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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10화 (210/240)

210화

“……!”

팽윤도가 흉흉한 기세를 품은 채 다가오자 백승아는 흠칫하며 그쪽으로 고갤 돌렸다.

그녀의 낯빛이 삽시간에 어두워지자, 함께 걷던 송정민은 고갤 갸웃했다.

그러다 그도 팽윤도의 존재를 뒤늦게 눈치챘다.

“…네년!”

지척까지 다가온 팽윤도. 다짜고짜 욕설을 뱉으며 백승아를 노려본다.

백승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모처럼 기분 좋았는데, 저 새끼 때문에 다 잡쳤네.’

그녀는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송정민한테 뒤로 물러서 있으라 말한 뒤 팽윤도를 마주 봤다.

“왜 욕을 하고 그러시죠? 전 그쪽한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하, 아무 짓도 안 해? 날 무시한 것도 모자라… 이딴 시시한 남자랑 시시덕거리다니!”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녀는 그의 자존심을 제대로 긁었다. 그러니 팽윤도는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

“살고 싶으면 당장 무릎 꿇고 머릴 조아려라, 더러운 계집아.”

“…참나. 대낮에, 시민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날 죽이시겠다? 당신 미쳤어요?”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계집아. 내가 못 할 것 같나?”

스릉.

팽윤도가 칼집에서 도(刀)를 반쯤 뽑고서 으르렁댔다. 눈빛에서 살기가 풀풀 날린다.

암흑가에 오래 몸담았었던 백승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진짜로 저지를 셈이라는 걸.

“당신, 그냥 쓰레긴 줄 알았는데 미친 쓰레기였구나.”

“닥쳐라!”

채앵-!

칼집에서 도가 쏜살같이 뽑히며 바람을 갈랐다.

정예 기사의 마력이 담긴 칼날이 그녀의 목을 노렸다. 단숨에 벨 생각이었다. 하지만.

카앙-!

그녀의 피부에 부딪히자 칼날이 불똥을 토해 내며 반대로 튕겼다.

“……!”

물론 전력을 다한 일격은 아니었다.

위력을 따진다면 검강이 아닌 검기 수준이니까.

하지만 일개 100레벨대 플레이어가 반응하고 막아 낼 공격은 아니었다.

투두둑.

그녀의 목에서 회색 가루가 떨어졌다.

“…돌?”

그건 돌가루였다. 백승아의 목은 석화 주문으로 경화된 것이다.

피부만 그런 게 아니다. 칼날을 감싼 마력도 돌조각으로 굳어 깨졌다.

처음 보는 주문에 팽윤도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허, 뭘 믿고 그리 까부나 했더니,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개인 특성이냐?”

석화 주문은 그녀의 개인 특성이 아니다.

그래도 그녀만 쓸 줄 아는 비전 주문이니 크게 다를 바 없긴 했다.

팽윤도는 입술을 싹 핥으며 무기를 고쳐 쥐었다. 그러자 칼날에 담긴 마력이 한층 두껍고 길어졌다.

“그래 봤자 F구역 쓰레기지.”

타앗-!

그가 가문의 보법을 펼치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백승아도 땅을 박차고 대응했다.

칼날과 주먹이 여러 차례 부딪히며 이리저리서 충격파가 터진다.

백승아는 주먹을 내지르면서 틈틈이 수인을 맺었다.

죽순처럼 땅속에서 솟아난 바윗덩어리들이 사방에서 팽윤도를 노리고 날아든다.

“같잖다!”

팽윤도의 팔이 잔상을 남기며 빠르게 휘몰아쳤다.

촤좌자작-!

바위들은 종잇장처럼 수십 갈래로 쪼개지며 흩날렸다.

하북팽가가 추구하는 방향은 패도(覇道).

남다른 괴력을 이용해 호쾌하고 우직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싸운다.

팽윤도는 가문의 가르침대로 싸웠다.

상대가 괴이한 주문을 다룬다 해서 겁먹고 물러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냥 힘으로 깨부수면 그만이니까.

잘게 썰린 바윗덩이들 사이로 그가 달려든다.

그러자 백승아가 그에게서 도망치듯 거릴 벌렸다.

“어딜!”

팽윤도는 집요하게 그녀를 뒤쫓았다.

이미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도망치는 그녀를 실컷 비웃었다.

“개인 특성을 믿고 까불더니, 이게 다냐!”

척.

백승아는 대답 대신 땅바닥에 손을 짚었다.

쿠구구구!

그러자 커다란 돌벽들이 겹겹이 솟아나 두 사람을 빙 에워쌌다.

마치 거대한 콜로세움 경기장이 생겨난 느낌이었다.

그녀의 행동에 팽윤도는 멈칫했다.

‘뭐지?’

퇴로를 스스로 차단하다니. 제 목을 조르는 행동이랑 다를 게 없다.

