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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62화 (162/240)

162화

“저 여잔 누구지?”

“…토끼 가면?”

“저런 콘셉은 처음 보는데.”

검은색 토끼 가면을 쓴 여자의 등장에 관중은 혼란에 빠졌다.

왕을 결정짓는 중요한 대결을 앞두고 생뚱맞게 끼어들다니.

그래도 일반인 관객들의 반응은 양반이었다.

플레이어인 관객과 투견들은 그녀의 정보를 보곤 입을 쩍 벌렸다.

“…124레벨?”

“뭐야, 저거 대체 누구야?”

“대형 길드장 아냐?”

“그런 것치곤 젊어 보이는데…….”

구경꾼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 반응에 정도현도 눈치챘다.

저 여자는 투기장 관계자가 아니란 걸.

‘투랑보다 강해 보이는데. 정체가 뭐지?’

정도현은 경기장 건너편에 서 있는 투랑을 쳐다봤다.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건 투랑도 매한가지인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저기…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심판이 달달 떨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겁에 질릴 만했다. 124레벨이면 대형 길드를 이끄는 길드장과 동급이었으니까.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면 단번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심판의 질문에 가면녀는 까칠하게 대꾸했다.

“멋대로 말 걸지 마. 난 저 녀석한테 흥미 있다고.”

심판은 마른침을 삼키며 투랑을 쳐다봤다. 투랑은 물러나란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 뒤 본인이 경기장에 직접 올라가 말했다.

“당신 누굽니까?”

“아, 네가 여기 주인이야? 미안.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누구냐고 물었다.”

투랑의 말투가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는 순식간에 부분 야수화도 끝마쳤다. 언제든지 달려들 기세였다.

그의 적의에 여자는 머릴 긁적였다.

“음, 임무 중이라 신원은 밝힐 수 없는데.”

“정체를 숨길 거면 이렇게 대놓고 나서질 말았어야지.”

“아, 그건 그렇네. 근데 내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서.”

그녀가 그리 말하며 몸을 빙글 돌려 정도현을 바라봤다.

투랑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의 눈에 투랑은 전혀 흥미가 생기질 않았으니까. 보고 있으면 오히려 측은지심이 들 정도였다.

‘몸을 엄청나게 혹사했어. 곧 죽겠네.’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데도 투랑은 선천진기가 거의 메말랐다.

저 정도면 살아 있는 게 기적인 수준이다. 그나마 수인족으로 신체를 개조해서 버티는 모양.

‘그래 봤자 5년 안에 죽겠지.’

그것도 무리하지 않는단 전제 조건하에.

정도현과 싸워 이기더라도 투랑은 얼마 못 가 죽으리라.

“누구냐고 물었다!”

가면녀에게 완전히 무시당한 투랑.

그가 거칠게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흉악한 살기.

여자는 성가시단 얼굴로 품에서 투척용 단검을 꺼냈다. 그게 총알처럼 쏘아졌다.

투랑은 미간으로 날아든 암기를 주먹으로 쳐 냈다.

“…윽!”

가볍게 던진 것치곤 상당히 묵직했다. 막아 냈지만 손목이 시큰거린다.

투랑이 방어하느라 멈칫했던 그 순간.

여자가 보법을 펼치며 거릴 좁혔다.

“……!”

그녀가 빙그르르 돌며 발차기를 내질렀다. 팔뚝을 교차해 막았지만 투랑의 몸은 중력을 거스른 채 떠올랐다.

쾅!

그가 단숨에 경기장 끝으로 날아가 결계에 처박혔다.

“투랑 님!”

강유라가 부리나케 그에게 달려갔다.

보호막에 처박혀 넘어진 투랑.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곤 다시 일어섰다.

그는 계속 싸울 생각인지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강유라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렸다.

“투랑 님, 저 여자랑 싸우시면 안 됩니다!”

“비켜.”

탁-!

투랑은 그녀의 손길을 뿌리친 뒤 달려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야수화를 쓴 상태에선 전투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니까.

과도한 신체 개조의 부작용이었다.

그는 수인의 피가 남들보다 짙어서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된 대신 이성을 잃기 쉬웠다.

“다 죽어 가는 송장 주제에 무리하긴.”

가면녀는 그렇게 중얼대며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전신에서 보랏빛 마력이 연기처럼 넘실댔다.

아까 결계를 뚫었던 독기였다.

