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아테나가 돌아가고 다음 날.
처용은 곧장 몬스터 오지, 북한으로 향했다.
10년 전에는 휴전선.
지금은 몬스터 오지를 경계하는 20미터 크기의 거대한 벽이 자리한 방어선.
경계가 삼엄한 곳이었지만, 동화경을 사용한 처용이 통과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협회장에게 부탁하면 이곳을 당당히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처용이 할 일은 그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오지 경계선을 넘어가자 광활한 숲이 펼쳐졌다.
숲속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크르르!
-샤아아!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싸우는 소리와.
-쿠르르!
-쿠릉!
무리를 이룬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처용은 동화경을 계속 유지한 채 앞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버려진 도시가 드러났다.
“평양……, 제대로 찾아왔네.”
처용이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를 쓱 눈여겨보며 중얼거렸다.
평양특별시.
과거 북한의 수도였던 도시.
그리고…… 아르테미스 신전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
처용이 평양을 의심하는 이유는 회귀 전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악마들이 지구를 침공할 당시, 배신자들이 전초기지로 활용한 장소가 바로 평양이었다.
판데모니움과 연결된 균열이 발생했던 곳 중 하나.
심지어…… 이 장소를 지키던 마인 중 하나가 바로 제니퍼 로스차일드였다.
배신하여 마인이 된 달의 사냥꾼 길드원들 역시 이곳에 있었다.
‘이런 곳에 누가 올 리도 없을 테고…….’
처용이 도시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 역시 회귀 전 정보들이 아니었다면 이 장소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새끼들……, 암살자답네.”
처용이 작은 비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리고는 도시 내부로 진입했다.
-크르르!
-캬아아!
도시 내부에도 몬스터들이 가득했다.
놈들의 수준은 평균 B급 정도.
가끔 던전보스 격의 A급 몬스터들도 지나다녔지만, 존재감을 지운 처용이 들킬 염려는 없었다.
가장 높은 빌딩의 옥상으로 향한 처용은.
“풍운부-식신부-바람 벌새.”
풍운부와 식신부를 합쳐 작은 새들을 만들었고.
“토류부-식신부-땅굴쥐.”
토류부와 식신부를 합쳐 작은 쥐들을 만들어냈다.
“가라!”
처용이 명령을 내리자 소환수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처용이 정신을 집중하자.
소환수들이 보고 듣는 정보들이 머릿속에 공유되었다.
-크르르.
-캬학! 크하악!
소환수들의 시야와 감각을 통해 곳곳에 퍼진 몬스터들이 보였다.
몬스터들만이 존재하는 몬스터 오지.
형태만 남기고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는 몬스터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처용은 이곳에 아르테미스의 신전이 숨겨져 있으리라 확신했다.
계속 정신을 집중하며 소환수들을 통해 수색을 계속하고 있을 때.
-후, 언제까지 여기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거지?
-그럼 나가 보든가, 크크큭.
-너나 나가든가! 뒤질라고.
이곳에서는 있을 리 없는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싸늘한 미소를 지은 처용은 모든 소환수들을 인기척이 들린 곳으로 집중했다.
소환수들이 모인 장소는 평양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 중 하나인 금수태양궁전.
북한 초대 지도자의 이름을 따 통칭 김일성 궁이라 불리는 장소.
한국에 비유하자면 청와대와 같은 역할 했었던 건물이었다.
외곽에 자란 식물들이나 벽에 생긴 자잘한 균열들은 있었지만, 다른 건물들에 비하면 멀쩡한 모습이었다.
처용은 건물 안으로 소환수를 보내지 않고 외곽만을 관찰했다.
그러자 외곽 부근에서 경계를 서는 놈들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린 언제까지 여기 있는 건데?
-몰라, 길드장이 때를 기다리라고만 말하는 데 뭐.
또렷한 사람의 말소리 역시 들을 수 있었다.
단서를 잡은 처용은 소환수들을 모두 해제하고 자리를 박차 움직였다.
처용이 김일성 궁 앞에 도달하자.
‘소환수들을 불러들이길 잘했네.’
건물을 감싸는 결계가 느껴졌다.
애초에 결계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소환수들을 모두 불러들인 것이었지만…….
야생 몬스터는 다른 곳으로 유인하고 허가받지 못한 자가 들어오면 감지하는 결계.
