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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42화 (42/240)

나 혼자 1원 상점 - 42화

정도현은 민규원에게 연락해 안태환과 독대하고 싶다 말했다.

갑작스러운 요구였지만 안태환은 흔쾌히 수락했다.

다만 그는 다른 일정이 잡혀 있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정도현이 들어오자 안태환이 웃으며 자릴 권했다.

“갑자기 날 찾아오고. 그래, 무슨 일인가?”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이라···.”

정도현이 직접 찾아와 부탁할 만한 일이라니. 그게 뭘지 감도 안 잡혔다.

“뭐 마음에 안 드는 플레이어라도 홧김에 죽였나?”

선공을 가해 플레이어를 죽이면 킬 카운트가 쌓인다.

킬 카운트가 많든 적든 사람을 죽였으면 해당 플레이어의 신용 점수가 떨어지고, 점수가 일정 이하로 내려가면 감시 대상으로 분류된다.

그러면 각종 혜택이 사라지고 던전 입장 허가를 받아내기도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암흑가에 발을 들이는 것이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다행이군. 난 레드 플레이어랑은 상종하기도 싫거든.”

“진성이에 대한 겁니다.”

“흠. 그건 이미 다 끝난 얘기 아니었나?”

진성이를 언급하자 안태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지부장 취임까지 이제 얼마 안 남은 상황. 그런 와중에 자신의 치부를 언급하자 심기가 불편해진 모양.

“뭐, 양육비라도 받아내러 온 건가?”

“돈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왜 이런 타이밍에 그 아이 얘길 꺼냈지? 무슨 의도로?”

“오늘 아침에 진성이가 플레이어로 각성했습니다.”

“···!”

불량품인 줄 알았던 사생아가 시스템의 선택을 받았다.

상당히 드문 경우였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정도현도 F구역 출신 아니던가.

안태환이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전투 쪽인가? 아니면 생산직?”

“강화사입니다.”

“나쁘지 않군.”

강화사는 구하기 힘든 인재였다.

플레이어 수준이 뒤떨어지는 E구역에선 더더욱 그랬다.

대부분 D구역에 올라가 길드로 들어가니까. 안태환의 눈빛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다시 데려가실 겁니까?”

“그래. 그편이 그 애한테도 훨씬 좋지 않겠나.”

한낱 던전 브로커와 곧 E구역 지부장이 될 사내.

둘 중 어느 쪽이 유복한 환경인지는 굳이 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성이의 의견도 존중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 다섯 살짜리가 뭘 안다고.”

“평범한 아이였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진성이는 좀 다릅니다.”

친부모에게 사랑다운 사랑 한 번 받지 못했다. 심지어 쓸모없다고 버림까지 받았다.

아무리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몰라도 그런 일을 겪으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가 아직 제대로 아물지도 않았는데 건드리게 놔둘 순 없었다.

“송정민이었나? 그 브로커는 뭐라던가?”

“자기가 계속 보살피길 원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강화사는 희귀하니까.”

안태환은 자신의 관점으로만 상대를 바라봤다. 초장부터 대화가 삐걱댔다.

정도현은 어쩔 수 없이 숨겨둔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이변이 없는 한 다음 지부장은 부지부장님이 차지하시겠죠.”

“그래. 자네 덕분에 가장 큰 변수가 없어졌지.”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정도현은 장현민의 수족이던 오예찬을 꼬드겨 단번에 몰락시켰다.

그 과정에서 안태환이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

“만약 무투전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뭐라고?”

이어지는 말에 웃고 있던 안태환의 얼굴이 굳었다. 그에겐 저 말이 이렇게 들렸다.

“자네 설마···. 훼방이라도 놓을 셈인가?”

“저도 그러고 싶진 않습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안태환의 얼굴이 서서히 뻘게졌다.

정도현이 자신을 몇 번이고 도와준 건 맞지만 그래도 이번 건 도를 넘었다.

“인제 와서 다른 파벌에 들어가겠다고?”

정도현이 무투전에 끼어들면 판도가 뒤집힌다. 그를 이길 만한 플레이어가 이쪽엔 없었다.

죽었다 부활한 박성원이 제 입으로 그랬다.

설령 자신이 전력을 다해 싸웠어도 정도현에겐 졌을 거라고.

박성원의 직감은 여태 틀린 적이 없다.

게다가 그때 당시 정도현의 레벨은 39. 이젠 50레벨을 달성했으니 아예 승산이 없었다.

‘E구역에서 정도현을 일 대 일로 꺾을 만한 사람은···. 그 녀석밖에 없다.’

퍼플 팬텀의 리더, 심정환.

그가 영입하려 시도했던 인재라 기억에 남았다.

호기로웠던 청년은 D구역에서 눈을 잃고 내려왔다. 그 뒤로 E구역 중앙지대의 암흑가를 지배하게 됐다.

심정환은 검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 그 정도가 아니면 정도현은 절대 잡을 수 없다.

“아뇨. 전 누구 밑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아까 한 말은 뭔가?”

