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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63화 (63/240)

63화

“재밌는 놈이군.”

둘의 통화 내용을 엿듣던 마탑주, 천주혁이 킥킥 웃으며 강제로 연락을 끊었다.

그런데 천주혁의 얼굴이 아주 흉측했다.

귓구멍과 눈 주변에 얇은 나무줄기가 자라나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누가 봐도 괴물이었다.

강민겸 지부장은 괴물로 변해 버린 그를 보며 간절히 외쳤다.

“마탑주, 제발 정신 좀 차리게! 자네 지금 보스한테 이용당하고 있어!”

“그게 뭐 어떻단 거지?”

“……!”

“저건 하늘이 내려 준 신목이다. 우린 그걸 지키도록 선택받은 수호자고.”

천주혁은 미친 소릴 태연하게 내뱉었다. 아예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다른 장로들도 천주혁처럼 나무줄기가 돋아나 있었다.

80레벨이 넘는 마법사만 다섯.

거기에 보스도 무려 86레벨이었다.

‘내가 미쳤지, 저런 괴물을 어떻게 잡겠다고.’

설사 정도현과 플레이어들이 늦지 않게 도착해도 저들을 이길 순 없으리라.

보스한테 모조리 잡아먹히겠지.

강민겸은 실정한 듯 실실 웃었다.

“흐, 흐흐…….”

“뭐가 웃긴가, 지부장?”

“당장 몰려오는 병력은 어찌 해치우더라도 그다음은 어쩔 텐가?”

조만간 C구역에서 토벌대를 보낼 거다. 그들이 도착하면 보스도 버틸 재간이 없을 터.

강민겸의 질문에 마탑주가 빙긋 웃었다.

“글쎄, 그건 모를 일이지.”

“…뭐?”

“C구역이랑 꼭 싸울 필욘 없어. 신성한 열매만 있으면 모두가 하나 될 수 있으니까.”

“흥, 그런 꼴로 지껄이면 잘도 믿어 주겠군.”

강민겸이 비꼬자 천주혁은 슬쩍 눈을 감았다.

스르륵.

그의 얼굴을 뒤덮었던 나무줄기가 순식간에 몸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러자 겉모습은 영락없는 인간이었다.

천주혁이 이어서 말했다.

“C구역 지부장들은 뭐, 다를 것 같나? 그들도 젊음을 원하겠지.”

“설마…….”

“그래, 그들에게 열매를 먹여 C구역도 장악할 걸세.”

천주혁은 보스를 지키기 위해 인류를 배반할 속셈이었다.

이제 뭐가 옳고 그른지조차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강민겸이 당황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사, 상부가… 그렇게 쉽게 속을 것 같냐!”

“해 보기 전까진 알 수 없지. 자네도 순간 이렇게 생각했지 않나? 탐욕스러운 놈들이니 통할지도 모른다고.”

“…큭!”

“우리도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걸세. 아, 혹시 자네가 원한다면 열매를 줄 수도 있는데.”

“……!”

강민겸의 부하 요원들을 몽땅 잡아먹은 보스가 새로운 열매를 맺었다.

천주혁은 그걸 내밀며 악마처럼 속삭였다.

“지금 오고 있는 자들이 정말 자넬 구할 수 있다고 보나?”

“…아니, 불가능하겠지.”

강민겸은 고갤 저었다. 순순히 수긍하자 천주혁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살아남는 편이 낫지 않겠나?”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 말에 완전히 넘어왔는지 강민겸이 고갤 끄덕였다.

그러자 천주혁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강민겸은 이대로 죽이기엔 아까웠다.

그가 회춘한 모습을 보여 주면 C구역 상부를 유혹하기도 훨씬 수월해질 거다.

삼인성호란 말도 있지 않던가.

D구역 지부장과 마탑주가 쌍으로 젊어지면 저들도 사람인 이상 혹할 수밖에 없으리라.

스륵-!

강민겸을 속박했던 나무줄기가 한결 헐거워졌다.

만신창이 상태인 그는 다리가 풀려서 바닥에 자빠졌다.

“자, 먹게나.”

