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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17화 (117/240)

117화

작전 본부에서 보낸 헬기가 광서혁과 요원들을 끌고 갔다.

부정행위에 가담한 요원들은 징계, 광서혁은 주동자로서 크게 처벌받을 것이다.

녀석이 도를 넘은 짓을 벌였단 증거도 확보했고, 동부 지부장이 직접 얘기했으니 약속은 지키겠지.

‘경험치를 못 얻은 건 영 아쉽지만.’

솔직히 마음 같아선 확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럼 관리국 상층부한테 단단히 찍힐 거다.

C구역에 들어가기도 전에 적을 왕창 늘려서 좋을 게 없었다.

정도현은 한동민의 발자취를 뒤쫓아 숨어 있던 그를 발견했다.

“도, 도현아! 무사했구나!”

정도현이 무사히 돌아오자 그는 뛸 듯이 기뻐했다.

정도현은 재회한 그에게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럼 진짜 작정하고 널 탈락시키려 한 거였어?”

“네.”

한동민은 뭐 그런 개새끼가 다 있냐며 욕을 뱉었다.

그렇게 탈락했으면 그는 억울해서 한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잤으리라.

“이거 공론화하면 한동안 시끄럽겠는데?”

상위 구역으로 이주하는 건 아래 구역 시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었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들의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이런 부정을 저지르다니.

이는 기만이었다. 사람들이 알면 동부 관리국을 싸잡아서 질타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불문에 부쳐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냥 덮겠다고?”

“터지고 뒷수습하는 것보단 저희 입을 막는 게 쉽고 편할 테니까요.”

“관리국 놈들 입장에선 그렇긴 한데… 넌 괜찮아?”

한동민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왜 피해자가 입을 다물어야 한단 말인가.

“광서혁은 지부장이 책임지고 수용소로 보낸대요.”

“그건 당연한 거고! 너한테 보상은 제대로 해 준대?”

“그건 시험 끝나면 따로 협상해 봐야죠.”

“뭐, 네가 괜찮다면야 상관없지만. 그놈들 너무 믿지 마. 수틀리면 어떻게 나올지 몰라.”

한동민은 관리국이 제대로 보상이나 해 줄지 걱정했다.

지금은 좋게 좋게 말해 놓고 나중엔 무시당할 가능성도 있다.

무소속 플레이어들이 푸대접받는 게 뭐, 하루 이틀인가.

“그나저나 형은 C구역에 왜 올라가려는 거예요? 시험 비용도 만만찮은데.”

“아, 그게…….”

몇 년 전부터 한동민의 어머니는 건강이 안 좋아졌다.

곧장 입원했지만 D구역 의료 시설로는 치료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C구역으로 올라가고자 마음 먹은 것이다.

“C구역에 어머니를 모시고 싶어. 완치는 못해도 여건은 훨씬 좋으니까. 주치의도 가능하면 더 큰 병원으로 옮기길 추천하더라.”

한동민한테도 딱한 사정이 있었다.

정도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야. 꾸준히 치료만 받으면 문제없어. 근데 투여하는 약이 좀 독해서…….”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고, 체중이 줄며, 졸음도 자주 찾아온다.

전보다 많이 야윈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C구역으로 병원을 옮기면 독한 약을 안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음. 나도 그쪽으론 지식이 거의 없지만, 몸에 부담이 덜 가는 약을 처방해 준대. 약값은 더 비싸겠지만.”

한동민은 돈이 더 들어도 좋으니 어머니를 예전처럼 되돌리고 싶었다.

C구역 병원에 입원하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다.

그의 말에 정도현은 잠시 고민했다.

“형. 만약 병을 고칠 수 있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에이, 완치는 안 돼. 그래도 할 수만 있으면 전 재산이라도 내고 싶지. 돈이야 다시 벌면 되니까.”

당장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만 있으면 굳이 C구역에 올라가려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다.

이주와 정착에 필요한 비용과 추가로 걷어 가는 세금도 만만찮으니까.

뼈 빠지게 일해야 할 거다.

“형.”

“응?”

“형은 운이 정말 좋은 거 같아요.”

“…….”

그 말에 한동민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비밀을 들킨 아이처럼.

그것도 잠시. 한동민은 픽 웃으며 순순히 인정했다.

“하핫! 내가 운이 좀 좋긴 하지. 저번 시험 땐 제대로 꼬였지만.”

“그 결과 절 만났잖아요. 결과적으로 운이 좋은 거죠.”

“…응? 으응. 뭐, 그렇긴 하지.”

한동민은 조금 당황했다.

물론 정도현 덕을 크게 보긴 했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색을 내니 뭔가 이상했다.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어머니의 병, 제가 치료해 줄게요.”

“…뭐?”

“대신 피의 맹약을 맺어요.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않기로.”

정도현이 피의 맹약서를 꺼내 들이밀었다.

그러자 한동민의 눈에 작은 경계심이 피어났다.

