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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37화 (37/240)

나 혼자 1원 상점 - 37화

퍼플 팬텀의 대표, 심정환이 회담 장소에 도착했다.

“심정환 님. 이쪽입니다.”

“아, 고마워.”

길을 안내해준 수행원이 회담장 문을 활짝 열어줬다.

심정환이 웃으며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회담장 안에는 다른 암흑가의 장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 초행길이라 좀 헤맸어.”

“괜찮다.”

심정환은 모이기로 한 시각보다 십 분 가까이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탁, 탁, 탁.

심정환이 맹인용 지팡이로 바닥을 두들기며 원탁의 빈자릴 찾아 앉았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안건으로 소집한 거야?”

심정환이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몇몇 리더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곤 그중 한 명이 대표로 말했다.

“저번 회담에서도 언급했던 얘기다.”

“보호세를 좀 더 올리자고?”

“그래. 이제 곧 새로운 지부장이 선출되잖아.”

“이변이 없는 한 안태환이 되겠지.”

“놈은 우리랑 좋게 지낼 생각이 없을 거야.”

“장현민 의원은 그나마 말이 좀 통했는데···.”

안태환이 지부장이 되면 단속과 규제가 지금보다 강화될 거다.

안태환은 레드 플레이어를 경멸하니까.

장 의원 사건으로 몇몇 거대 조직의 주 수입원이었던 짝퉁 마약도 한동안 팔 수 없게 됐다.

“심정환, 너희 퍼플 팬텀은 마약 사업에 아예 손을 안 댔으니 아무 타격 없겠지.”

“하지만 우린 아니라고. 보호세라도 안 올리면 자금이···.”

“음. 지금 걷는 보호세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지 않아?”

심정환이 이해가 안 된단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자 보호세를 올리자 주장한 일당이 답답하단 표정을 지었다.

일당의 대표가 설명했다.

“그래. 먹고 사는 건 문제없지. 하지만 큼직한 자금줄이 끊기면 조직원들에게 돌아갈 몫도 확 줄어들어.”

“음. 그것 때문에 애들이 불만을 품는다?”

“그래! 저번 회담에서 다 얘기했잖아.”

“아, 미안. 내가 기억력이 좀 안 좋아서···.”

심정환이 바보처럼 웃으며 사과했다.

그러자 대표로 얘기하던 남자는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심정환은 잠시 고민하더니 대안을 제시했다.

“아, 그럼 이건 어때?”

“우리 애들을 필드형 던전에 들여보내라고?”

“···어? 어떻게 알았어?”

“저번 회담 때도 똑같은 소릴 했으니까!”

“그랬었나? 아. 그랬던 것 같네. 미안.”

심정환은 머쓱한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거대 조직을 이끄는 리더치곤 진지함이 너무 없었다.

심정환은 원래 그런 남자였다. 퍼플 팬텀의 대표지만 길드 운영엔 전혀 관심 없었다.

자질구레한 업무는 민소이가 도맡아서 처리하니까.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딱 하나. 무력이 필요할 때였다.

“필드형 던전은 너무 위험해. 최근엔 그놈이 들락거려서 말이 더 많고.”

“···그놈?”

“정도현. 너도 소문은 들어봤지?”

“아, 응. 들어본 것 같아.”

몇 달 전, F구역에서 올라온 유망주라 들었다. 일당의 대표가 계속 말했다.

“최근 그놈한테 당한 레드 플레이어가 워낙 많아서 다들 필드형 던전만큼은 죽어도 못 가겠다고 버티더라. 억지로 떠밀면 반란을 일으킬 기세야.”

“흐음···.”

“근데 이거 저번에 다 얘기했는데?”

심정환은 원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보호세를 올릴 거면 다른 구역의 조직들도 함께 올려야 한다.

안 그럼 보호세가 낮은 구역으로 주민들이 대거 이탈할 테니까.

암흑가에도 상도덕이란 게 있었다.

“이봐, 보호세 좀 올리는 게 뭐 어때서? 우리가 무슨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그래, 심정환. 너도 솔직히 깨끗한 놈은 아니잖아?”

“그래. 우린 다 쓰레기지. 그래도 역시 주민들이 불쌍해서 안 되겠어.”

심정환이 끝까지 퇴짜를 놓자 일당의 눈빛이 점차 싸늘해졌다.

“암흑가 주민들이 불쌍하다고?”

“응. 가뜩이나 힘겹게 사는 사람들인데 여기서 더 뜯어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하···.”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자 누군가가 나서서 중재했다.

“자, 자. 다들 진정하시고 다수결로 정하자.”

“흥. 해봤자 지난번이랑 똑같겠지.”

다수결이란 말에 일당 중 누군가가 빈정댔다.

지난달에도 오랜 논쟁 끝에 거수투표를 했었다. 결과는 5대 5로 동률.

동점일 경우 차후에 재논의하는 것이 회담의 규칙이었다.

