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인성 평가 면접을 통과한 플레이어들이 강당에 모였다.
합격자는 정도현을 포함해 스무 명이 훌쩍 넘었다.
다음 시험의 감독을 맡은 관리국 요원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설명했다.
“이번 시험은 몬스터와의 전투입니다.”
관리국은 훈련에 써먹고자 주기적으로 게이트 붕괴 지역에서 몬스터들을 포획해 온다.
지금처럼 플레이어의 실력을 평가할 때도 요긴하게 써먹었다.
“개인당 5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각자 최선을 다해 싸워 주시면 되겠습니다. 전투 양상을 토대로 점수를 매겨 순위에 반영하겠습니다.”
“위험하다 싶을 땐 조금 뒤에 나눠드릴 보호막 아티팩트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럼 저희가 즉시 몬스터를 제압하고 평가를 종료하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게 있으신 분 계십니까? 편하게 질문하셔도 됩니다.”
정도현이 곧바로 손을 들었다.
요원들은 그가 누군지 알아봤다.
광서혁 팀장 측에서 반드시 탈락키라고 언질했던 플레이어였다.
감독관 대표는 음흉한 속내를 감추곤 그에게 질문을 허락했다.
“몬스터를 죽여도 상관없는 겁니까?”
“…예? 아, 물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준비한 몬스터는 전부 변종입니다. 그러니 무리하거나 욕심내는 건 자제 부탁드립니다.”
변종 몬스터란 말에 몇몇 플레이어들이 술렁였다.
보스나 네임드 몬스터보단 아니어도 일반 몬스터보다 능력치가 높아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편이다.
정도현은 다시 손을 들고 질문했다.
“아까 순위를 정한다고 하셨는데, 순위가 높으면 이득이 있습니까?”
“관리국이 주는 혜택이 늘어납니다.”
감독관은 말 나온 김에 간략히 설명했다.
본인과 가족한테서 걷어 갈 추가 세금 감면.
3위 안에 들 시, 등수에 따라 최대 삼 년간 무상으로 거주 시설 임대.
관리국이 세운 병원 VIP 이용권.
돈만 내면 사망 및 상해 보험도 2급까지 들 수 있었다.
물론 저런 혜택 없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겠지만, 받으면 삶의 질이 한층 윤택해질 것이다.
게다가 정도현한텐 딸린 식구가 있었다.
‘할아버지랑 다윤이가 내야 할 추가 세금이 좀 걱정됐는데, 1등으로 합격하면 돈을 크게 절약할 수 있겠어.’
물론 단기간에 큰돈을 벌 방법은 있었다. 양심을 버리면 된다.
가령, 그리핀 길드가 해 온 것처럼 다윤이의 능력으로 마약을 유통한다든가.
동부의 거대 마약 사범 차상훈이 그의 수하였다.
전화 한 통만 하면 물건 판매에 돈세탁까지 알아서 해 주리라. 차상훈도 내심 그걸 원할 테고.
‘그런 짓은 절대 안 하지.’
정도현은 다윤이를 지저분한 돈벌이 도구로 이용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의 목표는 돈을 벌어서 호의호식하는 게 아니다.
만인의 인정을 받는 고레벨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근본부터 잘못된 계급 사회를 타파하고, 플레이어가 될 가망성이 없단 이유만으로 F구역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떳떳한 삶의 길을 걸어야 했다. 나중에 발목 잡히긴 싫으니까.
“번호 순서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보호막 아티팩트를 나눠 드릴 테니 위급할 때 꼭 사용하십시오. 단, 사용하시면 기권으로 간주합니다.”
감독관들은 신신당부하며 팔찌 형태의 아티팩트를 나눠 줬다.
일회성이지만 마탑이 제작한 거라 성능은 확실하다고 한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1번, 한동민 플레이어. 앞으로 나오세요.”
“예!”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선발로 나왔다.
파아앗!
그가 훈련장에 올라서자 바닥에 그려진 거대한 전송 마법진이 빛났다.
잠시 뒤 몬스터 한 마리가 한동민 앞에 소환됐다.
거대한 양날 도끼를 든 미노타우르스.
변종이라 덩치가 일반 몬스터보다 훨씬 컸다.
한동민의 표정이 굳었다. 시험용 몬스터 중에서도 상당히 위험한 몬스터였다.
시작부터 운이 안 좋았다.
“우오오오!”
1번 플레이어, 한동민은 우렁찬 기합과 함께 달려들었다.
기세는 좋았으나 제대로 때려 보지도 못하고 시간만 허비했다. 쓰러트리긴커녕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저래선 높은 점수 받긴 글렀겠군.’
5분이 지나자 마법진이 빛나더니 미노타우르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간 모양.
한동민이 숨을 헐떡이며 무기를 내렸다.
“다음 선수.”
한동민은 훈련장에서 터덜터덜 걸어나왔다. 본인도 많이 아쉬웠는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정도현 옆자리에 앉더니 대뜸 말을 걸었다.
