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92화 (91/147)

<-- 사랑 연결 공식 -->                               “일레이나! 이 옷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와, 이쁘다……. 솜씨가 정말 좋은데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다들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에요.”

셀리안과 페로렌은 일레이나의 옆에서 그녀가 만들어준 옷을 보며 행복하게 웃는다.

셀리안과 페로렌에게 부탁해서 일레이나의 화를 풀어달라고 했건만 어째, 풀어달라는 화는 안 풀어주고 반대로 길들여지는 느낌인데……?

나도 저 사이에 껴서 하하 호호 웃고 싶은데 차마 다가갈 수가 없구나……. 단순 일레이나의 태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 근처로 다가가기만 하면 집 지키는 개처럼 달려드는 저 여자 때문이다.

미실트.

며칠 전 그녀가 정신을 차린 직후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발부터 휘둘렀다. 다행히 일레이나의 만류 덕에 살아나긴 했지만, 그 이후로도 나만 보면 으르렁거린다.

치료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달려든다니……. 배은망덕한 여인 같으니…….

그동안 대화하면서 잘 풀려가는 느낌이었는데. 저 여자만 없었어도…….

“일레이나! 저랑 얘기 좀 해요. 중요한 얘기라니까요.”

“말씀하시라니까요?”

“둘이서만 할 얘기에요. 저 여자 좀, 치워 주세요.”

“미실트가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치워요?”

하아……. 안 되겠다. 기선제압을 위해 과감하게 들어가야겠어.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기선제압 이후엔 강아지나 다름없는 법!

“미실트! 가만히 있어! 어디 움직이기만 해봐!”

박력 있게 말하며 일레이나에게 다가가자마자 미실트가 나를 노려본다.

“적……. 죽음…….”

그녀의 눈빛에 살기가 돌더니 나를 향해 즉시 강력한 발차기를 휘둘러온다. 그럼 그렇지 내 주제 기선제압은 무슨…….

온몸에 광채가 뻗어 나올 때처럼 강하진 않지만, 여전히 한 방 맞으면 저세상 구경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이셀로 소름 돋게 빠른 미실트의 발차기를 막아내며,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낸다.

“와아, 뭘 님 힘내세요!”

“셀리안! 응원만 하지 말고 연주로 미실트 좀 멈춰줘요!”

“하지만, 정당한 결투에서 그건 비겁한 짓이잖아요? 대신 응원의 연주를 해드릴게요!”

언제부터 이게 정당한 결투였어? 난 결투를 원한 적이 없다고! 쓸데없이 박진감 넘치는 연주가 흘러나오고 나는 열심히 미실트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3회전 뒤돌려차기가 아이셀 정중앙을 타격한다.

-‘3730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강력한 피해지만 아이셀만 있다면 이제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다. 진짜 한 번 혼 좀 내줄까……?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듯, 누적 피해를 방출하기 직전 일레이나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미실트한테 상처 입히면 당신이랑 아무 말도 안 할 거예요.”

아 진짜 하연아……! 왜 오빠 마음을 몰라주는 거야 제발……! 간신히 쳐다봐도 호감도가 안 떨어지는 단계까지는 도달했는데……. 도로 물릴 순 없으니, 일단은…….

“후퇴.”

결국 숙녀분들 앞에서 재롱만 떤 꼴이 된 채 쓸쓸히 후퇴를 외친다.

근데, 얘 왜 아직도 따라와?

“아! 그만 쫓아와!”

나의 외마디 외침에 숙녀분들이 꺄르르 웃는다.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올 것 같은 그녀의 추격은 부엌까지 이어졌다.

그녀의 공격을 막고 피해내며 도망쳐도 끝까지 공격한다.

콰직-!

“안돼!”

그녀의 발차기로 인해 싱크대가 반쯤 찌그러졌다. 수리한 지도 얼마 안 됐구만……. 이대로면 집기 다 부수겠다.

나는 그녀의 공격을 아이셀로 막은 뒤 지팡이를 꺼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

일어나기 위해 차올리는 그녀의 다리를 아이셀의 반발력으로 내리누른 뒤 그녀 위에 올라탄다.

