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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76화 (76/240)

76화

정도현은 곧장 관리국 본부로 향했다.

정문 앞에 도착하자 누군가가 달려오며 반갑게 맞이했다.

“도현 씨!”

“곽 팀장님?”

쥬레이어드 사태 때 만났던 곽윤수 팀장이었다.

정도현은 그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사정을 캐물었다.

“무슨 일 생긴 겁니까?”

“그건 올라가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따라오세요.”

본부 회의실로 들어오니 강민겸 지부장 외에도 요원들이 다수 앉아 있었다.

다들 곽윤수 팀장과 레벨이 엇비슷한 걸 봐선 전원 팀장급으로 보인다.

각 지역에서 불러다 모은 게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정도현이 나타나자 강민겸이 벌떡 일어나 반겨 줬다.

“오, 도현 군! 자네가 와 주니 안심이 되는구만.”

지부장의 격한 환대에 팀장들이 의아한 눈으로 일제히 쳐다봤다.

정도현의 레벨은 팀장급에 미치지도 못했다. 끽해야 부팀장 수준.

그런데 저렇게 반겨 주다니. 선뜻 이해가 안 됐다.

팀장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정도현의 실력을 아는 건 쥬레이어드 사태 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정도현이 빈자리에 앉자 강민겸은 회의를 재개했다.

“그래, 올라오면서 곽 팀장한테 대강 들었지?”

“예, 중요 인물이 납치됐다고 하더군요.”

“그렇네. 오늘 아침, 달빛 길드장의 아들이 출근길에 납치당했어.”

달빛 길드는 파도 길드처럼 D구역 3대 길드 중 하나였다.

그런 곳의 길드장 아들을 대낮에 납치하다니. 간도 크다.

“범인은 누굽니까?”

“음, 그게…….”

강민겸은 잠시 망설이다 솔직하게 밝혔다.

“실은 얼마 전에 C구역 동부 지역에서 사고가 있었네. 수용소가 테러를 당했거든. 해방단, 그 망할 놈들 때문에 수감된 죄수들이 몽땅 풀려났지.”

한규리에게 이미 들었던 내용이라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의 심심한 반응에 강민겸은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곤 마저 설명했다.

“그중 일부가 밀항선을 타고 D구역에 숨어들었어.”

“그중에 납치범도 있었군요. 놈의 목적은 돈입니까?”

“아니, 그건 아냐. 녀석은 달빛 길드장과 단독으로 만나길 원했어. 아마 길드장한테 악감정을 품은 듯해.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하긴. 돈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밀항까지 해서 달빛 길드장의 아들을 건들 필요가 없었겠지.

놈의 범행 동기는 사적인 원한으로 보였다.

“아무튼, 달빛 길드장이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했네. 여차하면 놈과 싸워야 할 수도 있어.”

“C구역 수용소에 갇힌 죄수면 레벨도 만만찮을 텐데, 몇이랍니까?”

“87일세.”

“음, 꽤 높네요.”

C구역은 80레벨부터 들어갈 수 있다.

87레벨이면 C구역 기준으론 그리 대단치 않겠지만, D구역에선 3대 길드장과 맞먹거나 그 이상인 셈.

만만찮은 상대였다.

“그래서 내 자넬 부른 거 아니겠나?”

강민겸이 신뢰가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하자 정도현도 빙긋 웃었다.

87레벨. 모처럼 커다란 건수가 굴러 들어왔다.

“여기까지 불러다 놓고 새삼스럽지만. 이번 작전, 자네가 도와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크, 역시! 자네라면 도와줄 거라 믿고 있었네!”

정도현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수락하자 강민겸이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는 정도현이 자신과의 의리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돕겠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정도현은 그저 대량의 경험치를 얻고자 의뢰를 수락한 것일 뿐이다.

‘전력을 다하면 이길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해 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이 정도 레벨이랑 싸워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과 레벨이 얼마나 오를까 하는 기대감이 뒤섞여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 * *

“나, 나한테 왜 이러십니까!”

비슷한 시각, D구역 어딘가에 있는 폐공장.

20대 중반의 남자가 손발이 묶인 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달빛 길드장의 하나뿐인 아들, ‘유준후’였다.

그를 납치해 온 장본인은 소주를 병째로 입에 댔다.

몇 모금 마신 납치범이 손등으로 입술을 쓱 닦고 말했다.

“태민이 젊었을 때랑 똑 닮았네.”

“…제 아버지를 아십니까?”

“아, 잘 알지.”

“몸값을 원하시는 거면 아버지와 연락하게 해 주세요.”

유준후가 몸값을 운운하자 납치범은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킥킥댔다.

그러다 정색하며 말했다.

“돈? 그런 거 필요 없어.”

“…필요 없다고요?”

“그래, 난 네 애비만 죽여 버릴 수 있으면 족해.”

납치범의 목소리에서 진득한 살기가 느껴졌다.

일개 회사원인 유준후는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유준후가 숨을 헐떡대며 겨우 질문했다.

“아,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놈이 내 아내를 죽였어.”

짧고 굵은 납치범의 한마디.

유준후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그, 그럴 리가…….”