“그쪽 얼굴은 처음 보는데 몇 번째야?”
“8번이요.”
“아니, 순서 말고 몇 번째로 보는 거냐고.”
“……?”
“아, 설마 이번이 첫 시험이야?”
“네. 그런데요?”
정도현은 이주 심사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곤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한동민의 질문이 뭔 소린지 못 알아들었다.
“그럼 내가 선배네. 동생 같으니 말 편하게 할게? 난 이번이 네 번째 도전이거든.”
“…네 번째?”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마. 상처받는다고.”
“아, 죄송합니다.”
한동민은 농담이었다며 씩 웃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나만 재도전하는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거든. 이번엔 익숙한 얼굴이 더 많이 보이네.”
“시험 통과하는 게 많이 어렵나 보네요?”
“그럼! C구역의 장벽은 높지. 합격자 수가 1년에 100명도 채 안 될걸?”
정도현은 경험이 풍부해 보이는 그에게 정보를 더 캐내기로 했다.
시험 통과야 어렵지 않겠지만 그는 1등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다음 시험에 대해 들어 두면 훨씬 유리하겠지.
“이번 시험은 약과야. 전투의 기본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만 하는 거니까.”
“그런 것치곤 좀… 고전하시던데요.”
“에이! 몬스터 운이 없었어. 그리고 안 다치고 버티기만 해도 무조건 통과야. 뭐, 순위는 좀 낮겠지만.”
버티기만 해도 합격을 준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통과 기준이 널널했다.
“처음 응시한 사람이 아니고선 여기서 안 떨어져. 대신 다음 시험에서 우수수 탈락하지.”
“다음 시험은 어떻길래요?”
“생존 시험이라고 던전 환경에서 얼마나 잘 버티는지 평가하는 건데, 인공 섬에서 일주일간 살아남는 거야. 매일 밤에는 살인마 역할로 요원들이 투입되지.”
“…살인마?”
“하핫! 진짜 죽이는 건 아니고 기절만 시키는 거야. 물론 기절하면 탈락이고.”
두 번째 시험은 관리국이 훈련 목적으로 개발한 인공 섬에서 치러진다.
말만 섬이지 땅 넓이는 거의 소도시 수준이란다.
게다가 구역마다 필드형 던전처럼 다른 환경이 펼쳐져 있다.
“밀림, 모래사막, 첩첩산중에 혹한 지대까지 구현됐어.”
“섬 안에 여러 기후가 존재한다고요?”
“그래. 원리는 나도 잘 몰라. 듣기론 마탑이 만들었다던데…….”
아무리 마법이라도 그렇지. 그런 게 정녕 가능한가? 상상이 잘 안 갔다.
‘다음 시험도 어렵진 않겠어.’
필드형 던전은 몇 달 전에 자주 들락거렸으니까. 보름 가까이 버텨 본 적도 있었다.
그때보다 월등히 강해졌으니 몇 달을 버티라고 해도 충분히 가능했다.
“아, 그리고 나중에 알려 주거나 숨겨진 규칙들도 있는데… 에이, 아니다. 아직 첫 번째 시험도 통과 못 했는데 말해서 뭐 하겠냐.”
“8번, 정도현 플레이어. 내려와 주세요.”
알려 달라고 말하려던 찰나, 그의 차례가 와 버렸다.
한동민이 씩 웃으며 어깨를 두들겨 줬다.
“통과하고 오면 마저 말해 줄게. 잘하고 와, 무리하다 다치지 말고.”
“약속한 겁니다?”
정도현이 계단을 내려갔다.
긴장감이라곤 전혀 안 느껴지는 당당한 걸음걸이.
초짜가 아니라 5수생은 되어 보인다.
한동민은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나보다 훨씬 젊은데 레벨은 높네.’
고작 1레벨 차이지만 이 레벨대에선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저렇게 젊은 나이에 85레벨에 도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몬스터와 레드 플레이어를 미친 듯이 사냥했겠지.
‘하지만 변종 몬스터랑 일대일로 붙어 본 적은 없을걸?’
평소엔 파티원들과 함께 던전을 공략하니까. 혼자서 맞닥뜨리면 많이 당황스러울 거다.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은 전부 D구역에서 날고 기던 이들이다.
그런 이들도 변종 몬스터를 처음 상대해 보면 떨어지는 경우가 부기지수였다.
[레드 리자드맨 나이트] [LV.89]
“크워어어어-!”
기다란 창을 쥔 레드 리자드맨이 소환됐다.
한동민은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하필 걸려도 리자드맨 나이트가 걸리냐.
저 녀석이 가장 악랄한 몬스터였다.
지능이 높고, 창술도 수준급이라 상당히 까다로웠다.
첫 응시생 중 열에 아홉은 저 녀석을 만나면 못 버티고 기권했다.
딱 한 마리 있는데 그걸 걸리다니.
‘운도 지지리도 없지.’
