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원 상점-114화 (114/240)

114화

“정도현의 평가 점수가 1등입니다.”

“…뭐라고?”

부하 요원의 보고에 광서혁 팀장은 할 말을 잃었다. 그놈이 1등이라고?

“가장 강한 몬스터를 내보내라고 했잖아!”

“그게… 리자드맨 나이트를 내보냈는데 놈이 그걸 죽였답니다.”

“그걸 죽였다고?”

정도현이 상대한 건 89레벨 변종 리자드맨이었다.

변종이니 동레벨대 몬스터보다 능력치가 훨씬 높다.

그러니 순수 피지컬로는 90레벨 플레이어보다 더 뛰어날 터.

더군다나 리자드맨 정도면 지능이 크게 모자란 종족도 아니었다.

즉, 녀석과 마주쳤으면 초짜는 십중팔구 탈락해야 했다.

‘그런 놈을 처치해?’

85레벨 따위가? 일이 꼬이자 광서혁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권하율, 그 고지식한 년이 괜히 신원 보증을 서 준 게 아니었다.

‘생긴 거랑 달리 뛰어난 재능이 있단 건가?’

광서혁이 85레벨이었으면 5분 안에 못 죽였을 거다. 최소 10분은 걸렸겠지.

당장은 레벨이 낮하지만 가만히 놔두면 쭉쭉 성장해서 역전할지 모른다.

F구역 쓰레기한테 추월당한다니,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팀장님, 이제 어떡합니까?”

“…….”

바로 탈락할 줄 알았던 놈은 보란 듯이 1위로 통과했다.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평범한 방법으론 녀석을 떨어트릴 수 없다는 걸.

“섬에 투입되기로 한 곳, 7팀이었지?”

“예.”

“우리 팀이 대신 들어간다. 7팀 팀장한텐 내가 말해 둘게.”

“…예?”

광서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나면 놈에게 진 기분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막을 거다.

“그놈부터 탈락시킬 거야. 생존자들한테 추적 장치 달려 있잖아. 작전 본부에서 위치 브리핑해 주면 돼.”

“하지만 그건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거잖습니까? 요원들한테 생존자 위치를 알려 주는 건 규칙 위반…….”

“야.”

광서혁이 말을 끊었다. 손가락으로 부하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

“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 말만 들으면 돼. 짬 좀 찼다고 지금 개기는 거냐?”

“…아닙니다.”

“아니면 뭐야. 내가 권하율 그년한테 져서 만만해?”

“아, 아닙니다!”

퍼억-!

광서혁은 부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발끝에 마력이 실려서 다리뼈가 욱신거렸다.

부하는 부러진 것만 같은 다릴 부여잡고 끙끙댔다. 광서혁이 차갑게 말했다.

“똑바로 서.”

짜악-!

고갤 들자마자 따귀를 날렸다.

이번엔 그리 아프지 않았다. 대신 자존심이 갈가리 찢겼다.

광서혁은 그의 뺨을 손바닥으로 연신 두들기며 경고했다.

“잘 좀 하자. 응?”

“…예.”

“가서 일 봐.”

부하는 고갤 숙인 채 조용히 물러났다.

방에서 빠져나온 그의 속마음은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씨발, 좇같은 새끼.’

방금 광서혁이 그에게 한 짓거린 일종의 화풀이였다.

권하율한테 패하고선 평소보다 심하게 부하들을 갈궈 댔다.

게다가 그는 부팀장. 좋든 싫든 광서혁 얼굴을 가장 많이 봐야 했다.

그러다 보니 팀원 중에서 곤욕을 가장 많이 치른 것도 그였다.

‘자기가 약해서 져 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야.’

까놓고 말해서 정도현은 무슨 죄인가?

그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까지 보복한단 말인가.

광서혁의 행동은 어린애처럼 유치했다.

아니, 몸뚱이만 컸지 어린애보다 못했다.

“인생 씨벌….”

그가 구시렁대면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려던 찰나.