투랑은 그걸 보고도 브레이크가 망가진 차량처럼 멈추지 않았다.

“우오오오오!”

쾅! 콰과과광!

둘의 주먹이 격돌하고 또 격돌했다.

경기장을 중심으로 돌풍이 휘몰아쳤다.

충돌의 여파만으로 관중석의 결계가 흔들린다. 심지어 작은 균열까지 생겼다.

“무너진다!”

“도, 도망쳐!”

관객들이 기겁하며 하나둘 도망쳤다.

가면녀는 투랑의 주먹을 가뿐히 막아 내면서 말했다.

“시한부면서 기운이 넘치네?”

“……!”

투랑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 여자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무리한 신체 개조로 수명이 대폭 줄어든 건 그와 남부 마탑주만이 알고 있는 사실.

그를 스카우트하러 찾아왔던 가문의 기사한테도 사정을 말하고 거절했지만, 그자는 남자였다.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에 가면녀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기의 흐름이 엉망이잖아. 몸이 망가지고 오래 방치했나 본데, 너 앞으로 몇 년밖에 못 살걸?”

“…크르릉! 네 앞날이나 걱정해라!”

“성격 화끈한 건 마음에 드네.”

콰앙-!

주먹과 발길질이 충돌했다.

가면녀는 몇 미터 밀려나고 말았지만, 투랑은 수십 미터나 구르고 굴러 겨우 멈췄다.

“큭…….”

투랑은 일어섰지만, 몸이 휘청댔다. 순간 다리가 풀렸다.

시야도 흐려졌다.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눈앞의 사물이 몇 개로 보였다.

머리가 어지럽다. 속도 좀 메스껍고.

“…쿨럭, 쿨럭!”

그가 기침하자 땅바닥에 핏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몸이 이상하다.

저 여자가 강한 건 맞지만 온 힘을 다하진 않았었다. 분하지만 그의 수준에 맞춰 주면서 싸웠다.

그러니 내상을 입었을 린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독?”

투랑이 어지러운 머릴 흔들며 힘겹게 일어섰다.

그러자 가면녀는 기특하단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투랑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수인의 피가 외친다. 저 망할 여자한테 한 방 먹여 주라고.

‘지금 써야 하나?’

완전 야수화. 그걸 쓰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생명력, 선천진기가 바닥날 거다.

인생 마지막 결투를 위해 아껴 뒀던 힘이다. 하지만 그는 확신이 안 섰다.

완전 야수화한다고 저 여자를 이길 수 있을까?

‘죽기 전의 마지막 결투만큼은…….’

승리로 장식하고 싶었다.

어린애 같은 고집이지만 최후의 순간만큼은 멋있게 끝맺고 싶었다.

그가 완전 야수화를 쓸지 말지 망설일 때.

“투랑 님! 제발 그만하세요!”

강유라가 끼어들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투랑은 숨을 헐떡대며 명령했다.

“헉, 헉… 강유라, 비켜.”

“싫습니다!”

강유라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투랑의 상태가 심각하단 걸.

독의 영향으로 그의 얼굴과 몸 곳곳에 물집이 돋았다.

저 여자와 계속 싸우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되리라.

“…비켜라! 죽여 버리기 전에!”

“전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투랑 님은 죽어선 안 됩니다!”

강유라는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야수화 상태라 이성이 반쯤 날아간 투랑도 그걸 보곤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쿨럭!”

강유라가 돌연 시커먼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그녀도 중독됐다.

투랑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부축했다.

“이, 이게 무슨…….”

강유라는 저 여자한테 맞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투랑이 가면녀를 쏘아봤다. 그러자 그녀가 어깰 으쓱했다.

“아까 널 말리다 피가 좀 묻었나 본데.”

“…피가 묻어?”

정말이었다. 강유라의 손바닥에 핏물이 덕지덕지 발려 있었다. 투랑을 말릴 때 닿은 모양.

피부에 닿기만 해도 독이 퍼지는 건가.

투랑은 가면녀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해독제를 내놔!”

가면녀는 인벤토리에서 조그만 유리병을 꺼냈다. 그녀가 그걸 흔들며 말했다.

“해독제가 있긴 한데 딱 한 병뿐이거든? 둘 중 한 명만 살 수 있어.”

“…뭐?”

“만들려면 재료도 필요하고 완성하는 데 하루는 족히 걸려.”

가면녀는 그렇게 말하며 해독제를 휙 던져 줬다. 유리병이 데구루루 굴러온다.