“…농담하는 거 아니지?”

“저 그런 놈 아니에요.”

“그래서 뭘 원하는데? 돈? 아니면 내 장기?”

“제가 무슨 악마인 줄 알아요?”

정도현이 너무한 거 아니냔 눈빛을 보냈다. 한동민은 머쓱해져서 머릴 긁적였다.

“아니,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거 보면 그런 거 요구하지 않나?”

“대가는 됐고, 저한테 치료제가 있어요.”

“…치료제? 아, 포션으로는 안 돼. 이미 해 봤어.”

“포션 말고 다른 아이템이요.”

“다른 아이템?”

한동민은 몇 초 생각하다 뭔가를 떠올렸다. 자신이 생각한 게 정답이 맞는지 묻는 듯한 눈이었다.

정도현은 말없이 고갤 끄덕였다.

“저, 정말? 하지만 어떻게 그걸…….”

팔랑.

정도현은 대답 대신 피의 맹약서를 흔들었다. 한동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원하는 게 뭔데?”

“비밀 유지만 해 줘요.”

“정말 그거면 돼? 돈이나 뭐 다른 부탁은 없고?”

“돈은 필요 없고, 부탁할 것도 당장은 없어서요.”

대가로 돈을 받았다간 페널티로 죽을 테니 절대 안 된다.

치료제를 무상으로 주겠단 말에 한동민은 믿기지 않았다.

대가 없는 선의는 어머니한테서만 받아 봤으니까. 그가 조심스레 맹약서를 받아 들었다.

“좋아.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그는 정도현을 한 번만 더 믿어 보기로 했다. 만난 지 며칠 안 됐어도 좋은 녀석 같았으니까.

저번 시험에서 그러다 뒤통수를 거하게 맞긴 했지만.

비밀 엄수의 맹약을 맺자 정도현은 엘릭서를 꺼냈다.

일주일에 두 병밖에 못 사는 귀한 아이템이지만 왠지 내주기 아깝지가 않았다.

‘도와줘야만 할 것 같아.’

단순히 동정심만으로 도우려는 건 아니었다. 그의 날카로운 감이 속삭였다.

한동민을 도와주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그의 감은 박성원의 「초감각」만큼 정확하진 않지만, 적중률이 은근 괜찮은 편이었다.

“에, 엘릭서…….”

영롱하게 빛나는 황금빛 물약.

한동민은 그 신비로운 자태에 순간 넋을 잃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는 정도현이 도로 가져갈세라 황급히 엘릭서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저, 정말 고마워!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

그는 울먹거리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근데 얜 이걸 어디서 구한 거지?’

엘릭서를 구하려면 고레벨 플레이어거나 그 친지여야만 했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암시장에서조차 구경하기 힘든 게 바로 엘릭서 아니던가?

정도현은 그걸 서슴없이 쾌척했다.

한동민은 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아!”

한동민은 조금이라도 보답할 만한 게 없을까 고민하다 뭔가가 떠올랐다.

얼마를 줘도 팔고 싶지 않은 그의 보물이었다.

그는 목에 걸고 있던 아이템을 풀어 내밀었다. 정도현이 고갤 갸웃했다.

“그게 뭐예요?”

“너 줄게. 줄 만한 게 이거밖에 없다. 유용하게 써.”

그건 황금색 네잎클로버 형태의 보석이 달린 펜던트였다. 정도현은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티케의 펜던트] [에픽]

- 착용 조건: LV.60 이상

- 행운의 여신의 축복이 담긴 펜던트입니다.

- 착용 시 행운이 100만큼 상승합니다.

- 여신의 축복: 행운에 비례해 치명타 발생 확률이 상승합니다.

- 치명타가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 다음 공격의 치명타 확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치명타가 발생하기 전까지 해당 효과는 중첩됩니다.

정도현이 아이템 성능에 감탄했다.

한동민은 제 자식을 자랑하는 부모처럼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던전 보상에서 운 좋게 얻은 거야. 그거 없었으면 이만큼 올라오지도 못했겠지.”

에픽 등급이지만 소유자의 역량에 따라 그 이상의 효율도 낼 수 있다.

치명타는 기본 피해량의 두 배로 적용된다.

그렇기에 전투의 승패에 아주 밀접하게 작용한다.

‘게다가 난 치명타 피해량을 올려 주는 장비템에 패시브 스킬들도 있어.’

그의 치명타 피해량은 도합 300%에 육박했다.

즉, 치명타가 한 번 터지면 데미지가 세 배로 들어가는 셈.

다만 치명타 확률이 낮아서 급소를 찔러도 잘 안 터지는 게 아쉬웠었는데, 이 펜던트는 그걸 보완해 줄 좋은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그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욱 빛을 볼 거다.

‘혹시 상점창에 파나?’

바로 검색해 봤지만 티케의 펜던트는 나오지 않았다.

에픽 등급이라도 세상에 딱 하나뿐인 특별한 아이템이었던 모양이다.

