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원 상점-143화 (143/240)

143화

‘어떻게 한 거지?’

녀석 주변에 희미한 실드가 보였다.

저걸로 몸을 보호한 듯싶었다.

저게 호신강기란 건가? 녀석의 말대로 실드 주문 같았다.

하지만 놈은 검사. 그 어떤 주문도 쓸 수 없었다.

그러니 저건 마법이 아니다.

손정규는 확인을 위해 다시 석화 주문을 쏘았다.

이번엔 정도현도 가만히 맞아 주지 않았다. 검기를 일으켜 광선을 받아쳤다.

카앙-!

빛줄기가 굴절되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

이리 쉽게 막을 줄은 몰랐는지 손정규의 안면이 뻣뻣하게 굳었다.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감히!”

쿵!

손정규가 발을 굴리자, 지축이 흔들리며 암석들이 솟아났다.

정도현은 발밑에서 뻗어 오는 살의를 쳐냈다. 검기에 닿자 암석이 두부처럼 썰렸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후웅-!

손정규는 큰 원을 그리듯 양팔을 휘저으며 마력을 발산했다.

검기에 잘려 바닥에 널브러진 암석 파편들이 진동하며 허공으로 하나둘 떠올랐다.

손정규가 그것들을 가시처럼 뾰족하게 깎아 내 날을 세웠다.

“가라!”

손정규의 손짓에 암석들이 화살처럼 쏟아진다.

타앙, 탕!

정도현은 보법과 검술을 펼쳐 전부 피하거나 쳐냈다.

“후웁!”

손정규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가 뱉으며 두 손을 힘차게 뻗었다.

쿠구궁!

흔들리는 바닥에서 거대한 바위벽들이 솟아나 정도현을 가뒀다.

착!

손뼉을 치자 벽들이 움직이며 사방을 조여 왔다. 이대로 그를 압사시킬 생각인가 보다.

“후…….”

정도현이 호흡과 마력을 그러모으고 검을 내질렀다.

콰앙-!

침투경과 파쇄격. 두 무공의 묘리가 담긴 찌르기에 돌벽이 관통당했다.

칼날이 밖으로 삐져나왔지만 손정규는 조소를 머금었다.

“흥. 그 정도론 어림없…….”

쩌적, 쩌저적-!

꿰뚫린 곳을 중심으로 균열이 벼락 줄기처럼 쭉 뻗어 나갔다.

장벽이 버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졌다.

저벅저벅.

무너진 돌벽과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

그 속에서 정도현이 걸어 나왔다.

좀 더러워지기만 했을 뿐, 몸에 상처 하나 없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손정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마도서는 안 꺼내?”

“…이 시건방진 놈이!”

정도현의 여유로운 말투에 손정규가 표정을 확 구겼다.

물론 마도서의 힘을 빌리면 석화 주문이 한층 강력해진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저 어린놈한테 고전하는 걸 스스로 인정해 버리는 셈이 된다.

그의 자존심이 선뜻 허락지 않았다.

‘허. 나도 늙긴 늙었나 보군.’

지켜보는 이가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누가 봤으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을 테니까.

물론 정도현은 93레벨치곤 특출나게 강했다. 하지만 그걸 누가 믿어 주겠는가.

그저 늙은이의 추한 변명이라 생각하겠지.

본인이 겪어 보기 전까진 남의 사정이나 고충엔 별 관심 없는 생물이 바로 사람이다.

“좋다, 애송아. 정 그렇게 죽고 싶다면 들어주마.”

“결국 쓸 거면서 튕기긴.”

정도현은 끝까지한 마디를 안 졌다.

손정규가 인벤토리에서 석화의 마도서를 꺼냈다.

시커먼 표지의 책이 중력을 거스르며 손정규의 손바닥 위에 둥둥 떠다녔다.

스스스-!

책에서 시커멓고 불길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 힘을 취한 손정규가 악귀처럼 섬뜩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쿠구구궁-!

그의 손짓에 대지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주변의 지형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손정규는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새로운 땅을 창조하려 했다.

지면이 계단처럼 층층이 나뉘고, 깎아내리는 듯한 절벽이 생겨났다.

