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41화
진성이가 플레이어로 각성했단 소식에 정도현은 부랴부랴 송정민의 자택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자 진성이가 신난 얼굴로 총총거리며 마중 나왔다.
[송진성] [LV.1]
“아빠! 나도 각성···. 어? 도현이 형이다!”
진성이는 아빠랑 함께 온 정도현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송정민이 착잡한 얼굴로 진성이를 품에 안았다.
‘정말로 각성했어.’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은 맞다. 일반인보단 플레이어가 훨씬 살기 편한 세상이니까.
하지만 송정민은 다른 걱정이 앞섰다.
진성이를 양아들로 데려올 수 있었던 건 일반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성이가 각성한 걸 안태환이 알게 되면 어떻게 굴겠는가.
‘진성이를 다시 데려가려 할 거야.’
사생아가 있단 게 밝혀지면 구설에 오르겠지만 그게 플레이어면 감내할 만했다.
송정민이 애써 불안함을 감추며 질문했다.
“진성아. 어떤 스킬이 생겼는지 설명해줄래?”
“으음. 어려운 단어가 많아서 잘 모르겠어요.”
“보이는 그대로만 읽어주렴. 그건 할 수 있지?”
“응, 알았어요.”
진성이가 고갤 끄덕이며 스킬창에 적힌 글귀를 천천히 읊었다.
- 장비 강화: 강화석을 소모해 장비를 1회 강화합니다.
- 아이템 등급과 강화 단계가 높을수록 강화석을 추가로 요구하며 실패 확률이 상승합니다.
“···진성이는 강화사가 됐구나.”
“강화사? 그게 뭐예요?”
송정민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강화사는 비전투계 플레이어 중에서도 상당히 귀하기에 좋은 대우를 받는다.
특히 E구역 같은 곳에선 강화사를 구경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이로써 안태환이 진성이를 탐낼 확률이 더더욱 올라갔다.
송정민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떻게 해야 진성이를 안태환한테 뺏기지 않을까.
그가 머릴 싸매고 고민할 때, 진성이가 연이어 폭탄 발언을 했다.
“아, 개인 특성은 「합성」이라 적혀 있어요.”
“···뭐? 개인 특성?”
“응, 이거 있으면 좋은 거 맞죠?”
진성이는 바짝 타들어 가는 아빠 마음도 모른 채 헤실헤실 웃었다.
완전히 절망한 송정민. 정도현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제가 부지부장이랑 따로 만나서 얘기해볼게요.”
“그 양반. 말한다고 굽힐 인간이 아니야. 절대 포기 안 할걸?”
보기 드문 강화사에 개인 특성까지 지녔다.
「합성」이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 아직 안 들어봤지만, 분명 장비 강화 쪽으로 독보적인 능력을 발휘할 터.
이렇게 귀중한 인재를 안태환이 미쳤다고 포기하겠는가.
온갖 억지를 부려서라도 데려가려 할 거다.
‘개인 특성이야 어찌어찌 감출 수 있다고 쳐도.’
강화사로 각성했단 것만큼은 숨기지 못한다.
플레이어로 각성한 사람은 반드시 관리국에 자진 신고해야만 하니까.
그러지 않고 그냥 지내다 차후에 들키면 ‘해방단’처럼 불법 각성자로 분류되어 수배서가 붙는다. 붙잡히면 바로 숙청당하거나 특수 수용소로 끌려갈 터.
각성자 명단에 진성이 이름이 올라오면 안태환이 움직이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
“후우···.”
송정민이 소파에 앉으며 바닥이 꺼지라 한숨을 푹 쉬었다. 그제야 진성이도 눈치챘다.
아빠가 자신의 각성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걸. 진성이는 주눅 든 목소리로 질문했다.
“저 각성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아냐. 그런 게 아니라···.”
송정민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맸다. 정도현이 곤란한 그를 돕고자 화제를 슬쩍 돌렸다.
“진성아. 아까 개인 특성 있다고 했지? 이름이 「합성」이었나?”
