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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77화 (77/240)

77화

약속 시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납치범, 이광식은 유태민 길드장이 올 동안 술을 몇 병 더 마셨다.

복수를 끝마치고 관리국에 체포되면 마시고 싶어도 더는 못 먹을 테니까.

“내 살다 살다 해방단 놈들 덕을 볼 줄은 몰랐어.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광식은 취기가 제법 올랐는지 묻지도 않은 자신의 과거를 상세히 털어놨다.

던전 사고로 아내가 죽었던 날.

그는 분노에 휩싸여 유태민 암살을 시도했고 실패했다.

“힘이 부족했어. 레벨을 더 올려야만 했지.”

안 그럼 유태민을 죽일 수 없었다.

그는 레드 플레이어가 되어 수라의 길을 걸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것도 컸지만, 사과 대신 실수였다는 둥 사고였다는 둥 변명만 해 대던 유태민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동료들에게 배신당해 관리국에 붙잡혔고, C구역 수용소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렇게 이십 년 가까이 독방 생활을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일까.

마음이 차분해졌다.

내 분노와 원망도 전부 사라졌구나.

유태민을 용서했다. 그건 안타까운 사고였음을 인정했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탈옥하고서 깨달았다.

그는 유태민을 용서한 게 아니었다.

복수할 수 없으니 그저 편해지고자 자신의 마음을 속였을 뿐이다.

“하늘이 날 돕고 있다고. 흐흐…….”

이광식은 미치광이처럼 실실 웃었다.

위잉-!

그런 그에게 정신 차리라 말하듯 휴대폰이 울렸다.

이광식은 번호를 확인하곤 곧바로 받았다.

“어, 지금 어디야? 이제 시간 얼마 안 남았어.”

[거의 다 도착했어! 내 아들, 준후 무사하지? 제발 바꿔 줘. 목소리라도 좀 들려 달라고!]

“그렇게 궁금하면 여기 와서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던가.”

[자, 잠깐만!]

통화를 끊으려고 하자 유태민이 다급히 불러 세웠다.

[…미정이 사건 때문에 이러는 거지?]

“그럼 그거 말고 또 뭐가 있는데?”

아내의 이름을 언급하자 이광식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화를 내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정말 미안하다. 전부 내 잘못이야.]

“닥쳐! 애당초 네놈이 욕심만 안 부렸으면 미정이도… 나도 이렇게 안 됐어!”

이광식이 버럭 소릴 지르자, 옆에 있던 유준후가 놀라서 움찔했다.

그 반응에 이광식이 고갤 돌렸다.

그러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들이 살아 있나 궁금하댔지? 지금 목소리 들려줄 테니 똑똑히 잘 들어.”

[아, 안 돼! 그만둬!]

유태민은 무언가 불길함을 느끼고서 다급히 외쳤지만, 이광식은 멈추지 않았다.

뚜두둑-!

그는 유준후의 검지를 붙잡아 역방향으로 확 꺾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폐공장에 비명이 쫙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그만해! 지랄할 거면 나한테 하라고!]

뚝.

이광식은 더 듣기 싫은지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었다.

위잉! 위잉!

휴대폰이 계속 울려 댔다.

그는 휴대폰을 짓밟아 아예 깨부쉈다.

그러자 조용해졌다.

“끄, 끄흐으…….”

그러는 동안 유준후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헐떡댔다.

부러진 손가락이 퉁퉁 붓고 시퍼렇게 변했다. 이광식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곧 녀석이 올 거다. 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잘 지켜봐.”

그렇게 말하고서 몇 분이 지났다.

드르륵-!

폐공장의 입구가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유태민] [LV.83]

마침내 도착했다.

유태민은 아들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약속대로 왔다. 그러니 내 아들은 풀어줘.”

“아니, 그 전에 우리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툭.

이광식은 그렇게 말하며 단검을 던져 줬다.

그리곤 유준후의 멱살을 한 손으로 붙잡고 들어 올렸다. 언제든지 죽여 버릴 수 있도록.

“아, 아버지…….”

유준후가 애처롭게 아버지를 쳐다봤다.

유태민은 보는 것도 괴로운지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그가 단검을 주워 들며 말했다.

“…이걸로 자해하라고?”

“그래, 그럼 네 아들은 살 수 있어.”

“그 말을 나보고 믿으란 거냐?”

유태민이 고분고분 따르지 않자 이광식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아까처럼 인질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유태민이 뭐라 말릴 틈도 없이.

꽈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끄아아악! 아윽!”

