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91화 (90/147)

<-- 검은 초대장 -->                               “뎅뎅! 저 녀석이다! 저놈이 우리 가보를 훔쳤다! 죽여라! 뎅뎅!”

“쿰쿰! 죽인다 쿰쿰!”

“킴킴! 각오해라! 킴킴!”

아, 정신병 걸릴 것 같아. 같은 일족이면 하나로 통일하던가 왜 저러는 거야 쟤들은……?

수십 명의 적이 이쪽 배로 넘어온다. 이거 수가 너무 많은데……?

“저도 도와드릴게요! 뭘 님!”

어느샌가 뒤따라온 셀리안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자, 적들이 느릿느릿 걷기 시작한다.

“셀리안?”

“우리 배 우리가 지켜야죠!”

“그래요. 우리 배, 같이 지킵시다.”

평소라면 위험해서 전투에 나서게 하진 않지만, 어차피 도망칠 공간도 없는 이상 셀리안의 도움을 받아서 나쁠 건 없겠지. 그녀의 연주 효과가 다수의 적을 상대로 뛰어난 건 사실이니까.

셀리안의 지원을 받으며, 지팡이를 빼 들고 아이즈를 부른다.

“아이즈! 내 몸으로 들어와! 아까 그거 다시 해보자!”

“아이! 아이!!”

입을 벌리자 신이 난 듯 몸속으로 들어오는 아이즈. 그와 동시에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후우…….”

한숨을 가볍게 내쉬자 겨울도 아닌데 입김이 화악 퍼져 나온다. 다가오는 적을 향해 왼손을 내뻗는다. 그러자…….

“캉캉! 차갑다. 캉……!”

서리가 광선처럼 소용돌이치면서 뻗어 나가더니 앞에 다가오던 적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한다.

이거 정말 좋구나.

“께에엑-!”

다발로 넘어오는 적들을 차례로 얼리고 지팡이로 한 대씩 때리자, 박 깨지듯 터져 나간다.

단점은 손바닥을 펴야 나가는 기술이라 왼손에 아이셀을 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아이셀을 왼손에 풀리지 않게 감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적을 얼어붙게 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하지만 아이셀에 막힌 탓인지 얼음 마법이 나가지 않는다.

“어?”

그러나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아직 어떠한 피해도 막지 않았건만 아이셀로 막은 피해가 누적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현재 아이셀에 누적된 피해의 양은 700 정도다. 얼음 광선을 멈추지 않고 계속 발사하고 있으면 그 피해량이 늘어난다. 어디까지 누적되나 볼까?

두우웅-

아이셀에 미세한 진동이 지속적으로 울린다. 누적 피해량 총 4130. 현재 아이셀로 막을 수 있는 피해량을 넘어선 뒤부터는 얼음 광선이 아이셀을 통과해서 그대로 방출된다. 기술을 끊었다가 다시 방출하면 그 이후에 다시 누적된다.

아이셀로 2회까지 누적할 수 있으니까, 이것으로 현재 8260의 피해를 누적할 수 있다.

“께에엑! 다리가 얼었다! 쿤쿤!”

얼어붙은 적들을 지팡이로 차례대로 깨부수다가, 적이 대량으로 넘어오는 지점을 향해 아이셀에 누적된 8260의 피해를 그대로 방출한다.

파아아아아앙-!!!

뭐야 이 파괴력……?! 순간, 아이셀로부터 전방 180도 범위의 반원 형태로 얼음 충격파가 그대로 뻗어 나가며 적들을 얼림과 동시에 산산조각낸다. 그 피해가 어찌나 강력한지 적의 우올로까지 여파가 미쳤다.

쌓인 피해의 양만큼 정말 엄청난 힘이구나……. 나도……. 이제 마법을 쓸 수 있다니! 감동이다.

물론 순수 내 기술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아이즈가 나를 따라다니는 이상 내 기술이나 마찬가지지 뭐…….

그러나 곧 아이즈가 내 몸에서 빠져나오더니 기진맥진한 얼굴로 얼음 가루를 뿌려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아이…….”

아……. 마력이 떨어진 모양이다. 확실히 아이즈의 정보를 살펴보면 1200이 넘는 마력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다.

특이하게 내 마력을 쓰는 것이 아닌 아이즈의 마력을 쓰는 것이다 보니 아이즈의 마력이 바닥나면 더 이상 쓸 수 없는 모양이다.