다른 지부장 후보와 연합할 생각이 없단 말에 안태환은 속으로 안도했다.

한편으론 아주 괘씸했다. 무슨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한시름 놓은 그에게 정도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신, 박성원을 무투전에 불참시킬 겁니다.”

“···?”

갑자기 박성원을 걸고넘어지다니.

안태환은 이해가 안 가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도현은 숨기는 것 없이 전부 털어놨다.

“저번에 제가 부활 아이템을 운 좋게 얻어서 박성원을 살려냈었죠.”

“그랬었지. 그건 지금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실은 그 아이템엔 부가 효과가 붙어 있습니다.”

“···부가 효과?”

“부활한 사람은 살려준 사람의 소원을 하나 들어줘야 합니다.”

안태환은 그때 부활 아이템을 살펴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 효과가 있는지 꿈에도 몰랐었다.

그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 소원으로 무슨 짓을 할 셈이지?”

“뭐, 무투전에 불참하라고 하거나, 다른 파벌로 옮기게 할 수도 있겠죠.”

“···!”

안태환은 상상해봤다.

박성원이 무투전에 불참하거나, 다른 후보 밑으로 들어가는 상황을.

‘그것만큼은 안 된다.’

안태환이 가장 유력한 후보인 건 무투전에서 우승할 확률이 높아서였다.

그런데 무투전에서 미끄러진다면?

상위 구역 인사들은 안태환에게 적잖이 실망할 것이다.

지부장 자릴 놓치는 건 물론이고, 부지부장 직책마저 넘겨줘야 할지 모른다.

그가 반평생 일궈온 것이 정도현의 한 마디에 날아가는 것이다.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올 건가?”

“하겠다곤 말 안 했습니다. 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 대신 그 애를 포기하란 거잖나.”

“지부장 자리와 진성이. 둘 중 어느 쪽을 고르실 겁니까? 선택은 부지부장님의 몫입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 아이를 챙기려 하는가.

강화사가 귀한 인재이긴 해도, 자신과 완전히 척을 질 정도로 가치가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정도현은 머잖아 D구역으로 올라갈 거다. 강화사는 거기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 터.

‘이해가 안 돼.’

피가 섞인 가족도 아닌 생판 남을 위해 저렇게까지 해준다는 게.

막말로 이번 일로 앙심을 품고 그에게 보복하면 어쩌려고?

죽이진 못하더라도 E구역에 머물 동안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다.

“···알았네. 그 애는 그쪽에서 계속 키우게. 대신 자넨 무투전에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겠다 약속하게.”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유라도 알고 싶군.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지?”

“제가 애들을 좀 좋아해서요.”

정답은 아니지만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정도현의 엉뚱하고 솔직한 대답에 안태환이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는 사내였다.

“단, 그 소원이라는 거. 내 쪽에 피해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쓰게. 안 쓰면 나중에 그걸로 또 협박할 수 있으니까.”

“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으면 밥이라도 한 끼 사달라 하던가. 박성원도 자네한테 한 끼 대접하고 싶어 하던데. 요새 던전 공략으로 바빠서 시간을 못 냈다더군.”

안태환의 요구에 정도현은 선선히 고갤 끄덕였다.

밥 한 끼. 소원으로 쓰기엔 너무 소박했지만 그렇다고 평소처럼 수하로 삼아버리자니 후환이 두려웠다.

진성이에 이어 박성원마저 빼앗기면 안태환은 완전히 적으로 돌아설 거다.

그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진성이의 진가를 생각해보면 그리 큰 손해는 아니었다.

***

정도현은 송정민에게 연락해 진성이를 건들지 않겠단 확답을 받아냈다고 전했다.

그러자 긴장이 풀린 송정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후···. 다행이네. 근데 그 양반 어떻게 설득했냐?]

“그런 게 있어요.”

[···위험한 짓 한 건 아니지?]

“피의 맹약서로 확실하게 매듭 지었으니까 보복당할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좀 삐지긴 했지만···. 그보다 진성이는 좀 어때요?”

[자고 일어났더니 다시 쌩쌩해졌어. 확실히 포션이 비싼 값을 하긴 하네.]

송정민이 평소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정도현은 피식 웃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무리를 보고선 나중에 연락하겠다며 통화를 끊었다.

정도현이 손을 흔들자 박성원 일행이 그를 발견하곤 호다닥 다가왔다.

“도현 씨!”

[박성원] [LV.48]

‘그 짧은 사이에 레벨을 다 복구하다니.’

정도현은 살짝 감탄했다.

아마도 파티원들이 그에게 막타를 양보해주며 경험치를 몰아줬겠지만 그래도 정말 대단했다.

본인의 전투 기여도가 낮으면 경험치를 몰아줄 수도 없을 테니까.

정도현과 박성원이 악수를 나누곤 다들 자리에 앉았다.

“바빠서 연락도 못 드렸네요. 저번에 한 번 찾아뵈려 했었는데 유령 도시로 가셨더라고요.”

“아, 그때요?”

