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18화
“대, 대장!”
“무슨···!?”
박성원의 죽음에 파티원들마저 경악했다.
힐러, 한유경이 달려와 그에게 치료 주문을 걸었다.
“아, 아···. 성원 오빠, 제발요!”
그녀는 시체에 마력을 쏟아부으며 오열했다. 죽었다.
던전에서 그들과 몇 년을 함께 구르고, 숱한 위기 속에서 팀원들을 구해냈던 그가.
“젠장···.”
곽민기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정도현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주먹을 휘두르기 직전, 눈앞에 붉은 글씨의 경고창이 떠올랐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정도현을 먼저 공격하거나 보복하려 들지 말 것.]
[해당 조항을 어길 시 당신은 사망합니다.]
“크윽!”
시스템의 경고에 곽민기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선을 넘는 순간 그의 심장이 멎을 것이다.
그는 결국 주먹을 뻗지 못했다. 죽는 건 두려웠으니까.
그 대신 정도현에게 욕설을 뱉었다.
“씨발! 너 때문에 우리 대장이 죽었···.”
퍼억-!
그 말은 중간에 뚝 끊겼다.
정도현이 그의 배를 걷어찼기 때문이다.
“컥···!?”
곽민기가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발끈하며 고갤 쳐들었을 땐 그의 코앞으로 주먹이 날아든 뒤였다.
콰직-!
곽민기의 안면이 분리수거장에 버려진 음료수 캔처럼 순간 납작해졌다.
“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며 코를 부여잡았다.
뜨거운 코피가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 새끼가···.”
“먼저 공격하려 했던 건 너다.”
정도현은 회복 포션 하나를 휙 던져줬다.
마치 거지한테 적선해주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자 곽민기는 오히려 화가 치밀었다.
“씨발, 필요 없어!”
곽민기가 씩씩대며 회복 포션을 걷어차 주인에게 돌려줬다.
저걸 쓰기엔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으르렁대며 정도현을 쏘아볼 때.
뒤에서 어깰 붙잡으며 중재했다.
마법사, 주재혁이었다.
“곽민기. 흥분 가라앉혀. 너까지 죽으려고 그래?”
“···.”
곽민기는 잠시 씩씩댔지만, 그의 말에 따랐다.
곽민기와 달리 주재혁은 어느 정도 냉정함을 유지했다.
“정도현 씨, 정말 죄송합니다. 대장을 친형처럼 따르던 놈이라 잠시 흥분한 것 같습니다.”
“그것보단 박성원 씨의 행동부터 설명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정도현은 곽민기를 흘끗 쳐다보곤 그렇게 대답했다.
그는 납득이 가질 않았다.
박성원이 왜 자기 목숨을 내버리면서까지 팀원을 구하려 한 건지.
‘서아린처럼 부활하는 특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 해서 시체를 살펴봤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정도현의 질문에 주재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저랑 대장 그리고 유경이는 같은 고아원 출신입니다.”
“···고아원?”
F구역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마력 적성이 좀 높은 아이들은 부모에게 일정량의 보상금을 지급해주고 E구역 고아원으로 옮긴다.
말이 고아원이지 요원을 양성해내는 훈련소와 다를 게 없었다.
박성원과 주재혁 그리고 한유경은 그곳 출신이었다.
“가족 같은 사이였단 겁니까?”
“예, 정도현 씨가 볼 땐 이해가 안 되겠지만요.”
이해는 된다. 그도 피가 이어지지 않은 가족이 한 명 있으니까.
“그럼 왜 저랑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죽어준 겁니까? 이길 수도 있었을 텐데요?”
“딱 잘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대장은 남들보다 직감이 훨씬 뛰어납니다.”
“직감?”
“예, 어릴 때부터 귀신같이 맞췄었죠. 건드려도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을.”
정도현은 최대한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주재혁은 그가 알아듣기 쉽게 핵심만 말해줬다.
“대장은 아마 이렇게 판단했을 겁니다. 정도현 씨랑 싸우면···. 저희가 지거나, 몇 명이 죽을 거라고.”
“그럴 바엔 자기 혼자 죽겠다?”
대체 직감이 얼마나 정확하길래 자기 목숨도 그리 쉽게 내버린단 말인가.
정도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직감」이란 스킬 같은 게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박성원은 뒤늦게 정도현의 저력을 알아챘을지도.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겨우겨우 납득했을 때, 곽민기가 다시 발작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곽민기는 주재혁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도현은 39레벨. 아니. 이제 막 40레벨이 됐다.
반면에 박성원은 48레벨이다.
레벨이 오를수록 1레벨 차이로 벌어지는 능력치 폭도 커진다.
그러니 40과 48레벨 사이엔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한다.
그러니 박성원이 정도현한테 질 리가 없었다.
“대장이 안 봐줬으면 넌 벌써 뒤졌어!”
