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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18화 (118/240)

118화

한동민은 떨리는 손으로 조그만 보석을 집었다.

‘이걸 삼키면 개인 특성이 생긴다고?’

굉장히 혹했지만 동시에 의심스러웠다.

혹시 마탑에서 실험 중인 신제품은 아닐까?

거긴 죄수들을 인체 실험에 써먹는 곳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광서혁이 보석을 먹을지 말지 한참을 망설이자 공주은은 그걸 도로 가져갔다.

“그냥 없었던 거로 하죠.”

“자, 잠깐만요! 정말 여기서 꺼내 줄 수 있는 겁니까?”

“네. 대신 신도가 되어 준다고 약속한다면요.”

“신도는…… 어떤 일을 하는 겁니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관리국에서 일했던 것처럼, 저와 교단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면 되는 겁니다.”

그녀는 신도가 되었을 때 얻는 이점을 설명했다. 개인 특성, 일시적으로 능력치를 올려 주는 영혼 낙인까지.

“대신 신도들은 제 지시에 복종해야 하죠.”

간단히 말해 힘을 얻는 대가로 그녀의 노예가 되는 건가.

인생을 저당 잡힌다니.

꺼림칙한 제안이지만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여기서 내보내 준다면 감내해야겠지.

게다가 개인 특성을 얻는다는 게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가 여기 갇히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뭐였던가.

‘힘이 부족해서였다.’

“알겠습니다. 절 신도로 받아 주십시오.”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그럼 며칠 뒤에 나갈 수 있게 손을 써 둘게요.”

“감사합니다!”

“단, 공식적으론 마탑의 인체 실험 도중 사망한 것으로 처리될 겁니다.”

“…사망이요?”

“예. 원래 신분으로 활동할 순 없으니까요.”

하긴. 수십 년 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버젓이 밖을 나돌아다닐 순 없으니까.

얼굴을 바꾸고, 다른 이의 신분을 빌려 쓰게 되겠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이런저런 임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관리국의 ‘집행자’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

집행자, 그 한마디에 바로 이해했다.

관리국에는 집행자라 불리는 비밀 요원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첩보, 살인, 납치와 같이 대중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음지의 임무를 수행했다.

“자, 삼켜 보세요.”

공주은이 그에게 보석을 돌려줬다.

광서혁은 결심한 얼굴로 그걸 삼켰다.

꿀꺽-!

목에서 느껴지던 이물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영혼석을 흡수하셨습니다.]

[개인 특성, 「가속」을 획득하셨습니다.]

광서혁이 눈을 부릅떴다. 정말로 개인 특성이 생겼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으나, 공주은은 며칠 뒤에 다시 보자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독방에 다시 갇혔지만 그는 실실 웃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어차피 관리국은 날 버렸어.’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강해져서 기필코 복수해 주겠다.

개인 특성도 얻었으니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겠지.

95레벨. 아니, 100레벨의 벽을 허무는 것도 꿈은 아니리라.

‘그렇게 되면…….’

정도현과 권하율. 그 둘을 내 손으로 처리하겠다.

* * *

정도현은 두 번째 시험을 끝마친 뒤 곧장 관리국 본부로 불려왔다.

세 번째 시험은 진행되지 못했다.

그와 한동민을 제외한 모든 생존자가 탈락했으니까.

그 시점에서 더는 정도현의 실력을 평가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를 불러낸 동부 관리국 지부장, ‘소재균’이 웃으며 말했다.

“녹화된 영상 전부 검토했네. 볼수록 감탄이 나오더군. 권 팀장이 왜 신원 보증을 서 줬는지 납득이 갔어.”

생존 시험에서 요원을 제압하거나 생존자들을 탈락시켜 두각을 보인 플레이어는 해마다 몇 명씩 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정도현처럼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 준 이는 없었다.

일반 요원에 팀장급까지 제압하다니.

게다가 패배한 게 광서혁이었다.

그는 젊지만 동부 관리국 내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다.

‘F구역 출신이라는 게 정말 믿기지 않는군.’

정말 아쉬웠다. 이런 인재가 이제야 나타났다는 게.

몇 년만 더 일찍 나타났다면 어떻게든 회유하려고 용을 썼을 것이다.

동부 관리국은 C구역의 다섯 지방 중 최약체라 불렸다.

권하율이 들어오고 나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인재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광서혁이 인성과 별개로 실력은 괜찮아서 기용했는데 이렇게 대형 사고를 쳐 버렸다.

“우선,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것에 다시 한번 사과하겠네. 원하는 게 있으면 편히 말해 보게. 제대로 보상해 줄 테니.”

“추가 세금 문제를 해결했으면 합니다.”

“…음? 그 부분이라면 이미 해결된 것 아닌가?”

정도현은 이번 평가 시험을 1등으로 통과했다.