“죽어라!”

대지가 정도현을 노렸다.

밟고 있던 땅이 갑자기 푹 꺼지거나 솟구친다.

유적형 던전의 함정을 건드린 것처럼 여기저기서 뾰족한 돌기둥이 튀어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손정규는 암석들을 한데 뭉쳐 큼직한 바위를 만들었다. 그것들이 포탄처럼 날아왔다.

마치 공성전을 방불케 했다.

정도현은 경신술로 사뿐사뿐 뛰어다니며 바위 포탄을 피했다.

그걸 본 손정규가 이를 갈았다.

“쥐새끼 같은 놈!”

“그러다 저택도 날려 먹겠다?”

“흥. 이깟 건물이야 다시 지으면 된다!”

박건수가 방금 말을 들었으면 피눈물을 흘렸을 거다. 땅 파면 돈이 나오는 줄 아느냐면서.

쿠궁, 쿠구궁!

저택 전체가 흔들리며 집안 물건들이 쓰러지거나 어디로 날아갔다.

그가 공들여 만든 조각상들도 충격에 휩쓸려 하나둘 파손됐다.

그러나 자칭 예술가는 거기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로지 정도현을 죽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일단 놈에게서 살아남아야 예술도 계속 할 것 아닌가.

“이제 싸울 맛이 나네.”

손정규가 필사적인 것과 달리 정도현은 목소리에 여유가 넘쳤다.

그가 중얼대며 깃털만큼 가벼워진 몸을 날렸다.

파앙-!

공기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시퍼런 검기의 잔상이 지그재그로 움직여 댔다.

빠르게 쇄도해 오자 손정규는 심장이 철렁했다.

‘빠르다!’

아직도 여력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뭐 저딴 괴물이 다 있어.

손정규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집중했다.

툭, 투욱.

상대가 움직일 때 발생하는 대지의 진동을 읽었다.

그는 마력과 술식을 엮어 주문으로 변환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눈 몇 번 깜빡일 동안에 해냈다. 못 하면 죽으니까.

‘확실히 노련하긴 하네.’

정도현 주변에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갤 들자, 암석과 흙먼지가 덕지덕지 뭉쳐져 만들어진 거대 주먹이 보였다.

‘피하기엔 너무 크다.’

막아야 한다. 그렇게 판단하고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멍청한 놈!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손정규는 간절함을 담아 거대 주먹을 그의 머리 위로 떨궜다.

쾅-!

충격파가 터지며 바람이 불었다. 땅바닥을 거칠게 휩쓴다.

“…뭣!?”

그러나 정도현은 거대 주먹을 받아내고도 꼿꼿이 서 있었다.

짓눌린 건 그가 발 디딘 대지였다.

땅바닥이 쪼개지면서 거미줄 같은 금이 퍼졌다.

거대 주먹의 그림자 속에서 멀쩡한 건 오직 정도현뿐이었다.

끼긱, 카가각!

검기가 불똥을 토해 내며 바위 주먹을 서서히 파고들었다.

“……!”

저걸 맨몸으로 받아 낼 줄이야.

실로 경이로운 맷집이었다.

하지만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콰지직-!

돌주먹이 검기를 버티지 못하고 쩍쩍 갈라졌다.

이윽고 반파되어 바위가 비처럼 떨어져 돌무더기가 생겼다.

“허억, 헉…….”

손정규는 지친 얼굴로 거친 숨결을 토해 냈다. 머릿속이 핑 돈다.

단시간에 마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나이를 먹어 체력이 떨어진 것도 한몫했다.

그가 주춤하자 정도현이 눈을 번뜩였다.

이번엔 이쪽이 때릴 차례였다.

후웅-!

정도현의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저건 또 무슨 헛짓거린가 싶던 찰나.

샤아악-!

칼날에서 반월 모양의 검기가 발사됐다.

듣도 보도 못한 기술에 손정규는 기겁하며 방어 주문을 펼쳤다.

쿠궁, 쿠구궁!

땅바닥에서 사람 크기의 벽들이 일어섰다.

