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20화
E-47 구역. 이곳은 5년 전에 발생한 게이트 붕괴로 버려진 땅이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내뿜는 마력은 공기와 토양을 오염시킨다.
그렇게 되면 일반인은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게이트 붕괴 이후 도시는 폐쇄됐고 유령 도시로 변했다.
몬스터를 없애봤자 오염된 땅과 공기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관리국은 이곳을 마치 몬스터 방목장처럼 써먹었다.
관리국의 의뢰를 받은 수십의 플레이어들이 47구로 몰려왔다.
유령 도시로 출발하기 전, 관리국 요원이 그들을 한 곳에 불러모으고 유의점을 설명했다.
“토벌할 몬스터는 ‘랍토르’와 ‘리자드’.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랍토르는 제 허리 높이만 한 크기의 공룡이고, 리자드는 거대 이구아나처럼 생겼습니다. 둘 다 난폭하고 위험하지만, 랍토르는 지능이 꽤 높은 편이니 유인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 의뢰를 몇 번이나 해본 플레이어들은 다 아는 내용이라 지루했는지 하품을 쩍 했다.
반면에 몇몇 무리는 집중해서 설명을 들었다.
토벌 의뢰를 처음 맡은 신출내기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을 노리는 레드 플레이어 무리도 섞여 있었다.
‘저 녀석, 때깔 좋은데?’
‘파티원이 없네?’
‘레벨도 만만하고.’
레드 플레이어들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은 이가 있었다.
레어 아이템으로 무장한 정도현이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레벨에 파티원 한 명 없었다.
그들 눈에는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여기까지 온 레드 플레이어들은 정도현이 활동하는 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 출신.
E구역은 어지간한 대도시를 몇 개 합친 것만큼 넓었고, 암흑가는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으니까.
정도현에 대한 소문이 퍼진 암흑가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내 소문을 못 들어본 놈들인가.’
주변에서 느껴지는 노골적인 시선에도 정도현은 태연자약했다.
덤벼주면 그는 오히려 좋았다. 저들 역시 경험치니까.
“아, 그리고 도시 안쪽엔 피부색이 다른 변종 랍토르들도 있는데 조심하세요. 최소 셋에서 다섯 명씩 뭉쳐 다녀야 안전할 겁니다.”
토벌 기간은 총 일주일.
그전에 할당량을 다 채운 팀은 먼저 돌아가도 상관없다.
요원은 그렇게 말하며 플레이어들을 운송 차량으로 안내했다.
“복귀 차량은 오후 여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10분 간격으로 도시 입구에 잠깐 정차할 겁니다. 다들 늦지 않게 돌아오세요.”
차를 타고 십여 분 넘게 달리자 유령 도시에 도착했다. 풍경이 황량했다.
폭격을 맞은 듯이 여기저기 무너져 내린 폐건물들.
게다가 희뿌연 안개가 자욱했고, 도로는 쩍쩍 갈라졌으며, 공기도 불쾌할 만큼 텁텁했다.
몬스터가 내뿜는 마력이 매연처럼 쌓인 것이다.
“인원 모자란 분들. 저희랑 함께 갑시다.”
“좋죠. 잘 부탁드립니다.”
총원이 다섯 명이 안 되는 팀들은 저들끼리 뭉쳤다.
요원이 언급한 변종 랍토르와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도현은 혼자서 안개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어떤 무리가 그를 불러세웠다.
“이봐, 형씨. 우리랑 같이 가자고.”
“재수 없게 변종이랑 마주치면 어쩌려고 그래?”
언뜻 보면 그를 걱정해주는 것 같았지만 정도현은 넘어가지 않았다.
F구역 출신인 그는 이제 눈빛만 봐도 얼추 알 수 있었다. 남 등쳐먹으려는 속내가 빤히 보인다.
“난 혼자가 편해서.”
“에이, 자꾸 빼지 말고···.”
정도현이 거절하자, 어떤 플레이어가 히죽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여차하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생각 같았다.
남자의 레벨은 46. 자신감이 넘칠 법도 했다.
정도현은 그의 손목을 붙잡고 가볍게 뿌리쳤다.
휙!
46레벨이 40레벨한테 떠밀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었다.
“어, 어···?!”
남자가 얼빠진 표정으로 고갤 들었지만, 정도현은 이미 안개 속으로 들어간 뒤였다.
그러자 파티원들이 그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아오, 등신아.”
“그걸 놓치면 어떡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남자는 억울하단 표정을 지었지만, 파티원들이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추적향은 제대로 묻혀놨지?”
“어, 그렇긴 한데···.”
파티원의 질문에 남자가 고갤 끄덕였다.
그는 정도현의 어깨를 붙잡을 때 추적용 아이템을 발라뒀다.
반경 3km 안이면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천천히 따라가서 급습하면 돼.”
리더의 말에 다들 킬킬 웃었다.
딱 한 명, 정도현에게 손목을 붙잡혀본 남자만 빼고.
