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60화 (260/309)

260화. 거짓말은 안 한다 (11)

“준비 되면 사인 주세요.”

“예에~ ”

이곳은 뉴욕의 홈구장 햄스턴 스퀘어 가든, 월드시리즈 대비 훈련이 끝나고 이인영은 한국에서 날아온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자타공인 이인영의 열혈팬으로 이름 난 박한우 위원, PD가 사인을 주자 정식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인영 선수, 통산 네 번째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있는데 승리를 위해선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단 제가 건강해야죠. 이 팀은 제가 없으면 큰일 나니까요.”

초반부터 범상치 않은 대답, 현장에 나온 뉴욕 관계자들도 미소를 지었지만 이인영은 차근차근 해명에 나섰다.

“연봉이 6천만 달러나 되는 선수가 다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것만큼 팀에 큰 손실이 있겠습니까? 다른 것보다 제가 건강해야 됩니다. 이게 뉴욕이 우승을 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럼 두 번째 조건은 뭡니까?”

“제가 잘 해야죠. 6천만 달러나 받는 선수가 이런 큰 경기에서 부진하면 큰일 나는 거니까요.”

현장에 나와 있는 구단 관계자 방송국 PD, 기자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첫 번째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두 번째 조건에서는 팀 통료들의 단결이나 활약이 나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인영은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선수들한테도 물어보세요. 다들 내가 활약해야 이길 수 있다고 대답 할 걸요? 누가 뭐래도 저는 제가 활약해야 팀이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철학적이면서도 확고한 답변, 확실히 월드시리즈는 팀뿐만 아니라 선수 개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대회에선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법, 이인영은 각자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루지 못 할 게 뭐가 있겠냐는 소감을 밝혔다.

“저는 솔직히 팀플레이는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조직력을 강조하곤 하는데, 인생은 메뉴얼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거든요. 위기 상황에서는 정해진 규칙보다 개인의 판단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큰 경기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펜을 움직였다.

개인의 판단에 따라 갈리는 승패가 얼마나 많나. 한 선수의 실수가 팀을 무너뜨리거나 살리기도 하는 게 야구, 이것도 조직을 이끄는 나름의 철학 아니겠나.

한 분야에서 최고 자리에 오른 선수라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 이인영은 못다한 말을 이어갔다.

“제가 필라델피아에서 뛰었을 때, 코치와 충돌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적극적인 대시로 타구를 처리하고 싶은데, 그 코치는 너무 위험하다며 언제나 반대했죠. 하지만 저는 제 방식대로 게임을 풀어냈고 결국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떠한 결과도 받아들일 겁니다. 주인공이 언제나 승리할 순 없는 거니까요. 다만 저는 제 신념을 지켜나갈 뿐입니다.”

타협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확고한 생각, 취재진은 개릿 앤더슨 감독에게 의견을 구했다.

선수단을 통제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 저렇게 개성이 뚜렷한 선수는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

대답을 망설이던 앤더슨 감독은 속마음을 털어놨다.

“솔직히 저는 리(Lee)의 영입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 있을 때부터 그 선수는 자기 색깔이 확고했으니까요. 조직과 규율을 중시하는 뉴욕에는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 그 친구의 말에 틀린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우수한 분석팀과 함께하고 있고, 승리를 위해 최선의 전략을 짜내니까요. 하지만 그게 언제나 맞아 들진 않습니다. 때로는 선수 개인의 판단이 판도를 바꾸곤 하죠. 그 친구는 조직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개인의 판단도 존중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원하는 거죠.”

앤더슨 감독은 이인영 덕분에 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구단 관계자들이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질 않아 당황스러워 할 뿐, 햄스턴 구단주도 그런 선수는 처음 봤다며 호탕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이 모든 게 해피 엔딩으로 끝나려면 우승을 해야겠지, 20여 년 만에 월드시리즈를 맞이한 뉴욕 시민들은 설렘과 긴장감을 앉고 경기장을 찾았다.

