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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38화 (38/240)

나 혼자 1원 상점 - 38화

“컥, 꺼흑···.”

“괘, 괜찮으십니까?!”

조직원 몇이 급습당한 민소이에게 달려왔다. 그녀가 쿨럭대며 각혈했다.

탁-!

그녀는 부축해주려던 부하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혼자 일어났다. 그러더니 씩씩대며 외쳤다.

“씨···. 넌 또 뭐 하는 놈이야!”

정도현은 민소이의 호통에 반응해주지 않았다. 그 대신 바닥에 쓰러진 서아린을 일으켰다.

“괜찮아?”

“···아.”

서아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힘겹게 눈을 뜨자 죽은 줄 알았던 정도현의 얼굴이 보인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멀쩡해요?”

“뭐?”

“민소이한테 잡혀간 거 아니었어요?”

“잡혀가? 무슨 소리야?”

정도현은 술 취한 사람처럼 헛소리하는 그녀의 손에 회복 포션을 쥐여줬다.

덕분에 서아린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녀가 비틀대며 일어서자 민소이가 으르렁대며 따졌다.

“저 남자도 서아린이랑 한패야! 당장 죽여버려!”

파바밧-!

그녀의 명령에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도현 일행을 빙 둘러쌌다.

정도현은 무기를 꺼내 들며 생각했다.

‘급해서 일단 저지르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거대 조직의 본부답게 50레벨에 근접한 조직원들도 군데군데 섞여 있다.

안전한 곳에 숨은 채 소환수들로 야습을 가했었다면 모를까. 지금 같은 상황에선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쓸 수 있는 수단은 다 꺼내야겠지.’

정도현이 퍼플 팬텀과의 전면전을 각오하고 소환석과 매직 스크롤을 꺼내들려 할 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거리지?”

“···!”

목소리의 주인은 정도현에게 길 안내를 해줬던 그 남자였다.

그의 한마디에 모든 조직원이 움찔하며 행동을 멈췄다.

정도현은 저 남자가 퍼플 팬텀의 간부가 아닐까 어렴풋이 추측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직원들 반응이 어째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 남자를 보며 서아린이 중얼댔다.

“···심정환.”

“아는 녀석이야?”

“예, 저 사람이 퍼플 팬텀의 수장이에요.”

저 푼수가 조직의 우두머리였다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뚜벅, 뚜벅.

모두 얼어붙은 상황에서 심정환만 움직였다.

그는 정도현 쪽으로 다가오면서 자기 얼굴에다 손을 갖다 댔다.

뭘 하려는 건지 궁금해서 쳐다봤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스르륵.

심정환의 얼굴에 돌연 새하얀 가면이 생겨났다.

‘아니. 계속 쓰고 있었는데 남들 눈에는 안 보였던 거군.’

저 가면은 얼굴을 무작위로 바꿔주는 아이템이었다.

심정환이 하얀 가면을 벗자 본래 얼굴과 이름 그리고 레벨이 드러났다.

[심정환] [LV.63]

레벨은 안태환 부지부장보다 높지만 상당히 젊었다. 한 삼십 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수려한 미형이나, 눈가에 가로로 길쭉한 흉터가 한 줄 그어져 있다.

그걸 본 정도현이 입을 살짝 벌렸다.

‘눈이 멀었다고?’

시선 처리나 걷는 게 자연스러워서 맹인인지 전혀 눈치 못 챘다.

게다가 하나도 아니고 양쪽 안구가 심하게 망가져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앞이 안 보이는데도 용케 길드장 자릴 지켜냈구나.

‘그만큼 실력 있단 거겠지.’

정도현은 저도 모르게 칼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긴장한 건지 아니면 호승심을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었다.

심정환이 정도현 일행을 에워싼 조직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무기 거두고 물러나 있어.”

“예?”

“하지만···.”

스릉-!

부하 몇몇이 토를 달자 심정환이 조용히 칼을 빼 들었다. 조직원들 표정이 빳빳하게 굳었다.

심정환은 칼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쉬긴 했나 봐. 이젠 듣는 척도 안 하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조직원들이 황급히 무기를 내리고 물러났다. 포위망이 풀리고 심정환은 정도현의 지척까지 다가섰다.

조직원들이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그 둘을 쳐다봤다.

정도현과 심정환은 서로 칼을 쥐고 있었다.

당장 칼부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촉즉발의 상황.

“정도현이면···. 그놈 맞지?”

“레벨 보니까 맞네.”

“혼자서 레드 플레이어를 수십이나 죽였다며?”

정도현은 최근 들어 암흑가에서 악명이 자자했다.

그가 여태 처리한 레드 플레이어만 오십 명이 넘는다.

게다가 혼자서 그렇게 죽여댔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봐,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줄래? 보다시피 내가 눈이 안 보여서.”

심정환은 가면을 벗고 나선 자연스럽게 하대했다. 말투도 한층 딱딱해졌다.

