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19화
파티장, 박성원의 죽음으로 회의실은 침울한 분위기였다.
안태환 부지부장은 피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면서 말했다.
“민 실장.”
“예, 부지부장님.”
“박성원 없이 우리가 무투전에서 우승할 수 있겠나?”
“···다른 후보들은 괜찮지만, 장현민 의원 쪽이 문제입니다.”
무투전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게 전부 물거품이 된다.
그 중요한 무투전을 두어 달 앞둔 시점에서 이런 불상사가 생겼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박성원을 대체할 만한 인재는 당장 못 구하겠지?”
“···죄송합니다. 그만한 인재는 힘들 것 같습니다.”
“흐음.”
어두운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리는 안태환.
그런 그를 향해 곽민기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지부장님. 무투전은 저희가 책임지고 반드시 우승하겠습니다.”
그는 46레벨로 죽은 박성원 다음으로 레벨이 높았다. 하지만 안태환은 고갤 내저었다.
“그 마음은 알겠다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자넨 박성원이 될 수 없어.”
“···.”
박성원은 강했다.
단순히 레벨이 높아서가 아니라 재능을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게다가 직감도 유달리 좋았다.
성격이 유순한 게 흠이었지만, 그걸 상쇄할 만큼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였다.
“몇 년 전, 박성원이랑 자네가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하나?”
“···예. 기억합니다.”
안태환의 질문에 곽민기가 씁쓸히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왜 기억 못 하겠는가. 그날 박성원한테 처참히 털렸었는데.
삼 년 전, 곽민기는 유망주로 뽑혀 좋은 조건으로 이 파티에 스카우트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재능을 타고난 줄 알았다.
하지만 박성원한테 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은 그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당시 둘의 레벨은 똑같았지만 압살당했었다. 진짜 천재는 따로 있었다.
“저도 압니다. 이 상태론 아무리 노력해도 대장을 따라잡지 못하겠죠.”
“그럼?”
“저희를 상위 던전에 들여보내 주십쇼.”
곽민기의 뜬금없는 요구에 안태환의 눈썹이 꿈틀했다. 상위 던전에 들어가겠다니.
“레벨을 더 올려보겠다고?”
“예,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그러다 죽거나 크게 다쳐서 장애가 남을 수도 있는데?”
부러지거나 절단된 팔다리는 포션과 치료 스킬로 금방 완치가 가능하다.
후유증이라 해봤자 며칠 환상통을 겪는 게 다였다. 그게 플레이어의 특권이다.
하지만 몬스터한테 신체 부위를 뜯어먹히면 최상급 포션을 써도 복구할 수 없었다.
그런 신체 결손을 고치려면 포션의 상위호환격 아이템, ‘엘릭서’가 필요했다.
하지만 엘릭서는 고레벨 연금술사도 일 년에 고작 몇 병밖에 못 만드는 희귀 아이템.
가격은 둘째치고 1, 2급 시민이 아니면 살 기회조차 없었다.
“내 능력으론 엘릭서를 구해줄 수 없어. 크게 다치면 끝이야.”
“알고 있습니다.”
“레벨업을 포기한 건 내가 아닌 자네들의 선택이었어.”
“그랬었죠.”
플레이어는 저마다 한계가 존재한다.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무리해서 싸우면 십중팔구 던전에서 죽는다.
곽민기와 파티원들은 일 년 전쯤에 레벨업을 포기했었다.
갈수록 강해지는 몬스터들을 상대할수록 겁이 났다.
그들은 죽음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심지어 박성원마저 48레벨에서 성장을 멈췄다.
그 이상을 노리면 파티원들이 죽을 거라고 직감한 것이다.
“하지만 무투전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대장의 노력은 전부 물거품이 됩니다.”
박성원의 희생은 개죽음이 된다.
그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목숨을 걸고 도전하기로 했다.
결사의 각오에 안태환이 고갤 끄덕였다.
“눈빛이 많이 좋아졌군. 하지만 자네들마저 잘못되면 난 그대로 끝이야.”
여기 모인 자들이 안태환의 1군이었다. 2군을 무투전에 내보내봤자 분명 참패할 터.
그는 오랫동안 기틀을 다졌다. 이들에게 아이템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며 키워냈다.
“그러니 허락할 수 없어. 내 처지도 이해해주게.”
“하지만 부지부장님. 가만히 있어도 바뀌는 건 없습니다!”
박성원은 이미 죽었다. 이제 없다.
그러니 우리가 레벨을 더 올리지 않으면 무투전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그 말에 안태환이 주먹을 쥐었다.
그도 지부장 자리를 남에게 내주기 싫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가 고민할 때.
띠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민규원의 휴대폰이었다.
민규원은 발신인을 확인하곤 눈을 크게 떴다. 안태환이 궁금해서 물었다.
