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정도현은 한 달 전쯤 교단 본부를 장악하고 120레벨에 도달했다.
그 뒤로 새로운 장비를 합성해 강화하거나, 신호영과 함께 「태양신공」의 힘을 다루는 걸 연습했다.
그 외에도 강해질 방법을 모색하던 중 상점창에서 꽤 괜찮은 스킬북을 찾아 구매했다.
공교롭게도 그게 하북팽가의 비기 중 하나인 「금강불괴」였다.
“「금강불괴」를 어떻게 다루냐고?”
정도현은 시커멓게 물든 복부를 주먹으로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스킬북을 샀거든.”
“…스킬북이라고?”
스킬북을 썼다면 「금강불괴」를 완벽히 다루는 것도 설명된다.
하지만 말이 된다는 거지 순순히 납득하긴 어려웠다.
“스킬북은 유적형 던전에서만 발견된다! 그것도 아주 희박한 확률로!”
유적형 던전은 난이도가 높아 위험하지만 그만큼 주는 보상들도 엄청났다.
그렇기에 일반 플레이어는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던전이 발견되는 족족 5대 가문과 대형 길드들이 줄곧 독점해 왔다.
“던전에서 구한 거 아닌데?”
“뭐, 뭣이? 그럼 어떻게…….”
“돈 주고 샀어.”
“…샀다고?”
정도현의 대답에 팽철연은 또다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돈으로 구했다. 어찌 보면 가장 정론에 가까운 방법. 하지만 그 역시 납득이 안 가는 건 매한가지.
“…그런 스킬북이 경매에 올라왔다면 우리 가문에서 몰랐을 리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하북팽가의 비기가 담긴 스킬북이다.
누군가가 던전에서 획득해 경매장이나 암시장에 나타났다 친다면 무조건 소문이 파다하게 났을 터.
그럼 그 스킬북을 가장 비싸게 사들일 만한 세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북팽가였다.
다른 자가 가문의 비기를 쓴다면 이쪽의 위신이 팍 떨어지니까.
설령 수천억이 들더라도 어떻게든 낙찰받았으리라.
하지만 그런 거래가 있었단 소문조차 난 적이 없다.
“F구역 출신이 감당할 금액이 아니다. 대답해라. 그걸 어디서 구했느냐!”
“네가 믿든 안 믿든 난 정당하게 돈 주고 샀어. 그리고…….”
정도현은 「금강불괴」를 극성으로 펼쳤다. 그러자 얼굴부터 시작해 전신의 피부가 석탄처럼 검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팽철연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금강불괴」를 대성한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그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 명이 됐다.
만약 정도현이 하북팽가의 무인이었다면 그도 기꺼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럼 다음 세대의 패권은 남궁세가가 아닌 하북팽가가 꽉 거머쥘 테니까.
하지만 정도현은 외부인.
거기다 가문을 집어삼킬 목적으로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으니 교섭도 할 수 없다.
“…네놈은 죽인다. 반드시 죽여 버린다!”
팽철연은 한계를 넘어서서 힘을 쥐어짰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 선천진기까지 불태우면서.
화르륵-!
그의 두 주먹에서 핏빛의 불꽃이 맺혔다.
하북팽가의 비기 「금강불괴」와 「염화신공」을 동시에 펼쳤다.
그렇게 그는 방어력과 파괴력 둘 다 겸비한 상태.
원래는 둘 중 하나만 써야 한다.
몸에 부하가 심하게 걸리니까.
하지만 정도현을 이기려면 이 수밖에 없었다.
“후우…….”
팽철연은 주먹에 불꽃을 휘감고 꽉 말아쥔 뒤 달려들었다.
정도현도 무기를 집어넣고 주먹으로 응수했다.
「금강불괴」의 제약으로 무기를 못 쓰게 된 건 그도 똑같았으니까.
쾅-!
생명력을 불살라 만들어 낸 불꽃이라서일까. 열기가 전보다 한층 진했다.
「한서불침」이 있는데도 피부가 다 화끈거릴 정도.
하지만 정도현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참으며 팽철연한테 연타를 날린다.
쾅, 콰앙, 쾅!
서로의 주먹이 부딪힐 때마다 폭음이 울렸다.
둘 다 「금강불괴」를 쓴 상태라 신체의 강도와 완력은 호각.
하지만 팽철연은 화염의 마력을 갑옷처럼 신체에 둘렀다. 파괴력은 그가 앞섰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이길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한 팽철연을 비웃듯 정도현이 불꽃의 마력을 흡수했다.
주먹이나 발차기가 맞닿을 때마다 조금씩 화염을 갈취한다.