정도현은 그의 사정을 헤아려줬다.

부하들이 다 보는 앞에서 아까처럼 친근하게 굴 순 없겠지.

“지인이 죽어가고 있어서 난입했다.”

“지인? 그게 누군데?”

“오랜만이네요, 길드장님.”

“응? 이 목소리는···. 검은 뱀, 너야?”

“예. 저예요.”

서아린이 인사하자 심정환이 반갑게 받아줬다.

그러고 보니 서아린은 예전에 이곳에서 일 했었지.

“이야, 이게 몇 년 만이지?”

“삼 년이 넘었죠.”

“조직에서 안 나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직 생활은 저랑 영 안 맞기도 하고, 악착같이 돈 모을 이유도 없어졌으니까요.”

“···그래. 어머님 일은 정말 안타깝게 됐어.”

심정환은 서아린의 개인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조직에서 나갈 때 그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때 심정환은 몇 번이나 그녀를 설득했지만 결국엔 포기하고 곱게 보내줬다.

“그때 소이가 배신자니까 죽여야 한다고 방방 날뛰었는데. 내가 그거 뜯어 말리느라 진땀 뺐지.”

“포기 안 했더라고요.”

“···응?”

“민소이가 얼마 전에 저 죽이려 조직원들 여럿 보냈던데. 모르셨어요?”

심정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는 어떻게 된 거냐고 추궁하듯 민소이 쪽을 바라봤다.

민소이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퍼플 팬텀에 그딴 이유로 탈퇴한 건 아무도 없었어!”

“쟨 불쌍하니까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 너도 그때 알겠다고 했고. 이미 다 끝난 얘기 아니었어?”

“오빠는···. 아니, 길드장님은 왜 맨날 쟤 편을 들어줘요?”

민소이가 질시 가득한 눈으로 서아린을 째려봤다.

서아린이 피곤하단 듯 한숨을 뱉었다.

예전부터 민소이는 저랬었다.

혹시 서아린과 심정환이 자기 몰래 바람피우는 게 아닐까 하고.

실상은 서로에게 별 감정 없었고, 오해를 살 만한 짓도 한 적 없다.

강한 질투심은 때론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망상을 불러일으킨다.

사건의 전모를 안 심정환이 면목 없단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소이한테 항의하러 온 거야?”

“저한테 원한 품는 건 이해해요. 개인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나간 건 저니까. 하지만 제 주변 사람은 건드리면 안 됐어요.”

“···뭐?”

서아린이야 조직을 등진 명분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번 일과 관련도 없는 이를 공격한 건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심정환이 민소이에게 사실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가 억울하단 말투로 변명했다.

“전 그런 지령 안 내렸어요! 하부 조직원들이 멋대로 저질렀거나 뭔가 착각했겠죠.”

“어쨌든 소이 너 때문에 시작된 일이잖아.”

“···큭!”

민소이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한편 정도현은 돌아가는 상황을 쭉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거 잘만 하면 피 터지게 안 싸우고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데?’

심정환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길드장도 당연히 한통속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번 일은 민소이가 독단적으로 벌인 짓. 질투심에 눈이 먼 그녀는 자충수를 둬버렸다.

심정환이 서아린에게 질문했다.

“공격당했다던 지인은? 무사한 거야?”

“지금 제 옆에 있어요.”

“···옆에?”

심정환이 정도현 쪽으로 고갤 돌렸다.

“정말로 우리 애들한테 습격당했어?”

“그래. 역으로 내가 제압했지만. 서아린은 내가 당한 줄 착각했던 모양이야.”

“호오?”

심정환이 작게 감탄했다.

하부 조직원이라고 해도 경력과 경험이 다소 부족할 뿐, 레벨이나 실력은 본부 조직원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살아남았다는 건 정도현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자란 소리.

게다가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건 훨씬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정도현은 싹 다 죽이고 살린 거였지만, 심정환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못 물어봤었네. 너 이름이 뭐야?”

“정도현.”

“아! 네가 그 필드형 던전의···.”

그도 소문은 들어봤는지 곧장 아는 체했다. 정도현은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을 휘어잡았다.

“너희한테 습격은 당했지만 아무도 안 죽고 끝났어.”

“그래서?”

“그러니 이쯤에서 마무리 짓는 게 어때? 퍼플 팬텀은 앞으로 나랑 서아린을 절대 건들지 않기로 약속하고.”

“음.”

심정환도 일을 더 키우긴 싫었는지 턱을 매만지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민소이가 곧바로 훼방을 놓았다.

“길드장님! 그건 안 됩니다.”

“왜 또?”

“방금 검은 뱀이 저희 조직원을 열 명 넘게 죽였어요. 그리고 저 남자는 절 먼저 공격했고요!”

그렇다. 정도현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지만, 서아린은 혼자 오해하고 쳐들어와 깽판을 쳤다.