“누구 전화길래 안 받나?”
“그게···. 정도현 플레이어입니다.”
“받아봐.”
민규원이 고갤 끄덕이며 전화를 받았다.
“예, 도현 씨. 예? 뭐라고요?”
민규원은 혹시 자기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되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똑같은 대답이 돌아오자, 민규원이 입을 쩍 벌리며 허릴 굽신댔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장례식 일정은 바로 취소하겠습니다. 예, 예!”
장례식을 무른다는 말에 다들 어리둥절했다.
통화를 끊은 민규원이 안태환에게 뭐라 속삭였다. 안태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게 정말인가?”
“예, 그렇다고 합니다.”
“대가는?”
“믿기 어렵지만···. 그냥 써주겠다고 합니다.”
“허, 그걸 그냥 넘긴다고? 왜?”
안태환의 얼굴에 드리운 근심이 사라졌다. 민규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편,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 못 한 곽민기 일행. 그들은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민규원을 바라봤다.
민규원이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아무래도 성원 씨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
정도현은 민규원에게 전화해 부활 아이템, ‘신성한 용의 구슬’을 손에 넣었다고 전했다.
출처를 묻길래 황금빛 랜덤 박스를 깠더니 운 좋게 나왔단 식으로 둘러댔다.
“정도현 씨!”
“진짜 우리 대장 살릴 수 있는 거야?!”
회의실로 올라오자마자 곽민기 일행이 잡아먹을 듯이 그에게 달라붙었다.
곽민기는 말할 것도 없고, 파티원 중 그나마 냉철했던 주재혁마저 이번만큼은 자제심을 잃었다.
정도현은 신성한 용의 구슬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줬다.
다들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크흡···. 다행, 다행이야···. 흐어엉!”
“도현 씨.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주재혁이 대표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가슴이 벅찬지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래도 그냥 넙죽 받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맞아요. 그거 경매장에 올렸으면 엄청 비싸게 팔렸을 텐데···.”
“저희가 모아둔 돈이 좀 있습니다. 나중에 계좌 좀 알려주세요.”
“됐습니다. 혹시라도 입금하면 그대로 반송해버릴 겁니다.”
정도현은 그들이 주겠다는 사례를 단호히 거부했다.
1원 상점에서 구한 물건으로 물질적 보상을 챙기거나, 다분히 의도적인 이득을 보게 되면 어김없이 페널티를 주겠다는 경고창이 뜰 테니까.
“제가 이런 분을 몰라뵙고···. 정말 감사합니다···.”
곽민기가 훌쩍거리며 머릴 박고 절을 올렸다.
파티원들도 그 말에 동의하는지 고갤 끄덕였다.
정도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실상은 페널티 때문에 사례를 거부한 것뿐인데. 그를 무슨 메시아나 성인처럼 취급했다.
“참 이상하단 말이지.”
뒤에서 조용히 관망하던 안태환이 말했다.
“악착같은 면이 있으면서도 이럴 땐 욕심을 안 부리고. 참 종잡을 수가 없구만.”
“괜찮은 사람을 부하로 두셨더군요.”
“너무 착해도 탈이야. 딱 자네처럼 냉철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안태환이 껄껄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하겠네. 자넬 영입하고 싶어졌어. 하지만 안 되겠지.”
“죄송합니다.”
“그거 아나? 방금 대답으로 자네가 더 마음에 들었어.”
안태환은 미련 섞인 눈으로 정도현을 바라봤다.
레벨은 아직 1군보다 낮지만, 느낌이 팍 왔다. 정도현은 분명 더 높이 올라갈 놈이라고.
“그래도 조심하게. 나도 소싯적엔 자네처럼 쭉쭉 올라갈 줄만 알았어.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더군. 윗구역 놈들을 조심하게.”
“그 말,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정도현은 그렇게 답하고 박성원의 시체에 구슬을 올려뒀다.
“콜록, 콜록! 커흑···.”
그러자 박성원이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기침했다. 되살아난 것이다.
“대장!”
“흑! 다행이야, 성원 오빠!”
“···어, 어?”
지옥에서 겨우 돌아온 박성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파티원들을 바라봤다.
끼익!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뒤늦게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정도현을 발견했다.
“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정도현이 자신과 파티원들을 살려줬다는 걸.
“···감사합니다.”
박성원은 뒤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정도현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
“그래서 부활 아이템을···. 공짜로 써주고 왔다고?”
“예.”
“아이고.”
정도현의 보고에 송정민이 이마를 탁 쳤다.
그 귀한 걸 돈 한 푼 안 받고 넘기다니. 이해가 안 됐다.
“그거 경매장에 올리면 수십···. 아니지. 백억은 족히 받았겠다. 넌 아깝지도 않냐?”“전혀요.”