애초에 통과한 사람도 정도현 한 명뿐이었지만.

한동민은 심경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두 번째 시험이 끝나자마자 자진해서 기권하고 D구역으로 내려갔다.

“세금 감면은 저와 제 가족에게만 적용되지 않습니까?”

“그렇네.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C구역으로 데려오고 싶은 지인들이 몇 있습니다.”

“흠. 지인들이라. 가족 말고도 챙길 사람이 있단 건가…….”

서아린과 박성원은 알아서 우수한 성적으로 심사를 통과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하지만 송정민과 진성이는 아니었다.

둘은 시험을 칠 자격조차 없었다.

그러니 C구역으로 이주하는 데 돈이 왕창 깨질 터.

“레벨이 너무 낮아서 안 돼. 마음 같아선 돕고 싶네만…… 다른 간부들이 승인해 주지 않을 걸세. 이건 좀 힘들겠군.”

소재균이 고갤 저었다. D와 C구역은 격이 달랐다.

지부장이 돕는다 한들 그리 쉽게 풀리지 않을 거다.

물론 C구역 내에도 송씨 부자처럼 레벨이 한참 낮은 플레이어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부터 C구역 태생이었다.

집안이 원체 부유해서 막대한 세금을 감당할 수 있거나, 친척 중에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가 있는 거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정말 미안하네. 다른 부탁은 없는가?”

“그게 가장 중요한 거라서요.”

소재균은 그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보통은 본인에게 득이 되는 걸 요구하는데, 정도현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목소릴 냈다.

그가 알던 F구역 출신과는 결이 달랐다. 젊고, 실력도 있으며, 성격에 딱히 모난 곳도 없었다.

“지부장님.”

협상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옆에서 잠자코 듣던 권하율이 끼어들었다.

“정도현 씨 지인들에게 선뜻 혜택을 줄 수 없는 건 그가 관리국 요원이 아니라서 그런 겁니까?”

“그렇네.”

정도현이 관리국 소속이었다면 지인의 이주 및 추가 세금을 감면해 주는 것?

그쯤이야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아니 그 이상도 가능했다.

관리국 간부들도 문제 삼진 못할 거다.

하지만 정도현은 요원이 될 생각이 없었다. 그럼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니까.

그게 발목을 잡았다.

“그를 관리국 전속 용병으로 고용하는 건 어떨까요?”

“…전속 용병? 그거 나쁘지 않군.”

전속 용병은 관리국과 직접 계약한 자들이었다.

전속 제안을 받는 이들은 실력과 경력을 인정받은 일류 용병들이었다.

정도현은 팀장급 요원도 쓰러트린 실력자.

경력은 짧지만 전속 용병으로 고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정도현 씨가 전속 용병이 되어 주면 세금 관련으로 특혜를 받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도 없을 겁니다. 다른 전속 용병들도 저마다의 요구를 하니까요.”

“그래. 분명 그렇겠지만…….”

소재균이 정도현을 흘끗 바라봤다.

“전속 용병이 맡는 의뢰는 대부분 위험하네.”

“어떤 일을 하죠?”

“어지간하면 레드 플레이어를 상대하지. 물론 의뢰를 거절할 순 있지만, 최소 할당량은 채워야 하거든. 그럴 바엔 길드에 들어가는 게 더 낫지.”

“레드 플레이어를 상대한다고요?”

정도현이 눈을 반짝였다. 마치 길바닥에 떨어진 돈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그의 반응에 소재균은 의아했다.

정도현 정도면 제법 괜찮은 길드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출신 때문에 차별받긴 하겠지만.

그래도 목숨 걸고 범죄자들과 싸우는 것보단, 길드에서 안전하게 돈을 버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하겠습니다.”

“정말인가?”

“예. 어차피 길드에 들어갈 마음도 없어서요.”

“그거 정말 잘됐군.”

그의 선택이 이해는 안 됐지만, 전속 용병은 관리국의 예비 전력으로 취급받는다.

합당한 성과만 내준다면 특혜를 받더라도 딴지 걸지 못할 거다.

소재균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가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관리국은 여차할 때 정도현의 힘을 빌릴 수 있고, 정도현은 완전히 엮이지 않고도 특혜를 받아 냈다.

할당량만 채우면 본인이 원할 때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관리국을 등에 업고 합법적으로 레드 플레이어를 사냥할 수 있단 게 마음에 쏙 들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돈도 번다니. 얼마나 좋아.’

“정도현 군의 담당은…… 권 팀장, 자네가 맡아 주겠나?”

“예.”

권하율은 냉큼 수락했다. 그가 물어보지 않았으면 그녀가 먼저 요청했을 기세였다.

지난 몇 년간 권하율이 저렇게 의욕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끽해야 범죄자를 체포하는 임무를 맡았을 때나 그랬지.

소재균은 턱을 매만지며 두 남녀를 바라봤다.