“나랑 네 애비, ‘유태민’은 수십 년 전에 같은 파티였어. 달빛 길드도 나랑 함께 세웠지.”

그는 유태민 길드장과 죽마고우였다.

둘은 철이 들기도 전부터 플레이어로 각성했다.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형제나 다름없었다. 그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다.

“아,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렀을 리 없어요!”

“아니, 그놈이 미정이를 죽인 거야.”

납치범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들이 길드를 세우고 얼마 안 되어 신입 힐러가 들어왔다.

그와 유태민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녀를 두고서 둘은 티격태격 경쟁했고 결국 선택받은 건 납치범, ‘이광식’이었다.

“그때까진 정말 행복했지, 정말 이래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근데 그것도 얼마 못 갔어.”

꿀꺽, 꿀꺽!

이광식은 속이 타는지 남은 술을 단숨에 마시곤 빈 소주병을 휙 내던졌다.

그는 눈물을 주룩 흘리며 말했다.

“네 아버지가 유적형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갔다 사고가 터졌다.”

유적형 던전은 곳곳에 아이템이 숨겨져 있다.

또한, 침입자를 죽이기 위한 함정들도 있었다.

그런데 공략대 중 누군가의 실수로 함정이 발동된 것이다.

“유태민, 그 자식이 숨겨진 통로를 발견했어. 그 끝에 숨겨진 보물이 탐났었겠지.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공략을 강행했다더군.”

“아, 아버지가…….”

“그 탓에 미정이는 죽었어.”

이광식은 공략 현장에 없었다.

그는 그날 비번이었다. 무투파 플레이어는 가장 흔했으니까.

하지만 힐러는 상당히 귀해서 중요한 공략엔 절대 빠질 수 없었다.

고생하고 돌아올 그녀를 위해 그는 밀린 집안일을 싹 처리하고, 저녁을 차린 채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돌무더기에 깔려 시체조차 건지지 못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그는 공략대의 리더였던 유태민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암습은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유태민의 실력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다행히 도망칠 순 있었지만, 며칠 뒤 그는 유태민을 습격한 죄목으로 수배령이 떨어졌다.

이후로 그는 음지에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도 고의가 아닌 실수였잖아요! 안타까운 사고였는데 그렇게까지……. 어떻게 화해할 수 없었을까요?”

“그래, 실수. 그 녀석도 나한테 그렇게 지껄였지. 하지만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내 심정을 몰라. 미정이는 나한테 있어 전부였다고!”

이광식의 광기 어린 집착에 유준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럼 곧바로 죽여 버릴 기세였다.

덜덜 떠는 그를 보며 이광식이 피식 웃었다.

“네 소중한 사람이 살해당해도 방금 같이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한데.”

위잉-!

이광식의 휴대폰이 울렸다.

십수 분 전에 보냈던 협박 문자의 답신이 드디어 왔다.

전화를 받자 다급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과, 광식아! 제발 내 아들만은 풀어 줘! 그 앤 아무 상관없잖아. 이건 우리끼리 풀 문제야!]

“얘 놔주면 네가 뭔 짓을 할 줄 알고? 잔머리 굴리지 말고 약속 시각까지 혼자 와.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 하면…….”

[알았어! 시키는 대로 할게. 그 대신 약속해 줘. 그 애만큼은 살려 주겠다고!]

“그래, 약속하지. 단, 내 앞에서 곱게 죽어.”

* * *

유태민 길드장은 범인과 방금 나눈 통화 내용을 관리국에도 전했다.

납치범 이광식은 대범하게도 자신과 인질이 어디 있는지 공개했다.

그리고 아들을 살리고 싶다면 유태민 길드장 혼자 오라고 했다.

길드원이나 관리국 요원을 달고 오면 인질을 죽여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 진짜 골치 아프구만.”

강민겸은 머릴 벅벅 긁적였다.

잃을 게 없는 녀석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더니.

유태민 길드장이 이광식한테 죽으면 그 후폭풍도 무시할 수 없을 터.

D구역 3대 길드는 대기업 이상의 사회적 가치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길드의 구심점인 유태민이 죽으면 달빛 길드는 자연히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언젠가 다른 길드가 치고 올라오겠지만…….’

빈자릴 노리는 길드들끼리 크고 작은 알력 다툼을 벌일 터.

그럼 D구역 경제와 치안에도 악영향이 가리라.

관리국 입장에선 골치가 너무 아팠다.

‘인질과 유태민 길드장 둘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인질 쪽을 포기해야 한다.

강민겸이 그렇게 판단하고 작전 방향성을 설명할 때.

“지부장님.”

정도현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팀장들은 우려 섞인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강민겸은 자기가 말할 때 방해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니까.

하지만 그는 웬일로 화내지 않았다.

“그래, 뭐 궁금한 거라도 있나?”

“지부장님 말씀처럼 인질을 포기해 버리면 달빛 길드장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의 분노가 지부장님과 관리국을 향할 텐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하지만 구할 방법이 없지 않나.”

“있습니다.”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팀장들은 미심쩍단 시선을, 강민겸은 기대 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물론 잘 안 풀리면 인질이 죽겠지만요.”