정도현의 대답에 송정민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놈이다.
“그보다 내일 들어갈 만한 던전은 나왔어요?”
“아니. 이번 주 일정은 꽉 찼더라. 네가 들어갈 만한 필드형 던전도 안 열렸고.”
“지금보다 더 상위 던전은요?”
“야, 너 같으면 혼자 활동하는 놈한테 선뜻 허가를 내주겠냐? 지금까지 던전 따낸 것도 내 브로커 신용을 걸어서 가능했던 거야.”
“늘 고마워요.”
그의 레벨이 올라갈수록 점점 괜찮은 던전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정도현은 혼자 활동하는 탓에 이래저래 제약이 있고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슬슬 임시 파티원이라도 구해두지 않으면 힘들 거다.”
“그렇겠네요.”
“에휴.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정도현은 지금까지 파티 사냥에 회의적이었다.
경험치가 분산되는 것도 문제지만, 좀처럼 사람을 못 믿어서였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조금은 생각을 달리했다.
“한 명 정도는 괜찮을 것 같네요. 물론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요.”
“어? 네가 웬일이냐?”
그 말에 송정민이 눈을 부릅떴다.
번번이 싫다고 고집부려서 반쯤 포기했었는데. 그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파티원을 구한다고 했다.
경험치 때문인지 한 명으로 선을 그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공략 인원이 둘로 늘면 허가 따내기도 한결 쉬워질 거다.
“그럼 든든한 탱커를 고용하면 되겠네. 가만있어 보자. 누가 좋을까···.”
송정민은 플레이어 프로필을 정리해둔 서류 뭉치를 꺼내 뒤적였다.
그러다 책상에 놓인 편지 봉투가 떠밀려 바닥에 떨어졌다.
정도현은 그걸 주워들다 봉투에 적힌 수신인 이름을 보곤 고갤 갸웃했다.
“이 편지, 저한테 온 거네요?”
“···응? 아, 그거? 이틀 전에 관리국에서 보낸 토벌 의뢰서야. 너무 위험해 보여서 거절하려고.”
“무슨 토벌 의뢰요?”
“한 오 년 전이었나? E구역 외곽에 게이트 붕괴가 일어났었거든.”
그 탓에 거기 살던 사람들은 다 떠났고 이젠 유령 도시로 변했다.
거기엔 사람 대신 몬스터들이 득실댄다.
게다가 번식 시기만 되면 수가 마구 불어나서 그때마다 청소해줘야 했다.
“청소 시즌이 다음 주부터거든.”
“그 몬스터들, 레벨이 몇인데요?”
“변종도 간간이 있으니까···. 47에서 50레벨 사이일걸.”
송정민은 프로필 서류를 검토하며 대강 대답했다. 그러다 멈칫했다.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정도현이 의뢰서를 든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송정민이 기겁하며 말렸다.
“야, 그건 안 돼! 레벨 차이가 너무 나잖아. 진짜 위험하다고!”
“뭘 새삼스럽게. 언제는 안 그랬어요?”
게다가 정도현은 30레벨일 때 51레벨인 서아린을 이겼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 이긴 건 아니었지만.
하지만 이제 40레벨이 됐다.
그때의 서아린과 다시 붙으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정도현이 계속 가겠다며 고집을 피우자, 송정민이 답답한 얼굴로 질문했다.
“뭐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한데?”
“제 실력이랑 새로 구한 장비템이요.”
“···장비템? 언제 새로 맞췄어?”
“어제요. 보여드릴까요?”
늘 노말 등급만 끼고 다니더니 갑자기 새 장비를 맞췄단다.
‘설마 레어 등급인가?’
아니. 그럴 리가. 저 녀석한테 그런 큰 돈이 어디서 났겠어.
설사 매물이 나와도 윗구역 플레이어들이 싹 쓸어가는 게 레어 등급이었다.
밑구역 플레이어는 던전 보상으로 자급자족해야 했다.
끽해야 40레벨에 끼는 노말 등급템이겠지. 송정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응?”
정도현이 새로 산 장비를 장착했다.
그런데 노말 등급치곤 상당히 멋들어진 디자인에 윤기가 흐른다.
송정민은 멍한 눈으로 쳐다보다 질문했다.
“설마 그거···. 다 레어 등급이야?”
“예.”
어떻게 샀냐 씨발놈아. 송정민은 저도 모르게 욕을 뱉을 뻔했다.
그러다 옆에서 장난감을 갖고 노는 이진성을 보더니 가까스로 말을 삼켰다.
“이제 가도 되죠?”
“···그래. 그렇다고 절대 방심하진 말고. 레드 플레이어들도 간혹 온다니까.”
“예.”
송정민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갤 끄덕였다.
저 녀석이 아이템까지 갖췄으니 이제 웬만한 놈들은 막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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