천주혁은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워 주고 열매를 건넸다. 그걸 받아 든 강민겸이 말없이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좇까.”

“……!”

팍-!

그는 열매를 바닥에 있는 힘껏 패대기쳤다. 그러자 으깨진 토마토처럼 곤죽이 됐다.

어렵사리 피워 낸 열매가 허무하게 터지자 마탑주는 분노한 얼굴로 윽박질렀다.

“네놈! 이게 무슨 짓거리냐!”

“엿이나 처먹어, 이 괴물 새끼야.”

강민겸이 보란 듯이 중지를 치켜올렸다.

파지직-!

천주혁은 분노를 담아 한 줄기 뇌격을 쏘았다.

“네놈은 곱게 죽이지 않겠다!”

“끄아아악!”

천주혁의 손에서 벼락이 물줄기처럼 계속 뿜어져 나왔다.

비명을 뱉던 강민겸은 의식을 잃고 축 늘어졌다. 그제야 마탑주도 주문을 멈췄다.

“포션을 갖고 와라!”

“예.”

그는 장로가 내민 포션을 강민겸의 전신에 대충 뿌렸다.

그러자 다 죽어가던 강민겸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으으…….”

파직! 파지직!

몽롱한 의식 속에서 들려오는 선명한 스파크 소리.

강민겸이 벌떡 일어났지만 천주혁이 한발 빨랐다.

“…끄어어어!”

또다시 시작된 전기 고문.

천주혁은 아까처럼 실컷 지진 뒤 바닥에 자빠진 강민겸의 뺨을 잘근잘근 짓밟았다.

“어디 또 한 번 지껄여 봐라! 뭐가 어쩌고 어째?”

“크흐흐… 젊어지면 뭐 해? 귓구멍이 꽉 막혔는데. 엿이나 처먹으라고, 이 괴물 새끼야.”

그 말에 천주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흥분하니 귓구멍에서 줄기가 튀어나와 마구 꿈틀댔다.

“네놈 입에서 제발 살려 달란 말이 나오게 해 주마.”

천주혁은 장로한테 다시 포션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바로 그때.

콰앙-!

요란한 소리가 터졌다.

포탄이라도 떨어졌는지 지면이 움푹 파였고, 먼지가 굴뚝 연기처럼 일었다.

그곳에는 시커먼 암석이 있었다.

“저게 뭐지?”

“우, 운석인가?”

장로들이 웅성댔다. 천주혁도 고문을 멈추고 시커먼 암석을 쳐다봤다.

쩌적-!

암석이 반으로 쪼개지더니 그 안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지부장님, 무사하십니까?”

구덩이에서 올라온 건 정도현이었다.

* * *

정도현과 구출대는 자꾸 몬스터 무리와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시간이 지체됐다.

참다못한 정도현이 특단의 대책을 내렸다.

“어르신, 거의 다 왔다고 했죠?”

“그렇네. 한 5분 정도만 더 가면 될 걸세.”

“그럼 골렘을 써서 절 던져 주세요.”

“뭐? 그게 무슨…….”

“이 이상 시간을 더 지체하면 지부장님이 위험합니다. 약속 시간까지 빠듯해요.”

아무리 한 시가 급해도 그렇지 냅다 던져 달라니?

그럼 적진 한복판에 떨어질 텐데.

너무 위험했다.

시간은 걸리더라도 다 같이 움직이는 게 안전하지 않겠는가.

황도형이 그렇게 말했지만, 정도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실력이 범상치 않긴 하다만.’

정도현은 전투용 골렘들을 혼자서 다 때려 부쉈고, 여기 오면서 만난 몬스터들을 손쉽게 도륙했다.

“…알겠네. 대신 나도 함께 가지. 자네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도움 되지 않겠나.”

“괜찮으시겠어요? 떨어질 때 충격이 엄청날 텐데…….”

“괜찮네. 「바위 갑주」를 사용하면 낙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걸세.”

황도형은 보호 주문, 「바위 갑주」를 사용했다. 그러자 암석 덩어리가 둘을 감쌌다.

모양새가 마치 시커먼 계란 같았다.

바위 속에 잘 포장된 정도현들에게 곽윤수 팀장이 간곡히 부탁했다.

