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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55화 (55/240)

55화

정도현과 서아린이 사귄다는 말에 적잖이 충격받은 한은성.

그는 믿었던 여자친구의 외도라도 목격한 것처럼 언성을 높였다.

“서, 서아린 씨! 정말 저 남자랑… 사귀는 겁니까?”

“네, 이미 결혼을 전제로…….”

“아무튼, 저흰 수색조로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서아린이 너무 오버하자 정도현이 중간에 끼어들어 말을 끊었다.

그녀가 결혼까지 들먹이자 한은성은 충격으로 입이 반쯤 벌어졌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서아린을 설득하려 시도했다.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말이 수색조지 실상은 범인을 꾀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그건 용병으로 고용된 레드 플레이어들도 다 아는 사실.

보수가 높고, 나락까지 떨어진 시민 점수도 어느 정도 회복시켜 준다고 관리국이 약속했다.

고기 방패로 쓰인단 걸 알더라도 참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관없어요. 설령 죽더라도 도현 씨랑 같이 죽을 거니까.”

서아린은 미리 연습해 둔 것처럼 술술 말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 솜씨에 정도현은 속으로 감탄했다.

즉흥적으로 짠 연인 설정인데도 그녀는 깔끔하게 소화해 냈다.

‘누가 보면 진짜 사귀는 줄 알겠네.’

어릴 때부터 연기자의 길을 걸었으면 성공해서 상위 구역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얼굴도 예쁘니 충분히 가능성 있을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그럼 다들 신속히 움직이세요. 범인을 목격한 주민을 찾아내면 바로 호출 신호 보내시고요.”

죽어도 함께 죽겠다는 그녀의 결연한 각오에 한은성도 끝내 미련을 접었다.

수색조는 3인 1조로 구성됐다.

정도현과 서아린 그리고 고용된 용병 한 명이 모여 조를 이뤘다.

수색조들은 각자 배정된 구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탐문에 나섰다.

‘소문과 달리 생각보다 평범한데?’

정도현과 같은 조로 편성된 용병이 그를 흘끔 보곤 그렇게 생각했다.

레드 플레이어 수십 명을 도살한 괴물이라길래 덩치도 엄청나게 크고, 성격도 난폭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인상만 놓고 보면 꽤 만만했다. 혼자 암흑가를 돌아다니면 여기저기서 시비를 걸어 댈 것이다.

물론 그의 레벨을 보면 다들 뒤도 안 보고 줄행랑치겠지만.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저희가 배정받은 곳은 이쪽이 아닌데요.”

“사건 현장에 갈 거다.”

“사건 현장? 거긴 왜…….”

“단서를 찾아봐야지.”

정도현의 답변에 용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건 현장은 오늘 새벽쯤 관리국 요원들이 이미 조사를 끝마쳤다.

하지만 별다른 건 발견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우리가 살펴본들 수색에 도움이 될까?

그냥 다른 수색조들처럼 근처 주민들에게 범인 초상화를 들이밀며 행방을 묻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정도현이 너무 무서웠다.

강자의 말이 곧 법. 암흑가 출신들은 그 말을 진리처럼 여긴다.

정도현에게 거스르면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 얌전히 따를 수밖에.

잠시 후, 정도현 일행은 사건이 벌어졌던 현장에 도착했다.

핏자국 말고는 썰렁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뭐 어쩌려고 이러지?’

용병은 안절부절못했다.

정도현은 원래 맡기로 했던 구역으로 안 가고 무단으로 움직였다.

이 사실을 들키면 저 둘은 물론이고 자신까지 싸잡혀 욕을 먹으리라.

‘욕만 먹으면 다행이지.’

받기로 했던 보수와 관리국이 약속한 시민 점수 건도 무산될지 모른다.

저 둘은 레드 플레이어가 아니니 괜찮겠지만, 그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가 빨리 돌아가자고 말하려 할 때.

정도현이 소환석을 써서 하운드 울프를 불러냈다.

“헉!”

용병은 순간 몬스터가 나타난 줄 알고 창을 겨눴다.

하지만 하운드 울프는 몬스터가 아닌 소환수.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였다.

하운드 울프는 창날을 겨눈 용병에게 이빨 하나 드러내지 않았다.

공격해도 된다는 소환사의 지시가 없어서였다.