그걸 주워 든 투랑은 잠시 말이 없었다.

가면녀는 개구쟁이처럼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자, 누가 살아남을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유라는 투랑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빨리 마시세요, 투랑 님.”

“강유라, 대체 왜…….”

그녀의 선택에 투랑은 적잖이 당황했다. 왜 이렇게까지 해 준단 말인가?

그의 질문에 강유라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투랑 님을 사랑하니까요. 절 용서해 준 뒤부터 쭉 사랑했어요.”

죽기 전 그녀의 고백에 투랑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

“제발… 죽지 마세요.”

강유라가 힘겹게 중얼댔다. 그녀의 몸이 불덩이 같았다.

독기가 퍼지며 고열이 나자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녀의 눈이 힘없이 떨리더니 스르르 감겼다.

투랑은 기절한 강유라의 입속에 해독제를 흘려 넣었다.

그 광경에 가면녀는 입을 가리며 키득댔다.

“어머, 네가 대신 죽게?”

“…보면 몰라? 네 눈은 장식이냐.”

“까칠하긴. 그런데 괜찮겠어? 그 애 진심인 것 같던데.”

투랑은 강유라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겨 정리해 줬다. 그리곤 덤덤하게 답했다.

“나도 진심이다. 알아챈 게 너무 늦었지만.”

“어머, 어머.”

가면녀는 재미난 구경을 해서 만족했는지 깔깔댔다.

투랑은 기절한 강유라를 안아 들고 근처에 있던 부하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수인족 전사들이 부리나케 달려와 그의 앞에 부복했다.

그들도 알아챘다. 투랑이 뭘 원하는지를.

“강유라를 밖으로 데려가라. 관객들도 경기장에서 최대한 멀리 대피시키고.”

“분부대로!”

투랑은 결심했다.

자신은 어차피 얼마 못 가 죽는다.

그러니 저 여자만큼은 길동무로 데려가겠다.

“…무승부. 그것도 나쁘진 않지.”

투랑은 그렇게 중얼대며 아껴 뒀던 힘, 전신 야수화를 발동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야, 잠깐 멈춰 봐.”

“……?”

정도현이 그를 불렀다. 싸움에 열중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정도현이 뚱한 얼굴로 그에게 터벅터벅 다가왔다. 투랑은 머쓱해서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 상황이 이래서 네 도전은 못 받아 준다. 너도 얼른 밖으로 대피…….”

“누구 맘대로?”

정도현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자기만 쏙 빼놓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그렇고.

보름 동안 공들여 깔아 둔 판이 가면녀 때문에 제대로 망가졌다.

정도현은 여자에게 검을 겨누며 통보했다.

“경험치로 갚아라.”

“…뭐? 넌 갑자기 뭔 소리야?”

가면녀는 고갤 갸웃했다.

이 상황에 웬 경험치 타령?

그녀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정도현은 엘릭서를 꺼내 투랑에게 건넸다.

“마셔.”

“…이건?”

“해독제다.”

그 말에 투랑은 물론이고 가면녀도 흠칫했다. 해독제라고?

투랑은 미심쩍었지만, 혹시 모르니 마셨다. 그러자 몸속에 스며든 독기가 서서히 걷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망가진 몸뚱이와 고갈된 선천진기까지 서서히 회복됐다.

놀라운 기적을 두 눈으로 본 가면녀가 경악했다.

“말도 안 돼! 방금 그거… 엘릭서야?”

“에, 엘릭서?”

엘릭서인지 모르고 홀라당 마신 투랑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귀한 엘릭서를 어디서 구한 거지?

또 그걸 왜 자신에게 준단 말인가?

모든 게 수수께끼였다. 투랑은 얼빠진 표정으로 정도현을 바라봤다.

“투랑, 넌 빠져 있어. 저 여잔 내 거다.”

“뭐?”

“불만 있으면 엘릭서값이라고 생각해.”

“아니, 불만은 없는데…….”

투랑이 머릴 긁적였다.

그 말은 즉, 가면녀랑 일대일로 싸우겠단 뜻인데. 정말 괜찮을까?

“너, 너… 그 엘릭서 어디서 났어! 대체 정체가 뭐냐고!”

“궁금하면 덤벼. 날 이기면 말해 주지.”

정도현이 그렇게 답하며 검강을 꺼냈다.

불완전하지만 기사의 상징인 기술을 펼치자 가면녀는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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