‘심정환 편을 드는 놈들. 저 녀석이 무서워서 눈치를 살피는 거겠지.’

심정환은 장님에다 어벙한 행동을 자꾸 해댔지만, 결코 얕볼 수 없는 상대였다.

놈은 한때 D구역까지 올라갔던 괴물.

거기서 양쪽 눈을 다쳤지만, 암흑가의 리더 중에서 무력만큼은 가장 뛰어나리라.

보호세를 올리자 주장한 일당은 심정환과 직접 싸워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암흑가를 장악할 수 있었던 건 심정환 덕분이었으니까.

몇 년 전, 심정환을 이빨 빠진 호랑이라 여기고 덤벼든 기존의 거대 조직들은 싹 다 망했다.

여기 모인 일당은 그 빈자리를 차지한 이인자들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관리하는 구역까지 죄다 뺏을 수 있겠지.’

힘은 있으나 욕심이 없는 사내. 그게 심정환이었다.

그런 그가 퍼플 팬텀에 가입한 이유도 물욕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갚기 위함이라 들었다.

약 7년 전, 암흑가 골목에서 크게 다친 채 죽어가던 그를 민소이가 발견했고 치료해줬다.

그 이후로 둘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번에도 동점이네. 그럼 이 안건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는 걸로.”

투표가 끝나자마자 심정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당은 부들댔지만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력을 잃었으나 그는 여전히 괴물이었다. 적어도 E구역에 머물 수준은 아니었다.

‘저 녀석은 검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니까.’

***

회담장을 빠져나온 심정환.

그는 얼굴을 무작위로 바꿔주는 위장용 가면 아이템을 썼다.

하얀색 가면을 얼굴에 갖다 대자 순식간에 외형이 바뀌었다.

원래 얼굴은 알아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 편히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퍼플 팬텀이 직접 관리하는 암흑가에 왔을 때쯤.

꼬르륵-!

뱃속에서 소리가 울렸다.

‘간만에 포차 들러서 배 좀 채우고 가야지.’

모처럼 혼자 외출한 심정환은 들뜬 발걸음으로 골목길을 지났다.

그는 앞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맹인용 지팡이 없이도 잘만 걸었다. 여긴 익숙한 동네라 그렇다.

“어서옵쇼!”

포장마차에 들어와 앉자 주인장이 반갑게 인사하며 주문을 받았다.

민소이가 옆에 없으니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심정환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시켰다.

잠시 뒤, 노릇노릇 구운 닭고기 볶음 요리와 싸구려 술이 나왔다.

그는 누가 채갈세라 허겁지겁 먹었다.

“크···.”

심정환은 접시에 남은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그는 행복한 표정으로 배를 문지르며 일어났다.

“주인장, 얼맙니까?”

“아, 예. 만 이천 원만 줍쇼.”

식사를 다 끝내고 계산하려던 그는 주머니를 뒤적이다 표정이 싹 굳었다.

황급히 반대쪽 주머니도 뒤졌지만 역시 지갑은 없었다. 심정환이 이마를 탁 쳤다.

‘다른 외투에 놔뒀나?’

이놈의 덤벙거림. 심정환은 골치가 아팠다.

물론 돈이야 민소이한테 연락해서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조직의 본거지도 그리 멀리 있지 않으니 금방 올 터. 하지만 그녀한테 연락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포차에서 뭐 먹었다고 하면 잔소리 엄청 할 텐데···.’

민소이는 심정환의 품위를 항상 신경 써줬다.

그는 이 구역의 통치자이니 행동거지에 좀 더 신경 쓰라고 말이다.

싸구려 음식으로 대충 한 끼 때웠다고 말하면 입이 삐죽 튀어나오겠지.

‘난 이런 게 더 맛있는데.’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더 잘 안다고.

그는 비싼 술이랑 음식을 평소에 접해보질 않았다. 그래선지 그녀와 함께 들르는 레스토랑 음식들은 영 끌리지 않았다.

“손님?”

“아, 죄송한데 지갑을 놓고 와서···. 지인한테 연락 좀 해보겠습니다.”

“크흠! 오래 걸립니까?”

“아뇨. 요 근처라 금방 올 겁니다.”

주인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심정환은 잔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서 민소이한테 연락했다. 그런데 신호음만 가고 도통 받질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아···.]

낭패였다. 그녀에게 뭔가 바쁜 일이 생긴 모양이다.

주인장이 째려보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심정환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그, 제가 이 동네 사는데 돈 가지러 금방 갔다 오면 안 될까요?”

“여기서 십 년 가까이 장사했는데 손님 얼굴은 처음 보는데요?”

그렇겠지. 그가 쓴 가면은 매번 얼굴과 이름을 무작위로 바꿔주니까.

토박이가 볼 때 가면을 쓴 심정환은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 모를 이방인이었다.

“그럼 저랑 같이 돈 받으러 가시죠.”