쾅, 쾅, 콰앙!

반월참이 장애물들을 차례대로 격파한 뒤 손정규에게 도착했다.

하지만 벽을 부수느라 반월참의 위력이 줄었고, 손정규는 이미 다음 주문을 완성한 뒤였다.

쩌적!

손정규는 전신에 바윗덩이를 둘렀다.

마치 바위 골렘을 축소해 둔 모양새였다.

“…흐아압!”

콰드득!

손정규가 바위로 감싼 손바닥을 내밀어 반월참을 받아 냈다.

그의 기합과 함께 검기가 산산이 쪼개졌다.

‘백승아의 갑주보다 훨씬 두껍고 투박하네.’

똑같은 주문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이 다르니 색달랐다.

저러면 움직임이 둔하겠지만 방어력은 발군일 터.

실제로 반월참을 받아 내고도 흠집조차 없었다.

“크흐흐! 그깟 검기론 어림없다!”

손정규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뒤뚱뒤뚱 뛰어온다. 그 모습이 꼭 펭귄 같았다.

걸음을 뗄 때마다 땅바닥에 진동이 쿵쿵 울렸다.

‘부딪히면 안 되겠어.’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저건 버티지 못할 터. 그런데도 정도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제자리에서 상대가 오길 기다리며 생각했다.

‘침투경이랑 검기만으론 못 뚫어. 더 강한 힘이 필요해.’

그는 파괴력을 추구하는 무공들의 이치를 머릿속에서 합쳐, 검기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러자 검기가 주인의 의지에 응답하듯 변했다.

스스스-!

칼날을 두세 바퀴 휘감고도 남을 만큼 길쭉했던 검기가 점점 짧아졌다.

마력을 압축한 것이다.

그 변화에 손정규가 소리쳤다.

“마력이 다 떨어졌구나! 뒈져라!!”

손정규는 검술에 문외한이었다.

그렇기에 짧아진 검기를 보곤 단순히 마력 고갈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검을 다루는 플레이어였으면 단박에 알아챘으리라.

정도현의 검기가 한 단계 진화했다는 걸.

[무공의 이치를 통달하여 검강을 펼쳤습니다.]

[아직 검강의 사용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검강의 위력이 감소합니다.]

[검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나 소모량이 크게 상승합니다.]

「검강」을 펼치자 경고음과 함께 페널티가 생겼다.

「검강」의 사용 조건은 100레벨 이상일 것.

정도현은 아직 그 벽을 허물지 못했다.

그러니 원래는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 됐다.

그런데 그는 무공의 이치와 깨달음을 활용해 억지로 펼쳤다.

즉, 이건 반쪽짜리 검강.

진정한 검강에 비하면 한없이 불완전하고 약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검기보단 월등히 강력했다.

“……!?”

헐레벌떡 달려왔던 손정규는 정도현의 지척에 다다르고서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검기가 이전보다 한층 밝게 빛난다.

‘마력이 다한 게 아니었어?’

콰앙-!

그 의문은 묵직한 충격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

검강으로 바위 갑주를 후려치자, 손정규가 피를 울컥 뱉으며 쭉 밀렸다.

“쿨럭…… 커헉!”

후두둑.

흉부와 복부를 감싼 바윗덩어리가 너덜거렸다.

단 일격이었다. 한 방에 갑주가 무너진 것이다.

손정규는 급히 마력을 주입해 갑주를 재생했다. 하지만 정도현의 검이 그보다 더 빠르게 휘몰아쳤다.

그 모습은 마치 칼춤을 추는 것 같았다.

쾅, 콰앙, 콰과과광!

검강은 빠르고 날카로웠으며 더없이 묵직했다.

한 방 한 방이 손정규에겐 치명타나 다름없었다.

무적이라 믿었던 갑옷이 차츰 벗겨진다. 손정규가 할 수 있는 건 애처럼 양팔을 마구잡이로 휘젓는 것뿐이었다.

물론 정도현은 이딴 눈먼 공격에 당해 줄 만큼 어수룩하지 않았다.

“…커헉!?”

콰지직-!