어느덧 넘어오던 적들은 대부분 처리했고 죽지 않은 적들은 무기를 땅에 떨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다. 더는 싸울 의지가 없는 적들까지 잡아서 처리할 필요는 없겠지.

*

“형님! 저놈 베리어 엄청 단단한가 본데요! 흠집도 안 나요!”

남은 건 킹킹하나 뿐인데, 헬리쉬 300을 7방을 넘게 때려 박았음에도 베리어에 흠이 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킹킹! 죽일 것이다. 킹킹!”

말로는 자꾸 저래도 아까부터 거리를 벌리지도 좁히지도 않고 있다. 우올로 3척이 박살 나자 내심 무서웠던 모양이다. 킹킹의 사거리는 그리 긴 편이 아니라, 우리 쪽도 추가적인 피해가 없긴 하지만……. 왜 저렇게 시간을 끄는 거야? 도망가려고 해도 자꾸 따라오고…….

그때였다.

쿠우웅-!

-‘우올로가 111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갑자기 엄청난 피해가 들어오면서 선체가 회전할 듯 뒤집히기 시작한다.

“꺄아아악!”

다들 과격하게 흔들리는 선체 안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뭐야……?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5척의 우올로가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혀… 형님…….”

“얘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야……?”

분명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5척의 우올로. 분위기로 보아 킹킹의 함대인 게 확실했다.

망했다. 우올로의 내구도는 거의 바닥이고 몇 번의 포격을 받으면 이제 부서져서 운행도 못 할 판이다.

“우리의 가보를 돌려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킹킹.”

헬파이어 구슬이라면 이미 써버렸는데 무슨 수로 돌려 달라는 거야……? 나는 우올로에 달린 마법 확성기를 든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저기, 킹킹. 네가 달라는 가보. 그거……. 혹시 돈으로 대신할 순 없을까……?

녀석은 상인이다. 그렇다면 협상을 해야 해. 소모품이니까 경매장이나 어디든 살 수 있지 않을까……? 가격이 비싸다고는 했지만, 설마 내 5억으로 못 사겠어?

“8000억 정도면 비슷한 값어치라고 생각한다. 킹킹.”

“8000억……?”

8000만 원 아니고……? 우리가 서리한 몇 개 얻으려고 8000억짜리를 썼다고? 차라리 그냥 죽이겠다고 해라. 그게 속 편하겠다. 상인이라는 녀석이 남 등쳐먹을 계산법만 알고 있으니 이거 원…….

“비르미스의 망치의 가치라면 그 정도가 적당하다. 킹킹.”

응……? 비르미스 망치?

“저기, 비르미스의 망치가 뭐야?”

“우리의 가보다. 킹킹.”

“그걸 왜 여기서 찾아?”

“너희가 훔쳤다. 킹킹!

뜬금없이 비르미스의 망치라니……. 헬파이어 구슬을 말하는 건 줄 알았는데, 전혀 딴소릴 하고 있잖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그런 거 안 훔쳤어!”

“그러냐? 킹킹? 몰랐다. 킹킹.”

……? ‘몰랐다’로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만 너는 내 가족을 죽였다. 킹킹! 복수한다. 킹킹!”

“아니?! 야! 뭔 소리 하는 거야! 그건 네가 먼저 공격했으니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선으로부터 포탄이 날아든다. 하아……. 미친 고블린 한 마리 때문에 내 여인들 다 죽게 생겼네……. 내 여자들 혹여 잘못되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모가지를 따주마. 킹킹아.

그때, 우리 함선 주위로 원통형의 베리어가 생겨나더니 킹킹 함대의 포탄을 전부 무력화시켰다.

퍼엉-! 펑! 펑! 갑자기 나타난 의문에 베리어에 막혀 사라지는 포탄을 보며, 우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다들 이게 무슨 기적인가 싶은 얼굴이다.

부아앙-! 한쪽에서 우렁찬 우올로 기적소리가 울리더니 우리 함선의 최소 3배 정도 큰, 대형 우올로가 나타나서 킹킹의 함대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웬 놈이냐? 킹킹!”

부후우-! 엄청난 포격으로 인해 킹킹의 함대는 삽시간에 터져 나간다. 빈틈없이 내려치는 포화 속에서도 킹킹의 우올로 만큼은 끄떡없이 버티고 있었다.

대체 베리어가 어느 정도로 단단하길래…….

