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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39화 (39/240)

나 혼자 1원 상점 - 39화

정도현이 심정환한테 일 대 일 결투를 신청하자 민소이는 조소를 머금었다.

50레벨이 63레벨한테 덤비다니.

무모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

설마 진심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환 오빠가 앞을 못 보니 해볼 만하다고 여긴 걸지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심정환이 50레벨한테 밀릴 수준이었으면 진즉 길드장 자리에서 쫓겨났을 거다.

다른 암흑가 조직들도 그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테고.

“길드장님. 잠깐 얘기 좀 하고 와도 될까요?”

“그래. 준비되면 말해.”

서아린이 심정환에게 시간을 좀 달라고 청했다. 그는 흔쾌히 고갤 끄덕였다.

서아린이 정도현을 구석진 곳으로 데려가 뭐라 얘기했다.

민소이는 그 둘을 지켜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흥. 머릴 맞대고 전략을 짜보게?’

몸이 약하면 머리가 고생한다.

반대로 말하면 강한 사람은 귀찮게 머릴 쓸 필요가 없었다. 그냥 힘으로 찍어누르면 되니까.

심정환이 아주 좋은 예였다.

별 생각 없이 살지만 강하니까 아무도 못 건드렸다.

“···?”

서아린이 정도현에게 뭐라 말하더니 조그만 보석을 건넸다.

보석을 받아든 정도현은 놀란 기색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민소이는 저 보석이 뭔지, 저들이 무슨 작당 모의를 하는지 궁금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았다.

‘마정석처럼 생겼던데. 저걸 왜 준 거지?’

자신을 위해 결투에 나서준 보답인가?

하지만 정도현은 마법사가 아닌 검사.

칼잡이에게 마정석은 그저 예쁜 보석일 뿐. 전투할 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민소이는 옆에서 몸을 푸는 심정환에게 슬쩍 말했다.

“정환 오빠. 불쌍하다고 절대 봐주면 안 돼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싸울 때만큼은 진지해.”

“방심하다 다치지도 말고.”

“그래.”

연인의 듬직한 대답에 민소이는 우월감에 찬 눈으로 서아린을 노려봤다.

그녀도 슬슬 감 잡았다. 서아린이 정도현한테 호감을 품고 있단 걸.

‘대뜸 찾아와서 깽판을 치길래 뭔가 했더니···.’

정도현 어딨냐며 물을 땐 뭔 소린가 했는데. 이제야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딱딱 맞춰졌다.

서아린은 정도현이 여기로 끌려온 줄 착각한 것이다.

타인을 위해 제 목숨을 걸다니. 그녀가 알던 검은 뱀은 저러지 않았다.

‘저 남자도 참 불쌍하네. 여자 잘못 만나서 험한 꼴이나 보고.’

민소이는 정도현을 불쌍히 여기다, 그의 발차기에 맞고 날아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정정한다. 결투 중에 칼 맞고 콱 뒈졌으면 좋겠다.

물론 그 전에 탈탈 털리고 항복하겠지만.

50레벨을 훌쩍 넘긴 다른 암흑가 보스들도 전부 정환 오빠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가.

‘게다가 정환 오빠는 검기도 쓸 수 있으니까.’

심정환은 플레이어가 되고서 불과 2년 만에 검기를 터득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재능.

본인 왈, 그 뛰어난 재능이 오히려 독이 됐다며 눈가의 흉터를 씁쓸히 어루만졌지만.

“준비됐습니다.”

정도현이 대화를 끝마치고 돌아왔다.

중앙홀에 정도현과 심정환이 마주 보고 섰다.

민소이와 서아린 그리고 조직원들은 멀찍이 떨어진 채 두 남자를 빙 둘러쌌다.

민소이가 서아린 옆으로 다가와 약 올리듯 말했다.

“야, 넌 저 남자가 불쌍하지도 않아?”

“불쌍? 누가?”

“하, 진짜 재수 없는 년이라니까.”

서아린이 퍼플 팬텀 소속이었던 시절.

그녀는 늘 조직원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일으키고 협조적이지 않았다.

재능과 실력은 출중했으나 공동체 조직엔 영 어울리지 않은 인재였다.

그래도 같은 편이니 꾹 참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개인 사정을 들먹이며 조직에서 탈퇴해버렸다.

“정환 오빠한테 평생 감사하며 살아. 오빠가 자비를 베풀어줘서 목숨은 건졌잖아?”

“글쎄.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무슨 뜻이야?”

“도현 씨가 이기면 고마워해야 할 대상도 바뀌잖아. 안 그래?”

이 년이 미쳤나? 혹시 아까 조직원들한테 제압당할 때 머리라도 심하게 다친 건가.

민소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서아린을 노려봤다. 서아린도 피하지 않고 싸늘한 눈빛으로 받아쳤다.

채앵! 챙!

그때,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두 남자의 결투가 시작됐다.

***

심정환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움직임에 주저함이 없었다. 실로 경이로웠다.