그제야 용병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질문했다.

“소, 소환수를 부른 겁니까?”

“그래.”

구하기 힘든 소환석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왜 사건 현장에 들렀나 했는데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운드 울프의 후각을 이용해 범인을 찾아낸다면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일 터였다.

“컹!”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던 하운드 울프가 범인의 냄새를 맡았는지 자신 있게 내달렸다.

정도현 일행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 * *

십 분 넘게 쉬지 않고 쭉 달렸다.

하운드 울프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범인과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 듯했다.

“지, 지금이라도 호출 신호를 보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용병이 숨을 헉헉대며 말했다.

십 분 넘게 전력 질주를 했으니 숨이 차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정도현과 서아린은 그 당연함에서 한참 벗어난 존재였다.

둘은 호흡이 거의 흐트러지지 않았다.

“선조치 후보고 몰라?”

“예?”

“놈을 찾고 난 뒤에 호출할 거야.”

“…저희 셋이서 범인이랑 싸운다고요?”

“아니.”

정도현이 고갤 젓자 용병은 안도했다.

긴장을 풀어 주려고 농담한 거였구나.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그는 머리가 띵해졌다.

“우리 둘이서 싸울 거니까 넌 멀찍이 떨어져 있어.”

미친 소리를 너무 자연스럽게 해서 하마터면 설득당할 뻔했다.

너무 무모하다며 만류했지만 정도현은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D구역 출신이면 못해도 60레벨을 넘겠지.’

최소한의 인원으로 잡아야 경험치를 많이 얻을 수 있다.

한은성 팀장과 D구역 요원들이 싸움에 끼면 그만큼 경험치 손실로 이어질 터.

E구역에서 60레벨이 훌쩍 넘는 존재를 잡을 기회는 잘 없었다.

‘빠르게 성장할 기회를 놓칠 순 없지.’

“크르릉…….”

하운드 울프가 낡고 반쯤 무너진 폐건물 앞에 멈추곤 송곳니를 드러냈다.

범인의 체취가 이 안에서 풀풀 풍기고 있다.

정도현은 폐건물로 들어가며 용병에게 지시했다.

“넌 들어오지 말고 적당한 곳에 숨어 있…….”

콰득! 콰아앙-!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한 충격음과 함께 건물 천장이 우르르 무너졌다.

파지직-!

떨어지는 파편들 속에서 정도현은 보았다, 노란 섬광이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그에게 쏘아지는 걸.

정도현은 늦지 않게 반응했다.

쩌엉-!

금속끼리 힘껏 부딪치며 소리가 울렸다.

정도현을 공격한 사내가 허연 이를 씩 드러내며 말했다.

“호오, 어린놈이 솜씨가 제법이구나.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꽈르릉!

상대의 검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격을 내뿜었다.

정도현은 쭉 밀려나 건물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는 그대로 건너편 건물 벽에 처박혔다.

“헉!”

정도현이 순식간에 당했다고 착각한 용병은 곧바로 도망쳤다.

뚜벅뚜벅.

무너지는 폐건물 속에서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삼십 대 초반의 남성.

파직, 파지직!

벼락을 머금은 검이 간헐적인 스파크가 일었다.

“도현 씨, 괜찮아요?!”

서아린은 도망치지 않고 정도현이 처박힌 쪽으로 달려갔다.

부스럭, 투둑.

무너진 잔해물 속에서 정도현이 일어났다. 그가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괜찮아. 내성 덕에 별로 안 아파.”

정도현은 이번 범인을 상대하고자 전기 내성을 올려 주는 보호구들로 싹 무장했다.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합성 강화까진 못했다.

그 탓에 능력치가 다소 떨어졌지만, 그 대신 전기 내성은 말도 안 되게 올라갔다.

“천뢰격을 정면으로 받아 내다니, 꽤 튼튼한 몸뚱이구나.”

정도현이 건재하자 상대도 감탄했다.

그의 천뢰격은 D구역 플레이어들도 몇 합 받아 내지 못했는데. 57레벨치고 맷집이 대단했다.

[백승빈] [LV.67]

상대의 레벨을 확인한 정도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67레벨이라니, 예상한 것보다 더 높았다.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정도현이 몸을 떨자 상대는 무언가 오해하고 씩 웃었다.