흑마법사나 할 법한 치졸한 싸움 방식에 팽철연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이노오옴!”
팽철연은 승부를 서둘렀다.
이 이상 선천진기를 끌어다 쓰면 자신은 다 타 버린 연탄처럼 힘없이 바스러질 테니까.
콰아앙!
서로의 주먹과 발차기가 쉴 새 없이 얽히고 충돌하며 마력이 폭발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팽철연의 불꽃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에 반해 정도현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더 세차게 타올랐다.
“허억, 헉…….”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팽철연이 숨을 헐떡였다.
생명력을 급격히 소모한 탓에 피눈물이 쏟아지고 각혈도 나왔다.
팔과 무릎이 후들거렸다. 몸뚱이가 말을 안 듣는 지경까지 와 버렸다.
“후우…….”
정도현도 싸움 끝에 녹초가 되긴 했으나 마무리를 지을 여력쯤은 남았다.
퍼억!
팽철연의 가슴팍에 발차기가 꽂히자 허리가 수직으로 꺾이며 무릎이 풀렸다.
결판이 났다.
덥석-!
팽철연의 몸은 「금강불괴」로 단단해졌기에 아예 목을 졸랐다.
아무리 튼튼해도 숨을 못 쉬면 죽는 건 똑같을 테니까.
팽철연은 어떻게든 속박을 풀어 보려 버둥 댔으나 결국 움직임이 멎으며 축 늘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 이게 뭐야…….”
충격적인 결과에 팽윤도는 망연자실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다 끝났다. 그는 정도현의 수족으로서 평생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기나긴 터널 속에 들어온 것처럼 눈앞이 컴컴했다.
“대체 뭐야……. 정체가 뭐냐고…….”
팽윤도는 미친 사람처럼 제 얼굴을 부여잡으며 중얼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도현은 느긋하게 회복 포션을 마시곤 부활 아이템을 꺼내 사용했다.
그러자 두들겨 맞고 너덜너덜해진 팽철연의 몸이 저절로 고쳐졌다.
잠시 뒤, 팽철연이 힘겹게 눈을 떴다.
대자로 누워 있던 그는 정도현을 올려다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졌군.”
“그래, 앞으로 날 주인으로 모셔라.”
“거절한다.”
팽철연은 목숨을 구걸했던 팽윤도와 달리 단칼에 거절했다.
어차피 그는 살 만큼 살았고, 몸의 상처는 고쳐졌으나 대부분의 선천진기를 끌어다 쓰는 바람에 얼마 살지 못한다.
누군가의 개가 되어 추하게 목숨을 연명할 바엔 차라리 무인으로서 떳떳하게 죽겠다.
“음. 그래도 괜찮겠어?”
“뭐가 말이냐.”
“한 달 전에 북해빙궁 망한 거. 너도 알고는 있지?”
“……?”
갑자기 멸문당한 북해빙궁 얘기는 왜 꺼낸단 말인가.
팽철연은 히죽 웃는 정도현을 불안하게 쳐다봤다.
“그거 내가 한 거야.”
“…뭐라고?”
“북해빙궁이 내 소중한 사람을 건드렸거든. 빙궁주는 대악마랑 계약을 맺고 괴물이 됐었고. 어쩔 수 없이 다 처리했지.”
설유천과 그를 따르던 기사단 그리고 장로들까지. 모조리 정도현 손에 죽었다.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팽철연은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혼자서 5대 가문 하나를 쓸어버렸다니. 믿기지 않았다.
“네놈……. 설마?”
“하북팽가도 똑같이 만들어 줄까?”
가문을 멸망시켜 버리겠단 협박에 팽철연은 눈을 부릅떴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보니까 가문에 아주 지극정성이던데.”
“…크윽!”
팽철연은 분한 표정으로 정도현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 상황이 바뀌진 않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인질극에 굴복했다.
“…알겠다. 네 지시를 따를 테니 가문만은 건들지 말아 다오.”
“그래. 그렇다고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진 마. 네 부하도 나한테 똑같은 짓거릴 했거든.”
정도현의 폭로에 팽윤도는 뜨끔했는지 본능적으로 어깰 움츠렸다.
따지고 보면 팽윤도가 정도현을 찾아와서 한 짓거리랑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 말에 팽철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 내 불찰이다.”
애초에 팽윤도를 정도현한테 보내선 안 됐다. 보낼 거면 좀 더 반듯한 녀석으로 보냈어야 했다.
뒤숭숭한 시기라 가문의 방비를 견고히 하고자, 정예 기사 중에서 가장 약한 이를 뽑아 내려보낸 건데, 그게 화근이었다.