띠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 전화인지 확인한 그가 움찔했다.

‘권하율 팀장?’

광서혁을 저렇게 만든 장본인이 연락해 왔다.

광서혁과 그녀의 관계를 생각하면 같은 식구여도 적대 관계나 마찬가지.

그는 잠시 고민하다 전화를 받았다.

“예, 권 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종섭 씨, 잠시 만나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통화로는 힘드십니까?”

[전화로 나눌 만한 내용은 아니라서.]

“…알겠습니다.”

거절할 명분이 없었기에 별수 없이 승낙했다.

그는 광서혁한테 상황을 보고할까 망설이다 관뒀다. 그놈이 여태 해 준 게 뭐 있다고.

‘일단 만나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

이종섭은 그녀가 보낸 주소의 카페로 향했다. 그나저나 이 여자는 또 무슨 꿍꿍이야.

* * *

“왜 불러내신 겁니까?”

“얘기 들었어요. 요새 광서혁 팀장이 자기 팀원들한테 모질게 군다고.”

권하율은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직구를 던졌다.

그 말에 이종섭은 속으로 코웃음 쳤다.

광서혁은 요즘만 그런 게 아니라 쭉 그래 왔다.

다만 요새 손찌검이 잦아지고 수위가 올랐을 뿐이다. 사태를 그렇게 만든 원흉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고.

“글쎄요, 짚이는 게 없습니다만.”

“정말인가요?”

“설사 문제가 있다 쳐도 그건 저희 팀이 알아서 해결할 일입니다. 다른 팀 내정에 간섭하는 건 불문율일 텐데요?”

이종섭은 권하율한테 까칠하게 굴었다.

그녀와 정도현 때문에 정강이랑 뺨을 맞았으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정도현 씨는 건들지 마세요.”

“…예?”

“광서혁 팀장이 면접관을 자진해서 맡았다길래 따로 알아봤습니다. 그가 뒤에서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알아냈죠.”

그녀의 목소리는 잘 벼려 낸 칼처럼 날카로웠다. 이종섭은 속으로 뜨끔했다.

그의 지시를 수행한 건 자신이니까.

‘그 녀석들이 벌써 불었나.’

그는 당연히 아니고 광서혁이 말했을 리도 없다.

그럼 남은 후보는 하나. 전투 시험의 감독을 맡았던 동기들밖에 없다.

하루도 안 지났는데 떠벌렸을 줄이야.

‘동기들도 믿을 게 못 되는군.’

뭐, 권하율은 요원들한테 인기가 상당히 많으니까.

양심에 찔린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 털어놨더라도 이상치 않았다.

괜찮았다. 이쪽에선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증인과 증언만으론 광서혁을 건들 수 없을 터였다. 이종섭은 가면을 쓴 채 대답했다.

“정도현? 그게 누굽니까?”

“연기할 필요 없어요. 그것 때문에 정강이랑 뺨까지 맞으셨잖아요.”

“……!”

이종섭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광서혁의 개인실에서 벌어진 일인데.

그 방에 CCTV는 없다. 방음도 완벽했다. 그러니 누군가가 엿봤을 리 없다.

분명 그럴진대.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그에겐 굉장히 중요했다.

어디까지 알고 불러낸 걸까.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권하율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윗선에 보고하면 광서혁 팀장은 당신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할 겁니다. 꼬리 자르기 당하겠죠.”

이종섭의 표정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그녀가 확실한 물증까지 갖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번 일을 작정하고 폭로하면 관리국이 발칵 뒤집힐 터.

이런 사태를 수습할 땐 희생양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광서혁은 윗선에 뒤를 봐줄 세력이 있다.

그에 비해 이종섭은 부팀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 안 됐다. 파벌에 들어가긴 했으나 그 끈이 얄팍하다.

광서혁과 이종섭. 둘 중 누군가를 쳐 내야 한다면 누굴 쳐 내겠는가.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종섭이 마른침을 삼켰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전 꼬리가 아닌 몸통을. 광서혁 팀장을 몰아내고 싶습니다.”