자포자기라도 했나 싶었지만 투기 넘치는 눈빛으로 봐선 그건 아닌 듯했다.

‘저 계집, 뭔가 노리고 있다.’

그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

무인으로서 잘 벼려진 육감이, 그의 생존 본능이 위험하다고 속삭였다.

‘저딴 계집한테 내가 위기를 느꼈다고?’

코끼리가 개미를 상대로 주춤한 상황.

팽윤도는 분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쩔 수 없지.’

개인 특성이 있는 듯하지만, 레벨은 낮아서 가주님의 성에 차지 않을 터.

생포는 포기한다. 전력을 다해 저 여자를 죽인다.

팽윤도는 아껴 뒀던 마력을 전부 해방했다.

꽈득, 꾸드득-!

그의 근육들이 힘차게 부풀고 약동했다.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하북팽가의 비전 무공이었다.

그의 변화를 잠자코 지켜보던 백승아가 입을 열었다.

“야, 아까 개인 특성 뭐냐고 물어봤지?”

“후… 인제 와서 살려 달라 빌어도 늦었다. 네년의 골통을 깨부숴 주마.”

“아니. 그게 아니라 이제 보여 줄게.”

“……?”

“내 개인 특성이 뭔지 보여 준다고.”

“……!”

백승아의 말을 뒤늦게 이해한 팽윤도.

그럼 여태 썼던 석화 주문은 개인 특성이 아니었단 소리.

설마 날 상대로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

말도 안 돼. 그의 안색이 굳음과 동시에.

콰아아아-!

그녀의 몸에서 마력이 분수처럼 확 터져 나왔다.

“뭐, 뭐야……?!”

엄청난 마력에 피부가 따끔거린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전의를 상실시킬 정도였다.

“「과충전」. 이게 내 개인 특성이야.”

“네, 네년……. 저, 정체가 뭐냐!”

“이 꽉 깨물어.”

꽈악-!

백승아가 주먹을 말아쥐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파르르 진동했다.

쾅!

그녀는 발을 가볍게 박찼다. 그러자 그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팽윤도의 눈앞으로 시커먼 주먹이 뻗어 왔다.

“…컥!”

도를 들어 올려 가까스로 막았지만, 받아 낸 것만으로도 숨이 잘 안 쉬어졌다.

폐가 납작하게 짓눌려서 찌부러진 느낌.

게다가 칼자루를 쥔 손가락은 다 찢겨 나간 것처럼 아팠다.

“이, 망할 년이……!”

퍼억-!

그가 뭐라 욕을 뱉자마자 땅바닥에서 뾰족한 돌가시가 튀어나와 옆구리를 푹 찔렀다.

호신강기를 두른 덕에 몸통이 뚫리진 않았으나 그 충격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피를 한 움큼 토한 그가 도를 휘둘러 옆구리에 꽂힌 돌가시를 부순 뒤 자세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백승아는 그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땅에서 바위가 우수수 솟아나더니 자석에 끌려가는 쇳가루처럼 그녀의 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으며 어떤 형태를 잡았다.

마치 갑주를 걸친 기사와도 같은 모습에 팽윤도는 이를 갈았다.

그녀는 주먹을 말아 쥐며 말했다.

“넌 좀 맞자.”

백승아의 주먹과 발이 수십 개로 늘어난 것처럼 잔상을 남기며 그를 덮쳤다.

팽윤도는 필사적으로 막아 내고 또 막아 냈지만.

공격을 받아 낼 때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져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크아악!”

악착같이 버티던 팽윤도는 결국 무릎이 꺾여 무너졌다.

그가 땅바닥을 마구 뒹굴었다.

비척대며 일어서면 힘껏 걷어차 다시 넘어뜨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쳐 잘난 콧대를 부러뜨렸다.

“커헉, 컥…….”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팽윤도.

그는 처음 느껴 보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벌벌 떨었다.

코뼈와 치아도 몇 개나 부러져 치열 사이사이에 구멍이 송송 뚫렸다.

그녀가 끝장을 내려고 다가오자 팽윤도는 다급히 손을 들었다.

“자, 잠깐……. 날 죽이면 가주님께서 가만있지 않을 거다!”

멈칫.

백승아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거기서 팽윤도는 살아남을 수 있단 희망을 엿보았다.

“그, 그래. 날 죽이면 네년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죽을 거다!”

“쯧. 치졸하긴.”

마음 같아선 확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물론 없었던 일로 하기에도 너무 요란하게 일을 터트렸다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그녀가 고민할 때.

쩌적, 쾅!

피해가 번지는 걸 저지하고자 둘러놨던 돌벽이 외부의 충격과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누나, 괜찮아?”

벽을 부수고 난입한 건 정도현이었다.

