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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81화 (81/240)

81화

세계수의 열매.

일반인이 먹어도 노화를 늦춰 주고 어지간한 질병에 걸리지 않게 된다.

그럼 그걸 플레이어가 먹으면 어떻게 될까?

‘각종 질병은 물론이고 저주 주문에 대한 강한 내성이 생기지.’

그래서 정도현은 「블러드 베놈」을 맞고도 재채기만 하고 말았다.

비장의 주문이 안 먹혀서 큰 충격을 받은 탓일까. 황규진의 얼굴이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정도현이 칼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치료제 만드는 재료 뭐야? 지금 말하면 곱게 죽여 줄게.”

서아린과 박성원은 엘릭서 덕분에 괜찮아졌지만, 거리에 쓰러진 시민들은 치료제가 필요했다.

‘엘릭서는 일주일에 달랑 5개밖에 못 사.’

물론 남들이 볼 땐 5개도 많겠지만, 시민들을 구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설사 엘릭서가 충분히 있다 한들 그걸 시민들한테 냅다 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엘릭서는 고레벨 연금술사들만 제작할 수 있는 희귀한 아이템.

일개 D구역 플레이어가 지닐 만한 물건은 아니니까.

“크, 흐흐…….”

황규진은 실성한 사람처럼 킥킥댔다.

그러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그걸 내가 왜 알려 줘야 하는데?”

황규진은 싸움에서 패했지만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그래서 순순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정도현은 황규진의 징그러운 오른팔을 흘끔 봤다.

‘저거 인체 실험한 거 같은데. 저러면 몬스터로 취급되겠지?’

그럼 죽였다 살려서 입을 열게 만드는 방법은 쓸 수 없다.

놈이 스스로 불지 않으면 제시간 안에 치료제를 구할 방도가 없었다.

‘위독한 사람만 수십 명은 훌쩍 넘을 거야. 감염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테고.’

플레이어보다 한참 약한 일반인의 몸으론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터.

정도현은 황규진을 빤히 노려봤다.

그러자 녀석이 칼자루를 거머쥔 것처럼 히죽 웃었다.

“정 알고 싶으면 나랑 거래하지 않겠나? 치료제의 재료를 알려 주지.”

“대가는?”

“날 곱게 놔줘.”

황규진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 생각했는지 여유만만하게 웃었다.

그러자 정도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질문했다.

“그렇게 재밌어? 사람 목숨 갖고 노는 게?”

“큭큭! 이보다 더 즐거울 수 없지!”

“그럼 나도 한번 즐겨 볼까.”

“…뭐?”

뜬금없는 말에 황규진이 눈을 끔뻑였다. 방금 이 녀석이 뭐라고 지껄인 거지?

툭.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큼직한 양동이를 꺼냈다.

“뭐야? 지금 뭘 하려는…….”

정도현은 양동이에다 성수를 가득 채웠다.

황규진은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지만, 정도현이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저번에도 너 같은 놈들이 있었어. 물이 답을 알더라고.”

“자, 잠깐만!”

푸확!

그대로 머리를 쑤셔 넣자 흑마력과 성수가 맹렬히 반발했다.

치지직-!

쓰라림과 함께 피부가 문드러졌다.

불에 달궈진 것처럼 몸속의 피가 뜨겁게 들끓는다.

황규진이 벗어나려 마구 버둥댔지만 마법사의 부족한 근력으로는 떨쳐 낼 수 없었다.

* * *

정도현은 강민겸 지부장한테 치료제 재료들을 알려 줬다.

다행히 구하기 어려운 재료는 없었다.

덕분에 역병에 걸린 시민들은 늦지 않게 치료받을 수 있었다.

사상자가 아예 없진 않았으나 십수 년 전 그 악명 자자한 역병술사의 짓임을 감안하면 선방한 셈이었다.

강민겸은 이번 일을 대외적으로 알려 정도현 일행의 공로를 치하하고 싶었으나 정도현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가 관리국에 공을 양보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런 거로 유명해지면 그만큼 적도 많이 생길 테니까. 그럼 상당히 귀찮아질 거다.

‘1레벨 올렸으면 됐지.’

아쉽게도 이광식과 싸웠을 때보다 경험치는 훨씬 적게 들어왔다.

이광식보다 레벨도 낮았지만, 세계수의 열매 덕에 너무 수월히 이겨 버린 게 주요했다.

그래도 1레벨은 올라서 다행이다. 이제 72레벨이 되었다.

“도현 씨한테 늘 도움만 받고. 정말 면목 없습니다.”

박성원이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정의집행」의 힘으로 황규진을 쓰러트릴 수 있었는데도 결과적으로 패했다.