“몰아낸다고요?”

그녀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굉장히 낯설었다. 그가 알던 권하율은 다른 사람을 견제하거나 경쟁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정말 권하율 본인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혹시 정도현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그녀는 침묵했다. 그것만으로 의미는 충분히 전달됐다.

‘이래서 사랑에 빠진 여자는 무서워.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니까.’

자칫 일이 잘못되면 뒤를 봐 줄 세력이 없는 그녀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텐데.

내 남자는 내 손으로 지킨다는 건가.

정도현이 부러웠다. 저런 미녀한테 그렇게까지 사랑받는다니.

남자로서 성공한 인생 아니겠는가.

“…콜록, 콜록!”

그가 그렇게 생각한 직후. 커피를 마시던 그녀가 사레들린 것처럼 기침했다.

그녀는 실수해서 부끄러운지 귀가 빨개졌다. 이럴 땐 또 허당 같아서 귀엽게 느껴졌다.

“…그런 거 아닙니다.”

“예?”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탁자에 흘린 커피를 냅킨으로 닦고서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실수를 본 덕일까. 이종섭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래서, 어떻게 몰아내실 겁니까? 광서혁 뒤엔 뒷배가 버티고 있어서 쉽지 않을 겁니다.”

“그가 규칙을 직접 어기게 유도할 겁니다. 이종섭 씨가 좀 거들어 주세요.”

권하율은 작전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이 끝나자 이종섭은 말문이 턱 막혔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러했다.

‘그게 가능해?’

그녀의 작전이 성공하려면 정도현이 광서혁과 맞붙어서 이길 수 있어야 한다.

‘85레벨이 94레벨을 뭔 수로 이겨?’

그건 말이 안 됐다.

그런데 권하율은 정도현이 승리하는 걸 전제 조건으로 깔아 뒀다.

아무리 눈에 콩깍지가 씌었어도 그렇지. 정도현을 너무 올려친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예? 그런 거라뇨?”

“…말이 헛 나왔네요. 정도현 씨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종섭의 오해에 권하율은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그녀는 정도현의 진가를 설명했다.

“이번에 토벌한 심장 포식자, 사실은 정도현 씨 혼자서 사살했습니다.”

“예? 그게 무슨…….”

“그가 없었으면 저희 팀은 전멸했을 겁니다. 살려 준 보답으로 신원 보증을 서 준 거고요.”

“그럼… 사귀는 사이가 아닌 겁니까?”

“…아닙니다, 아직은.”

권하율이 선을 딱 그었다. 그러면서 말끝에 여지를 남겼다.

이종섭은 깊이 고민했다.

심장 포식자를 단독으로 처리했다니.

그게 사실이면 광서혁을 제대로 물먹일 기회였다.

“당신은 옆에서 바람만 잡아 주세요, 규칙을 어기고 생존 시험에 난입하게.”

“…만약 그가 넘어오지 않는다면요?”

“이종섭 씨 혼자 독박을 쓰겠죠.”

이건 제안이 아니라 협박이었다. 어떻게든 광서혁을 속여 넘기라는.

이종섭은 그녀와 손을 잡기로 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자신만 죽을 판이니까.

되든 안 되든 광서혁 그놈한테 당한 걸 돌려주고 싶었다.

몇 년간 당하면서 쌓인 분노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한꺼번에 폭발했다.

* * *

정도현이 배를 타고 인공 섬으로 향하던 중, 권하율한테 연락이 왔다.

“광서혁이 시험에 개입했었다고요?”

[네, 면접 때 억지를 부린 것도 그렇고, 몬스터도 무작위가 아니라 특정 몬스터가 소환되게 조작했어요.]

“역시 그랬군요.”

놈이 뒷공작을 펼쳤지만 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번 생존 시험에서도 어떻게든 정도현 씨를 떨어트리려 수작을 부릴 거예요.]

“어떻게 말입니까?”