한동민은 정도현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했다.
눈에 선했다. 궁지에 몰려 보호막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모습이.
‘원래 첫 시험 때는 다 그런 거야.’
별수 없다. 좋은 경험 했다 쳐야지.
한동민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캬아아아악!”
경기장에서 끔찍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리자드맨이 뱉어 낸 소리였다.
“뭐, 뭐야?”
“단칼에 벴어!”
정도현은 겁도 없이 안쪽으로 파고들더니 순식간에 리자드맨의 오른팔을 날렸다.
놈의 어깨에서 시퍼런 피가 꿀렁꿀렁 쏟아진다.
분노한 리자드맨은 악어처럼 아가리를 쩍 벌려 물어뜯으려 했다.
서걱-!
정도현은 깔끔하게 옆으로 피한 뒤 녀석의 목을 그었다.
검기로도 잘 썰리지 않는 리자드맨의 피부에 한 줄기 선이 생겼다.
“끄, 르륵…….”
푸화악-!
목에서 시뻘건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리자드맨이 눈을 까뒤집더니 무릎을 꿇었다. 3m가 훌쩍 넘는 거구가 기우뚱 뒤로 넘어갔다.
쿠웅-!
녀석이 바닥에 드러눕자 흙먼지가 안개처럼 확 일었다.
“…….”
구경하던 이들은 할 말을 잃었다.
괴물의 피를 뒤집어쓴 정도현은 코를 킁킁댔다. 역한 악취에 표정을 찡그린다.
그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곤 감독관을 바라봤다.
“씻고 와도 됩니까?”
“…아, 예. 그러시죠.”
감독관은 그에게 압도돼서 저도 모르게 허락했다.
정도현은 질척한 걸음으로 요원을 따라 나갔다.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 꽂혔다.
정도현은 한동민 옆을 지나려다 딱 멈춰 섰다.
“금방 씻고 올게요. 약속 지켜요.”
“아, 알았어…….”
피로 목욕한 상태라 그런가.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마치 약속을 안 지키면 가만두지 않겠단 것처럼 들렸다.
한동민은 덜덜 떨면서 겨우 대답했다.
* * *
씻고 돌아온 정도현은 한동민한테 마저 설명을 들었다.
한동민의 말투가 한결 공손해졌다.
“매일 오전에 헬기들이 돌아다니며 보급 상자를 떨구는데, 하루 먹을 식량이 담겨 있어. 그런데 생존자 수보다 항상 적게 주거든. 그럼 어떻게 될까?”
“상자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지겠군요.”
“정답. 플레이어들끼리 싸우다 기절해도 즉시 탈락이야.”
“근데 일주일 정도면… 그냥 밥 안 먹고도 버틸 수 있지 않나요?”
일반인은 탈수 증세가 와서 목숨이 위험할지 몰라도, 플레이어는 충분히 버틸 만했다.
일주일 동안 어디 숨어만 있어도 통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평가 점수는 바닥을 치겠지만.
그 말에 한동민이 고갤 저었다.
“숨겨진 규칙이 있어. 이틀 연속 식사를 거르면 일주일을 버텨도 탈락이야. 실제 던전에서 굶는 건 자살 행위니까. 이거 몰라서 떨어진 초짜들이 수두룩하지. 나도 첫 시험 때 그랬고.”
“하긴, 일리가 있네요.”
즉, 이틀에 한 번은 다른 플레이어와 싸워서 보급 상자를 차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탈락자가 많을 수밖에.
“밤에는 요원들이 돌아다닌다 했죠?”
“맞아. 그래서 마음 편히 잘 수도 없어. 그래서 말인데…….”
한동민은 자신과 파티를 맺자고 제안했다.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 주자고.
“잠을 충분히 못 자도 탈락해.”
“깐깐하네요.”
규칙상 세 명까지 파티를 맺을 수가 있었다. 물론 아군을 배신하는 것도 가능했다.
“좋아요. 같이해 보죠.”
“저, 정말로? 고마워!”
정도현이 흔쾌히 수락하자 한동민이 헤벌쭉 웃었다. 강자에게 고갤 숙이는 것도 하나의 생존 방법이다.
이번 시험을 통과하면 마지막 시험인 대련만 남는다.
그것도 어려운 시험이겠지만 한동민은 거기까진 가 보지 못했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지.’
마지막 시험은 그때 가서 생각하고.
“그런데 요원들을 쓰러트려도 되죠?”
“…뭐?”
“살인마를 공격하면 안 된단 규칙은 없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정도현의 질문에 한동민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섬에 투입된 요원들은 살인마.
즉, 술래 역할이었다. 우린 그들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 생존자고.
그런데 술래를 두들겨 팰 생각부터 하다니. 이게 젊은 혈기인가?
‘이러다 나까지 탈락하는 거 아냐?’
한동민은 불안해졌다. 버스 좀 타려 했는데 버스 기사 상태가 영 이상하다.
과속하다 전복되는 거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