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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82화 (82/240)

82화

그리핀 길드장, 임세준은 C구역에서 온 귀빈을 맞이했다.

그가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를 올렸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뭘, 고생까지야. 그보다 자네가 저번에 보내 준 샘플, 고객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귀빈이 자리에 앉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의 칭찬에 임세준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리핀 길드는 불과 몇 년 만에 D구역의 마약 사업을 장악했다.

다른 암흑가 조직에서 유통하는 마약들은 품질이 떨어져서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역시 우리 물건은 C구역에서도 충분히 먹혀.’

D구역을 커다란 섬이라 치면 C구역은 대륙에 가까웠다.

C구역의 다섯 지방 중 한 곳이라도 꽉 잡으면 D구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우습게 느껴질 터.

눈앞의 사내는 그의 원대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동아줄이었다.

[차상훈] [LV.86]

‘차상훈’. 그는 C구역 동부 지역의 마약 브로커로 그중에서도 제법 큰 손이었다.

C구역 플레이어, 정계 및 관리국 고위층한테도 마약을 공급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임세준은 D구역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판단, 지난 달에 차상훈과 접촉했다.

처음엔 시큰둥해했지만 샘플을 보내 주자 관심을 보였다.

‘나도 이제 큰물에서 노는 거야.’

레벨? 좋은 집안?

못 올라갈 나무는 애초에 쳐다도 보지 말랬다.

그는 자신의 한계점을 통감했다.

이 이상 레벨을 올리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지.’

연단술을 지닌 여자애를 수중에 넣었다. 그 애만 있으면 돈을 쓸어담을 수 있다.

물론 과욕을 부리면 배가 찢어지겠지만, 그는 주제 파악 못 하는 병신이 아니었다.

그는 차상훈의 오른팔 자리.

더 나아가 그의 사업을 물려받을 후계자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대량 생산을 못 한다는 게 아쉽군.”

“흔하지 않아야 가치도 더 오르는 법 아니겠습니까?”

“후후, 그 말도 맞네. 자네 샘플을 맛본 고객들은 그 뒤로 다른 제품에 영 손이 안 간다더군.”

여타 제품보다 가격이 비싼데도 기꺼이 구매했다.

게다가 그리핀 길드의 제품은 순도가 한참 떨어지는 싸구려 마약을 원료로 제조했다.

그러니 마진도 엄청나게 남는다.

임세준은 싸구려를 고급스럽게 포장하고 차상훈이 그걸 팔아 준다.

이대로만 가면 차상훈은 동부의 마약왕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마약 말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다면서?”

“아, 네. 이겁니다.”

“이건 뭘 써서 만든 건가?”

“도핑제입니다.”

“…도핑제?”

임세준이 꺼낸 건 도핑제를 이용해 만든 환약이었다.

그러자 차상훈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도핑제.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잠시 동안 끌어올려 주는 소모성 아이템이다.

효과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지속 시간이 너무 짧고 일회용이라서 수요가 거의 없었다.

도핑제 살 돈으로 차라리 회복 포션을 하나 사고 말지.

“아이템 정보를 살펴보시죠.”

“……!”

차상훈이 눈을 크게 떴다.

도핑제로 만든 환약의 지속 시간은 무려 30분이었다.

원본은 끽해야 3~5분이 한계일 텐데?

“재료는 얼마나 들었지?”

“하급 도핑제 너덧 개를 합쳐 만든 겁니다.”

“허.”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도핑제가 외면받은 이유는 가격 대비 효율이 떨어져서인데, 이 정도 지속 시간이면 제 값어치를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이다.

게다가 하급 도핑제만 쓴다면 원가도 그리 비싸지 않다.

‘이게 있으면 던전 공략의 판도가 뒤바뀌겠어.’

우선 던전 사고 빈도가 확 줄겠지.

쓸지 안 쓸지도 모르고 유통 기한도 짧은 회복 포션을 살 바엔 이 도핑용 환약을 사리라.

돈 냄새가 물씬 풍긴다. 대박 상품이었다.

“나쁘지 않군. 내 따로 판매처를 알아보지.”

“감사합니다!”

임세준은 해냈단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 그는 차상훈에게 있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적어도 먼저 버려질 일은 없을 거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임세준은 차상훈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예약해 둔 맛집으로 가고자 방을 나가려 할 때.

쿠당탕! 쾅!

아래층에서 뭐가 넘어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비명도 울려 퍼진다.

차상훈이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무슨 소란이지?”

“저, 저도 잘…….”

임세준도 심히 당황했다.

들리는 소리로 봐선 아지트에 적이 쳐들어온 것 같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됐다.

이곳 동부 구역에서 그리핀 길드를 급습할 만한 세력은 없었다.