[섬 중앙에 작전 본부가 있어요. 거기서 생존자의 위치와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죠.]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섬에 투입된 요원들에게 정보를 공유해선 안 된다.

하지만 광서혁은 그 규칙을 어기고 정도현의 위치를 요원들에게 알릴 생각이다.

[본인이 직접 생존 시험의 감독관을 자처했더라고요.]

“예, 아까 봤습니다.”

시선이 느껴져서 고갤 돌렸더니 광서혁이 배에 타 있었다. 그도 살인마 역할을 맡는 걸까.

[팀장, 부팀장은 살인마 역할을 맡아선 안 돼요. 그래선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으니까.]

“하긴, 팀장급이 나서면 보이는 족족 잡히겠죠.”

그렇게 되면 형평성은 물론이고 생존 시험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실력은 쥐뿔도 없는데, 운 좋게 통과하는 사람들이 속출할 테니까.

[전 그 점을 노렸어요.]

“그 점을 노렸다니, 무슨 소립니까?”

[정도현 씨는 요원들이 접근하는 족족 쓰러트리세요. 그렇다고 너무 과하지 않게, 적당히만 실력을 드러내 주세요. 그럼 광서혁 팀장도 안달이 날 겁니다.]

무슨 소린지 대충 이해가 됐다.

“답답하면 본인이 뛰든가. 뭐, 그런 전략인가요?”

[정확해요.]

과연. 스스로 규칙을 어기도록 함정을 팠단 건가.

“하지만 마주치면 정체를 들킬 텐데요?”

[투입되는 요원들은 은둔자의 로브를 두르고 있어요. 탈락한 사람이 요원한테 항의하거나 보복하려 들 수도 있으니까요.]

“과연. 요원의 신상정보는 감추는군요. 그럼 광서혁이 몰래 끼어들어도 모르겠네요?”

[네, 하지만 정도현 씨가 제압해 버리면 얘기가 달라지죠.]

그녀의 작전은 정도현 마음에 쏙 들었다. 그가 할 일은 아주 단순하다.

덤벼드는 요원들을 전부 제압하면 된다. 단, 힘 조절은 적당히 해야 한다.

광서혁이 겁을 집어먹고 아예 꼬릴 말 수도 있으니까.

“놈이 규칙을 어기고 끼어든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시험의 공정성을 망쳤으니 걸리면 징계를 받겠죠. 최소한 본부에서 퇴출당할 겁니다.]

C구역 변경으로 쫓겨난다 이건가.

엘리트 의식에 찌든 녀석이니 꽤 굴욕적이리라.

* * *

해가 저물자 요원들이 탄 헬기 몇 대가 인공섬 상공을 누볐다.

요원들은 각자 맡은 구역으로 낙하했다.

“놈의 좌표를 전송했다. 신속히 처리해.”

[예.]

섬의 동쪽 구역에 떨어진 요원 두 명은 광서혁의 은밀한 지령을 받았다. 정도현부터 탈락시키라고.

규칙 위반이었지만 정도현의 위치도 공유해 줬다.

놈은 곧 제압되어 작전 본부로 끌려오리라.

광서혁은 그를 비웃을 생각에 실실 웃었다.

“정도현과 한동민이란 플레이어가 파티를 맺었군요.”

“그래? 억울해도 뭐, 어쩌겠어. 다 개인의 선택인데.”

이종섭의 보고에 광서혁은 낄낄댔다.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됐는데도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요원들이 강하한 지 십여 분이 지나자 정도현을 발견했단 교신이 왔다.

[타깃을 발견했습니다.]

“좋아. 바로 해치워 버려.”

그 뒤로 십 분이 지났다.

광서혁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요원들을 호출했다. 그러나 둘 다 응답하지 않았다.

“이거 왜 먹통이야? 장비 이상인가?”

“아뇨. 확인해 보니 통신엔 이상이 없습니다.”

“그럼 왜 안 받는데.”

“아무래도… 정도현한테 당한 것 같습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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