카앙-! 카가가강!

둘 사이에 검광이 충돌하며 용접 현장처럼 불똥이 마구 튀었다.

언뜻 보면 막상막하였으나, 심정환은 아직 전력을 발휘한 게 아니었다.

정도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야, 대단한데?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심정환은 정도현과 몇 합 겨뤄보곤 솜씨를 인정했다.

다른 암흑가 길드장들보다 정도현이 훨씬 강했다.

유망주라길래 전투 경험이 부족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날카로우면서도 빈틈이 없는 검로.’

마치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 플레이어와 겨루는 것 같았다.

심정환은 정도현의 움직임을 머릿속에서 하나씩 그려보며 학습했다.

카앙-! 캉!

중간중간 정도현의 움직임이 읽혔다.

도중에 공격이 자꾸 가로막힌다.

주변 공간이 협소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정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독학으로 이만큼 익힌 거야?”

“그래.”

둘 다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혓바닥과 함께 팔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카가가강!

둘 사이에 공방이 빠르게 오간다.

정도현이 안쪽으로 파고들며 칼을 휘두르면 심정환은 거릴 벌리며 맞받아쳤다.

도저히 빈틈을 뚫을 수가 없었다.

정도현은 상대의 실력을 인정했다.

‘순수 검술만으론 못 이겨.’

심정환은 방어에 치중하면서도 상대의 검술을 탐색한다.

마치 수학 문제에 공식을 대입해 풀어나가듯 차근차근 파훼했다.

검사 특유의 호기심인지 아니면 원래 신중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오래 끌수록 자신이 불리해진다.

정도현의 검술을 다 파악한 심정환이 공격적으로 나오면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

정도현은 전투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응?”

드드드-!

심정환이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땅바닥에서 발소리와 명백히 다른 이질적인 진동음이 들렸다.

파바박-!

지면에서 뭔가가 솟아올랐다.

그는 그게 뭔지 안 보였으나 공기 흐름의 변화를 읽고 본능처럼 칼을 휘둘렀다.

쩌적-!

손끝으로 충격이 전해졌다. 마치 단단한 바위를 깨부순 느낌이다.

심정환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법 주문?’

바닥에서 단단한 암석이 기둥 모양으로 솟구쳤다. 절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누군가가 대지의 주문을 쓴 게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투 시스템 특성상 외부 개입은 불가능하다.

‘그럼 정도현이 주문을 썼단 건데···.’

검사가 주문을 쓴다니.

검과 마법은 상반되는 영역이라 동시에 익히는 건 거의 불가능할 텐데.

파바박-!

정도현은 궁금증을 해소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번엔 측면에서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심정환은 옆으로 구르며 화살처럼 쏟아지는 바람의 탄환을 피했다.

그가 굴렀던 경로에 조그만 구멍들이 숭숭 뚫렸다.

타다닥-!

바람의 주문이 날아온 쪽 정반대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정도현이 제 몸을 내던지듯 크게 도약하며 온 힘을 실어 칼을 휘둘렀다.

까앙-!

심정환은 칼을 세워서 아슬아슬하게 막았다.

“크윽!”

카가각-!

묵직한 일격에 심정환이 뒤로 쭉 밀려났다. 그의 칼이 바닥을 쭉 그으며 상흔을 남겼다.

손바닥이 저릿했다.

칼날이 아니라 마치 망치를 막아낸 것 같았다.

뒤로 밀려났던 심정환이 자세를 바로잡았을 때.

“뭐야!”

“저 자식. 비겁하게 매직 스크롤을 쓰다니!”

“무기도 바꿨어!”

성난 구경꾼들이 웅성댔다.

정도현이 매직 스크롤을 꺼내 쓴 것도 모자라 무기를 전투용 망치로 바꿨다.

“치사한 놈!”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조직원들이 그에게 야유를 보냈다.

정도현은 그들이 뭐라 떠들어도 무시했다.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을 쓰지 말란 규칙은 없었으니까.

관중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심정환이 일갈했다.

“얘들아, 말 같지도 않은 억지 부리지 마라. 자기 아이템 꺼내 쓴 게 뭐가 비겁한데?”

당사자가 괜찮다고 말해버리니 구경꾼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주변이 고요해지자 심정환이 말했다.

“내 착각인 줄 알았는데 무기도 바꿨구나. 망치였지?”

“그래.”

이럴 때 눈이 안 보이는 건 참으로 불편했다. 갑작스러운 변수에는 대처가 늦으니까.

둘의 레벨이 비슷했었다면 아까 공격으로 승패가 갈렸을 것이다. 그러나 심정환은 버텨냈다.

“이쯤에서 항복해.”

“갑자기?”

“시도는 좋았는데 결국 막혔잖아. 같은 수법은 나한테 안 통해.”

다른 무기를 쥐면 움직임이나 공격 패턴이 달라진다.