정도현이 북해빙궁을 무너뜨린 주범인 줄 몰랐으니까.
그가 후회의 눈물을 뚝뚝 흘리자 정도현은 보기 안쓰러워서 위로해 줬다.
“너무 자책하진 마. 저 녀석이 나한테 시비 안 걸었어도 어차피 이렇게 되는 건 똑같았을 거야. 그게 좀 앞당겨진 것뿐이지.”
“…….”
전혀 위로가 안 됐다. 팽철연은 모든 걸 내려놓은 목소리로 궁금한 걸 질문했다.
“그래서 자네 목적은 뭔가?”
“음. 일단 남은 두 가문을 장악하고, B구역을 평정할 거야. 그다음은 A구역이고.”
“완전히 미쳤군.”
정도현의 목표에 팽철연은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B구역 다음엔 A구역을 정복하겠다고?
F구역 출신이 여기까지 올라와 가주인 자신을 죽인 것도 경이로운데, A구역까지 넘본다니.
“그곳에 뭐가 있는지나 알고 말하는 건가?”
“당연히 알지. 신의 자손들. 그리고 그놈들한테 잡아먹힐 가축으로 사육되는 인간들이 있잖아.”
교단 본부의 최고 간부들과 5대 가문의 가주만이 아는 A구역의 실태까지 속속들이 알다니.
팽철연은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이 남자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아쉽군. 자네가 어떤 짓거릴 벌일지 지켜보지 못한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대도 알아챘을 텐데? 내 선천진기가 거의 동났다는 걸. 이대로면 수십 분 내로 난 죽겠지.”
가문의 안위를 위해 굴복했으나 굴욕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자신은 곧 죽을 테니까.
정도현이 그와 한 약속을 어기고 가문을 건들지 모르나, 그땐 이미 자신은 죽었을 테니 어쩔 수 없다.
“아, 그 얘기였어? 그건 엘릭서 마시면 낫잖아.”
“…엘릭서?”
그렇다. 만병통치약인 엘릭서를 마시면 방금 전투로 소모한 선천진기가 회복되겠지.
하지만 엘릭서는 가주인 그조차 구하기 힘든 아이템.
특히나 엘릭서의 주재료인 황금 포도의 수확 시기까지 한참 남은 지금은 더더욱.
교단 본부엔 예비용으로 엘릭서 한두 개쯤 쟁여 뒀을지 모르나, 그걸 수십 분 내로 받아 오는 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그 귀한 엘릭서를 내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엘릭서는 단순히 돈으로 환산하지 못할 가치가 있으니까. 그가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툭.
정도현이 인벤토리에서 웬 포션병을 꺼내 던져 뒀다.
“마셔.”
“이, 이건……!?”
정도현이 건넨 건 당연히 엘릭서였다.
그러나 그건 정도현의 기준에서나 당연한 일이고 팽철연은 전혀 아니었다.
“어, 어떻게 엘릭서를……?”
엘릭서는 돈이 있어도 암시장에선 구하기가 어려웠다. 관리국과 교단이 철저히 감시하고 있으니까.
“빨리 마시기나 해.”
정도현의 재촉에 팽철연은 어쩔 수 없이 엘릭서를 마셨다. 그러자 죽어 가던 몸에 활력이 돋았다.
정도현과 싸우기 직전의 멀쩡했던 몸 상태로 되돌아왔다. 팽철연은 몸을 일으켰다.
‘정도현과 다시 싸울 순 없다.’
정도현을 적대하면 바로 사망한다는 시스템 경고창이 떴다.
그렇다고 가문의 기사단이 한꺼번에 덤벼들어 봤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터.
완전한 「금강불괴」 앞에선 기사들의 검기나 검강도 무력하니까.
그러니 하북팽가는 이대로 끝이었다.
정도현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다.
“허무하군.”
평생을 바쳐 키워 온 집안을 홀라당 뺏겼으니. 가슴이 허했다.
정도현은 기운 없는 팽철연의 등을 툭 치면서 말했다.
“이제 남은 가문들도 칠 건데. 어르신이 좀 도와줘야겠어.”
“…내가?”
하긴. 남궁제는 가주 중에서도 최강이니까. 정도현 혼자선 쓰러트리기 힘들 거다.
그와 정도현 둘이서 힘을 합친다면 좀 더 수월히 이기겠지.
“알았다. 기사단에게 출정 준비를 시키겠네.”
“아니, 기사단은 움직일 필요 없어.”
“뭐?”
“어르신은 그냥 남은 가주 두 명만 으슥한 곳에 불러내 주면 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지?”
“쉽게 말해, 가주 둘은 내 먹잇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