“도현 씨, 저희도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지부장님을 부탁합니다.”

후우웅-!

바위 골렘이 암석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곤 제자리에서 빙빙 돌더니 원심력을 실어 힘껏 내던졌다.

바위는 하늘 높이 떠올라 보스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쿠웅-!

그들은 무사히 도착했다. 「바위 갑주」에서 빠져나온 정도현은 곧바로 강민겸의 생사부터 확인했다.

“지부장님, 무사하십니까?”

“자네… 이제 왔구만… 헉… 아직 숨은 붙어 있네…….”

강민겸은 젊은 남자의 발에 밟혀서 깔려 있었다. 다행히 살아는 있었다.

정도현은 그를 짓밟고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천주혁] [LV.85]

“그쪽이 마탑주인가?”

“지부장과 통화했던 녀석이로군.”

정도현은 주변을 쓱 훑어봤다.

장로들의 레벨을 확인한 그가 만족하곤 전투 자세를 잡았다.

“도현 군, 장로들은 내가 맡겠네. 마탑주를 부탁하네!”

구덩이에서 황도형이 바위 골렘들과 함께 올라왔다.

그걸 본 천주혁이 피식 웃었다.

“결국 그쪽에 붙었나, 황 장로? 그깟 양심 때문에 젊음을 포기하다니. 미련하기 짝이 없어.”

“마탑주님…….”

양심이 아니라 물리 치료를 당한 거였지만, 진지한 분위기라 차마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황도형은 마탑주와 장로들의 징그러운 몰골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도현 군, 저들을 구하긴 이미 늦은 것 같네.”

“예, 그런 것 같네요.”

정도현이 입술을 핥으며 해맑게 대답했다.

마탑주와 장로들의 얼굴은 넝쿨로 반쯤 덮여 있었다. 딱 봐도 몬스터였다.

“지부장님, 다 죽여도 되죠?”

“…쿨럭. 그래, 싹 다 죽여 버려!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이놈들, 인류를 배신한 괴물들이야.”

“알겠습니다.”

강민겸의 허가도 떨어졌겠다.

정도현은 망설임 없이 검기를 생성했다.

그의 눈에는 마탑주와 장로들이 맛난 경험치로 보였다.

인간임을 포기하고 괴물이 된 자들이다. 그러니 죄책감도 전혀 들지 않는다.

“63레벨이 꽤 자신만만하구나.”

천주혁은 여유롭게 마법 지팡이를 꺼내며 전격을 그러모았다.

그는 악단의 지휘자처럼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파지직-!

굵직한 뇌전이 쏘아졌다. 정도현은 피하지 않고 검으로 받아쳤다.

그러자 벼락이 물줄기처럼 갈라졌다.

“뭣……?!”

천주혁과 장로들은 눈을 의심했다.

주문을 벤 게 아니다. 놈의 칼에 닿자 주문을 구성하던 마력이 빨려 들어갔다.

그게 놈의 검기랑 한데 섞여 마치 벼락처럼 변했다.

“이놈이… 무슨 짓거릴 한 거냐!”

원인 모를 현상에 천주혁이 발끈하며 다른 주문을 쏘았다. 이번엔 돌풍이 휘몰아친다.

정도현은 그것마저도 손쉽게 갈랐다.

돌풍이 정도현을 중심으로 나뉘며 산산이 흩어졌다.

주문의 마력을 일부 흡수하자 뼈대부터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두 번이나 막히자 천주혁이 눈을 부릅떴다.

“이건 말도 안 돼!”

정도현의 검기는 벼락에서 소용돌이처럼 바뀌어 회전했다.

‘흡수한 마력으로 검기를 생성하다니?’

저런 건 처음 봤다.

후웅-!

당황한 천주혁을 향해 정도현이 돌풍검을 뻗었다.

“마, 마탑주님!”

장로들이 도와주려 했지만, 황도형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바위 골렘들이 몸을 내던지면서 그들의 주문을 대신 맞았다.

골렘들이 시간을 벌어 준 사이에 정도현은 상대의 지척으로 접근했다.

“「프로텍트」!”

천주혁은 다급히 보호막을 생성했다.

