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남궁제의 이마 위로 치솟은 한 쌍의 기다란 뿔. 어깨 뒤로 자란 큼직한 날개.
얼굴부터 시작해 전신의 피부엔 파충류 특유의 비늘이 돋아났다.
그의 눈은 「태양신공」을 쓴 것처럼 샛노랗게 물들었다. 다만 동공이 세로로 길쭉이 찢어졌다.
날개와 뿔만 떼 놓으면 어디서 봤던 모양새였다.
‘리자드맨?’
예전에 어느 유령 도시에 숨어, 용인이 되고자 인체 실험을 감행한 마법사가 떠올랐다.
끝내 약물 부작용으로 폭주해, 거대 리자드맨으로 변하기 직전의 모습이 딱 저랬었지.
“리자드맨은 아닐 거고. 용인이냐?”
정도현의 질문에 팽철연과 재갈성이 흠칫했다.
용인. 이름 그대로 용혈(龍血)을 통해 한층 진화한 인간이다.
그게 뭐 어쨌냐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용은 성서에서 삿된 존재로 표현된다.
악마와 더불어 인간을 타락시키고, 세상의 종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고.
물론 성서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천사와 그들을 추종하는 교단이 만들어 낸 산물.
가령, 언젠가 용들이 차원 게이트를 통해 이 세상으로 나타난다면.
용들이 이 세상을 탐내 기존의 지배자인 천사들과 싸우려 든다면.
그런 상황을 대비해 인류의 머릿속에 용을 향한 적의를 심어 두려 했다면.
‘성서에서 묘사한 것과 실제 용은 좀 다를 수도 있겠지.’
정도현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저들은 용이 천사와 같은 태양신의 자손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용은 몬스터랑 하등 다를 바 없는 존재.
즉, 저들 눈에는 남궁제가 몬스터로밖에 안 보일 터.
“나, 남궁제! 네놈, 지금 무슨 짓거릴 한 거냐!”
아니나 다를까. 조용히 구경하던 팽철연이 못 참고 버럭 소릴 질렀다.
남궁제는 뭐가 문제냐고 말하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난 비장의 패를 꺼낸 것뿐이다만?”
“…비장의 패라고? 인간을 포기하고 괴물이 된 게 말이더냐!”
한 가문을 책임지는 가주로서 절대 해선 안 될 짓이지 않은가.
남궁제가 용의 힘을 다룬단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남궁제 한 명 죽는 거론 끝나지 않는다.
마녀사냥 하듯 남궁세가 일족을 몰살시킬 거다. 화근을 없애려고.
물론 남궁제도 얌전히 목을 내주진 않겠지. 분명 격렬히 저항하리라.
교단과 남궁세가. 둘 중 누가 이기든 결과는 뻔했다.
“많은 피가 흐를 거다. 교단도, 남궁세가도! 그러고도 네가 가문의 책임자냐! 너를 따르던 이들의 목숨이 그리도 하찮더냐!”
팽철연의 지적에 남궁제는 같잖단 표정을 지었다.
“그래, 들킨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안 들키면 그만이지 않나.”
“…뭐?”
“목격자를 다 죽이면 신고할 사람도 없다네.”
실로 간단하고도 깔끔한 해결책.
그 말에 제갈성은 설마 하는 눈으로 남궁제를 쳐다봤다. 그가 다급히 말했다.
“가, 가주님. 저는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그러니…….”
“제갈성. 자넨 똑똑한 남자야. 그러니 내가 그럴 수 없단 걸 이해해 주겠지.”
“아…….”
제갈성의 낯빛이 시커멓게 변했다.
그렇다. 남궁제는 자신의 약점을 남에게 알려 줄 위인이 아니다.
심지어 가문의 존속 여부가 달린 비밀이다.
아무리 제갈성과 정략혼으로 맺어진 동맹 관계여도 생판 남. 그가 알아서 좋을 게 전혀 없었다.
“뭐, 내가 살아 있을 동안엔 괜찮을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내가 없어지고 난 다음엔?”
“그, 그건…….”
“미안하게 됐네. 그래도 자넨 나랑 사정이 다르니 안심할 수 있지 않나.”
“다, 다르다뇨? 그게 무슨……?”
“자넨 영특한 자식들이 있어. 당장 자네가 죽어도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여럿 있지.”
남궁제와 달리 제갈성은 자식 복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불운일 수도 있다.
능력이 출중한 자식이 여럿이라 누굴 다음 가주로 삼아야 할지 고민될 정도였으니까.
자칫하면 후계자 자릴 놓고 저들끼리 싸울지도 모른다.
