. ‘너희’가 아니라 ‘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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