“자 월드시리즈 1차전!! 세인트루이스는 브랜든 스튜더스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올 시즌 32경기 등판 13승 13패, 평균자책점 3.44, 212이닝 동안 볼넷 46개, 탈삼진은 166개를 기록했습니다.”

“이 선수도 여론의 입에 자주 오르는데, 올 시즌도 그렇게 좋은 사건은 아니었죠. 호언장담은 했는데 일단은 지켜봐야겠습니다.”

스튜더스는 뉴욕의 일원으로 월드시리즈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플레어티 단장은 상대적으로 얇은 선발진을 보강하기 위해 스튜더스 영입을 추진했지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나는 보스턴이나 뉴욕이 있는 아메리칸 리그는 가고 싶지 않다. 그들을 꺾어야 진짜 우승을 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튜더스는 트레이드 거부권을 발동해 뉴욕 입단을 거부했다.

최종보스를 꺾어야 의미가 있지 그들의 일원이 될 생각은 없다는 것, 그 기개가 마음에 들었는지 세인트루이스는 유망주를 대거 내주고 스튜더스를 영입했다.

[넌 뉴욕 유니폼을 입을 자격도 없어]

[너 정도 되는 투수는 얼마든지 있거든]

물론 괴짜의 발언은 뉴욕 팬들을 자극했다.

세인트루이스 데뷔전에서 2와 2/3이닝 동안 8실점을 하고 무너진 허풍쟁이, 이 경기뿐만 아니라 스튜더스는 세인트루이스 이적 후 3승 4패 - 평균자책점 4.52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겼다.

포스트시즌에서는 2승 1패 어느 정도 제 몫을 했지만 평균자책점은 4.40, 이런 선수를 유망주까지 얹어줘 가며 영입했다면 끔찍하지 않겠나.

뉴욕 팬들은 플레어티 단장이 이번만큼은 선수를 잘못 봤고,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본인의 희망대로 끝판왕을 상대할 기회가 주어진 무대, 뉴욕팬들은 스튜더스에게 압도적인 힘 앞에서 절망하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우우우~ 우~ ”

“너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이 검둥아!!”

“네가 월드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너 같은 놈이 주인공이 될 만큼 이 무대는 만만하지 않아!!”

“쳐맞는 샌드백이라면 그 자리가 어울릴지도 모르지!!”

포수가 던져준 공을 잡기만 해도 야유가 날아드는 관중석, 스튜더스는 그러려니 하는 표정을 유지했다.

8실점을 해도 웃고 들어가는 성격, 이런 태도 때문에 불성실하고 진지하지 못하다는 오해도 받지만 겁을 먹는 것보다는 나았다.

“2구도 몸 쪽입니다. 깊숙이 들어오는데요.”

“스튜더스 선수는 몸 쪽 승부를 즐기는 편이거든요. 올 시즌도 몸에 맞는 볼 13개를 기록했는데, 이런 투구 성향 때문에 상대 타자의 심기를 자극하는 때도 많습니다.”

“가장 최악은 지난 9월 2일 경기였죠. 7명이 퇴장을 당하는 벤치클리어링의 시발점이 됐는데,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길 바랍니다.”

한편, 타석에 선 스캇 험프리는 얼굴을 구겼다.

투수가 몸 쪽을 던지면 안 된다는 법도 없지만, 스튜더스는 이런 공을 의도적으로 던진다는 게 문제, 친구의 말대로 내가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어쩌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월드시리즈, 부상으로 실려 나가는 꼴사나운 최후는 사양하고 싶었다.

[딱~!!]

“3구는 파울, 카운트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지금은 키킹이 거의 없는 동작에서 투구가 됐죠. 험프리 선수가 타이밍을 잡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선 이런 투구를 두고 보크다 비겁하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사실 이것도 엄청난 기술입니다. 이렇게 폼을 바꿔서 던지면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거든요. 물론 스튜더스 선수가 최근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좋지 않은 투구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인데, 이것도 이 선수의 특징으로 이해해 줘야 합니다.”