“어쩌겠나. 못난 자식들을 지키려면 이 늙은이가 열심히 힘내는 수밖에.”
남궁제는 그렇게 말하며 제갈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지직!
손바닥에서 구체 형태의 뇌기가 탄환처럼 쏘아졌다.
“헉!”
제갈성은 부채로 마력탄을 쳐 내 막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남궁제가 땅을 박차며 달려든 뒤였으니까.
순식간에 둘의 거리가 좁혀졌다.
벼락이 실린 칼날이 제갈성의 심장을 노리고 뻗어 나갔다.
마법사인 제갈성의 반응 속도론 막지 못할 터. 바로 그때.
“야, 왜 한눈파냐.”
카아앙!
정도현이 도중에 끼어들며 방해했다.
서로의 칼날이 교차했고, 제갈성은 마력 충돌의 여파에 휩쓸려 저 멀리 날아갔다.
정도현의 방해 공작에 남궁제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가 으르렁대며 팔에 힘을 줬다.
“꺼져라.”
꽈르르릉-!
남궁제의 검이 수십 줄기의 벼락을 토해 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미처 마력을 흡수하기도 전에 전류가 정도현의 몸을 덮쳤다.
투콰앙-!
정도현은 반대편 벽으로 튕겨 그대로 처박혔다.
이 건물은 기사들의 대련장으로 쓰고자 특수한 금속으로 쌓아 올렸기에 구멍이 뚫리거나 무너지진 않았다.
약간의 금이 갈라졌을 뿐.
“…퉷!”
정도현은 핏물을 한 움큼 뱉고서 다시 일어섰다.
제갈성한테 가지 못하게 다시 앞길을 막아서자 남궁제는 씩 웃었다.
“그래. 이런 상황도 나름 쫄깃해서 재밌구나.”
최대한 빨리 정도현을 해치우고 제갈성을 뒤쫓는 놀이.
만약 여기서 제갈성을 놓치면 일을 수습하기가 어려워진다.
자칫 그가 손 쓰기도 전에 제갈성이 교단에 신고할지 모를 일. 그렇게 되면 대참사였다.
“자, 어서 덤벼라!”
남궁제가 힘찬 포효를 내지르며 온몸으로 전류를 방출했다.
정도현은 간만에 최상급 도핑용 단약을 삼켰다. 그걸로도 부족하다.
남궁제의 전격을 버텨 낼 특제 장비들을 착용했다.
“…음?”
그가 레전드리 장비들을 껴입자 남궁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용인의 날카로운 감각이 알려 줬다.
정도현이 착용한 것들은 뇌기를 거부한다고.
“전기 내성을 올려 주는 장비인가? 날 잡으려고 철저히도 준비했구나.”
파지지직-!
상황이 불리해졌지만 남궁제는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다.
오늘이 그의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결투일 텐데 이 정도 위기는 있어 줘야지.
쉽게 승리하면 그만큼 맥이 빠진다.
“크오오오오!”
남궁제는 괴물 같은 모습에 어울리게 우렁찬 괴성을 내질렀다.
그런 뒤 힘껏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섬광이 번쩍이더니 어느새 정도현 코앞에 칼날이 보였다.
물론 정도현도 그에 맞춰 팔을 움직였다.
카앙, 카가가강-!
서로의 칼날이 부딪히고 검강이 깨져 사방으로 흩날린다.
언뜻 아름답게 보이는 풍경 속에서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찰나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그야말로 살얼음판 위를 내달리는 듯한 공방.
둘의 시선은 오로지 상대를 담는다.
집중력이 극에 달하니 시끄러운 잡음이 사라지고 주변은 더없이 고요해졌다.
서걱, 촤악-!
정도현의 공격이 먼저 상대의 몸에 닿았다.
노란 비늘로 뒤덮인 팔뚝에 길쭉한 사선이 그어지며 틈새로 피가 쏟아진다.
하지만 남궁제는 씩 웃으며 검을 휘둘러 반격했다.
이번엔 벼락의 검강이 정도현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부가 감전되어 시커멓게 탔다.
“용인에겐 무의미하단 걸 알 텐데!”
그 말대로였다. 남궁제의 상처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아물어 버렸다.
피를 좀 쏟긴 했으나 무한에 가까운 용인의 재생력 앞에선 의미가 없었다.
컵으로 바닷물을 퍼낸들 바다가 마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정도현이 다친 건 얘기가 다르다. 그가 아무리 강한들 일개 인간이니까.
싸움이 길어지면 지치고, 상처가 나면 나약해진다. 그게 인간이다.
그렇기에 인간으로서 강함을 쌓는 것엔 결국 한계가 있다.