“정말 이거 받아도 돼요?”

“괜찮아. 엘릭서에 비하면 싸지.”

그 말에 정도현은 멈칫했다.

한동민은 감사의 표시로 준 거지만, 결과적으로 엘릭서와 펜던트를 물물 교환 해 버린 셈이었다.

이러면 상점에서 산 아이템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면 안 된다는 페널티에 위배되지 않나?

하지만 펜던트를 착용하려 마음먹어도 경고창은 뜨지 않았다.

‘물물 교환은 상관없단 건가?’

저번에 페널티 조건이 완화되어서 괜찮은 모양이다.

이 펜던트를 팔아치워서 돈을 불리지만 않으면 되겠지.

그는 펜던트를 착용하곤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그래. 나보다 네가 훨씬 잘 써먹겠지. 제 주인 찾은 거야.”

한동민은 애틋한 눈으로 펜던트를 쳐다봤다.

* * *

광서혁도 처리했으니 정도현은 이제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그는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섰다.

보급 상자가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자 다른 생존자들이 슬금슬금 몰려왔다.

그들은 정도현을 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자, 잠깐만! 우린 너랑 싸울 생각 없어. 다른 데로 갈 테니까 그냥 보내 줘!”

“내가 왜?”

정도현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 내내 섬 안에 갇혀 있기 싫었다. 그래서 간단히 생각했다.

생존자를 다 떨구면 시험도 더는 진행할 수 없겠지.

“아악!”

“…컥!”

퍼억! 퍽!

정도현이 검으로 생존자들을 두들겨 팼다.

[치명타가 발생했습니다!]

[치명타가 발생했습니다!]

[치명타가 발생했습니다!]

평상시랑 달리 치명타가 우후죽순으로 터졌다. 티케의 펜던트 덕이다.

가뜩이나 아픈데 치명타로 들어오니 생존자들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한동민은 기절한 생존자들을 안타깝게 쳐다봤다.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일행의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억울하단 표정으로 따졌다.

다른 곳으로 가려던 정도현이 잠시 멈춰 섰다. 그가 짤막하게 대꾸했다.

“걱정하지 마. 공평하게 전부 탈락시킬 테니까.”

“씨발, 뭔 개소리야….”

툭.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갤 떨궜다.

파티 하나를 1분 만에 궤멸시킨 괴물이 다른 보급 상자가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했다.

정도현과 한동민을 제외한 생존자들이 전부 탈락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도 채 안 됐다.

정도현이 마지막 남은 파티를 해치운 직후, 섬 전체에 안내 방송이 울렸다.

[생존 시험을 조기 종료합니다.]

[합격자는 2명입니다.]

* * *

며칠 뒤, 광서혁은 수용소에 갇혔다.

그는 독방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는 30년 형을 선고받았다.

윗선이 그를 버렸다, 무마하기엔 증거가 너무 명확했으니까. 게다가 지부장까지 엮였고.

‘30년이라니…….’

어마어마하게 긴 세월이었다.

그가 출소할 때쯤이면 바깥세상은 격변해 있으리라.

“씨발….”

정도현과 권하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연놈들에게 제대로 당했다.

더 서글픈 건 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 거다.

한숨을 푹 쉴 때, 밖에서 발걸음이 들려왔다. 간수가 철문을 열며 말했다.

“어이, 나와라. 면회다.”

“…면회?”

날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그는 간수를 따라 면회실로 이동했다.

거기엔 처음 보는 여성이 앉아 있었다.

[공주은] [LV.110]

그녀의 레벨은 엄청나게 높았다. 저 정도면 C구역 대형 길드장과 맞먹는다.

광서혁은 긴장한 어조로 말했다.

“누구십니까?”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순백교의 대표, 공주은이라고 해요.”

“…순백교?”

광서혁의 표정이 굳었다.

얼마 전에 회의에서 들었다.

해방단이 무너진 후로 C구역 각지에서 활동한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최근에 심장 포식자 토벌 때 류진후 부팀장을 죽이기도 했고.

그런 범죄 조직의 수장이 버젓이 면회를 오다니.

‘설마 관리국 상층부랑 한패인가?’

“얘기 들었어요. 30년 형을 받으셨다고.”

“…그렇습니다.”

“저랑 거래하지 않을래요?”

“무슨 거래요?”

“조만간 여기서 꺼내 드릴게요. 대신 순백교에 들어오세요.”

“……!”

수용소에서 꺼내 준다고? 그것도 30년 형을 받은 죄수를?

그건 지부장급이 나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저 여자한테 그럴 능력이 있단 말인가.

광서혁의 심장이 뛰었다.

“…순백교는 뭘 하는 곳입니까?”

“서혁 씨처럼 우수한 플레이어들의 권익을 지키는 곳이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손톱만 한 보석을 내밀었다.

“이건 제 선물이에요.”

“보석?”

“그걸 삼키면 개인 특성을 얻을 수 있어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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