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30화
레드 스캐빈저 길드장, ‘최민수’.
그는 신체 강화 주문밖에 못 쓰는 흑마법사였다. 마법사가 육탄전이라니.
얼핏 보면 약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덤볐던 놈들 전부 그에게 대가리가 깨졌다.
최민수는 레드 스캐빈저를 세운 지 불과 오 년 만에 몇 개의 길드를 쓰러트리고 흡수했다.
그리고 라이벌이었던 블랙 스컬마저 무너뜨렸다.
“민수야! 내가 돌아왔다!!”
52구역의 패권을 두고 그와 몇 년을 싸운 블랙 스컬 길드장, 류동하.
얼마 전 길드전에서 패하고 도망친 녀석이 나타났다.
최민수는 아지트의 발코니로 나와 밖에서 소릴 지르는 류동하를 내려다봤다.
[류동하][LV.53]
[오예찬][LV.34]
[???][???]
부하의 말대로 류동하 옆에는 못 보던 녀석이 둘 있었다.
‘말라깽이 안경잡이랑···.’
다른 놈은 은둔자의 로브를 뒤집어써서 이름과 레벨이 보이지 않는다.
최민수는 자신만만하게 구는 류동하를 향해 외쳤다.
“내 구역에 기어들어 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류동하!”
“여기가 왜 네 땅인데! 그 건물도 원래 우리 길드 거였잖아!”
류동하가 씩씩대며 소릴 질렀다. 그 말에 최민수는 콧방귀를 뀌었다.
원래 내 거였다. 그런 말은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강한 놈이 독식하는 게 이 세상의 이치다. 이 머저리 새끼야!”
류동하도 그 말엔 반박하지 못했다.
그렇게 둘은 잠시 소강상태가 됐다.
최민수는 류동하를 살펴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뭐야? 저 녀석 레벨이 줄었네?’
류동하의 원래 레벨은 57. 자신보다 1레벨이 높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53레벨이다.
변신하면 레벨과 이름이 바뀌었지만, 지금은 다른 존재로 변한 것도 아니었다.
최민수는 궁금증을 못 참고 질문했다.
“레벨은 어디에 팔아먹었냐!”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길드전 할 거야 말 거야!”
“오냐. 이번에야말로 네 대가릴 으깨주마!”
[블랙 스컬의 류동하 길드장이 길드전을 신청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너흰 뭘 걸 거냐?”
“내 모가지를 건다! 대신 우리가 이기면 레드 스캐빈저는 블랙 스컬에 복속되는 거다.”
류동하는 자신의 목숨을, 최민수는 길드의 모든 권리를 걸어야 했다.
최민수 입장에선 이겨도 얻는 게 없었다. 불공평한 조건이었다.
“양아치 같은 새끼. 뭐 더 걸 만한 거 없냐?”
“저번에 다 뺏겨서 없어. 왜, 쫄리냐?”
“아니, 넌 뒤졌어.”
[레드 스캐빈저 최민수 길드장이 길드전을 수락했습니다.]
[전투 도중 길드장이 사망하거나 항복할 경우 길드전은 즉시 종료됩니다.]
[전투 구역에서 길드장이 이탈할 경우 해당 길드의 패배로 간주합니다.]
[전투 개시까지 앞으로 23시간 59분 남았습니다.]
최민수는 길드전을 받아들이고서 허연 이를 씩 드러냈다.
길드전이 시작되면 시스템이 전투 내용을 판독한다.
혹여나 비열한 속임수를 쓰거나, 길드와 관련 없는 세력 혹은 인물이 있을 경우엔 실격패를 당한다.
그야말로 정정당당한 힘 대 힘의 싸움.
류동하가 뭔 생각으로 길드전을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절대 질 수가 없었다.
‘분명 날 노릴 거다.’
길드전의 승리 조건은 상대 세력을 몰살하는 게 아니었다.
길드장을 죽이거나 항복을 받아내기만 하면 된다.
즉, 류동하 입장에선 어떻게든 자신을 꺾으려 할 터.
게다가 류동하는 잠입 및 암살에 특화된 변신 능력을 지녔다.
‘레벨이 줄어서 그것도 힘들겠지만.’
아까 확인한 바로 류동하는 53레벨.
56레벨인 그를 일 대 일로 싸워 이기진 못할 터.
위장용 아이템으로 레벨을 속였을 린 없다. 그건 길드전 규칙에 어긋나니까.
아무튼 최민수에겐 희소식이었다.
“레벨을 숨긴 놈이 좀 신경 쓰이는데···.”
은둔자의 로브를 뒤집어 썼던 놈.
아무래도 그 녀석이 류동하가 준비해온 비장의 패 같았다.
‘레벨 좀 높은 놈을 용병으로 고용했나 본데. 그래 봤자지.’
고작 한 명으로는 전황을 뒤엎을 수 없었다.
그 녀석이 상위 구역의 고레벨 플레이어라면 또 모를까.