여태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없어 본능적으로 살인에 거부감을 느껴 망설인 탓이었다.

그 탓에 하마터면 그와 서아린 그리고 시민들마저 다 죽을 뻔했다.

그가 자책하자 정도현이 고갤 저었다.

“아뇨, 그때 황규진을 죽였으면 시민들도 못 구했겠죠.”

“도현 씨 말이 맞아요. 그러니 표정 좀 풀어요. 박수무당 씨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서아린도 한마디 거들자 박성원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정작 서아린은 죽상이었다.

‘난 별 도움이 안 됐어.’

박성원은 정도현이 도착할 때까지 고군분투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 전투에 이바지한 게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한 거라곤 황규진의 시선을 잠시 끌어 박성원을 살린 것 정도.

그마저도 정도현이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대로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다.

서아린은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분개했다.

‘더 강해지고 싶어.’

마냥 보호받는 게 아니라 정도현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의 옆에 당당히 서고 싶었다.

서아린의 눈동자에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자극이라도 받은 건가?’

정도현은 그런 그녀를 기특하게 바라봤다. 저번에 알아낸 팁을 알려 줘야겠다.

“지금보다 경험치를 더 많이 얻는 방법이 있는데, 한번 도전해 볼래?”

“정말요? 그게 뭔데요.”

“장비 템을 안 좋은 거로 바꿔 껴. 그럼 전투가 한층 어려워져서 경험치를 더 받더라.”

“…….”

그 말에 그녀가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일부러 안 좋은 장비를 끼라고요?”

“그건 너무 위험한 거 아닙니까?”

“대신 효과도 확실해요.”

바로 노말 등급으로 낮추면 적응하기 어려울 테니, 일단 레어 등급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강화 수치도 조금씩 낮추고.

정도현의 세세한 설명에 서아린은 말문이 턱 막혔다.

‘무슨 운동 루틴 설명하듯이 말하지?’

서아린은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레벨에 대한 그의 집착만큼은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

* *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정도현 일행은 D구역 플레이어들 사이에 조금씩 소문이 났다.

고작 세 명끼리 던전을 공략하는 경우는 잘 없었으니까.

“세 명 다 E구역에서 올라왔다고?”

“예, 게다가 둘은 F구역 출신입니다.”

“흐음…….”

유명해지면 그만큼 적이 늘어난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었다.

정도현 일행의 활약이 레드 플레이어들 귀에도 서서히 들어갔다.

그중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길드장도 있었다.

레드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그리핀 길드. 그곳의 대표, ‘임세준’.

그는 동부 지역에서 상당한 거물로 유명했다.

“F구역에서 여기까지 올라와? 이놈은 제법 근성 있네. 마음에 들어. 합격.”

임세준은 정도현의 사진을 보며 그렇게 평가했다.

이어서 서아린의 사진을 끈적한 시선으로 훑어봤다.

“얼굴 반반하네. 얘도 합격.”

그는 마지막 일원, 박성원의 사진을 살펴봤다. 그러더니 표정을 확 찌푸렸다.

“씨벌, 더럽게 잘생겼네.”

키도 크고 훤칠한 데다가 인상도 선했다. 딱 봐도 여자들한테 인기 많아 보인다.

임세준은 사진들을 바닥에 내버리며 말했다.

“저 새낀 마음에 안 드네. 불합격. 죽여 버려.”

“알겠습니다. 애들 보내서 둘만 데려오겠습니다.”

“그래, 말 안 들으면 적당히 쥐어 패서 끌고 와.”

임세준은 그렇게 말한 뒤 고갤 돌려 어딘가를 쳐다봤다.

거기엔 꾀죄죄한 소녀가 있었다. 나이는 막 초등학교에 들어갈 정도.

소녀는 바닥에 떨어진 사진들을 줍고 있었다.

“야, 물건 준비는 어떻게 돼 가고 있어?”

“아…….”

임세준의 부름에 소녀는 퍼뜩 굳었다.

그녀가 덜덜 떨며 겨우 대답했다.

“그, 그게… 약의 순도가 떨어지고 시간도 부족해서…….”

“그래서, 뭐?”

“지난달에 만든 것보다 질이 떨어질 것 같아요……. 꺄악!”

쨍그랑-!

남자가 소녀 옆으로 빈 소주병을 집어 던졌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녀는 두 팔로 얼굴을 감싼 채 바짝 몸을 웅크렸다.

유리 조각에 살짝 긁혔는지 팔뚝에 빨간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품질을 올리진 못할망정, 저번보다 못 만들면 어떡해!”

“죄, 죄송합니…….”