“응.”
“어떤 효과인지 알려줄래? 아까처럼 쭉 읽어주기만 하면 돼.”
진성이는 시키는 대로 했다.
- 합성: 똑같은 장비 아이템 두 개를 하나로 합쳐 +1만큼 강화합니다.
- 「장비 강화」보다 능력치 상승 폭이 훨씬 큽니다.
- 합성에 실패할 시, 강화 재료로 선택된 아이템이 완전히 파괴됩니다.
- 최대 +20만큼 합성 가능합니다.
“다 읽었어요.”
“흐음.”
“같은 아이템을 합쳐서 강화한다라···.”
요약하자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장비 강화」 스킬에는 ‘강화석’이라는 별도의 재료 아이템이 필요하다.
강화석은 보스 혹은 네임드 몬스터를 잡다 보면 낮은 확률로 얻는데, 강화석 등급이 높을수록 강화 성공 확률도 증가한다.
그래서 중급부터는 상당한 고가에 거래된다. 매물도 적은 편이었고.
정도현은 상점창에서 강화석을 검색해 구매해봤지만 중급 이상부터는 귀속이었다.
강화석만 그런 게 아니다.
중급 이상의 마정석이나 에픽, 유니크 등급 장비템들은 전부 그에게 귀속됐다.
각설하고 상점에서 강화석을 사도 강화사한테 줄 수가 없으니 강화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가 악용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이 제약을 건 듯했다.
‘내가 작정하고 강화석을 시중에 마구 풀어버리면 시세가 뒤집힐 테니까.’
에픽, 유니크 아이템이 수십, 수백 개가 시중에 풀린다고 생각해봐라.
분명 큰 혼란이 빚어질 터.
아무튼, 장비를 강화하려면 내 돈 주고 산 강화석이 필요했다.
하지만 E구역 경매장엔 강화석 매물도 안 올라오고 가격대도 너무 비싸서 손댈 엄두가 안 났다.
‘진성이의 「합성」은 강화석 없이도 장비를 강화할 수 있어.’
저레벨 플레이어 기준으론 「장비 강화」보단 「합성」이 훨씬 유리했다.
노말 등급템은 저렴하고 매물도 많아서 구하기까지 쉬우니까.
게다가 강화로 올라가는 능력치도 합성 쪽이 더 크다고 하니.
“넌 좀 애매하겠는데.”
송정민이 정도현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정도현은 이미 레어템으로 싹 무장한 상태.
「합성」으로 강화하려면 지금 쓰는 것과 같은 장비가 필요했다.
강화석이든 레어 아이템이든 E구역에선 구하기 힘든 건 매한가지.
“···.”
정도현은 말없이 진성이를 쳐다봤다.
송정민은 애매하다고 말했지만 그가 볼 땐 아니었다.
“진성아. 형이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뭔데요?”
“형이 주는 아이템들을 합성해줄래?”
진성이도 능력을 써보고 싶었는지 냉큼 수락했다.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롱소드를 두 개 꺼냈다.
[요정의 기운이 서린 롱소드] [레어]
- 착용 조건: LV.45 이상
- 모든 능력치 1.5% 상승.
- 물리 피해량 10% 상승.
- 요정의 축복 세트 아이템 (5/5)
- 세트 효과: 「항마의 방패」 방어 수치가 200%만큼 상승, 마법 저항력 100% 상승.
“···응?”
정도현이 레어 등급 무기를 두 개나 꺼내자 송정민의 눈이 커졌다.
노말 등급이면 예비용으로 한두 개쯤 더 들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저건 레어 등급.
E구역에선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었다.
‘던전 보상으로 똑같은 무기를 연달아 얻었을 린 없고.’
정말 천운이 따라줘서 레어템 두 개를 얻은 건 그럴 수 있다.
종종 그런 플레이어가 있으니까.
하지만 똑같은 아이템을 얻는 건 확률이 너무 낮았다.