“이……! 킹킹! 반드시 복수하겠다. 킹킹!”

결국 킹킹은 끝없이 이어지는 포화에 백기를 들고 후퇴를 시작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일단 살았다…….”

“다행입니다. 형님.

“다들 잘 싸워줬어. 고생 많았어.”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죽음의 그림자가 턱 끝까지 들이닥쳤다가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비르미스의 망치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니까……. 그런 걸 언제 훔쳤다고. 드웍프, 너 혹시 뭐 아는 거 있냐?”

“그럴 리가요 형님…….”

얘가 왜 시선을 피하지……? 비르미스의 망치랬지……?

“너, 저번에 아이즈 던전에서 무슨 망치 들고 있지 않았어?”

“그랬죠. 근데, 그건 비르미스의 망치가 아닌데요?”

“그럼 뭔데?”

“빛을 잃은 비르미스의 망치요.”

아 나 이런……. 범인이 너였냐?!

“너랑 같이 다니다간 내 명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은데 내가 널 어쩌면 좋냐……?

“전 제대로 된 무기가 없잖아요. 그때 물건 많이 샀으니까 서비스로 무기 하나 받은 거죠. 누가 이런 볼품없는 망치가 가보일 줄 알았습니까?”

“하여간, 말이라도 못하면……. 아무튼, 간수 잘하고 있다가, 혹시라도 킹킹오면 돌려줘라. 아무것도 못 하고 죽긴 싫으니까.”

*

나는 포탄으로 반쯤 부서져 내린 갑판으로 나왔다. 우리를 구해준 거대 함선이 궁금해서였다. 그냥 지나가다가 불쌍해 보여서 구해준 건지, 강탈하려고 구해준 건지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크긴 엄청 크네…….”

크기로 봤을 때 우리 우올로보다 2등급 정도 높은 우올로로 보였다. 가격으로 따지면 몇백억 정도 하지 않을까 싶다. 저 정도 우올로라면 가지고 있어도 유지비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울 테지…….

곧 그들의 큰 함선에서 비트급 우올로를 타고 한 명의 사내가 내려온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이 뭘 이군요.”

그는 나를 단번에 알아본다. 어디에 내 신상정보라도 팔린 건가? 어떻게 다들 한 번에 내 아이디를 아는 거야?

“예. 제가 뭘은 맞는데, 그쪽은 누구죠?”

“제가 누군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이 앞으로 잡게 될 기회가 무엇인지 그게 가장 중요하죠.”

그는 품속에서 검은 편지봉투를 꺼내서 나에게 건넨다. 꺼내서 펼쳐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다.

-‘당신은 밑바닥을 지배하는 자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플로어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플로어?”

“플로어에 진입하게 되면,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손에 넣을 기회를 얻게 됩니다. 돈, 명예, 여자. 무엇이든 당신이 원하는 것이 현실이 될 겁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매뉴얼을 찾아봤지만 당연히도 나오지 않는다. 히든 퀘스트 같은 건가?

“초대장에는 아직 당신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 초대장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편지 뒤편에 새겨진 장소로 오시면 그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알게 될 겁니다. 그럼…….”

그가 자기 할 말을 마친 뒤 떠난다. 플로어라……. 궁금해서 흥미가 돌긴 하는데…….

초대장에 적힌 위치를 확인하고 있을 때, 드웍프가 옆으로 다가온다.

“형님……. 그거 안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

“그냥… 뭔가 조금 수상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나타나서는 검은 초대장이라니……. 척 봐도 이상한 것투성이라고요.”

확실히 그건 드웍프 말대로 그렇다. 때마침 나타나 날 구해준 것도 그렇고, 플로어 어쩌고 하면서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 않는 것도 너무나 수상하다 그렇지만…….

“뭔가 궁금하지 않아?”

“제 생각에는……. 아, 음……. 아닙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숨긴다. 평소 같지 않은 드웍프의 모습이 어쩐지 조금 마음에 걸리네.

뭐가 됐든. 플로어인지 뭔지 초대장에 적힌 장소에 가보면 뭐라도 알 수 있겠지…….

*

우올로 항구가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 지 3일. 우올로 수리하는데 7일. 총 열흘의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초대장에 적힌 장소로 출항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에드 하이리스로 가면 금방이었지만, 일레이나에게 노예 중개인들이 쫓고 있다는 핑계를 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