“능력 좀 쓸 만해서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일을 그따위로밖에 못 하냐? 엉?”

임세준이 성난 눈으로 노려보자 그녀가 무릎 꿇고 죄송하다며 싹싹 빌었다.

“다음 주 납품일까지 지난번 품질이랑 똑같이 만들어.”

“흐윽, 네…….”

“재수 없게 질질 짜지 말랬지?”

꽈악-!

임세준이 소녀의 귀를 쭉 잡아당겼다.

귓불 아래로 피가 뚝뚝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만 찔끔 흘렸다.

아파도 참아야 한다.

여기서 소릴 질렀다간 저번처럼 뺨도 맞으리라.

캬악, 퉷!

임세준은 바닥에 가래침을 탁 뱉곤 손을 놨다.

“뭐 해? 들어가서 일해.”

“네…….”

휴식 시간은 아직 10분 넘게 남았지만 그녀는 군말 없이 작업실로 돌아갔다.

몇 년 전, 여기 처음 왔을 때 말대꾸하다 임세준이 노발대발했다.

그 대가로 그녀는 며칠 내내 독방에 갇혀서 굶어야만 했다. 입에 댈 수 있는 건 오로지 물뿐이었다.

‘다음 주까지 끝내려면 시간이 모자라.’

잠자는 시간을 좀 줄여야겠다.

납품일에 맞추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답답하고 지긋지긋한 작업실로 돌아와 작업대에 놓인 물건들을 집었다.

하얀 가루가 가득 담긴 작은 봉투.

이건 음지에서 거래되는 싸구려 마약이었다.

“후…….”

소녀는 봉지를 뜯어 가루를 전부 작업대 위에 쏟았다.

그녀가 눈을 감고 집중하자 손바닥에 황금빛 마력이 모였다.

그 다음 마약으로 반죽을 빚어 내듯 만지작댔다.

우웅-!

신기하게도 가루가 그녀의 마력을 머금고 서서히 동그란 구슬처럼 뭉쳐졌다.

그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한숨 돌렸다.

[최하급 마약으로 환약을 제조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그녀의 개인 특성, 「연단술」이었다.

온갖 약물이나 약재 혹은 포션 등에 마력을 소모하여 약효를 영구히 상승시킨다.

게다가 강화된 약물은 이렇게 조그만 구슬 형태로 뭉쳐진다. 그래서 보관과 섭취에도 간편했다.

그녀는 마약 가루를 전부 환약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이윽고 수십 개의 마약 구슬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작업은 이제 시작이었다.

“허윽, 헉…….”

그녀가 지친 얼굴로 방금 만든 환약을 몇 개씩 움켜쥐고 하나로 뭉쳤다.

한 번씩 강화했던 것들을 또 합치면 약효도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된다.

대신 합치는 시간과 소모되는 마력도 그만큼 많아졌다.

주룩.

그녀가 코피를 흘렸다.

“아…….”

머리가 핑 돌았다. 마력 고갈의 전조였다.

그녀는 능숙하게 코를 틀어막고 임세준이 놔둔 마력 포션을 한 병 사용했다.

그래 봤자 최하급 포션. 마력은 느릿하게 차올랐다.

그녀의 능력 덕에 그리핀 길드는 불과 삼 년 만에 D구역 마약 시장을 휘어잡았다.

그런데도 그녀에게 돈을 투자하는 건 아까워했다.

“흐윽, 흑…….”

그녀는 너무 힘들어서 훌쩍댔다.

혹여나 밖에 있는 임세준이 소릴 들을세라 바짝 숨죽여야만 했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이 지옥에서 꺼내 줬으면 좋겠다.

그녀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능력을 쓰고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 * *

“그리핀 길드?”

“예, 옙! 동부에선 꽤 유명합니다.”

정도현 앞에 공손히 무릎 꿇은 사내들.

이들은 임세준이 보낸 그리핀 길드원이었다.

던전 공략 중에 멋대로 따라 들어와선 협박을 하길래 죄다 죽이고 되살렸다.

“왜 따라왔어.”

“스, 스카우트 제의입니다.”

“스카우트 좋아하시네. 길드에 안 들어가면 죽일 거잖아? 그게 스카우트냐? 공갈 협박이지.”

“…….”

아무도 대꾸를 못 했다. 전부 사실이니까.

정도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왜 이놈이고 저놈이고 가만히 놔두질 않는 걸까.”

“이제 어쩔 거예요?”

“어떡하긴. 뺨을 맞았으면 맞은 만큼 갚아 줘야지.”

뺨은 맞지도 않았고 역으로 너희가 우릴 죽였잖아.

그리핀 길드원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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