“너 그거 어디서 났어?”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정도현은 진성이 앞에 검 두 자루를 가지런히 놓았다.
진성이가 무기에 손을 뻗으며 개인 특성을 발동했다.
“「합성」.”
파아앗-!
「장비 강화」처럼 순백의 빛줄기가 칼을 감쌌다.
강화 재료로 선택된 칼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일그러지더니 다른 롱소드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빛이 사그라들자 칼 한 자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진성이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성공했대요!”
“어디 볼까.”
정도현은 칼을 집어 들고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요정의 기운이 서린 롱소드(+1)] [레어]
- 착용 조건: LV.45 이상
- 모든 능력치 1.5(+0.5)% 상승.
- 물리 피해량 10(+5)% 상승.
- 요정의 축복 세트 아이템 (5/5)
- 세트 효과: 「항마의 방패」 방어도가 200%만큼 상승, 마법 저항력 100% 상승.
장비 강화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수치가 얼마나 더 오른 건지 감이 안 잡혔다.
옆에서 같이 살펴보던 송정민이 작게 감탄했다.
“오. 괜찮은데?”
“많이 오른 겁니까?”
“어. 상승치가 두 배 정도야.”
송정민이 말했다. 「장비 강화」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고.
즉, +1강이지만 실질적으론 +2강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말에 정도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진성아. 혹시 더 할 수 있겠니?”
“응. 더 할래요!”
「합성」을 쓸 때 마력도 소모되는지 진성이의 이마에 땀방울이 조금 맺혀 있었다.
진성이는 기특하게도 의욕을 보였다.
정도현은 머릴 쓰다듬어주며 제물로 바칠 롱소드를 하나 더 꺼냈다.
“뭐야? 너···.”
레어템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더 갖고 있다니. 뭔가 이상했다.
송정민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정도현을 바라봤다.
파아앗-!
그러는 사이 진성이가 다시 합성을 사용했다. 아까처럼 두 자루의 검이 한데 섞였다.
“와아! 저 레벨 올랐어요!”
진성이가 신난 목소리로 보고했다.
강화사는 장비를 강화하는 것으로도 경험치를 얻은 모양.
물론 비전투계라 신체 능력이 확 오르진 않을 거다.
‘강화 성공 확률이 조금씩 오른다던데.’
그래서 상위 구역 길드는 조금이라도 더 레벨이 높은 강화사를 영입하려고 애쓴다.
레벨과 강력한 아이템이야말로 강함의 상징이니까.
“레벨 올라서 좋아?”
“응! 나도 형처럼 레벨 많이 올리고 싶어.”
레벨이 높아지면 관리국의 혜택도 커진다. 그중에 가장 크게 와닿는 건 세금 감면이었다.
일찍 레벨을 올려둬서 나쁠 건 없겠지.
“그럼 형이 도와줄까?”
정도현이 인벤토리에서 롱소드를 몇 개 더 꺼냈다.
그러자 진성이는 장난감을 선물 받은 것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그렇게 진성이는 마력이 다할 때까지 무기를 합성했다.
도중에 몇 번인가 실패했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바칠 재료는 아직 한가득 남았으니까.
[요정의 기운이 서린 롱소드(+7)] [레어]
- 착용 조건: LV.45 이상
- 모든 능력치 1.5(+3.5)% 상승.
- 물리 피해량 10(+35)% 상승.
- 요정의 축복 세트 아이템 (5/5)
- 세트 효과: 「항마의 방패」 방어도가 200%만큼 상승, 마법 저항력 100% 상승.
“···.”
믿을 수 없는 결과물이 탄생하자, 송정민은 할 말을 잃었는지 망연히 쳐다봤다.
“아빠···. 나 졸려···.”
합성하다 보니 어느새 3레벨이 된 진성이.
마력을 다 써서 피곤한지 진성이가 눈을 비비며 송정민의 다리에 매달렸다.
정도현은 마력 포션을 꺼내 진성이 손에 쥐여줬다.