‘내가 왜 밀렸지? 분명 꽉 잡았는데···.’
방심했거나 힘을 적당히 조절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뿌리쳤다.
마치 그보다 정도현의 근력 수치가 더 높은 것처럼.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 무려 6레벨 차이다.
‘우연이겠지.’
남자는 고갤 저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는 팀원들한테 또 무시당할까 봐 미심쩍은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
컹! 컹!
하운드 울프들이 땅바닥에 코를 바짝 갖다 대고 킁킁댔다.
몬스터의 체취를 포착했는지 꼬릴 흔들며 짧게 짖어댔다.
“좋아. 앞장서.”
정도현은 잘했다며 머릴 쓰다듬어줬다. 하운드 울프의 후각은 몬스터를 찾아낼 때 아주 편리했다.
‘이젠 추적 중에 소환이 풀릴 일도 없고.’
검색 기능이 생긴 덕분에 그는 하급 마정석까지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하운드 울프의 유지 시간이 5분에서 20분으로 확 늘어났다.
끼잉!
정도현이 움직이려던 찰나.
바로 옆에 있던 녀석이 그의 소매를 물고 잡아당겼다.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응? 왜 그래?”
정도현이 무릎을 굽히자 낑낑대던 녀석이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른 녀석들도 슬금슬금 다가와 똑같이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삽시간에 늑대들한테 둘러싸인 정도현. 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질문했다.
“내 몸에서 냄새난다고?”
컹-!
하운드 울프들이 고갤 끄덕이며 대답했다.
악취는 아닐 거다.
필드형 던전에서 며칠 제대로 못 씻었을 때도 이런 경우는 없었으니까.
정도현은 견갑 부위를 쓸어내리곤 손바닥에 코를 가까이 댔다.
‘이게 무슨 향이지?’
하운드 울프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후각도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다.
손바닥에서 은은한 향이 풍겼다.
그가 향수를 뿌리진 않았으니, 다른 무언가와 접촉하면서 냄새가 뱄을 터.
정도현은 기억을 되짚다 번뜩 떠올랐다.
“아. 그 남자.”
몇 분 전, 어떤 플레이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었다. 그 남자 짓이 틀림없다.
‘추적형 아이템을 썼나.’
보아하니 한두 번 해본 놈들이 아닌 것 같다.
하운드 울프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추격당해 뒤통수를 맞았을 것이다.
물론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불리한 전투를 치렀을 터.
‘놔두면 귀찮으니 빨리 처리해야겠어.’
정도현은 몬스터 사냥을 중단하고, 근처 폐건물 중 가장 높은 곳을 찾아 들어갔다.
***
“···어?”
비슷한 시각, 안개 속에서 살금살금 정도현을 뒤쫓던 레드 플레이어들.
정도현의 어깨에 추적향을 발랐던 남자가 미니맵을 들여다보며 의아한 목소릴 뱉었다.
파티원들이 그를 쳐다봤다.
“왜 그래?”
“이놈, 갑자기 안 움직이는데?”
“전투 중이겠지.”
“그건 아니야. 방금 탐지 주문 써봤는데, 그놈 주변에 생명체 반응은 없었어.”
파티의 마법사가 고갤 저으며 반박했다.
정도현이 멈췄다는 지점에는 몬스터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그 말에 파티원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멈췄다.
“몇 분 동안 꿈쩍도 안 해.”
“설마 눈치챘나?”
“에이, 그놈이 뭔 수로?”
“그 녀석도 탐지 주문 쓸 줄 아는 거 아냐?”
“탐지 주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말해. 수식 계산은 기본이고, 공간에 대한 이해도도 빠삭해야 한다고.”
파티원들이 갑론을박하며 싸워대자, 파티장이 그들을 쏘아봤다.
그의 심기가 불편해진 걸 깨달은 파티원들. 다들 입 다물고 눈을 깔았다.
파티장이 한심하단 말투로 타박을 줬다.
“놈이 눈치챘으면 뭐? 이대로 물러나자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고작 40레벨이야. 놈이 알면 뭐가 달라지는데?”
파티장의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너무나도 지당한 말이었으니까.
추격이 붙은 걸 알아챘어도 놈은 한 명이고 이쪽은 다섯이었다. 게다가 개개인의 레벨도 그들이 훨씬 높다.
지고 싶어도 도저히 질 수가 없는 싸움. 쫄 이유가 없었다.
“좋은 템 끼고 자신만만한 것 같던데. 그래봤자 레벨이랑 쪽수 앞에 다 부질없어.”
“그건 맞지.”
파티장의 말에 하나둘 감화된 파티원들.
그들은 불안을 떨쳐내고 추격 속도를 올렸다. 정도현이 이동하지 않은 탓에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마법사가 주변 일대를 탐지해보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 건물 안에 있나 본데?”
“얼씨구. 스스로 독 안에 들어갔네?”
그들은 실실 웃으며 고층 건물로 들어갔다.