남궁제가 유적형 던전에서 용인화의 비약을 얻자마자 마신 이유도 그래서였다.
“기분이 어떻지? 패배가 확정된 싸움은 처음일 텐데.”
남궁제가 힘껏 검을 휘두르며 소감을 물었다.
정도현은 대답 대신 칼날을 교묘히 비틀며 공격을 흘렸다.
파직!
미처 흡수하지 못한 뇌기가 그의 몸속으로 침투해 혈도를 긁어 댄다. 그는 통증을 억누르고 반격을 가했다.
“소용없다.”
남궁제는 왼쪽 팔뚝을 방패처럼 내밀었다.
콰직-!
칼날이 반쯤 지나다 뼈에 걸렸다.
용인의 뼈는 검강으로도 쉽게 썰리지 않았다.
남궁제는 상대의 칼날을 붙잡고 뇌기를 쭉 흘려 넣었다.
정도현은 마력을 흡수했지만 전부 받아들이지 못해 내상을 입었다.
입술에서 새빨간 피가 주룩 흘러나왔다.
“크하핫! 버티면 더 괴로워질 뿐이다!”
용인으로 변한 탓일까. 그의 언동이 점차 과격해졌다.
그는 전격을 흘려보냄과 동시에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정도현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퍼억!
“…컥!”
쿠당탕!
정도현이 땅바닥을 마구 구르며 벽까지 쭉 날아갔다.
남궁제는 승부가 났다고 판단하고 건물 밖으로 도망친 제갈성과 팽철연을 뒤쫓으려 했다.
정도현의 숨통을 끊는 건 그 둘을 처치한 다음에 해도 되니까.
“…세긴 세네.”
멈칫.
남궁제의 발걸음이 멈췄다.
인간이라면 분명 치명상을 입었을 터인데. 정도현은 똑바로 일어섰다.
정신력으로 버틴 건가? 아니면 마지막 발악?
“…어떻게?”
화륵!
그 질문에 대답하듯 정도현의 몸이 불꽃을 피워 냈다.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남궁제 몸에 뿔과 날개가 돋았듯. 정도현의 등 뒤에도 황금의 불꽃이 모여들더니 날개의 형상을 갖췄다.
“…언노운이 아니라고 했지 않았나?”
“어, 아니야.”
“그럼 그 모습은 뭐냐!”
영광의 일족만 쓸 수 있는 「태양신공」을 어떻게 쓴단 말인가.
남궁제의 지적에 정도현은 불꽃으로 상처를 추스르며 말했다.
“요 한 달 동안 언노운이랑 틈틈이 특훈했거든.”
“…뭐라고?”
“언노운한테 배웠다고, 「태양신공」.”
남궁제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추방당했다 해도 영광의 일족의 비기인 「태양신공」을 외부인에게 가르쳐 줬다고?
그것도 고작 한 달 만에 저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천재라도 그건 불가능했다.
“웬만하면 쓰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지.”
정도현은 그렇게 중얼대며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열기가 주위 공간을 지배했다.
치이익!
고기 타는 냄새와 함께 남궁제의 몸에서 수증기 같은 연기가 일었다.
전신의 피가 바짝 마르는 듯한 고통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 놈!”
“같은 괴물끼리 즐겨 보자고.”
타앙-!
정도현이 땅을 박차며 불꽃의 날개를 활용해 새처럼 비행했다.
남궁제도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쾅, 콰앙!
섬광으로 변한 두 사람이 허공에서 수십 차례 격돌했다.
“크윽!”
치이익-!
남궁제는 부딪힐 때마다 고통 섞인 비명을 삼켜야만 했다.
재생력을 억제하는 「태양신공」의 불꽃 앞에선 용인도 버틸 방도가 없었다.
그나마 같은 신의 자손인 용의 피가 흐르기에 조금씩이나마 재생한 거지.
평범한 재생 스킬이었으면 진즉 잘 구워진 고깃덩이가 됐으리라.
반면에 정도현은 상대의 뇌격을 반절 이상 흡수하며 꾸역꾸역 버텼다.
물론 내상이 조금씩 쌓였지만 그보다 남궁제가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컥!”
남궁제의 한쪽 날개가 찢겨 바닥으로 추락했다.
날개가 재생되기도 전에 정도현의 칼날이 그의 가슴팍에 꽂혔다.
쿠웅!
그대로 땅바닥까지 내리찍었다.
남궁제는 피를 울컥 토하며 정도현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단, 하군…….”
상대를 인정하는 말과 함께 그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그라들었다.
[용혈을 이어받은 자를 처치했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80씩 영구히 상승합니다.]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