송정민에게 연락을 받곤 곧장 집으로 달려온 것이다.

백승아는 면목 없단 표정으로 말했다.

“못 참아서 미안해, 동생. 근데 이 자식이 먼저 칼을 뽑아서 휘둘렀다고.”

“아냐, 괜찮아. 어차피 5대 가문 쪽도 슬슬 정리하려 했었어.”

“…어? 진짜?”

5대 가문 중 건재한 세력은 세 군데.

그들도 확 꺾어 둬야 한다.

5대 가문과 싸우겠단 말에 백승아는 팽윤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그냥 죽여도 되겠네?”

“일단 돌로 만들어 버려.”

“응.”

“자, 잠깐… 컥!”

백승아는 팽윤도의 모가지를 꽉 붙잡았다. 그러자 그의 피부가 서서히 돌로 변했다.

“……!”

그는 살려 달라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목이 굳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는 공포에 질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입만 뻐끔댔다.

이내 팽윤도는 통째로 석상이 되었다.

“여기 정리하고 이 녀석 석화는 나중에 풀어 줘.”

정도현은 석상을 번쩍 들어 올리곤 그리 말했다.

* * *

“그를 설득했다고?”

[예, 가주님. 며칠씩이나 걸려 정말 송구합니다.]

“아니, 결과가 좋으니 됐다. 그래서 그 남자의 개인 특성은 뭐지?”

[아, 그게 실은…….]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하북팽가 가주, 팽철연은 며칠 전 C구역으로 내려보낸 정예 기사 팽윤도한테서 보고를 받았다.

[능력은 가주님께만 알려 드리겠다고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나한테만 알려 준다고?”

정도현의 조건에 팽철연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비장의 패를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 신중한 성격인가.

“하긴. 자력으로 거기까지 올라왔으면 제 앞가림은 할 줄 아는 놈이겠지.”

F구역 출신에 상당히 젊다고 들어서 경박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무래도 기우였던 모양이다.

그는 정도현이 마음에 들었다.

잘만 키우면 하북팽가를 떠받들 대들보가 되리라.

‘인재는 한 명이라도 더 긁어모아야 한다.’

5대 가문의 균형은 크게 무너졌다.

멀쩡한 곳은 세 군데뿐.

그마저도 제갈세가와 남궁세가는 정략혼으로 맺어진 동맹 관계.

즉, 하북팽가는 낙오자 신세가 되었다.

힘을 길러야 한다. 지금은 못 이기지만 다음 세대엔 남궁세가를 넘을 수 있게.

‘다행히 남궁제는 자식 농사에 실패했다.’

남궁제는 불세출의 천재였다.

하지만 그의 자식들은 그렇지 못했다.

오죽 아쉬웠으면 정실에 첩까지 넷이나 들였겠는가.

남궁제는 복권 뽑듯이 자식들을 열 명 넘게 낳았으나 하나같이 꽝이었다.

둘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일반인.

그마저도 100레벨의 벽을 넘지 못한 머저리들이었다.

‘아무리 좋은 영약과 「천뢰제왕신공」을 익혀도 그걸 소화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남궁제의 뒤를 이을 재목이 태어나지 않아서.

팽철연과 남궁제, 둘은 곧 저무는 해였다.

다음 세대에게 애지중지 키운 가문을 맡기고 뒷방으로 물러나야만 한다.

[가주님, 그럼 정도현을 데리고 올라가겠습니다.]

“그래. 자네도 수고했네.”

[저, 가주님.]

“뭔가?”

통화를 끊으려던 팽철연은 떨리는 팽윤도의 목소리에 잠시 멈췄다.

[정말, 정말로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뚝.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끊어졌다.

먼저 끊어 버리다니.

팽윤도의 성격이 방만한 건 그도 잘 안다. 다만 내치기엔 실력이 아까워서 데리고 있을 뿐.

하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그에게 무례를 저지른 적은 없었는데.

‘뭐지?’

위화감이 들었다. 팽윤도는 방금 왜 사과한 걸까.

정도현을 영입하는 데 며칠이나 걸려서? 아니. 그건 맨 처음에 사과했었다.

그리고 팽철연은 처음부터 일주일의 말미를 줬었다.

‘다른 문제다.’

머릿속이 난잡하게 변했다.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팽철연이 연초를 꺼내 입에다 물었을 때.

스스스-!

방 안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거기서 세 남자가 나타났다.

한 명은 그의 수하, 팽윤도.

다른 한 명은 정도현.

그리고 머리 위에 고양이 귀가 달린 묘인족까지.

갑작스러운 가정 방문에 팽철연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방금 불을 붙인 연초가 방바닥에 툭 떨어졌다.

정도현은 싱긋 웃으며 찾아온 목적을 간결히 밝혔다.

“애 교육을 똑바로 했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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