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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41화 (141/240)

141화

석화의 마도사, ‘손정규’.

나이를 먹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는 동부 암흑가의 실세였다.

“그래서 그놈이 지금 어딨는데?”

“저, 저도 거기까진 잘…….”

“아까 네 뒤를 봐준다느니 뭐니 했잖아. 연락도 안 돼?”

“그, 그게…….”

두꺼비를 닮은 던전 브로커, ‘남유호’가 공손히 무릎 꿇고 머릴 조아렸다.

그의 얼굴과 몸 곳곳에 시퍼런 피멍이 들었다.

정도현과 백승아한테 한껏 두들겨 맞은 흔적이었다.

옆에는 그가 고용했던 암흑가 출신 용병들이 피를 쏟은 채 줄줄이 드러누워 있었다.

‘90레벨이 넘는 용병들을 단숨에…….’

남유호는 제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이쪽은 다섯이고 저쪽은 정도현 혼자 나섰다.

그런데 한순간 검광이 번뜩이더니 순식간에 다 쓰러졌다.

용병들 레벨이 정도현보다 더 높았는데 상대도 되지 않았다. 손발이 절로 떨렸다.

“결론은 석화의 마도사가 어딨는지 모르고, 불러내지도 못한단 거지?”

“그, 그렇습니다. 상납금을 내긴 하는데…….”

남유호는 평소 손정규를 자신의 뒷배라 말하고 다녔지만, 실질적인 관계는 달랐다.

암흑가의 일원으로서 상납금을 바치지만, 그리 돈독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가 죽든 말든 손정규는 눈 하나 꿈쩍 안 하리라. 대체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동생, 쓸모없는 것 같은데 그냥 처리할까?”

“자, 잠시만요! 그분이 어딨는지 알 만한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확실해?”

“죽기 싫어서 막 둘러대는 거 아냐?”

“아뇨, 확실합니다! ‘박건수’라고, 녀석이 그분의 실험 재료를 몇 년째 조달하고 있거든요. 그러니 분명 알 겁니다!”

시퍼렇게 질린 남유호가 속사포처럼 정보를 뱉었다. 정도현이 고갤 갸웃했다.

“…박건수? 걘 또 누군데.”

“아, 들어 봤어. 동부의 암시장을 장악한 녀석이라 들었는데.”

“맞습니다. 녀석이 동부 암시장을 꽉 쥐고 있습죠.”

암시장을 다스리는 거물이라. 선뜻 건드리기엔 부담스러운 상대다.

그렇게 생각한 백승아는 어쩌면 좋을지 몰라 정도현을 쳐다봤다.

‘석화의 마도서는 꼭 되찾고 싶었는데.’

마도서가 있으면 그녀의 석화 주문도 훨씬 강력해진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 때문에 정도현을 위험의 구렁텅이로 빠트릴 순 없다.

마도서를 포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녀가 말하려던 찰나.

“박건수는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는데?”

“예? 그, 그야… 암시장에 있겠죠?”

“거긴 아무나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들었는데.”

암시장을 이용해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소문은 들어 봤다.

마약이나 인신매매, 던전에서 포획한 몬스터 등등.

돈이 된다면 불법적인 물품들도 곧잘 취급한다.

즉, 항시 관리국의 단속을 경계해야 했다. 고로 검문도 빡빡할 터.

정도현처럼 암흑가 출신도 아닌 플레이어는 입장이 안 될 거다.

그 말에 남유호가 머릴 긁적이며 말했다.

“그… 제가 알기로는 암시장 VIP 회원한텐 동행권이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동행권?”

“예, VIP의 동행자는 별도의 신원 확인 없이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더군요.”

“과연.”

VIP 등급 회원이 데려왔다면 문제를 일으킬 여지도 없다 판단하는 건가.

정도현은 곧바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동부의 마약왕, 차상훈.’

암시장의 주력 사업 중 하나가 마약이지 않은가.

명색이 동부 마약왕이면 암시장 VIP겠지.

확인할 겸 문자를 넣자,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좋아. 암시장에 들어가는 건 해결됐고.’

박건수를 잡아 낼 방법은 차상훈과 상담해 봐야겠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눈치를 살피던 남유호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 그럼… 전 살려 주시는 거죠?”

“그래. 오늘 일은 잊고 앞으로 잘 지내 보자고.”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툭툭 두들기자, 남유호도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굽신댔다.

물론 속으론 악담과 저주를 퍼부었지만.

‘내 기필코 죽인다!’

이 위기만 넘긴 뒤 암살자들을 잔뜩 고용해 둘 다 제거해 주마.

그는 약하지만 강한 녀석들을 움직이게 만들 돈이 있으니까.

‘무식한 놈 같으니. 이름이랑 얼굴만 가리면 단 줄 알아?’

물론 정도현 일행은 은둔자의 로브로 신원을 감췄다.

하지만 레벨과 성별, 주무기로 검을 쓴다는 걸 알아냈다.

시간은 좀 걸려도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을 터.

하지만 정도현은 남유호가 생각한 것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팔락.