관리국 마약 단속반이라면 불시에 들이닥쳐서 뒤엎을 수 있겠지만, 동부의 팀장급 요원들한테 뇌물을 듬뿍 먹여 뒀다.

그러니 지금 아래층에서 깽판을 치고 있는 건 단속반도 아닐 터.

‘대체 어떤 새끼야?’

누군진 몰라도 하필 차상훈이 찾아온 날에 이러다니. 자존심 제대로 구겼다.

그리핀 길드는 동부를 꽉 잡고 있어서 다른 조직과 분쟁이 벌어질 일은 없다고 했는데, 졸지에 거짓말을 해 버린 셈이 됐다.

“제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니, 무슨 일인지 확인해야겠네.”

차상훈의 목소리에서 옅은 불신이 묻어 나왔다.

역시나 신뢰에 악영향이 갔다.

임세준은 분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디서 온 놈들인진 몰라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 * *

임세준과 차상훈이 내려왔을 때 아래층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길드원 절반가량이 바닥에 엎어져 끙끙댔다.

다행히 죽진 않았지만 팔이나 다리가 뚝 부러져서 전투 불능 상태가 됐다.

나머지 길드원들은 침입자들을 빙 에워싼 채 겁에 질려 있었다.

웃긴 건 침입자는 고작 셋뿐이었다.

수십 명이 세 명에게 발이 묶여 있었다.

“너, 너흰……!?”

임세준은 침입자들이 누군지 대번에 알아챘다.

길드 아지트를 습격한 건 정도현 일행이었다.

이틀 전, 부하들에게 데려오라고 지시했는데 잘 설득했다는 답신이 왔었다.

그래서 오늘 아니면 내일쯤 오겠거니 하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저놈들보단 차상훈을 대접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여길 쳐들어올 줄이야.

“아는 녀석들인가?”

“아, 그게…….”

차상훈이 미심쩍단 눈으로 임세준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게, 정도현은 75레벨, 서아린과 박성원은 각각 67, 66레벨이었기 때문이다.

레벨이 그리 높진 않았다.

그런데 길드원들이 꼴사납게 당해 버렸다.

그리핀 길드가 동부 일대를 주름잡고 있단 말이 사실인지 의심될 지경.

아무리 좋은 물건을 생산할 수 있어도 그걸 지켜 낼 힘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당황한 임세준이 애써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별것 아닙니다.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임세준은 그렇게 말하고 정도현 일행에게 다가갔다.

눈치를 살피던 길드원들이 옆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임세준이 분을 삭인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게 무슨 짓거리지?”

“부하 교육이 엉망이던데. 공략 중인 던전에 들어와선 우릴 협박하더라고. 그래서 따지러 왔지.”

“…하.”

임세준은 어처구니없단 표정을 지었다.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지.

그는 주먹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내가 지금 중요한 사업 얘기 중이었거든? 그런데 너희 때문에 체면 다 구겼어. 그러니까…….”

임세준이 정도현을 향해 와락 달려들며 외쳤다.

“뒈져, 이 개새끼야!”

주먹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정도현은 검을 휘둘러 가볍게 쳐 냈다.

쩌엉-!

서로의 공격이 부딪혔고 충격파가 짧게 일었다. 그다음 광경에 길드원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윽!”

임세준이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반면에 정도현은 칼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에게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바, 방금…….”

“길드장님이 밀린 거야?”

부하들의 웅성거림이 귓가에 맴돈다.

임세준은 이를 꽉 물었다. 내가 저딴 놈한테 밀리다니.

아냐, 방심해서 그런 거다.

임세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달려들었다.

타다다다당-!

날아드는 주먹들을 칼로 쳐 냈다.

정도현은 여전히 여유로웠고 임세준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 갔다.

‘뭐, 뭐야?’

아무리 때려도 뚫리지 않았다.

순간 정도현이 거대한 장벽처럼 보였다.

이럴 리 없다!

나는 78레벨이고 녀석은 75레벨.

이들 기준에서 3레벨 차이면 유의미한 격차였다.

75레벨 플레이어 두세 명이 동시에 덤벼야 임세준과 동수를 이룰 터.

그렇다고 장비 템이 딱히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촤악-!

선혈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임세준의 주먹이 찢어지며 흘러나온 피였다.

검기가 주먹에 모인 마력을 깨부순 것이다.

그다음부턴 정도현의 일방적인 폭력이 이어졌다.

퍼버버벅-!

정도현은 임세준의 단단한 몸뚱이를 훈련용 허수아비처럼 두들겼다.

“크악! 컥!”

임세준은 반격하거나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정도현은 그의 움직임을 전부 예측했다.

그러자 남들 눈에는 임세준이 일부러 맞아 주는 것처럼 보였다.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다.