유준후가 목이 찢어지라 울부짖었다.

그러자 유태민이 다급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만해!”

“그럼 빨리 칼로 찔러! 다음은 모가지를 꺾어 버릴 테니까.”

이광식이 광기에 찬 눈을 부라리며 그리 외쳤다.

진짜로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유태민은 그의 기세에서 밀린 듯 주춤댔다. 그러더니 단검을 천천히 가슴팍에 겨눴다.

“아, 안 돼요…….”

그걸 본 유준후가 고갤 저었다. 그러지 말라고 외치려던 순간.

푹-!

단검이 유태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상의에 붉은 얼룩이 장미꽃처럼 피어나더니 그가 피를 왈칵 토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유준후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 아아…….”

이광식은 유준후를 팔뚝으로 꽉 붙든 채 천천히 유태민 쪽으로 접근했다.

스스로 급소를 찔렀지만, 유태민은 아직 죽지 않았다.

“마무리는 확실하게 해야지.”

꽈악-!

이광식은 무력해진 유태민을 그대로 넘어뜨려 목을 붙잡았다.

이제 인질은 필요 없다. 유준후는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이광식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태민아, 그때랑 상황이 정반대네? 그러길래 그때 왜 망설였어. 날 죽였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응?”

“끄, 으으…….”

뒤로 나뒹굴던 유준후가 눈을 부릅떴다.

아버지가 망설였다고?

그럼 아버지는 자길 죽이러 찾아왔던 이광식한테 자비를 베풀어 줬단 말인가.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아버지는 당신을 살려 줬잖아!”

유준후가 그렇게 외쳤지만, 이광식은 눈 하나 꿈쩍 안 했다. 오히려 입가에 조소를 머금는다.

“네 알량한 자비 때문에 난 괴롭고 비참한 시간을 보냈어. 차라리 그때 죽는 편이 나았을 정도로!”

“그렇게 힘들면… 그냥 자살하면 됐잖아!”

“하! 나만 소중한 걸 잃고 괴롭게 살다 뒈지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이 새낀 가족이랑 행복하게 잘 사는데?”

이광식은 탈옥하고서 유태민이 그간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D구역까지 내려와 정보를 수집했다.

유태민은 그와 달리 너무도 행복한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소규모였던 달빛 길드는 이제 D구역에서 손꼽히는 길드로 성장했다.

유태민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성실하고 훤칠한 아들을 낳았다.

“왜 나만 고통받아야 하는데? 미정이가 왜 죽어야 했냐고!”

“끄… 이, 이젠… 못 버텨… 형, 도와…….”

유태민의 입에서 피거품이 부글부글 일었다.

그가 가래 끓는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광식은 이질감을 느꼈다.

‘형이라고?’

유태민에게 형은 없다. 그는 외동이니까.

이광식과 그는 동갑이다. 그러니 자신을 형이라 불렀을 리 없었다.

죽기 일보 직전이라서 헛소릴 내뱉은 걸까?

이광식은 서둘러 놈을 끝장내기로 했다. 그런데 손에서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꾸물-!

“……!”

유태민의 얼굴부터 시작해 몸통과 팔다리까지 전부 물컹한 점액으로 변해 줄줄 흘러내렸다.

이광식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유태민은 곧 농구공 두어 개를 합친 크기의 푸른 슬라임으로 변했다.

슬라임이 꿈틀대며 말했다.

『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유태민이 슬라임으로 변했다.

너무도 괴기한 일에 이광식과 유준후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걸 쳐다봤다.

이광식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뭐, 뭐야 이건!”

『켁!?』

퍼억-!

이광식은 슬라임을 축구공처럼 힘껏 걷어찼다.

푸른 슬라임이 괴성을 내지르며 저 멀리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철퍽-!

물풍선처럼 터져 버린 슬라임.

산산조각이 난 점액 덩어리는 천천히 하나로 뭉쳤다.

‘저건 유태민이 아니야, 가짜야!’

이광식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속았다. 유태민이 온 게 아니라 의태 능력을 지닌 몬스터가 변장한 거였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깨닫고 난 뒤에 대처하려 들면 너무 늦는다.

“……!”

뒤에서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다.

그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광식은 휙 뒤돌며 주먹을 내질렀다.

푸른 검이 쇄도했다.

카앙-!

검기가 담긴 칼날을 주먹으로 받아 냈다. 유령처럼 불쑥 나타나 기습한 건 새파랗게 젊은 남자였다.