하지만, 처용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암영부-녹아드는 어둠.’
처용의 손에서 만들어진 세 장의 암영부가 결계 벽에 붙어 어둠 속성 마나를 결계 안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스르르.
암영부가 서서히 녹아드는 듯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아니, 결계에 흡수되었다.
작업을 마친 처용이 결계 안으로 진입하자.
-우우웅.
결계는 처용을 침입자로 간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호? 부수고 들어갈 줄 알았더니, 제법이구나?]
처용을 지켜보던 미륵이 작은 놀람을 표하며 전음을 보냈다.
‘이 정도 결계를 조작하는 것쯤은 문제없습니다.’
처용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암영부의 어둠을 이용해 결계에 사용한 기술인 녹아드는 어둠.
간단하게 말자면 결계를 해킹하고 자신을 ‘허가받은 존재’로 인식시키는 기술이었다.
처용은 다시금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조용히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이윽고 좀 전에 위치를 파악했었던, 외곽에서 경계를 서는 두 명을 찾았다.
그들의 외투에 달과 화살이 그려진 마크가 눈에 보였다.
아르테미스의 병사, 달의 사냥꾼 길드 소속 헌터들이었다.
아니……, 그들은 이제 헌터가 아닌 마인이 된 상태였다.
굳이 통찰의 눈으로 파악하지 않아도 그들 주변에 넘실거리는 마기가 느껴졌으니까.
처용이 둘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할 때.
“야, 나 잠깐 볼일 좀 보고 온다?”
경계를 서던 이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자.
“어 그래, 난 좀 자야겠다. 오는 사람도 없는데 경계를 왜 서라는 거야…….”
다른 한 명이 대답하고는 불만이 가득한 듯 중얼거리며 드러누웠다.
그리고.
-스르르.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가 볼일을 보러 간다는 마인을 따라갔다.
그렇게 잠시 후.
“변기에 대가리 박고 뒤졌나. 왜 안 와? 이 새끼.”
자다가 일어난 마인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리는 순간!
“어떻게 알았어?”
바로 뒤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씨-흡!”
마인이 목소리를 내려는 순간 입이 틀어막혔고.
-콰지직!
날카로운 무언가가 등을 뚫고 가슴으로 튀어나왔다.
톱날처럼 날이 서 있는 단검.
좀 전에 볼일을 보러 간다고 나갔던 동료의 무기였다.
“으…… 으, 흐……읍!”
마인이 발버둥 치며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우드드득!
가슴을 뚫고 나온 칼날이 꺾였고.
“크, 쿨럭! 쿠르…….”
입과 가슴에서 검붉은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정신이 흐려지며 시야가 암전되었다.
“48명 남은 건가?”
마인을 완전히 끝장낸 처용이 남은 사냥감들의 숫자를 세며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볼일을 보러 간다는 마인을 고문하여 알아낸 정보가 있었다.
이곳을 지키는 헌터, 아니 이제는 마인이 된 이들이 숫자.
이 장소가 마인들의 숨겨진 아지트 중 하나라는 사실.
그리고…….
-여, 여기 지하가 신전이야! 워, 원래 신의 신전이라고 들었어!
좀 전까지 ‘살아있었던’ 마인이 한 말이었다.
아르테미스의 신전이 김일성 궁 지하에 있다는 것.
“곧 교대 시간이라고 했었지?”
처용이 다가오는 인기척을 감지하며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철벽부-칼날 실타래.”
처용이 철벽부 한 장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양손을 떼자.
-촤르르!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고 투명한 철사가 뽑혀 나왔다.
마치 실처럼 부드럽게 휘어지는 철사.
그리고 그 철사에는 둥근 형태의 작고 날카로운 칼날들이 부착되어 예기를 빛내고 있었다.
철사를 움켜쥔 처용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자.
-빨리 끝내고 잠이나 자야지.
-새벽 당번 아닌 게 어디야.
세 명의 마인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야! 교대할 시간이야!”
복도를 걸어오는 세 명의 마인들 중 중앙 선두에 선 이가 소리쳤다.
“어이!?”
들려야 하는 대답이 들리지 않자 선두에 선 남자가 짜증이 난 듯 인상을 구겼다.
“이 새끼들이! 암만 여기가 오지라 해도 경계 임무거늘.”