“하하~ 맞습니다. 누구 말대로 선수의 개성은 존중받아야 하는 거죠.”

스튜더스는 몸 쪽 위협구와 특유의 딜리버리로 험프리를 흔들었다.

투구 폼을 바꿔도 흔들리지 않는 제구를 유지하는 게 스튜더스의 장점, 타자 입장에선 한 이닝에 여러 투수를 상대하는 착각이 든다.

최근엔 이게 잘 안 되고 있다는 게 문제,

전문가들은 변칙 투구의 한계가 드러났다며 입을 모았지만 스튜더스는 여론의 비난에도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했다.

딱~!!

2루 땅볼, 험프리는 고개를 저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험프리는 원래 몸 쪽 공에 약점이 있는 편, 여기에 변칙투구까지 능한 스튜더스를 공략하는 건 쉽지 않다.

다음 타자 몬테로도 좌익수 플라이 아웃, 이인영의 등장에 관중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저 반칙왕을 응징해 달라는 요구, 반면 기세를 탄 스튜더스는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월드시리즈에 앞서 나는 절대 다치면 안 된다는 발언을 한 이인영, 여기서 몸에 맞는 볼을 던지면 신경을 건드릴 수 있지 않을까.

문제가 생기면 방패막이 되어줄 포수, 바로 실행에 옮겼다.

‘맞아도 상관없음.’

이인영은 아무 반응 없이 1루로 걸어갔다.

스튜더스의 빠른 볼 평균 구속은 91마일, 솜방망이 볼에 흥분해 봤자 본인만 손해다.

상대가 몸쪽 승부를 즐긴다는 것도 알고 있고, 보호대도 차고 나섰으니 과잉대응할 이유가 없었다.

‘저게 또 몸 쪽을 던져?’

반면 다음 타자 마이크 서튼은 위협구에 인상을 구겼다.

명색이 캡틴인데 포스트시즌에서 이렇다 할 활약이 없는 입장, 여기에 스튜더스의 전매특허인 반칙 투구까지 이어지면서 멘탈이 흔들렸다.

“자, 지금은 뉴욕 벤치에서 보크가 아니냐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시선이 홈플레이트 쪽을 향한 게 아니거든요. 물론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이런 동작이 나왔다는 건 문제가 있지만, 주심은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반칙과 합법을 넘나드는 절묘한 줄타기, 상황을 살피던 이인영은 1루에서 약간 멀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20도루를 기록한 시즌도 있지만 올 시즌은 0개, 뛰지도 않을 주자가 1루에 있으니 저런 동작을 해도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뛰면 그만, 기회를 엿보다 스타트를 끊었다.

다음 투구에도 반칙 아닌 반칙을 시도한 스튜더스, 타이밍을 완전히 뺏기면서 실점 위기에 몰렸다.

‘어디 또 해보시지.’

이인영은 보란 듯이 2루에서 멀어졌다.

한국에서 3루 스틸러로 명성을 날렸던 몸, 또 수작부리면 3루로 뛰겠다는 눈빛경고를 날렸다.

‘그래도 한다.’

약이 오른 스튜더스는 왼쪽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일관적인 동작이라 이제는 반칙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상황, 주심은 별 다른 지적 없이 경기를 진행시켰다.

“뛰었어요!!”

“그러나 포수는 던지지 못합니다!! 3루 도루!! 이인영 선수가 루상을 휘젓고 있습니다!!”

“이인영 선수는 한국에서 도루왕을 차지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설마 월드시리즈에서 이런 플레이를 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하하~ 다치면 큰 일 나는 거 아니었습니까?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을 하고 있어요.”

뉴욕 팬들은 색다른 방식의 참교육에 열광했지만, 앤더슨 감독과 구단 관계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2아웃에 타석에는 마이크 서튼, 굳이 3루로 뛸 이유가 있었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 선수의 개성을 존중하겠다는 인터뷰를 한 게 이인영을 책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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