“그쪽이 누군 줄 알고 따라갑니까? 그리고 지금은 가게도 오래 못 비워요. 다른 손님들 앉아 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제가 실은요···. 퍼플 팬텀 소속인데···.”

“퍼플 팬텀? 증거 있습니까? 신분증이나 조직의 증표라던지.”

“아뇨. 그것도 두고 왔는데···.”

“손님, 맞을래요?”

외통수였다. 심정환이 몇 번 더 민소이에게 연락해봤지만 여전히 전화를 받질 않았다.

그녀 말고는 딱히 도움을 청할 연락처도 없었다. 심정환은 자신의 얄팍한 인간관계를 원망했다.

D구역 주민들은 신형 핸드폰을 써서 지갑 없이 바로 결제가 된다는데.

‘어쩔 수 없지.’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수밖에.

죄 없는 주인장을 위협하는 것 같아 껄끄러웠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심정환이 위장용 가면을 벗으려던 순간.

“주인장, 얼맙니까? 제가 대신 낼게요.”

“아이고! 대신 내주신다고요? 만 이천 원입니다.”

“여깄습니다.”

다른 좌석에서 누군가가 일어나 다가왔다.

뜻밖의 도움에 심정환이 화색을 띠며 고갤 돌렸다.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장님이라 안 보이지만.

심정환이 도와준 사람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 계좌 번호 알려주시면 돌아가자마자 바로 입금해드릴게요.”

“아뇨. 돈은 됐습니다.”

심정환은 상대의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온몸으로 감사를 표했다.

만 원이 아니라 백만 원이라도 계좌에 꽂아주고 싶었다.

“아까 퍼플 팬텀이라 하셨죠?”

“···응? 그런데요?”

“퍼플 팬텀 본부를 찾고 있는데 길 안내 좀 해줄 수 있어요?”

“아, 의뢰 맡기시게요? 저 따라오세요.”

퍼플 팬텀의 주된 수입원은 청부 살인. 단가만 맞으면 E구역이든 F구역이든 표적을 찾아가 처리해준다.

이 사람도 청부 살인을 원하는 고객 중 하나겠거니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그 추측은 틀렸다.

***

심정환을 도와준 건 정도현이었다.

그는 번호남들한테 퍼플 팬텀의 본거지가 어딘지 캐물었지만, 그들도 본부 위치는 모른다고 답했다.

같은 조직원인데 본거지가 어딘지 모른다니.

알고 보니 퍼플 팬텀은 수십의 점조직으로 나뉘어 운영되며, 본부는 1군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매 분기마다 성과를 통해 순위를 매긴다.

그가 쓰러트린 번호남들은 본부가 아닌 하부 조직의 2군들이었던 것.

그런데 얼마 전 본부에서 직접 공문이 내려왔다.

검은 뱀, 서아린을 붙잡으면 곧바로 본부 조직원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정도현은 본부가 있다는 암흑가 구역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본부를 찾진 못했고, 출출해서 들른 포차에서 요기를 하다 심정환이랑 딱 마주쳤다.

‘본부 소속이라 그런지 번호 녀석들이랑 수준이 다르다.’

정도현은 심정환을 흘끔 보며 살짝 긴장됐다.

번호남들과 달리 레벨과 이름은 보인다. 분명 아이템을 써서 위장한 거겠지.

어쩌면 본부의 간부일지도 모른다.

“거의 다 왔어요. 저기 푸른 간판 보이시죠?”

“예, 저기였군요.”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이걸 못 찾고 한참 빙빙 돌다니.

‘그래도 위치는 알아냈다.’

계획부터 세우고 준비가 끝나는 대로 급습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던 정도현이 움찔했다.

‘피 냄새?’

본부 건물에서 피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그런데 최근에 맡아본 것이 섞여 있었다.

‘서아린?’

그녀의 피 냄새와 흡사했다.

아니, 똑같았다.

정도현이 돌연 걸음을 멈추자 옆에서 발맞춰 걷던 심정환이 고갤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설마 그녀가 그새 붙잡힌 건가?

생각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정도현은 급히 정문으로 내달렸다.

“···응?”

“어이, 멈춰!”

퍼억-!

정문을 지키던 조직원 둘을 밀치고 문을 강제로 열어젖혔다.

눈에 보이는 건 넓은 홀과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진 서아린.

“···응? 넌 또 뭐야?”

적발의 여성이 서아린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있었다.

그녀는 멋대로 들어온 정도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민소이] [LV.49]

이름과 외형에 대해선 들은 바가 전혀 없지만 딱 보니 알겠다. 서아린이 말했던 간부는 저 여자다.

“「바람 질주」.”

타앙-!

정도현이 땅을 박차며 날아들었다.

둘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고 그녀의 복부에 발차기가 꽂혔다.

쾅!

민소이가 피를 울컥 토하며 날아가더니 벽에 처박혔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옆에 있던 조직원들은 반응할 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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