정도현은 그걸 깨부술 기세로 힘껏 후려쳤다.

꽈앙-!

망치로 철판을 두들긴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컥!”

금이 생기며 보호막이 쩍 갈라졌다.

다행히 깨지진 않았지만 상당한 충격이 천주혁을 덮쳤다.

“쿨럭, 크으…….”

충격으로 내상을 입은 그가 피를 한 움큼 토했다.

후웅-!

정도현은 연이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칼날이 닿기 직전 천주혁이 허깨비처럼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단거리 이동 주문, 「블링크」였다.

돌풍검은 아쉽게 허공을 갈랐다.

“이 망할 놈이 감히…….”

정도현한테서 멀리 벗어난 천주혁은 욕설을 뱉으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는 왼손으로 수인을 맺고, 지팡이로는 마법진을 수놓았다.

“흔적도 없이 날려 주마!”

콰직! 콰지지직-!

불과 얼음. 상반된 속성의 주문을 억지로 결합해 하나의 주문으로 만들었다.

그가 오랜 세월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완성한 비장의 주문이었다.

“「안티 매터」!”

콰아아!

회색빛 구체가 날아온다. 그것은 블랙홀처럼 주변 물질을 끌어당겼다.

정도현은 겁도 없이 구체를 향해 뛰어들며 검을 휘둘렀다. 그걸 본 천주혁이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멍청한 놈.’

「안티 매터」는 상반된 주문을 억지로 합쳤기에 외부 충격에 금방 불안정해진다.

검기와 닿으면 곧바로 폭발하리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천주혁은 다음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뭐, 뭐……?!”

정도현은 두 종류의 심법을 번갈아 썼다.

불과 얼음의 마력을 흡수한 뒤 검기로 한꺼번에 방출시켰다.

그 과정이 너무 빨라서 천주혁이 볼 땐 눈 깜짝할 새 주문이 소멸해 버린 것처럼 비쳤다.

마치 주문이 디스펠된 것 같았다.

“아, 아아…….”

비장의 주문마저 막히자 천주혁은 공포에 질렸다.

그는 정도현이 뭔 짓을 한 건지 당최 이해가 안 됐다.

누군가가 그랬었다.

미지야말로 진정한 공포라고.

천주혁은 두려움에 다리가 풀려 털썩 무릎 꿇었다.

정도현은 망나니처럼 그의 목을 곧장 날려 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방대한 경험치가 들어오며 기분 좋은 메시지가 들렸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장로가 네 명 남았다.

마탑주보단 경험치를 덜 주겠지만 다 잡으면 짭짤할 거다.

정도현이 경험치를 독식할 생각에 히죽댈 때.

[신기하구나. 레벨도 낮은데 어찌 그리 강한 거지?]

싸움을 지켜보던 보스가 감탄했다.

그러자 패닉에 빠졌던 장로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시, 신목이시여! 제발 도와주십시오!”

싸움을 관망하던 보스가 말했다. 그러자 장로들이 애원했다.

마탑주가 허무하게 당해 버리자 그들의 기세도 단단히 꺾였다.

그들의 요청에 보스는 눈동자를 초승달처럼 휘게 만들며 말했다.

[도와 달라고? 아니지.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니…….”

“무슨 소리십니까?”

[너희가 날 도와야지.]

보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장로들의 몸에 심어 둔 싹으로 마력을 흡수했다.

그러자 장로들이 제각기 비명을 질렀다.

“끄어어억!”

“아, 안 돼!”

“시, 신목이시여! 어째서 저흴 버리십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너흰 나와 하나가 되어 영원히 살 테니.]

그들은 곧 미라처럼 변해 하나둘 쓰러졌다.

장로들의 마력을 전부 먹어 치운 보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쥬레이어드] [LV.88]

그 광경에 황도형과 강민겸은 경악했고 정도현은 분노했다.

보스가 정도현에게 말했다.

[그대여, 살고 싶다면 내 열매를 먹고 나를 받들어라.]

“…뱉어.”

[뭘 말이냐?]

“내 경험치 뱉어 내라고.”

정도현은 부모님을 살해한 범인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보스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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