“뭐, 그렇다고 치자. 그럼 넌 왜 박성원 혼자 싸우게 놔뒀지?”
“···뭐?”
“내가 맞춰볼까? 넌 자기 손을 더럽히기 싫었던 거야.”
정도현의 역질문에 곽민기의 어깨가 움찔했다.
사실이었다.
박성원이 정도현을 처리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와 파티원들은 내심 안도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라곤 해도 죄 없는 이를 제 손으로 죽이는 것과, 남이 죽이는 걸 지켜보는 것.
결과는 똑같지만, 느끼는 죄책감은 천지 차이였다.
“박성원이 총대를 멨을 때 속으로 안심했겠지.”
“난 그냥···. 형님이 우리 중에 제일 세니까, 파티장이니까···.”
“파티장이면 혼자 다 떠맡아야 하나? 그리고 당신들은 박성원 씨랑 가족 같은 사이라면서요?”
정도현의 반박에 곽민기와 파티원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부끄러워서 차마 고갤 들 수 없었다.
정도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렇게 억울하면 지금 덤벼보던가.”
“···.”
그 말에 곽민기는 압도되어 고갤 떨궜다.
그는 박성원의 시신을 보며 서럽게 울었다.
***
던전의 보스, 자이언트 흙거미는 정도현의 활약으로 순식간에 격퇴됐다.
파티원들은 그의 실력에 넋을 잃었다.
[퀘스트 완료!]
[사망자가 한 명 이상 발생하여 꼴찌는 벌칙을 받지 않습니다.]
[당신의 기여도: 1위]
[‘황금빛 랜덤 상자’를 획득합니다.]
보스가 쓰러지자 보스방 중앙에 탈출용 게이트가 열렸다.
평소 같았으면 부나방처럼 뛰어들었겠지만 다들 반송장처럼 의욕이 없었다.
늘 앞장서던 박성원이 없어서였다.
곽민기는 시신을 업었다.
그가 게이트를 빠져나가기 직전, 고갤 돌려 정도현에게 말했다.
“···아깐 막말해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정도현은 말없이 고갤 끄덕였다.
던전을 빠져나온 이들은 관리국 요원에게 사망 신고를 했다.
그렇게 그들과 헤어진 정도현은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규원 씨한테 미안해 죽겠네.’
기껏 특수형 던전에 들여보내 줬는데, 오히려 박성원을 죽여버렸다.
물론 이번 사고의 원흉은 그가 아니라 악질적인 퀘스트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외에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하필이면 박성원이 희생했어.’
안태환 밑에서 일하는 플레이어 중엔 박성원이 가장 강하다고 들었다.
즉, 안태환 입장에선 비장의 패가 허망하게 날아간 셈.
다른 지부장 후보들이 소식을 들으면 쌍수 들며 반기리라.
정도현은 한숨을 쉬다 불현듯 던전 클리어의 보상이 떠올랐다.
[황금빛 랜덤 상자] [소비 아이템]
- 사용 시, 다섯 개의 보상 아이템이 무작위로 나타납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해 획득할 수 있습니다.
- 일반 랜덤 상자보다 높은 등급의 보상이 더 잘 나옵니다.
“음···.”
일반 랜덤 상자는 던전을 공략하면서 종종 얻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잡템만 뱉었다.
그래서 그는 랜덤 상자에 별로 기대가 안 갔다.
‘그나마 선택지가 다섯 개네. 일반에선 두 개가 끝이었는데.’
그가 바라는 건 레어 등급 이상의 무기.
레어보다 더 높으면 좋겠지만, 레어 등급만 떠도 그로선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지금 그가 장착 중인 장비들은 전부 1원 상점에서 산 노말 등급.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정도현은 황금빛 랜덤 상자를 꺼냈다.
일반 상자와 달리 은은하게 황금색 광채를 내뿜는다.
사용하자 상자가 사라지며 다섯 개의 보상 목록이 튀어나왔다.
- 야만 전사의 강철 도끼 [LV.35] (노말)
- 정예 제국병의 투구 [LV.40] (노말)
- 다크 엘프의 롱 보우 [LV.60] (노말)
- 하급 정령의 펜던트 [LV.45] (레어)
- 특성 강화의 비약 [LV.30] (레전드리)
“···응?”
정도현은 다섯 개의 선택지를 훑어보다 마지막에서 멈칫했다.
그는 순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레전드리?’
레전드리.
레어, 에픽, 유니크를 넘어서 최고 등급의 아이템. 그게 뜬 것이다.
뜰 확률이 얼만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 말도 안 되게 낮을 터.
레어 등급의 펜던트가 뜨긴 했으나 고민할 가치도 없었다.
[특성 강화의 비약을 보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는 레전드리 아이템, ‘특성 강화의 비약’을 터치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조그만 약병이 들어왔다.