칼날이 깊숙이 파고들며 팔뚝을 찔렀다. 그대로 지나가며 손정규의 오른팔이 찢겼다.

“끄어어어어!”

손정규가 한쪽 무릎을 꿇고 보름달 아래 늑대처럼 구슬피 울부짖었다.

그러는 사이 정도현은 바닥에 떨어진 석화의 마도서를 주워 들었다.

손정규가 하나밖에 안 남은 팔을 애처롭게 내밀며 말했다.

“내, 내놔라…… 그건…… 내 거란 말이다!”

“아니. 원래 주인이 나한테 되찾아 달라고 부탁했거든.”

“뭐, 뭐라고?”

그 말에 손정규의 손짓이 멈췄다.

원래 주인이라니?

“설마 네놈…… 석화의 마녀가 보낸 거냐?”

“뭐야, 걔 알아?”

마도서의 출처를 조사하다 우연히 알게 됐다.

D구역 암흑가에서 제법 유명했던 레드 플레이어라고.

수용소에 있다 들었는데, 저번에 탈옥했던 모양이다.

“어, 얼마냐…….”

“뭘?”

“그 계집이 얼마를 주고 널 고용했지? 내가 그 두 배를…… 아니, 세 배를 주겠다!”

손정규는 죽기 싶어서 절박하게 외쳤다.

저 마도서를 얻은 덕에 그는 인생이 바뀌었다. 진정한 예술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벌써 끝내라니. 그건 너무하지 않은가.

“돈 안 받았는데?”

“…뭐?”

돈을 안 받았다고? 그럴 리가.

그럼 굳이 이럴 이유도 없지 않은가.

93레벨이 108레벨한테 덤빈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어, 어째서 이런 짓을……?”

“들어올 때 말했잖아.”

“…들어올 때?”

손정규는 정도현과 마주쳤을 당시의 기억을 되짚었다.

넌 누구냐는 질문에 정도현은 이렇게 대답했다.

“…경험치 강도?”

“어. 경험치 내놔.”

서걱!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손정규의 목을 쳤다.

떨어진 머리통이 데구루루 굴러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우…….”

정도현은 차올랐던 숨을 고르며 회복 포션을 꺼냈다.

그는 결과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도핑제랑 에픽 등급템만 썼는데도 이거밖에 안 줘?’

90레벨부터 입을 수 있는 유니크 등급 장비템. 며칠 전에 강화 작업이 얼추 끝냈다.

이제 무기와 모든 부위 방어구가 +10강이다.

+15강 에픽급 장비보다 훨씬 성능이 우수했다.

하지만 그는 손정규를 상대로 그 장비들을 꺼내지 않았다.

‘무공을 얻고 레벨보다 강해져서 그런가. 되게 짜게 주네.’

게다가 손정규의 전투 스타일은 백승아와 거의 유사했다. 그녀보다 레벨이 더 높을 뿐.

정도현 기준에선 한번 싸워 봤던 상대나 다름없었다.

그런 요소들이 쌓여서 경험치를 토막 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훔쳐 볼 거야?”

[…어머. 언제부터 눈치채셨나요?]

“저택 무너질 때부터 시선이 느껴졌어.”

정도현이 고갤 돌려 무너진 잔해물 위를 쳐다봤다.

스스스!

아무것도 없었는데 시커먼 알갱이가 모여들더니 이내 까마귀로 변했다.

까마귀가 부리를 달싹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전…….]

“마녀냐?”

[…눈치가 빠르시네요. 네, 여명의 빛의 대표 ‘밤의 마녀’랍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정도현 군.]

정도현이 도중에 말을 끊었지만, 밤의 마녀는 오히려 호호 웃으며 인사했다.

“인형의 마녀 건으로 왔냐?”

[아뇨. 저희들은 지극히 개인주의라서요. 복수할 마음은 없답니다. 물론 그 애가 죽은 건 좀 안타깝지만요.]

“용건만 말하고 빨리 꺼져.”

정도현이 까칠하게 나오자, 밤의 마녀는 그가 원하는 대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희 여명의 빛은 당신과 동맹을 맺고 싶습니다.]

“…동맹?”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