그녀가 몸을 비틀이며 다리로 내 뒤통수를 차올린다.

“커헉!”

-42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불편한 자세에서 차올린 거라 피해가 큰 편은 아니지만, 두 번 맞았다가 죽게 생겼다. 나는 재빨리 주방 테이블 위에 팔을 뻗어 미실트를 잠잠하게 만들 비장의 아이템을 찾아 손을 더듬거린다.

찾았다!

미실트의 다리가 다시 내 뒤통수를 노리고 올라오기 직전 나는 테이블 위에서 잡은 아이템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고는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한다.

“허억……. 헉!”

그녀는 그대로 누워 내가 입속에 쑤셔 넣은 딸기 머핀을 맛보고 있다. 어이가 없네. 진짜……. 조금 전까지 죽일 듯 달려들더니 머핀 하나로 이전의 기억은 싹 다 지워진 모양이다.

“미실트. 당신 정말 이상해……. 알아?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머핀을 우물거리며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입에 먹을 것만 들어가면 무슨 스위치 켜지듯이 사람이 바뀌니…….

아……. 이 여자한테도 각인이나 새겨 둘까? 호감도가 오르면 날 적대시하는 이 태도도 바뀔지 모르니까……. 나는 언제 광견처럼 돌변할지 모르는 미실트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얹는다.

아직은 머핀을 먹는 데 집중하느라 어깨에 손을 올리는 걸 보면서도 달려들진 않는다.

3분 정도 흐르고 미실트는 머핀을 전부 먹어 치웠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그녀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킨다…….

“착하다……. 우리 미실트…….”

하연이의 말투를 따라 해봤다.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민다. 이건 아니었나보다……. 나는 반대편 손에 준비해놓은 아이셀을 재빨리 들어 올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녀는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물…….”

물……? 이거 어디서 겪어본 상황 같은데……?

그녀를 처음 만난 그날처럼 바지를 내리더니 내 소중이를 쪽쪽 빨기 시작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여긴 들킬 수도 있는데…….

“쮸압-! 쮸압! 꾸웁-! 쮸웁!”

어우……. 이 여자 정말 흡입력이…….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만……. 각인이 새겨질 동안만이라면……. 괜찮을지도…….

*

“또 나오니까 받아마셔요.”

“꾸웁-! 쯉! 꿉! 쿠읍! 쿠욱!”

쭈우욱-! 그녀의 목 안에 깊이 넣고 대량의 액체를 방출한다. 이미 각인은 한참 전에 끝났지만 그녀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무려 5차례나 뽑아내고 있다.

그녀는 계속해서 내 소중이를 붙잡고 흔든다. 장소가 어떻든 상관없다 그냥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련다. 그런데 그 순간…….

“미실트! 혹시 여기 있어?”

근처에서 들려오는 일레이나의 목소리에 급히 미실트를 밀어내고 옆으로 숨는다. 미실트도 들려오는 일레이나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일레이나…….”

“여기 있었구나! 한참 안 보이길래 찾았어. 미실트도 옷도 다 만들어서 보여주려고. 근데 입 주변에 뭘 묻히고 다녀?”

헉……. 미실트의 입가에 내가 싸질렀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미실트는 자신의 손에 빵 종이를 보여준다.

“빵 먹은 거야?”

“칠칠치 못하게……. 숙녀는 예쁘게 하고 다녀야 돼. 이렇게 입에 묻히고 다니면 안 돼.”

그녀가 미실트 입에 묻은 액을 손가락으로 닦아주더니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는…….

“헙……!”

자신의 손가락에 묻은 액을 쪽 빨아먹는 하연이의 모습에 당황해서 무심코 소리 낼 뻔했다.

“음……. 이거 크림 맛이 조금……. 특이하네……? 상한 거 먹은 건 아니지?”

하연아……. 그거 크림 아니야…….

*

“미안해요. 일레이나…….”

“갑자기… 뭐가요? 저번 일이라면 사과하셨잖아요. 아직… 그쪽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그거 말고요……. 그냥… 미안해요.”

어째 일레이나에게 짓는 죄만 갈수록 늘어나는구나…….