정도현의 검술에 슬슬 익숙해져 안심했던 심정환의 허를 제대로 찔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국 막혔다.

억울하겠지만 어쩌겠는가. 레벨이 깡패인걸.

“넌 정말 잘 싸웠어. 아무도 안 비웃을 거다.”

심정환은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아까 포차에서 도움받은 것도 있었으니까.

스윽.

그의 항복 권유에도 정도현은 자세를 낮추고 돌격 준비를 마쳤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심정환은 동질감을 느꼈다.

‘나도 예전에 저랬었지.’

그는 눈부신 재능이 있었기에 남들보다 훨씬 빨리 치고 올라갔었다.

검을 잡고 불과 2년 만에 검기를 터득했다. 심지어 독학이었다.

그래서 자만했다.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 D구역까지 올라갔다.

그러다 자신과 상대와의 격차를 제대로 재지 못하고 무모하게 덤볐다.

그 어리석은 행동으로 그는 영영 빛을 잃었다.

“내 눈이 어쩌다 이렇게 된 줄 알아? 동료들이랑 D구역으로 올라간 지 한 달쯤 됐을 때였어. 레드 플레이어들이 자기 길드에 들어오라 권했지.”

심정환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놨다.

D구역까지 올라갔단 말에 정도현도 관심이 생겼는지 자세를 슬쩍 풀었다.

“정중히 거절했어. 나쁜 짓을 전업으로 삼긴 좀···. 그랬거든. 그런데 며칠 후에 길드에서 척살대를 보내더라?”

동료들은 다 죽었고, 심정환은 막 올라온 신참 주제에 시건방지단 이유로 시력을 뺏겼다.

“난 내 재능을 과신했어. 검술로 밀린 적은 없었거든.”

시비 거는 놈들은 모조리 깨부수고 D구역까지 입성했다. 당시 그와 동료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다 D구역 레드 플레이어한테 잘못 걸렸고 대패했다.

검술의 이해도, 전투 센스는 그가 훨씬 뛰어났으나, 그 레드 플레이어와 심정환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검기, 들어봤지?”

“어.”

“D구역 놈들 대부분은 무기에 마력을 담을 줄 알아. 일찍 각성하면 아카데미란 곳에 입학해서 이런저런 조기 교육을 받는다나?”

심정환과 붙었던 레드 플레이어는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당시 심정환의 검기의 완성도는 상대보다 한참 부족했다.

검기가 부딪힐 때마다 몸속의 혈관이 뒤틀리고,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그러다 실수했고 양쪽 눈을 베였다.

레드 플레이어는 장님이 된 그를 마구 비웃으며 훌쩍 떠났다.

“아무튼, 검기를 쓰지 못하면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파스스-!

심정환은 그날 이후로 꾸준히 연마해온 검기를 선보였다. 그의 칼날을 따라 새빨간 마력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정도현이 그걸 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검기는 원래 그렇게 마력이 새는 거야? 나랑 좀 다르네.”

“···뭐?”

파스스-!

정도현은 보란 듯이 망치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심정환의 검기는 조금씩 출렁대며 담배 연기처럼 마력이 빠져나갔지만, 정도현에겐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심정환이 입을 쩍 벌렸다. 눈을 잃었어도 마력은 감지할 수 있었다.

“너···. 각성한 지 얼마나 됐어?”

“두 달 좀 넘었지.”

심정환이 검기를 구사하는 데 2년 걸렸다.

상위 구역 플레이어들과 달리 그는 독학으로 익혀 좀 헤맸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정도현은 선을 심하게 넘었다.

“하, 하하···.”

심정환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날, 놈들에게 눈을 잃었던 날.

마음 속의 오만함을 전부 털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정도현의 재능은 그를 아득히 앞섰다.

물론 그 재능도 1원 상점에서 돈 주고 산 거였지만. 심정환은 그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잡담은 이쯤하고. 다시 싸워볼까?”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심정환은 씁쓸하게 웃으며 거기에 응수해줬다.

원래는 정도현에게 검기를 보여주고 항복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도현은 이미 검기를 터득했다. 심지어 검이 아닌 전투용 망치로 완벽히 펼쳤다.

‘마력에 흔들림이 전혀 없어.’

정도현의 무기에 깃든 마력은 마치 혼연일체가 된 것처럼 안정적이었다.

무기 밖으로 새어 나가는 마력이 일절 없다.

완벽하다. 그 말 외엔 묘사할 길이 없었다.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눈을 이렇게 만든 레드 플레이어의 검기조차 저것에 비하면 부족함이 많았다.

검기의 싸움은 완성도로 판가름이 난다. 저것과 정면으로 맞붙으면 당연히 자신이 밀릴 터.

‘좇됐네.’

심정환은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반면에 정도현은 드디어 검기의 위력을 제대로 시험해볼 상대를 만나 싱글벙글했다.

타다닥-!

정도현과 심정환의 발이 동시에 움직였고, 서로의 검기가 힘껏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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