류동하가 그런 거물을 영입해왔을 가능성은 추호도 없었다.
최민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일 있을 길드전을 고대했다.
***
류동하가 돌아왔단 소식이 52구역 주민들 사이에 쫙 퍼졌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류동하가 돌아왔다며?”
“그래. 내일 길드전을 치른다더군.”
“제발 이겨야 할 텐데.”
정도현의 예상대로 레드 스캐빈저는 52구역을 정복한 뒤 주민들에게 폭정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자 블랙 스컬이 있을 때가 훨씬 살 만했다면서 입을 모아 불평했다.
그런 와중에 류동하가 귀환했으니 자연스레 응원할 수밖에.
“그런데 데려온 병력이 겨우 둘이라며?”
“뭐? 그럼 셋이서 싸운단 거야?”
“미쳤네.”
“류동하, 그 양반 성격이 원래 불같잖아.”
“하긴···.”
류동하는 평소 화를 잘 못 참고 성질이 급했다.
그런데도 길드장 자릴 지킬 수 있었던 건 무력이 강해서였다.
거기에 성격은 좀 괴팍해도 제 길드원들은 잘 챙겨줬었다. 그래서 부하들도 그를 믿고 따랐다.
“그럼 아예 상대가 안 되겠네.”
“혹시 모르지. 변신술로 잠입해서 최민수를 죽일지.”
“아. 레벨은 류동하가 더 높았었지?”
“에이. 최민수가 그 정도도 생각 못 하겠어?”
“맞아. 전투는 부하들한테 맡기고 본인은 아지트에 박혀 있으면 되잖아.”
상대는 고작 셋. 길드원 스무 명 정도만 보내도 금세 정리될 터.
흑마법사들이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걸 알면서도 흑마법에 손대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흑마법은 일반적인 주문보다 사람을 죽이는 쪽으로 발달했다.
류동하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수십 명이 쏴대는 주문 세례를 버티지 못할 터.
내일 있을 길드전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에휴, 최민수 그 개새끼. 콱 뒈졌으면 좋겠는데.”
“말조심해. 그러다 그놈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하, 씨발. 일 끝내고 맥주 한 잔도 못 마시는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냐.”
다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저녁에 싸구려 캔맥주 하나 사서 마시는 게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나 최민수 패거리는 그마저도 뺏어갔다.
노동자들 입장에서 그는 악마나 다름없었다. 다들 불가능인 걸 알면서도 최민수가 패하길 기도했다.
***
다음 날 아침. 길드전 개시까지 십 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각.
52구역 거리는 평소보다 썰렁했다.
길드전이 벌어진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안전시설로 대피한 것이다.
텅 빈 빈민가 골목을 서른 명쯤 되는 흑마법사 무리가 돌아다녔다.
레드 스캐빈저 길드원들이었다.
“류동하, 그 자식 어디 숨은 거지?”
간부급은 한 명이고 나머진 다 말단이었지만, 류동하를 죽이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병력.
그들은 동네 구석구석을 뒤지며 류동하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녀석은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안 보였다.
[길드전 시작까지 3, 2, 1···.]
[길드전이 시작됩니다.]
길드원들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드디어 전투 개시. 하지만 상대가 보이질 않았다.
바로 그때, 사방에서 우르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
“이게 무슨 소리···.”
컹컹!
개 짖는 소리가 골목 안쪽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길드원들은 혹시 주민들이 키우던 개를 집에 놔두고 대피했나 싶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
본인들 먹고살기도 빠듯한 마당에 개를 키울 여유가 어딨겠는가.
“느, 늑대다!”
“씨발, 근처에 게이트 터진 거 아냐?”
“아냐! 저거 하운드 울프잖아. 소환수야!”
“소환수? 적 중에 소환사가 있다고?”
회색 갈기를 지닌 늑대들이 골목길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35레벨의 하급 소환수, 하운드 울프였다.
예기치 못한 늑대 무리의 급습에 흑마법사들이 단체로 주문을 외웠다.
파바밧-!
시커먼 마력 구체가 총알처럼 날아들었다.
“깨갱!”
“케흑!”
주문이 쏟아지자 하운드 울프들이 피를 흘리며 픽픽 쓰러졌다.
쓰러진 녀석들은 몸이 흐릿해지더니 이윽고 연기로 화해 소멸했다. 환계로 송환된 것이다.
급한 불은 끈 길드원들이 중얼댔다.
“후, 깜짝이야.”
“괜히 쫄았네.”
어차피 하급 소환수. 그들 수준이면 주문 한 방으로도 죽일 수 있으니 그리 위협적인 상대는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좀 놀랐을 뿐.
다들 그렇게 생각하며 한시름 놨으나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컹컹!”
“아우우우!”
“···!”
또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보아하니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에 길드원들의 머리털이 쭈뼛 섰다.
“또, 또 몰려온다!”
“이런 미친!”