일레이나는 한숨 쉬는 내 모습을 보고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말을 꺼낸다.

“그래서 단둘이 할 중요한 얘기라는 게… 뭔데요?”

그동안 셀리안과 페로렌의 노력과 나의 그럴듯한 상황 연출로 인해 일레이나의 경계는 많이 풀렸다.

“당신은 위험해요.”

“또 그… 얘기에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게는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사람들은 신내림이다. 뭐다. 하는데……. 제 능력을 정확히 뭐라고 정의 내릴 순 없어요.”

나는 이미 일레이나가 하연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취미나 해온 일들을 풀어 놓으면서 공감대를 많이 형성해둔 상태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보니 그녀도 처음보다는 나를 신뢰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말이 워낙 터무니없기에 아직은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저는 사람들의 위험을 볼 수 있어요. 그 위험을 막기 위해선 입으로 제 기운을 상대에게 불어넣어야 하죠.”

“저, 귀신 같은 거… 안 믿어요…….”

하연이는 귀신을 안 믿는다고는 하지만, 무서워하기는 한다. 영화 볼 때도 항상 공포영화만 빼놓고 선정하기에 그건 확실히 알고 있다.

“귀신이 아니에요. 어쩌면 귀신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당신에게 달라붙어 있어요. 처음부터 말하면 안 믿을까 봐. 그래서 당신한테 무례하게 입을 맞춰서 제 기운을 불어넣은 거예요……. 당신한테 진작 설명했어야 했는데…….”

최대한 안타깝고 쓸쓸한 표정을 그녀에게 지어 보인다. 어린 시절 학예회 연기 신동이라 극찬받았던 그 표정을 그대로 재현해서 말이다.

“사람을 구하는 일임에도 방법이 이상해서 욕먹고 비난받아야만 하는 이 심정……. 아마 당신은 영영 모르실 거예요.”

사이비 교주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하연이는 의외로 심각한 표정이다.

“아직도… 제 주변에 그런 게 있어요……?”

안타깝지만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준다. 너무 순수해서 속이는 게 더 미안할 따름이다.

“그 위험을 막기 위해선 저를 완전히 받아들이셔야 해요.”

“받아들여요?”

“저번처럼…….”

저번처럼이라는 말에 일레이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내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위험을 퇴치할 수 있다는 방법만큼은 싫은 모양이다. 나도 진심으로 할 생각은 아니었다. 속내는 따로 있으니 말이다.

“말씀드렸지만 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일은…….”

바로 이거다. 내가 알아내고 싶은 것. 좋아하는 그 남자가 정말로 내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

“좋아하는 남자……. 그 남자가 혹시 강 씨 성을 가진 남자인가요……?”

“네?”

놀란 듯한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래도 강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니니 몇 개 더 던져볼까……?

“키는 185cm 정도 되고 나이는 25살인 것 같군요……. 최근, 당신과 많은 취미를 함께했어요.”

나는 눈을 감고 더 깊을 곳을 들여다본다는 듯 행동한다.

“…영화관에서 그와 첫 키스를 했군요. 그렇죠……?”

“그…… 그런 걸 어떻게 아세요……?”

살며시 눈을 뜨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말씀드렸잖아요. 전 많은 걸 볼 수 있다고. 혹시 그 남자 혈액형은 B?”

“혈액형은… 잘 몰라요……”

“아, 음 그렇죠……. 아마 B가 맞을 겁니다.”

내 혈액형이 B니까…….

이쯤 되면 좋아하는 남자라는 게, 내가 맞는 것 같은데 왜 고백을 안 받아준 거지?

“당신은 그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군요…….”

“네……. 제가 처음으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남자였으니까요.”

나와 있던 일들을 떠올리는 것일까? 입가에 미소를 띤다.

“그도 아마 당신을 많이 좋아하고 있을 겁니다.”

내 말에 일레이나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람이 저한테 고백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아무 대답도 못 했어요.”

그 말대로다. 그녀는 내가 했던 고백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그녀의 진심이 알고 싶었다. 나를 좋아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묻는다.

“왜……. 그랬어요?”

한참의 침묵 후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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