“내가 두렵나? 하긴. 그렇겠지. 방금 일격으로 격차를 느꼈을 테니.”

정도현은 상대의 헛소릴 무시하고 자세를 다잡았다. 그러자 백승빈이 같잖단 눈으로 쳐다봤다.

파직-!

칼날에서 노란색 전류가 위협적으로 튀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단순한 전격이 아닌 검기의 일부였다.

“검기에 전기 속성을 담은 건가?”

“눈썰미도 제법이구나.”

정도현이 한눈에 비밀을 알아보자 백승빈은 기특하단 눈으로 쳐다봤다.

백승빈이 친절히 설명해 줬다.

“검기란 마력을 방출하는 게 전부가 아니야. 속성을 띈 마력을 검기에 녹여 내면 위력을 한층 올릴 수 있지.”

“…마력을 녹여 낸다?”

사람의 얼굴과 성격이 제각각이듯, 플레이어의 마력도 저마다 궁합이 맞는 속성이 있다.

이걸 ‘속성 친화력’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어떤 마법사는 화염 속성 주문이 다른 주문을 쓸 때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러면 화염 속성에 친화력을 지닌 것이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속성 주문을 주로 쓴다.

검사의 검기도 마찬가지였다.

백승빈의 마력은 전기 속성과 아주 잘 어울렸다.

“물론 그냥 되는 건 아니다. ‘심법’을 익히고 꾸준히 단련해야 하지.”

“…심법? 그건 또 뭐지?”

낯선 용어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정도현이 갈피를 못 잡자 백승빈은 히죽 웃으며 계속 설명해 줬다.

마치 술자리에서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심법이란 특수한 호흡법이다. 자연의 기운을 정제해 속성 마력을 쌓을 수 있지. 내가 익힌 심법은 몸속에 뇌기를 축적하지. 바로 이렇게.”

파지직-!

백승빈의 검에서 벼락 같은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한눈에 봐도 위압적이었다.

“그런 게 있단 건 처음 들어 보는데.”

“심법은 일가의 비전이니까. 외인에게 전수해 줄 리 없지.”

과연. 가문의 비기이니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단 건가.

실제로 상위 구역에선 심법을 익힌 플레이어가 다수 있었다.

유적형 던전에서 심법서를 얻으면 자신의 가족이나 뛰어난 자질을 지닌 플레이어를 제자로 삼고 심법을 전수해 준다.

물론 정도현은 윗구역의 사정 따윈 전혀 알지 못했다.

정도현만 그런 게 아니라 아랫 구역에선 심법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네.’

정도현은 1원 상점에서 심법을 검색했다. 그러자 수많은 스킬북이 떠올랐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찾아보는 것도 어려울 지경.

정도현이 허공을 빤히 응시하자 백승빈이 킬킬 웃으며 조롱했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는 게 그리도 충격적이었나? 우물 안 개구리로다.”

“그래서 넌 무슨 심법 익혔는데?”

“…뭐?”

“뭐, 얼마나 대단한 심법을 익혔길래 그렇게 뻗대냐고.”

그 말에 백승빈이 껄껄 웃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단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뇌령심법’이다, 애송아. 이 내가 직접 창안했지.”

“뇌령심법, 뇌령심법……. 아, 여깄다.”

[뇌령심법] [소모 아이템]

- 사용 조건: LV.50 이상

- 심법 사용 시, 자연의 기운에서 뇌기를 정제해 체내에 축적할 수 있습니다.

- 자신의 레벨에 비례해 쌓을 수 있는 뇌기의 최대 한도가 늘어납니다.

- 뇌기를 소모할 시 모든 공격에 전기 속성을 부여합니다.

- 영구적으로 전기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 여러 종류의 심법을 익혀도 하나의 심법만 활성화됩니다.

“레벨 제한 50. 장비 템으로 치면 레어 등급이네.”

“아까부터 뭔 소릴…….”

“별로 대단치도 않은데?”

정도현이 실망스럽단 표정으로 뇌령심법을 품평하자 백승빈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쥐뿔도 모르는 애송이 주제에 감히 누굴 평가해!”

파지지직-!

정도현은 백승빈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렸다.

그는 무인이자 검사로서 자신만의 심법을 창안한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지녔었다.

그런데 자기보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인생 최대 업적을 깎아내렸다.