[정도현] [LV.68]

‘68레벨?’

힘과 속도. 둘 다 레벨과 따로 논다.

카가가가강-!

휘몰아치는 참격을 주먹으로 일일이 되받아쳤다.

두 사람의 마력이 부딪혀 깨지고 충격파와 함께 불똥이 마구 튀었다.

“도망쳐!”

정도현이 짤막하게 외쳤다.

그러자 이광식이 눈을 부릅떴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것이다.

“으, 으아아!”

유준후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건물 밖으로 내달렸다.

“안 돼!”

인질이 도망치자 이광식은 절규에 가까운 괴성을 내지르며 뒤쫓았다.

하지만 정도현이 그를 막아섰다.

“꺼져라!”

쾅-!

이광식이 죽일 기세로 주먹을 뻗었다.

한 합 받아 낼 때마다 손아귀가 저린다.

정도현은 오랜만에 살 떨리는 긴장감을 느꼈다.

작은 실수 하나로도 승패가 갈릴지 모른다.

심장이 쿵쿵 뛴다. 평소보다 혈액이 빠르고 세차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간만이야, 이리 팽팽한 싸움은.’

이렇게 싸워 본 게 언제였더라?

그래, 필드형 던전에서 블랙 스컬의 간부와 처음 싸울 때였다.

정도현은 몇 개월 전에 치른 전투를 떠올리곤 씩 웃었다.

카앙-!

둘은 한바탕 크게 부딪힌 뒤 동시에 거릴 벌렸다.

이광식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젠장, 넌 또 뭐 하는 새끼냐?”

유준후는 이미 건물 밖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이광식은 갑자기 나타난 방해꾼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정도현은 뻐근한 팔뚝과 어깨를 풀어 주면서 대답했다.

“처형인.”

“…처형인?”

“이번에 탈옥한 죄수들 전부 즉각 사살하란 지시가 윗선에서 내려왔거든.”

정도현의 발언에 이광식은 웃지 못했다.

즉각 사살이라니. 그럼 자수할 수도 없는 거잖아.

게다가 저 녀석은 68레벨이지만 자신의 움직임을 용케 따라왔다.

레벨은 낮아도 C구역에서 특별히 내려보낸 놈일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니 착용한 장비들도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설마 전부 에픽 등급인가?’

강화도 제법 했겠지. 그래야 저 전투력도 말이 된다.

“…너 때문에 전부 망했어.”

인질은 도망쳤다. 그러니 유태민도 오지 않겠지.

빠득-!

이광식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니 너라도 죽여야겠다.”

“음?”

꾸득, 꾸드득!

이광식의 육체가 변화했다.

하관이 길쭉해지고 송곳니가 자랐다. 전신은 회색빛 털이 무성히 자라 뒤덮였다.

정도현은 불을 처음 접해 본 원시인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늑대인간?”

“크르르!”

“그런 능력이 있다곤 못 들었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지. 이건 인체 실험의 결과물이니까.”

수용소 죄수 중 일부는 마탑의 실험체로 활용된다.

저렇게 신체를 몬스터처럼 개조하는 케이스는 흔했다.

그나마 이광식은 다른 실험체들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이성을 잃고 진짜 괴물이 되거나, 정신은 멀쩡하되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즐비했다.

“아우우우우!”

쾅!

이광식이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땅을 걷어찼다.

바닥이 움푹 파이며 아까보다 배 이상 빠르게 날아든다.

카가각-!

섬광이 번뜩이며 길쭉한 손톱이 검기를 긁었다.

깨진 마력 조각들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힘에선 내가 밀린다.’

뒤로 몇 발자국 밀려난 정도현.

그는 심법을 펼쳐 몸속에 고이 모아 둔 뇌기를 방출했다.

파지직-!

검기가 벼락처럼 변해 쏘아지자 손톱을 마구 휘두르며 압박하던 이광식이 눈을 부릅떴다.

“…크윽!”

처음 당해 보는 공격에 이광식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저릿하고 불쾌한 감각에 속이 울렁거린다.

정도현은 자세를 다잡으며 생각했다.

‘5분 안에 지원 병력이 올 거다.’

말랑이가 인질을 데리고 도망쳤다.

무사히 벗어나 요원들과 만나면, 근처에 대기 중인 달빛 길드원과 관리국 요원들이 일제히 가세할 터.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버티겠단 마음으로 싸움에 임하겠지만 정도현은 정반대였다.

‘오기 전에 빨리 잡아야만 해.’

내 경험치, 절대 양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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