그 바람에 본부 조직원이 여럿 죽었다. 그러니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흠. 정도현이 소이를 때린 건 정당방위였다 쳐도···.”

민소이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조직원이 여럿 죽었는데 그냥 보내주면 조직의 기강과 결속이 무너질 터.

심정환은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검은 뱀을 죽여야 해요!”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 건 좀 아니지. 먼저 자극한 건 소이 너니까.”

기어코 서아린을 죽이지 않겠단 말에 민소이가 이를 아득 갈았다.

저 가증스러운 배신자 년의 어디가 좋다고 저리 봐준단 말인가. 그녀의 질투심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이윽고 심정환은 서아린을 어떻게 처리할지 정했는지 입을 열었다.

“눈, 팔, 다리. 셋 중에 하나 골라.”

“···역시 그거군요.”

“미안하다. 사상자가 발생했으니 그냥 보내줄 순 없어.”

“눈, 팔, 다리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서아린은 대번에 알아들었지만, 정도현은 무슨 소린지 이해 못 했다.

서아린이 설명해줬다.

“눈, 팔, 다리 중에 하나를 골라 잘라낸단 거예요.”

“불구로 만든다고?”

“조직원이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받는 형벌이에요.”

서아린은 순순히 처벌을 받으려 했다.

그녀의 오해로 애꿎은 조직원들이 죽였으니까.

게다가 불구가 되면 엘릭서 없이는 치료할 수 없지만, 그녀에겐 몸을 고칠 방도가 있었다.

‘한 번 죽고 되살아나면 깔끔하게 나아.’

부활 페널티로 레벨은 줄겠지만, 그건 여기 쳐들어왔을 때부터 각오한 일.

오히려 목숨 하나로 퍼플 팬텀과의 악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셈이다.

‘그래. 이게 최선이야.’

서아린은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정도현이 반박했다.

“서아린은 이제 여기 소속도 아니잖아?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지.”

“···도현 씨?”

“죽는 것보단 낫잖아. 게다가 우리 애들도 많이 죽거나 다쳤고. 많이 양보한 거야.”

“서아린. 네 입으로 말해봐. 여기 왜 왔는지.”

“그건···.”

그가 날뛴 이유를 물어보자 서아린은 심히 당황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정도현이 술술 설명했다.

“너, 내가 잡혀갔거나 살해당한 줄 알았었지?”

“···.”

“그래서 발끈했고, 제 발로 조직을 찾아온 거 아냐?”

“···.”

서아린은 대답하지 않고 슬그머니 고갤 돌렸다.

혼자 착각해서 발광했던 걸 들키자 쪽팔린지 땅바닥을 발로 쿡쿡 찔렀다.

의외였는지 심정환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야.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아, 아니에요!”

서아린이 당황하며 빽 소리쳤지만 둘 다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얼굴이 시뻘게진 그녀를 무시하고 정도현은 계속 말했다.

“심정환. 너 민소이랑 사귀는 사이지?”

“응? 맞는데. 그건 왜?”

“민소이가 어떤 조직한테 붙잡혀서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다고 쳐봐. 넌 어쩔 거야?”

“어쩌긴 뭘 어째. 그놈들 찾아가서 싹 다 처죽여야지.”

심정환이 고민할 가치도 없단 듯 대답했다.

그의 화끈한 대답에 민소이가 머리칼을 만지작대며 발을 꼼지락댔다.

“그런데 네가 조직원 몇 명 죽였단 이유로 민소이의 눈이랑 팔다리 중에 하나를 자르겠대.”

“그게 뭔 개소리야?”

“그래. 너희가 지금 그 개소릴 하고 있잖아.”

“아. 맞네.”

정도현의 눈높이 교육에 심정환이 바로 설득됐다.

세세한 사정을 빼고 본다면 퍼플 팬텀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게 맞았다.

솔직히 심정환도 서아린을 그냥 보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퍼플 팬텀의 수장.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사적인 감정에 휩쓸려 물러나선 안 된다.

“그러니 공평하고 간단하게 결투로 정하자.”

“결투?”

“그래. 너랑 내가 붙어서 이긴 놈이 원하는 대로 하는 거야. 어때?”

정도현의 제안에 심정환이 고갤 끄덕였다. 힘으로 정하는 거라면 아무도 불평하지 못할 거다.

“잠깐만요, 도현 씨. 그럴 필요 없어요!”

서아린이 정도현의 팔을 붙잡고 뜯어말렸다.

그녀가 한 번 죽으면 원만하게 풀릴 문제였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결투에 나설 필욘 없었다.

“저번에 척살대 정보 알려주고, 할아버지도 지켜줬잖아. 그거 갚는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그리고 너 몸 상태 멀쩡해진 거 저 여자가 알면 또 무슨 꼬투리 잡을 줄 알고?”

서아린은 정도현의 얼굴을 바라보다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도현 씨, 저랑 잠깐 얘기 좀 해요.”

“무슨 얘기?”

“줄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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