“일종의 도박이란 건가?”

“예.”

“일단 말해 보게. 실패하더라도 시도는 해 보는 게 낫지 않겠나?”

달빛 길드장이 이곳 회의실로 오고 있다. 곧 도착할 터.

아들을 애지중지하는 그에게 대놓고 포기하자 말할 순 없는 노릇.

적어도 구하려는 시늉은 해야 했다.

그래야 일이 잘못되더라도 변명할 여지는 있지 않겠는가.

“가짜를 내세워 범인을 속이는 겁니다.”

“…응? 가짜?”

강민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팀장들도 이해 못 한 건 마찬가지였다.

곽윤수 팀장이 정도현에게 질문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유태민 길드장으로 분장시키겠단 겁니까?”

“예.”

정도현이 고갤 끄덕이자 팀장들이 말도 안 된다며 고갤 내저었다.

“그딴 방법이 먹힐 리 없잖습니까!”

“맞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정보가 훤히 보이는데…….”

설사 유태민을 쏙 빼닮은 대역을 준비했다 치더라도 머리 위의 이름과 레벨은 전혀 다르게 표시될 터.

그런 얄팍한 수작은 통하지 않을 거다.

강민겸이 손을 들어 술렁대는 팀장들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얘길 꺼냈다는 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거겠지?”

“예, 길어야 몇 분 정도지만 확실히 속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속아 넘어간 범인이 약속대로 인질을 곱게 풀어 주면 다행이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곧바로 죽일 수도 있었다.

“음…….”

강민겸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했다.

속이지 못하면 오히려 범인을 자극하는 꼴.

그럼 그 덤터기는 전부 관리국이 짊어지게 될 거다.

강민겸이 눈을 뜨며 말했다.

“자넬 믿어 보겠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게.”

“예, 사실 저한텐 테이밍해 둔 몬스터가 있습니다.”

“…테이밍? 자넨 소환사도 아니잖나. 그런데 어떻게?”

“테이밍 아이템을 써서 길들였습니다. 운이 좋았죠.”

“음… 그래서?”

정도현은 말랑이를 언급했다.

“그 녀석한텐 특별한 스킬이 있습니다.”

“특별한 스킬?”

“누군가의 피를 먹으면 그 대상으로 잠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오오, 그런 능력이 있다고?”

「도플갱어」. 말랑이의 개인 특성을 강화시켜 새로 개화한 능력이었다.

원래 갖고 있던 「포식」은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상만을 잡아먹을 수 있지만, 「도플갱어」는 레벨에 상관없이 피만 먹으면 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도플갱어」는 단순히 외형만 바뀌는 게 아니다.

변신한 대상의 이름과 레벨은 물론이고 능력치도 완전히 복사된다.

“다만 변신 상태에선 마력이 계속 소모돼서 오래는 유지 못 합니다. 끽해야 3분 정도겠죠.”

“3분? 너무 짧구만.”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대상으로 변하면 변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력도 커진다.

말랑이의 마력으론 가만히 있어도 3분을 유지하는 게 고작일 터.

물론 마력 회복 포션을 쓰면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겠지만, 범인 앞에서 대놓고 포션을 꺼내 쓸 순 없다.

“그래, 범인을 속였다고 치세. 그럼 그다음은 어쩔 건가?”

“제가 대역과 함께 건물로 진입할 겁니다.”

“대역이랑 같이?”

“그랬다간 범인이 인질을 죽일 겁니다!”

누군가가 반박하자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보랏빛 보석이 박힌 반지를 꺼냈다.

방금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이었다.

[암흑의 눈동자] [에픽]

- 착용 조건: LV.60 이상

- 사용 시, 5분 동안 「은신」 상태가 됩니다.

- 「은신」 상태에선 적에게 들키지 않습니다. 단, 다른 대상이나 물질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습니다.

- 「은신」은 1주일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무기 착용 시 「은신」이 자동으로 풀립니다.

“은신 아이템?”

“게다가 에픽 등급이잖아!”

아이템 정보를 확인해 본 팀장들이 경악했다.

정도현은 반지를 제 손가락에 끼우며 계속 말했다.

“아쉽게도 이건 하나뿐이라 건물로 잠입할 수 있는 사람도 한 명뿐입니다.”

“으음, 그렇구만.”

실상은 하루에 10개씩 구매할 수 있었지만, 정도현은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그래야 경험치를 독식할 수 있으니까.

그 말에 강민겸은 아쉬워했고, 팀장들은 속으로 바짝 긴장했다.

‘그럼 누군가가 총대를 메야 한다는 거잖아?’

은신한 채 기회를 엿보다 범인을 기습한 뒤 인질이 도망칠 시간을 번다.

하지만 그다음은?

분노한 범인이 공격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근처에 대기 중인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혼자서 버텨야 한단 소린데.

아무리 봐도 일대일로 싸워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그런데 정도현이 제 발로 나섰다.

팀장들은 그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 눈엔 마치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강민겸과 곽윤수 팀장만이 고갤 끄덕였다.

강민겸은 정도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자네만 믿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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