마력은 다 채웠으니 한숨 푹 자고 나면 말짱해질 거다.
송정민이 꾸벅꾸벅 조는 진성이를 품에 꼭 안으며 말했다.
“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정도현은 자신의 개인 특성에 대해 일부 설명해줬다.
상점창에서 원하는 아이템을 검색해 싸게 구매할 수 있단 말에 송정민이 입을 쩍 벌렸다.
상점창이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사기인데 가격마저 싸다니.
“그 미친 레벨업 속도가 이제야 좀 이해된다.”
장비 아이템말고도 회복 포션을 가득 들고 있을 테니 던전에서 거의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을 터.
그가 왜 솔로잉을 고집했는지 이제야 납득갔다.
던전에서 몬스터와 교전할 때마다 포션을 막 써대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황금 고블린이 나타났단 식으로 소문이 쫙 퍼지겠지.
“진성이의 「합성」은 강화로 올라가는 수치가 큰 대신, 좋은 장비일수록 돈을 쏟아부어야 한단 단점이 있는데···. 너한텐 별 의미가 없겠네?”
“그런 셈이죠.”
“하, 이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탄생하겠네.”
정도현과 진성이의 개인 특성이 합쳐지자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했다.
이론상 모든 장비를 +20강까지 만들 수 있었다.
‘+10강부터는 강화에 실패할 때마다 낮은 확률로 장비가 파괴되는데, 합성은 그런 페널티가 없어.’
파괴되는 건 오직 합성 재료로 쓰인 장비템뿐. 즉, 열심히 강화해온 무기를 날려 먹을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이건 엄청난 이점이었다.
남들이야 비싼 장비를 강화 재료로 갈아 넣는 거니 실패하면 손해가 막심하겠지만, 정도현한텐 어차피 1원짜리다.
그렇기에 아무런 부담 없이 맘껏 지를 수 있었다.
수백 번 시도해서 딱 한 번만 성공하더라도 엄청난 이득인 셈.
“진성이 봐봐. 자는 모습 진짜 천사 같지 않냐?”
“마력 포션을 썼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래. 아마 마력을 처음 써봐서 금방 피로해진 걸 거야. 나이도 아직 어리고.”
송정민이 곤히 잠든 진성이를 애틋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머지 장비들 강화는 잠시 미뤄줘.”
“예?”
“진성이 레벨이 너무 빨리 오르면 관리국도 눈치챌 거야. 뭔가 특별하다고 여기겠지.”
“아···.”
진성이는 각성한 지 몇 시간도 채 안 됐다. 그런데 벌써 3레벨을 찍었다.
상위 구역은 장비를 강화하는 플레이어가 비교적 많으니 가능할 수 있겠지만, E구역에선 그런 플레이어가 극히 드물었다.
이 이상 레벨을 올리면 관리국이 수상쩍게 여기고 추궁할 터.
“진성이한테 개인 특성이 있단 걸 알면 안태환도 가만있지 않을 거고.”
송정민이 고민거리를 뱉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진성이에게 정이 잔뜩 들었다.
일찍 세상을 뜬 아내에게 못 해줬던 만큼 진성이에게 잘해주기로 맹세했었다.
안태환이 진성이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생부였다면 모를까. 분명 도구처럼 취급받을 거다.
“제가 담판 짓고 올게요.”
“···괜찮겠어? 괜히 그 양반 심기 건드렸다가 너까지 위험해지는 거 아냐?”
안태환은 지부장 후보 중 가장 유력한 존재.
이제 E구역 내에선 감히 맞설 자가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그에게 거역하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
모처럼 쌓아뒀던 좋은 관계가 한꺼번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는 정도현이 그런 위험 부담을 지길 원치 않았다.
“쓸만한 패가 하나 있어요.”
“···쓸만한 패?”
“안태환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음 지부장은 아마 다른 후보가 될 겁니다.”
“뭐?”
너 또 뭔 짓거릴 하려고?
송정민이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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