선두의 남자는 뒤에 나란히 서서 따라오는 두 명의 마인보다 발걸음을 서둘러 걸어갔다.
남자가 지나간 순간.
-스르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올가미가 천천히 내려왔다.
뒤에 나란히 따라오는 마인들의 머리에 올가미가 씌워진 순간!
-스각.
마치 정육점 기계에 고깃덩이가 잘려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저, 저벅. 저벅…….
머리가 사라진 두 명의 마인이 몇 걸음을 비틀거리며 걷더니.
-풀썩!
앞으로 고꾸라지며 나자빠졌다.
동시에.
-투둑!
사라졌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뭔 소리……?”
앞서 나가던 마인이 의문의 소리에 뒤를 돌아본 순간!
“안녕?”
마치 지옥처럼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비명과 놀람, 경계가 섞인 말이 튀어나오기 직전.
-텁!
잔혹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붉은 눈의 남자, 처용의 손이 마인의 입을 틀어막았고.
-푸욱!
날카로운 무언가가 복부를 꿰뚫었다.
“쿠-쿠흡! 크흡!”
기습을 당한 마인이 몸부림치려는 때.
-텁! 콰쾅!
처용이 입을 막은 손을 떼고 빠르게 마인의 목을 틀어쥔 다음 바닥에 내리꽂았다.
“커허헉!”
바닥에 박힌 마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치, 침입-자다!!”
가까스로 고통을 참고 동료들에게 침입자에 대해 알렸지만.
“네놈 친구들에게는 안 들릴 거야.”
처용이 목을 더 거세게 틀어쥐며 싸늘하게 말했다.
“살고 싶나?”
목을 틀어쥔 마인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 처용은.
-휘리릭!
피가 뚝뚝 떨어지는 철사를 왼손으로 빨아들이듯 회수했다.
마인의 눈동자에 피가 묻은 철사와 그 뒤에 머리가 잘린 동료들이 보였다.
그리고 마치 사신의 것처럼 느껴지는 붉은 눈동자와 다시 눈을 마주쳤다.
그 모습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마인은.
“사, 살려, 살려!”
살려달라는 말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아르테미스의 신전이 이곳에 있나?”
처용이 나지막하게 묻자.
“이, 예, 예예! 예!”
마인이 고개를 거칠게 끄덕이며 여러 번 대답했다.
“달의 사냥꾼 길드장이 이곳에 있나?”
이번에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먼저 죽인 놈에게서는 ‘모른다’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처용의 말이 끝나자.
“어, 어어 없습! 없습니다! 중국에 있습니다! 중국으로 갔습니다!”
마인이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대답했다.
“칫.”
처용이 아쉬움에 혀를 찼다.
이곳에서 제니퍼를 죽이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신전에 없었다.
“사, 살려…….”
마인이 간곡함을 담아 살려달라 말하자.
“정보 고맙다.”
처용이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마인이 자신을 살려주는 줄 알고 기쁨의 미소를 짓는 순간.
-우드득!
처용이 마인의 목을 강하게 틀어쥐고는 비틀어 꺾어 버렸다.
복잡한 감정을 담은 마인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키며 축 늘어졌다.
처용은 다섯 구의 시체를 결계 밖으로 내던졌다.
몬스터의 먹이가 되는 것으로 놈들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45명 남았네.”
처용이 남은 사냥감들의 수를 생각하며 기감을 넓히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건물 안에 당도했을 때,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용은 정말 아무도 없는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한 후, 통찰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주변을 수색하던 처용의 눈에 북한 지도자의 모습을 한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미소를 지으며 동상에 가까이 다가간 처용은 동상의 왼쪽 발을 네 번 두들겼다.
그러자.
-쿠구구구!
동상이 회전하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동시에 계단 안쪽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내부에서 신성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는 아르테미스의 신전 입구가 확실했다.
“흠…….”
처용은 곧장 내려가지 않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침묵했다.
그리고.
“철벽부-철가면.”
철벽부 한 장을 만들어 이마에 붙였다.
-콰드드득!
처용의 얼굴에 붙은 강철이 뭉치고 늘어나며 어떤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왼쪽은 백색, 오른쪽은 흑색인, 입 부분이 비어있는 하회탈 반가면.
그리고.
“내 취향은 아니지만…….”
가면이 완성된 처용이 이빨이 보이도록 씨익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네.”
금빛으로 번쩍이는 이빨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