정도현이 그의 눈앞에 피의 맹약서를 흔들어 보였다.

“살고 싶으면 서명해.”

“이, 이게 무슨……!?”

남유호는 내용을 읽어 보곤 입을 쩍 벌렸다. 어딜 봐도 자신에게 불리한 조항들만 있었다.

하는 짓이 조폭이랑 다를 게 없었다.

“나, 날 죽이면 당신도…….”

“죽이면, 뭐? 너 뒷배 없잖아.”

정도현에게 협박 같은 건 씨알도 안 먹혔다.

아무리 남유호가 동부에서 잘나가는 던전 브로커라 해도 결국 일개 브로커.

그가 괴한들에게 살해당한들 분개하며 복수해 줄 사람은 없었다.

이 바닥에서 원한 살해는 흔하디 흔했으니까.

오히려 그의 자릴 탐내던 브로커들이 좋다고 환호성을 지르리라.

남유호는 어쩔 수 없이 불공정 계약에 동의했다.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

“…예.”

종이 한 장으로 갑을 관계가 뒤집혔다.

정도현 일행이 떠나자, 남유호는 씩씩대며 사무소 바닥을 주먹으로 연신 내리쳤다.

“제기랄!”

저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비싸게 주고 고용한 용병들이 쪽도 못 쓰고 당했다. 정도현은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막말로 자신의 호위로 고용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남유호는 그 마음을 접었다.

저놈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맹수였다.

‘설마…….’

진짜로 석화의 마도사까지 잡아 내진 않겠지?

놈이 강해 봤자 고작 90레벨. 그분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해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조만간 동부 암흑가에 새로운 왕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 * *

끼익-!

고급 차량이 고풍스러운 대저택 앞에 멈춰섰다.

중년의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멋들어진 정장, 머리칼을 반듯이 넘긴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그가 저택 정문으로 다가서자 저절로 문이 열렸다.

저택 내부에는 수십, 수백의 조각상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어찌나 섬세하게 만들었는지 하나하나 생동감이 넘쳤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조각상들은 전부 사람의 형상을 본떴다.

하나쯤 사람 말고 다른 게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똑똑.

남자는 가장 안쪽 방으로 걸어가 노크를 했다.

많이 긴장했는지 그의 손놀림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들어와라.”

허가가 떨어졌다.

그가 문고리를 돌리자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내부가 보였다.

여기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지만 참으로 난잡했다.

“어르신, 부르셨습니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조각칼을 쥔 채 서 있었다.

여긴 저 노인의 작업실이었다.

작업실 곳곳엔 만들다 만 듯한 조각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바닥엔 조각상을 깎아 낸 흔적인 파편들이 어지러이 굴러다녔다.

[손정규] [LV.108]

조각칼을 쥔 노인이 동부 암흑가의 왕이자, 석화의 마도사라 불리는 손정규였다.

우환이라도 있는지 노인의 표정은 칙칙했다. 그의 호출을 받고 급히 온 남자, 박건수가 허릴 숙여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어르신, 어쩐 일로…….”

“이게 아니다.”

“…예?”

쩌적!

박건수 옆에 있던 조각상에 돌연 금이 생기더니 박살 났다.

손정규가 손짓 한 번에 그렇게 만든 것이다.

박건수는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그의 발치에는 반쯤 부서진 조각상의 머리가 보였다.

조각상의 눈동자가 마치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씨발, 역시 마음에 안 들었나.’

박건수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러다 자신도 조각상 꼴이 날지 모르니까.

그러고도 남을 양반이었다.

석화의 마도사란 별명은 육칠 년 전쯤 손정규가 일으킨 사건으로 붙은 별명이었다.

그의 전체 활동 기간에 비하면 극히 짧은 기간이었다.

그런데도 동부 암흑가에서 석화의 마도사란 별명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그만큼 강렬한 사건이었다.

손정규는 우연히 암시장에서 석화의 마도서를 손에 넣었다.

그 뒤, 암흑가의 패권을 두고 그와 경쟁했던 강자들을 모조리 조각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이 저택 어딘가에 전시되어 있을 거다.

이후로 손정규는 기존의 별명 대신 석화의 마도사라 불리었다.

그전에는 ‘예술가’라 불렸다. 보다시피 손정규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이명이다.

물론 예술을 한답시고 그가 저질렀던 짓거린 고상함이랑 영 거리가 멀었다.

무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재료로 써서 작품을 빚어냈으니까.

“이것들도 아니고.”

콰직, 콰드득!

다른 조각상들도 그의 손짓에 산산이 무너졌다. 박건수는 곧장 무릎 꿇고 머릴 조아렸다.

“…지난번에 보낸 재료들이 성에 차지 않으셨군요. 죄송합니다, 어르신. 전부 제 불찰입니다.”

“그래. 이번 것들은 완전 글렀어. 아무리 깎고 다듬어 줘도 울림이 들리지 않잖아.”

그 울림이란 게 대체 뭔데.