분노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상황.

“죽여 주마!”

꽈르릉-!

백승빈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 위력으로 천뢰격을 방출했다.

서아린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괜히 자극한 거 같은데요?”

“위험할 것 같으니 뒤로 물러나 있어.”

“혼자서 괜찮겠어요?”

“어, 괜찮아.”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데 혼자서 상대하겠다니. 그러나 정도현의 얼굴은 너무 자신만만했다.

아무 근거도 없이 그가 저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

‘상점에서 또 뭐 샀나 보네.’

그녀의 추측은 정답이었다.

정도현은 뇌령심법 스킬북을 구매해 곧바로 사용했다.

그러자 뇌령심법의 모든 이론과 깨달음들이 그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당장은 검기에 전기 속성을 부여할 수 없겠어.’

심법은 익혔으나 검기에 전기 속성을 부여하려면 뇌기가 필요했다.

그 뇌기를 쌓으려면 심법을 펼칠 시간이 필요했다.

“죽어라!”

백승빈이 으르렁대며 달려들었다.

정도현은 일반적인 검기로 천뢰격을 받아쳤다.

* * *

한편, 냅다 도망쳤던 용병은 곧장 호출 신호를 보냈다.

곧 한은성 일행이 도착할 것이다.

콰르릉! 꽈릉!

등 뒤로 소름 끼치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신이 분노한 것 같았다.

용병이 덜덜 떨며 지원 병력이 오기만을 기다릴 때, 저 멀리서 사람들이 뛰어왔다.

한은성과 D구역 요원들이었다.

“여, 여깁니다!”

용병은 조난당해서 구조 요청을 보내듯 양팔을 크게 흔들었다.

그걸 본 한은성 일행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범인이 어디 있는지 알려 줄 필요도 없었다.

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으니까.

한은성 일행은 소릴 뒤쫓아 범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거기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 다들 오셨습니까?”

정도현은 몸 곳곳에 검댕이 좀 묻었을 뿐 아주 멀쩡했다.

그의 발치에는 CCTV에 찍혔던 범인이 피떡이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군데군데 치명상을 입어 숨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누가 봐도 정도현이 범인을 압도한 모양새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젠장! 내가 저딴 애송이한테… 어째서 천뢰격을 맞고도 멀쩡한 거지?』

다들 정도현을 멍하니 쳐다볼 때.

한은성의 귓가로 웬 노인의 원통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갤 돌리자 범인이 사용하던 장검이 땅바닥에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검이 말을 하잖아?’

그런데 아무도 검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들 정도현 쪽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것처럼.

한은성은 슬그머니 다가가 뇌령검을 움켜쥐었다.

『죽인다. 반드시 죽여 버린다! 저 망할…….』

“지금 말한 게 너냐?”

『…응?』

한은성이 목소릴 바짝 낮추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뇌령검의 절규도 뚝 끊겼다.

『설마… 너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거냐? 입으로 대답하지 말고 속으로 말해라.』

‘그래, 잘 들려. 너 대체 정체가…….’

『크하핫! 축하한다. 아무래도 넌 뇌령심법과 궁합이 잘 맞는 모양이구나. 아깐 몸뚱이가 약해서 졌지만, 네 녀석은 좀 다르겠지.』

‘뭐?’

『아, 느껴진다. 네 깊은 욕망이… 강한 힘을 원하는구나?』

“……!”

『날 받아들여라. 그럼 네가 원하는 힘을 주마.』

뇌령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한은성이 움찔했다.

그는 잘나신 형과 늘 비교당하며 살아왔다. 그가 뭔가 해 내면 사람들은 형부터 들먹였다.

그게 아니꼬왔다. 가슴에 한이 되어 맺혔다.

신은 잔혹했다.

욕망을 심어 주셨으면 그에 걸맞은 재능도 함께 내려 주셨어야지.

차라리 일반인이었다면 고통도 덜했으리라.

어정쩡한 재능을 가져서 더욱 원통했다.

『오호라, 형을 뛰어넘고 싶었던 거냐? 흥미롭군.』

“나, 난…….”

『그 꿈, 내가 이뤄 주마. 뇌령심법을 쓰면 네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에 한은성은 저도 모르게 혹했다.

뇌령검에 깃든 영혼은 그 빈틈을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파직-!

한은성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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