[특성 강화의 비약] [소모 아이템]
- 사용 시, 개인 특성을 강화합니다.
- 개인 특성이 없을 시에 무작위로 하나 획득합니다.
- 단, 해당 아이템은 개인당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친.”
그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목소릴 냈다.
개인 특성을 한층 강화하거나, 랜덤으로 획득하는 비약이라니.
이런 아이템이 있다곤 들어본 적 없었다.
아마 지금껏 획득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나, 극소수여서 알려지지 않은 거겠지.
‘1원 상점이 강화된다고?’
지금도 잘 써먹고 있는데 여기서 더 좋아진다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판매 품목이 더 늘어나려나?’
아니면 일일 재고량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약을 사용했다.
[개인 특성이 강화됐습니다.]
[‘아이템 검색’ 기능이 추가됩니다.]
‘아이템 검색?’
1원 상점을 열자 못 보던 게 하나 생겼다. 작은 돋보기 모양 아이콘.
그걸 터치하니 인터넷 검색창 같은 게 튀어나왔다.
게다가 경매장 시스템처럼 아이템 종류, 등급, 착용 레벨 등도 설정할 수 있었다.
‘검색해서 나온 아이템을 살 수 있는 건가?’
그것도 전부 1원에?
정도현은 곧바로 무기, 레전드리 등급으로 조건을 맞춘 뒤 검색해봤다.
그러자 수백 종류의 아이템이 목록으로 나열됐다.
꿀꺽.
정도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맨 위에 있는 검을 클릭했다.
[드래곤 슬레이어] [레전드리]
- 착용 조건: LV.150 이상
- 착용 시, 「용살참」, 「용의 분노」, 「용혈」 발동 가능.
- 모든 능력치 10% 상승.
- 물리 피해량 555% 상승.
- 용족 타격 시 반드시 치명타로 적용.
- 용살자 세트 아이템 (0/5)
착용만 해도 능력치 상승과 액티브 스킬이 세 개, 공격력은 무려 다섯 배 넘게 뻥튀기된다.
게다가 용과 관련된 몬스터를 때릴 땐 항시 치명타였다.
‘용족 상대론 이만한 무기가 또 없겠어.’
과연 레전드리 무기다웠다.
그는 즉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경고창이 뜨면서 구매가 되지 않았다.
[착용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셨습니다.]
[해당 아이템은 구매할 수 없습니다.]
“아···.”
정도현은 그제야 드래곤 슬레이어의 착용 조건이 눈에 들어왔다.
LV.150 이상의 플레이어만 쓸 수 있었다.
‘검색한다고 다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네.’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큰 법.
레전드리 아이템은 최소 LV.100 이상의 착용 조건이 붙어 있었다.
즉, 그가 살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아이템 등급을 낮추고 또 낮춰서 검색했다.
유니크와 에픽 등급은 LV.50에서 70을 넘어야 했다. 이제 막 40레벨이 된 그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에휴.”
레어 등급으로 낮춰서 검색하니 그제야 그도 쓸 수 있는 아이템이 보였다.
하지만 정도현은 한숨을 쉬었다.
레전드리 등급이랑 비교하니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아까 전만 해도 레어 등급도 감지덕지라 생각했었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했다.
“장비템말고 뭐 쓸만한 거 없나?”
장비 아이템말고도 종류는 더 있다.
그는 포션과 도핑제 같은 소비 아이템을 검색해봤다.
하급 포션보다 성능 좋은 포션들도 팔긴 했지만, 중급부터는 기존과 달리 레벨 제한이 붙어 있었다.
‘그나마 쓸만한 스킬북 몇 개는 건졌네.’
당장은 살 만한 게 없었다.
조금 실망하며 1원 상점을 닫으려던 순간.
정도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그런 것도 파나?’
정도현은 검색창에 ‘부활’, 레벨 제한은 40 이하로 설정한 뒤 검색했다.
[조건에 부합하는 상품 1개를 찾았습니다.]
[신성한 용의 구슬] [소모 아이템] [일주일에 5개 구매 가능]
- 사용 조건: LV.30 이상
- 24시간 안에 사망한 플레이어를 빈사 상태로 되살립니다.
- 해당 아이템은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해당 아이템으로 되살아난 플레이어는 3~5만큼 랜덤으로 레벨이 감소하며, 다시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 부활한 플레이어는 되살려준 사람의 ‘소원’ 하나를 들어줘야만 합니다. 단, 그 사람 능력 밖의 요구는 불가능합니다.
‘있다.’
하루에 딱 한 번이었지만, 박성원을 살릴 수 있었다.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라. 어디까지 들어줄진 모르겠지만···.’
정도현은 머릿속으로 저울질해봤다.
박성원을 살릴지 말지.
‘살려둬서 나쁠 건 없겠지.’
정도현은 민규원에게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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