그래도 혹시 함정을 파뒀을지도 모르니 꼼꼼히 확인하면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최상층까지 도착했다.
그곳에 정도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느긋한 얼굴로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티장이 휘파람을 휙 불며 그를 조롱했다.
“이야, 저 새끼. 자기가 무슨 보스몹인 줄···.”
“조잘조잘 말 되게 많네.”
정도현이 파티장의 말을 잘라먹자 파티원들이 당황했다.
“저 개새끼가···.”
아니나 다를까. 파티장이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게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자신의 말을 도중에 끊는 것이고, 둘째는···.
“좆밥 새끼가 깝치고 있어!”
팀원들이 말릴 새도 없었다. 파티장이 목에 핏대를 세운 채 혼자 달려들었다.
그의 손엔 어느새 기다란 할버드가 들려 있었다.
[???][LV.50]
무려 50레벨.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정도현은 오히려 상대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었다.
파티장이 비웃으며 무기를 크게 휘둘렀다.
시커먼 그림자가 정도현의 머릴 노리며 측면에서 날아든다.
카앙-!
정도현은 가볍게 받아치며 슬쩍 흘렸다. 할버드의 도끼날이 빗물에 미끄러지듯 비껴가며 엉뚱한 바닥에 꽂혔다.
“이 새끼가 어디서 잔재주를!”
첫수가 막히자 자존심이 상한 파티장이 길길이 날뛰며 바닥에 박힌 할버드를 뽑아냈다.
콰드득-!
깨진 콘크리트 파편 사이로 도끼날이 반짝이며 날아든다. 그대로 정도현의 허릴 두 동강 낼 기세였다.
터엉-!
정도현은 그것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심지어 이번엔 아까처럼 기교를 섞어 충격을 흘리지도 않았다.
당당히 정면으로 막아냈다.
“···!”
끼긱! 끼기긱!
칼날에 가로막힌 할버드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꿈쩍도 안 했다.
‘이 새끼 힘이 왜 이래?’
힘으로 찍어누르질 못하자 파티장의 표정에 당혹감이 꽃처럼 피어났다.
순간 떠올랐다. 놈이 부하의 팔을 너무도 손쉽게 뿌리치던 광경이.
‘설마?’
방심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파티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온힘을 쥐어짰다. 하지만 상대는 꿈쩍도 안 했다.
“무식하게 힘만 센 놈이네.”
“허억···!?”
정도현이 갑자기 힘을 확 빼면서 허릴 바짝 숙였다.
후웅!
할버드가 정도현의 머리 위를 지나갔고, 파티장은 자기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그가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 정도현이 굽혔던 허릴 끌어올리며 힘차게 칼을 휘둘렀다.
서걱-!
아래에서 위로, 사선으로 날아든 은빛 참격.
파티장의 오른팔이 통째로 잘려 저 멀리 달아났다. 절단면에서 피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끄, 끄아아악!”
리더는 비명을 지르며 남은 팔로 허전해진 어깨를 틀어막았다.
손가락 틈새로 물총처럼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허둥지둥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씨발! 뭘 구경하고 앉았어! 저 새끼 죽여, 죽이라고!”
그의 불호령에 넋이 나간 부하들이 퍼뜩 정신 차렸다.
“저 자식이!”
“죽여버려!”
파티원 넷이 뛰어들자, 그들 뒤로 피신했던 파티장이 비릿하게 입꼬릴 올렸다.
‘넌 뒤졌어!’
정도현에게 마법과 화살이 앞다투어 날아들고, 양쪽 측면에서 창칼이 찔러 들어온다.
하지만 그는 레어 아이템의 힘을 빌려 전부 막고 피했다.
“「바람 질주」, 「항마의 방패」.”
날아오던 투사체 주문은 보호막에 막혔고, 화살은 엉뚱한 벽에 꽂혔다.
후웅-!
그가 걸음을 뗄 때마다 주변으로 작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창칼을 들고 접근했던 전위들은 정도현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컥···!?”
“크악!”
서걱! 촤악!
가까운 두 놈부터 썰고, 마법사와 활쟁이까지 재빠르게 베어 넘겼다.
다들 급소를 베여서 비명을 꽥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자신보다 레벨이 훨씬 높은 상대를, 그것도 무려 넷을 처치했다.
‘말도 안 돼!’
파티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냅다 도망쳤다. 부하들이 죽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못 가고 스스로 자빠졌다.
한쪽 팔이 날아가 균형 감각을 잃은 탓이었다. 정도현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그는 으르렁대며 소리쳤다.
“이, 씨발놈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23구역에서···.”
파티장이 씩씩대며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를 읊어댔다.
그래.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지 않는가.
하지만 여긴 놈이 활동하던 곳이 아니었다.
정도현은 가소롭단 듯이 그를 내려다봤다.
“이제 입 다 털었냐?”
“자, 잠깐!”
푹-!
칼날이 남자의 목을 비집고 들어왔다.
정도현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파티 하나를 쓸었는데 고작 1레벨밖에 안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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