“컥! 그, 그만…….”

임세준의 몸 곳곳에 상처가 생겼다.

몸을 지켜 주던 마력 갑주마저 검기에 갈가리 찢긴 것이다.

“뭐, 뭣들 하고 있어! 이 새끼 죽여!”

궁지에 몰린 임세준은 다급히 부하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길드원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달려들었다.

“떨거지들은 저희가 맡을게요.”

탓-!

서아린이 그렇게 말하며 싸움에 난입했다. 박성원도 창과 방패를 앞세워 길드원들을 막아 세웠다.

덕분에 정도현은 방해받지 않고 계속 팰 수 있었다.

“컥! 끄억! 이, 이 씨발 새끼가!”

“시끄러우니까 입 닥쳐.”

“커헉!?”

퍼억! 퍽!

칼날을 옆으로 눕혀 후려쳤다. 칼질이 아니라 매질이었다.

임세준은 이제 저항도 못 하고 웅크린 채 두들겨 맞았다.

“쯧, 가관이군.”

정도현의 공격이 멈췄다.

그는 뒤에서 뒷짐을 진 채 구경하는 차상훈을 발견했다.

그를 보며 정도현이 중얼댔다.

“닭다리가 하나 더 있었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아, 그런 게 있어.”

차상훈이 이해 못 해서 고갤 갸웃했다.

갑자기 웬 닭다리 타령인가.

정도현은 주저앉은 임세준의 머리채를 붙잡고 강제로 고갤 쳐올렸다.

“너, 그리핀 길드장 맞지?”

“예, 옙… 맞습니다!”

“그럼 쟨 또 뭐야. 너 바지사장이었어?”

“아, 아닙니다. 저분은…….”

임세준이 뭐라 대답하려던 찰나.

스릉-!

차상훈이 단검을 두 자루 꺼내 역수로 쥐었다.

그가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채앵-!

정도현은 임세준을 발로 차 옆으로 밀쳐 낸 뒤, 칼을 휘둘러 단검들을 막아 냈다.

그러자 차상훈이 감탄했다.

“확실히 움직임부터가 다르군. 임세준을 가지고 놀 만해.”

그는 정도현의 빠른 반응 속도에 감탄했다.

“정도현 자네, 내 밑에서 일해 볼 생각 없나?”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정도현이 힘으로 밀어붙이자 차상훈은 유연하게 손목을 꺾어 단검을 비틀었다.

카가각!

칼날이 물 흐르듯 미끄러졌다.

상대의 깔끔한 대처에 정도현도 인정했다.

차상훈은 레벨만 높은 게 아니다. 전투 센스를 타고났다.

채채채챙-!

둘은 공방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눴다.

“내 밑으로 들어오면 큰돈을 벌게 해 주지. 어떤가?”

“필요 없어.”

“다시 생각해 봐. 여기서 죽기엔 자네 재능이 너무 아까워.”

차상훈은 욕심 그득한 눈으로 정도현을 바라봤다.

전력을 다한 건 아니지만, 75레벨이 86레벨 상대로 버티다니.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남에게 고갤 숙이는 성격이 아니군.’

그럼 어쩔 수 없지. 힘으로 찍어 눌러 강제로 굴복시키는 수밖에.

팟-!

차상훈이 다시 사라졌다. 그는 정도현의 배후로 돌아 단검을 찔러 넣었다.

카앙-!

정도현은 등에 눈이 달린 것처럼 보지도 않고 막아 냈다. 차상훈은 다시 사라졌다.

채앵! 채재쟁!

차상훈이 정도현 주위를 빙빙 돌면서 공격을 날렸다. 정도현은 제자리에서 전부 막아 냈다.

“어, 어떻게…….”

차상훈 덕에 겨우 목숨을 건진 임세준.

그는 둘의 싸움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차상훈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흐릿한 잔상만 보였다.

더 놀라운 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공격을 정도현은 전부 막아 낸단 점이다.

“뭘 그리 재밌게 구경해?”

“……!”

퍼억-!

임세준의 관자놀이에 발차기가 꽂혔다.

싸움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린 그를 서아린이 순식간에 제압했다.

척.

서늘한 칼날이 그의 목젖에 닿았다.

“히, 히익!”

임세준이 비명을 지르자 정도현이 그쪽으로 한눈을 팔았다.

‘지금이다.’

차상훈이 눈을 빛내며 그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퍼억-!

정도현은 그대로 벽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도현 씨……!?”

서아린이 걱정돼서 애타게 부르자, 벽의 잔해물을 치우며 그가 일어났다.

그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말했다.

“내 닭다리 건들지 마.”

“…안 뺏어요.”

그의 경험치 욕심에 서아린은 못 살겠단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해 준 내가 바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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