‘청춘이구만.’

“그런 거 아닙니다.”

“…응? 뭐라 말했나?”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권하율은 여느 때처럼 귀만 새빨개졌다.

정도현과 소재균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몰라서 눈만 끔뻑거렸다.

* * *

며칠 뒤, 관리국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정도현은 곧장 수락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자세한 내용을 듣고자 관리국 본부로 불려왔다.

회의장에는 권하율과 요원들 그리고 용병 몇 명이 앉아 있었다.

그가 도착하자 권하율이 사건의 개요를 간략히 설명해 줬다.

“실종 사건이요?”

“지난 몇 달 동안 빈민가에서 행방불명된 주민만 수십 명입니다. 확인된 숫자만 그 정도고, 실제로는 더 많겠죠.”

“…대처가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몇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사라졌는데 이제야 움직인다니. 늦은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솔직한 감상에 다른 전속 용병들이 움찔했다.

기본적으로 관리국이 갑, 전속 용병은을이었다.

갑의 대리자인 팀장급 요원한테 밉보이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그런데 저렇게 직설적으로 책잡다니.

‘솔직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원.’

용병들은 혹여나 자기들한테 불똥이 튈까 봐 걱정이 몰려왔다.

다행히도 권하율은 고갤 끄덕이며 순순히 관리국의 잘못을 인정했다.

“맞습니다. 너무 늦었죠. 피해자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혹시 이유가 있습니까?”

“그곳 빈민가를 담당하던 관리국 시설 관리자가 지금껏 감췄습니다.”

“감췄다뇨?”

“팀장님. 그게 무슨…….”

요원과 용병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F구역 출신인 정도현만 뭔가를 짐작했다.

“범인이 시장한테 뇌물을 줬군요.”

“네. 정황상 그렇습니다.”

F구역에선 그게 일상이었다.

관리국과 갱단 및 레드 플레이어들은 상생하는 관계였다.

C구역도 부패한 관료들이야 넘치겠지만, 이렇게까지 심한 경우는 드물었다.

사람 수십 명을 납치한 범죄 행각을 묵인하다니.

‘얼마나 받아 처먹은 거야?’

* * *

동부 변방의 빈민가. 그곳 지하에서 은밀한 의식이 진행 중이었다.

거기엔 성인 남성이 몇 명쯤 드러누울 수도 있을 만큼 큼직한 제단이 있었다.

그 위에는 젊은 여인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의식을 잃었고 손발은 꽁꽁 묶여 있었다.

“이봐, 빨리 시작하자고!”

“알겠으니까 재촉하지 마.”

제단 아래에는 뚱뚱한 중년 남성과 검은 복장의 마녀가 서 있었다.

남자가 핏발 선 눈으로 재촉하자 마녀는 성가시단 얼굴로 주문을 외웠다.

스스스-!

그러자 제단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연기는 이윽고 흉측하고 거대한 손아귀처럼 변했다.

“으…….”

괴물의 손아귀가 산제물의 몸을 움켜쥐자 여인이 눈을 떴다.

그녀는 자신을 붙잡은 존재를 보고선 목이 찢어지라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으읍!”

손아귀는 시끄러운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곤 안개 속으로 그녀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여인은 자신을 구경하는 남녀에게 살고 싶다며 아우성을 질렀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공포가 커질수록 손아귀는 더더욱 빠르게 밑으로 내려갔다.

“읍, 으읍!”

이내 그녀의 몸은 안개에 파묻혀 완전히 사라졌다.

눈을 감은 채 의식의 주문을 중얼중얼 외우던 마녀가 겨우 숨을 골랐다.

뚱뚱한 남자는 그새 참지 못하고 제단 위로 달려갔다.

“으하핫! 저번보다 훨씬 크잖아!”

“악마는 젊고 순결한 여인의 영혼을 가장 비싸게 쳐주거든.”

뚱뚱한 남자는 제단 위에 놓인 황금을 줍곤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마녀는 악마에게 산제물을 바치고 그 대가로 흑마력과 황금을 얻어 왔다.

저 뚱뚱한 남자는 이곳 빈민가 일대를 관리하는 시장이었다.

마녀는 흑마력, 시장은 황금을 얻고자 몇 달 전부터 협력한 것이다.

“그나저나 슬슬 본부도 알아챌 때가 되지 않았어? 실종자만 백 명이 넘었잖아.”

“흐흐, 걱정 붙들어 매. 이 세상에 돈 싫다는 놈은 없거든. 본부에서 사람 보내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시장은 그렇게 말하며 킬킬 웃었다.

본부 놈들도 황금 맛을 보면 눈이 멀어버릴 것이다.

“좋아, 그건 그쪽이 알아서 해결해. 난 제물만 재깍재깍 가져와 주면 상관없어.”

“그래. 바칠 놈들은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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