길드원들은 하운드 울프들에게 순식간에 포위됐다.
놈들은 빗방울처럼 쏟아지는 주문을 맞으면서도 계속 밀고 들어왔다.
전투를 시작한 지 십 분이 지났다.
길드원들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됐다.
죽여도 죽여도 놈들이 계속 나타난다.
‘미친. 소환수를 한 번에 수십 마리씩 다룬다고?’
‘로브 쓴 놈이 소환사였구나!’
류동하가 데려온 두 명의 플레이어.
34레벨의 안경남과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
소환사는 분명 후자일 것이다.
아무리 하급 소환수라도 34레벨 플레이어가 수십 마리를 동시에 소환했을 리 없다.
아니, 지금까지 처치한 놈들까지 헤아리면 수백 마리가 넘는다.
류동하가 소환수를 부릴 린 없으니, 소환사는 은둔자의 로브를 쓴 의문의 플레이어밖에 없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소환사야.’
간부는 생각했다. 그 소환사를 찾아내 없애지 못하면 우린 지칠 때까지 싸우다 끝내 전멸할 거다.
물론 그들은 선발대였다. 류동하가 준비한 비장의 수단이 뭔지 알아내기 위한 미끼.
하지만 전멸하는 건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길드장님께 알려야 한다. 저쪽에 고레벨 소환사가 있었다고.’
그가 볼 때 최민수가 직접 나서주지 않는다면 이길 수 없었다. 간부가 그렇게 생각할 때.
“아아악!”
“끄으···.”
사상자가 하나둘씩 발생했다. 한쪽이 무너지자 도미노처럼 아군들이 연쇄적으로 쓰러졌다.
하운드 울프들은 지친 사냥감의 목덜미와 다리를 마구 물어뜯었다.
마법사의 가냘픈 신체 능력으론 떨쳐낼 수 없었다.
“젠장, 다들 흩어져서 튀어!”
간부의 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길드원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도망쳤다.
그러자 하운드 울프들이 날카롭게 짖어대며 그들을 바짝 뒤쫓았다.
다행히 빈민가 골목은 길이 복잡하고 비좁아서 인간들이 도망치기에 유리했다.
반면 대형견보다 덩치가 훨씬 큰 하운드 울프들은 제대로 달리질 못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자들은 몇 개의 무리로 쪼개졌다.
그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던 누군가가 무전기로 말했다.
[병력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좋아. 드디어 사냥할 시간이구만.”
“우리 기준으로 적들 위치 브리핑해줘.”
[예, 알겠습니다.]
무전기로 말한 건 오예찬이었다.
그는 안전한 곳에 숨어서 적들을 실시간으로 염탐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그가 정령사였기 때문이다.
정찰용으로 보낸 최하급 바람의 정령들이 곧 그의 눈과 귀가 되어줬다.
‘원래는 이렇게 실시간으로 파악할 순 없지만.’
정령사는 정령을 보내 주변을 정찰할 수 있다.
하지만 최하급과 하급 정령은 지능이 어린아이 수준으로 현저히 낮았다.
그래서 정찰을 보내도 단편적인 정보밖에 알 수가 없고, 정령이 되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오예찬은 정찰을 보낸 정령들이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적들의 위치와 행동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다른 정령사들은 할 수 없는, 오예찬만의 능력이었다.
그가 새롭게 얻은 개인 특성, 「정령합일」이 이를 가능케 해줬다.
‘마치 현장에 나가 있는 것처럼 생생히 느껴진다.’
오예찬은 명상하듯 눈을 감고서 정령합일을 발동했다.
그러자 마력이 줄어들며 그가 소환한 바람의 정령들과 감각이 공유됐다.
정령들이 바라보고 듣는 게 그에게 전달됐다.
‘특성 강화의 비약. 이런 아이템까지 창조해낼 수 있으시다니.’
정도현은 류동하와 오예찬에게 ‘특성 강화의 비약’을 선물로 줬다.
가지고 있는 개인 특성을 한층 강화하거나, 없으면 랜덤으로 하나 얻을 수 있는 레전더리 아이템.
그 비약 덕분에 오예찬의 정보 수집 능력이 대폭 강화됐다.
‘역시 그분은 왕이 될 분이시다.’
아니. 어쩌면 그는 신일지도 모른다.
몇몇 사람들이 왜 종교에 그리 심취하는지 오예찬은 이해했다.
기적을 경험하니 도저히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도현 님. 쭉 직진하다 왼쪽 길목으로 도시면 됩니다. 그쪽에 다섯 명이 모여 있습니다.”
[오케이.]
“동하 님은···.”
[나한텐 위치 브리핑할 필요 없어. 이미 몇 놈 찾았거든.]
“그렇군요.”
[크하핫! 다 죽었어!]
자신감에 찬 류동하의 목소리.
그럴 만도 했다.
오예찬은 개인 특성을 얻었지만, 류동하는 원래 있던 특성이 한층 강화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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