박성원은 저번에 감사 인사를 전할 겸 그에게 연락했으나 한발 늦고 말았다.

그때 정도현은 유령 도시에서 파충류 몬스터들을 학살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게다가 유령 도시처럼 몬스터들이 득실대는 구역은 마력 때문에 전파도 제대로 안 터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드디어 오늘 만난 것이다.

“와, 미쳤다. 레벨이 무슨···.”

곽민기가 정도현의 머리 위를 보더니 입을 쩍 벌리고 감탄했다.

정도현의 레벨은 어느새 50.

여기 모인 이들을 전부 추월했다.

다들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시기나 질투는 일절 없었다.

그들에게 정도현은 더없이 소중한 은인이었으니까.

잠시 뒤, 주문했던 음식들이 하나둘 나왔다.

박성원이 쏜다는 말에 파티원들은 환호하며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댔다.

박성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정도현에게 해명했다.

“요새 거의 매일 던전에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바깥 음식이 많이 당겼나 봅니다.”

“레벨 복구하느라요?”

“예, 저 때문에 다들 엄청 고생했죠.”

박성원은 그렇게 답하곤 정도현을 빤히 쳐다봤다.

기색을 보아하니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따로 하실 말이 있는 겁니까?”

“···예. 정말 염치없지만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이죠?”

그가 무슨 얘길 꺼낼지 일행들도 궁금해서 바삐 움직이던 수저까지 멈추고 시선을 고정했다.

박성원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절 도현 씨의 임시 파티원으로 받아주실 수 있습니까?”

“임시 파티원이요?”

“켁, 케헥!”

목에 음식이 걸렸는지 곽민기가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들기며 기침했다.

옆자리에 있던 한유경이 물컵을 건네주고서야 겨우 기침이 멎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 곽민기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대장,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임시 파티원이라니···.”

“미안. 너희한테 말하기 뭣해서 말 안 하고 있었는데, 실은 오래전부터 고민했었어.”

박성원은 「초감각」이란 스킬 덕분에 던전을 들어가기 전, 자신 혹은 파티원 중 누군가가 죽거나 크게 다칠지 알 수 있었다.

50레벨의 벽을 넘기 위해선 50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이 있는 던전에 들어가야만 한다.

“전 괜찮지만 애들이 다치거나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전쯤에 레벨업을 완전히 포기했었습니다.”

“그랬었군요.”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도 부상자나 사망자가 발생할지 알 수 있다니.

상당히 유용한 스킬이었다.

박성원을 파티에 들이면 적어도 던전에서 죽거나 다칠 일은 없겠지.

“지금도 약한 건 아니지만···. 좀 더 성장하고 싶습니다. 도현 씨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레벨업 때문에 저랑 던전에 들어가고 싶으신 겁니까?”

“예. 벌써 50레벨이 되신 걸 보고 확신했습니다. 도현 씨와 던전에 들어가면 다치거나 죽을 일이 없겠죠.”

박성원의 간곡한 부탁에 정도현은 턱을 매만졌다.

마침 그도 50레벨 이상의 던전에 들어가려면 비슷한 레벨대의 파티원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류동하나 최민수는 흑마법사라 파티원으로 데려갈 수 없었는데···.’

레드 플레이어와 파티를 짜면 정도현도 똑같은 취급을 받을 거다.

주변의 시선이야 크게 상관없지만, 관리국의 불신을 사게 되면 신용 점수가 확 떨어진다.

박성원 정도면 당분간 그의 발목을 잡진 않을 터. 그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괜찮겠습니까? 부지부장님이 자칫 오해라도 하실까 걱정되는데요.”

아무래도 정도현이 인재를 빼내려는 것처럼 비쳐지지 않겠는가.

정도현이 그 부분을 우려하자 박성원이 손사래를 쳤다.

“아, 계속 파티에 넣어달라는 건 아닙니다. 저 스스로 성장에 한계를 느끼면 애들 곁으로 돌아오려고요.”

무투전까지 약 한 달 남았다.

그 일정이 끝나면 안태환은 지부장으로 승진하게 된다.

그럼 박성원 파티가 할 일도 당분간 없을 터.

그 공백기 동안 박성원은 정도현과 함께 성장할 생각이었다.

“도현 씨와 결투할 때도 전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약하면 우리 애들을 지킬 수 없겠구나 싶었죠.”

“대장···.”

정도현의 자비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되살아나지도 못했을 거다.

그런 기적은 두 번 다시 없을 터.

그렇기에 박성원은 레벨을 올려 더욱 강해지고 싶었다.

“좋습니다. 저도 마침 파티원이 필요했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단, 하나만 약속해주세요. 피의 맹약서도 쓸 건데, 괜찮으시죠?”

“물론이죠. 그런데 어떤 내용인가요?”

“저와 던전에 들어가서 겪었던 일들은 절대 발설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어렵진 않죠?”

“···예? 아, 예. 알겠습니다.”

뜬금없는 요구에 박성원은 의아했지만 고갤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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