최대한 예쁘고 잘생긴 노예들을 따로 추려서 보내 줬건만. 뭐가 그리도 불만인가.

이쪽도 나름의 사정이란 게 있단 말이다. 미인들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저 망할 영감탱이.’

손정규가 암흑가를 완전히 평정한 이후로 박건수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그의 악취미를 위해 갖다 바친 노예만 몇 명이던가.

그것들을 다 팔았으면 지금쯤 중부 지역에 건물 몇 채는 올렸겠다.

“다음 재료들은 내게 울림을 줬으면 좋겠군. 알고 있겠지? 난 같은 실수는 용서해 주지 않아.”

“…예. 물론 알고 있습니다.”

즉, 이번에 보낼 노예들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처분하겠다고 한다.

블러핑이 아니다. 실제로 자신의 전임자가 그렇게 당했으니까.

박건수는 조각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운 노예가 필요해.’

저번에 보내 준 노예들의 얼굴은 좀 부실했었다. 그도 인정한다.

그래서 질보다 양으로 승부했다.

그런데 오히려 자칭 예술가의 심기를 건들고 말았다.

한 명이라도 괜찮으니 특출나게 잘생기거나 예쁘장한 노예가 필요했다.

박건수는 인사를 올리고 물러난 뒤, 급히 부하들에게 연락했다.

“노예상들이 보낸 사진들 전송해 봐.”

[예, 보스.]

지잉, 지잉!

수십 장의 사진이 날아들었다.

그는 한 장 한 장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나 느낌이 오지 않았다.

전부 지난 번 노예들과 다를 게 없었다. 손정규의 예술품 재료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제기랄!”

차로 돌아온 박건수는 욕설을 뱉곤 차량 핸들에 얼굴을 파묻었다.

레벨은 낮아도 된다. 아니, 일반인이라도 크게 상관없었다.

아름답기만 하면 됐다.

‘이러면 내가 처분당한다.’

상납일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확 도망쳐 버려? 아니, 그건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손정규는 자신의 예술 행위를 방해하거나, 무시하는 자에겐 가차 없으니까.

도망쳐도 끝까지 추격해 형벌을 내릴 거다.

‘어떻게든 찾아내야 해.’

* * *

정도현은 동부 마약왕, 차상훈을 은밀히 불러냈다. 암시장의 지배자, 박건수를 꾀어낼 방도를 상담하기 위해서.

다행히 차상훈은 마약 사범답게 암시장 사정에 빠삭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명쾌한 대답을 내놨다.

“…노예?”

“예, 박건수는 남녀 가리지 않고 미모가 출중한 노예들을 따로 모은다 들었습니다. 심지어 일반인도 얼굴만 반반하면 플레이어보다 값을 더 쳐주고 데려온다더군요. 뜬소문으로는 어딘가에 넘긴다고 하는데 확실친 않습니다.”

“흠…….”

박건수의 기행에 정도현은 아리송했다.

녀석은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미녀는 이해하겠는데 미남은 왜?

뭐, 자세한 건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아무튼, 예쁘거나 잘생긴 노예를 팔겠다고 말하면 녀석이 나타난단 소리지?”

“예. 정확하십니다.”

정도현은 턱을 괸 채 생각했다.

마침 그의 동료들이 하나같이 선남선녀였다.

그들을 미끼 삼아 유혹하면 박건수도 못 참고 덥석 물 터.

‘서아린이랑 박성원은 레벨도 낮고, C구역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속이기 쉽겠지.’

정도현은 곧장 서아린에게 연락했다.

그러자 그녀가 기다렸단 듯이 전화를 받았다.

사정을 설명하자 서아린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저랑 성원 씨를요?]

“그래, 꾀어내야 할 녀석이 있어. 부탁할게.”

[흥, 저 말고 권하율 그 여자한테 부탁하면 되잖아요? 저보다 더 신뢰하는 것 같던데.]

권하율은 레벨도 높고 얼굴도 널리 알려져서 적합하지 않았다.

서아린도 그걸 알면서 툴툴댔다.

저번에 개인 특성을 들킨 거로 싸우더니, 아직 화해 안 한 건가.

며칠 전에는 그에게 물어봤다.

혹시 권하율한테도 개인 특성이 있는 거 아니냐고.

피의 맹약 때문에 대답해 줄 수 없다고 말하자 그때부터 쭉 저기압이었다.

삐진 그녀를 어떻게 달래 줘야 할지 몰라서 우두커니 있자, 옆에서 엿듣던 차상훈이 귓속말로 뭐라 말했다.

“도현 님, 잠시 귀 좀…….”

그가 말한 해결책이 의심스러운지 정도현은 눈을 끔뻑였다.

이런 단순한 방법이 과연 먹힐까.

오히려 놀리는 거냐며 그녀의 화만 돋우는 거 아닐까.

그래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니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서아린.”

[뭐요.]

“네가 권하율보다 훨씬 예쁘잖아. 부탁해, 내 주변엔 너밖에 없어서 그래. 좀 도와주라.”

[…….]

꿍얼대던 서아린의 숨소리가 순간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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