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56화 (56/196)

능력을 사용하자 신지수의 버프나 첸의 버프와 비슷한 느낌이 온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56회

파초선

뭐라고 해야 할까.

신지수의 ‘사랑의 불주사’.

첸의 ‘모순의 축복’.

이 두 버프를 받았을 때는, 사이즈는 맞지만 내게 어울리지 않는 명품 옷을 입는 느낌이었다면, ‘달의 축복’은 딱 내게 어울리는 옷이었다.

그리고 디버프도 없고.

무리하게 계속 축복 상태를 유지하면 디버프성의 사달이 나긴 하겠지만.

온 몸에 마나가 기분 좋게 흘러가는 느낌이 느껴졌다.

달의 축복은 기본적인 스텟을 상승 시켜주는 효과도 있었지만,

기본적인 방어력과 공격력도 함께 올라갔다.

또한 달빛 초식을 사용하면 데미지가 올라갔다.

아직 1단계 축복이라 상승 곡선이 크진 않았지만 신지수의 버프 정도 효과는 있었다.

지속 시간은 내가 가진 마나에 비례했다.

그래서 현재 상태로는 달빛 축복을 유지한 채로 다른 달빛 초식은 사용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충분히 박대식에게 비벼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대식이 양 팔을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박대식은 레슬링 능력자였다.

거리만 주지 않으면 쉽게 상대할 수 있었지만 내게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는 관계로 사실상 거리를 좁힐 수밖에 없었다.

박대식이 우악스럽게 나를 잡으려고 했다.

나는 가볍게 상체를 움직여 박대식의 얼굴을 주먹으로 한 대 때렸다.

이전과는 다르게 박대식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돌아갔다.

달의 축복 영향이었다.

내 공격력이 올라간 걸 박대식도 깨달았는지,

곧장 내 옷이나 몸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금석의 ‘야수의 본능’ 능력 덕분에 나보다 많이 빠른 상대가 아니라면 쉽게 공격을 회피할 수가 있었다.

나는 뒤로 한 발 빼는 척하며, 하이킥을 차 올렸다.

‘이크.’

내 수를 읽었는지 자신의 얼굴을 내주며 내 발을 잡으려고 했다.

다리에 체중을 순간적으로 빼며 고점을 찍자마자 다리를 회수했다.

“스피어.”

아웃 파이터처럼 거리를 두고 박대식을 공략하고 있을 때, 녀석이 열 받았는지 낮게 능력을 읊조렸다.

성난 황소가 아닌 폭주기관차처럼 상체를 숙이며 내게 돌진하는 박대식.

돌진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박혔다가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게 아니라 산산조각 나겠는데?’

나는 제 자리에서 점프를 했다.

그러자 유도탄처럼 따라오는 박대식.

체공시간이 길었다.

그만큼 우리는 경기장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플라이 능력을 사용해서 계속 하늘에 머무를 수 있었지만,

박대식은 아니었다.

낙하하기 시작하는 박대식.

그를 따라 경기장으로 내려갔다.

“미꾸라지가 아니라 모기였군.”

옥타곤에 착지를 한 박대식이 말했다.

“칭찬으로 듣죠.”

“크크.”

박대식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옥타곤의 뚜껑이 닫히기 시작했다.

“....”

“너 같은 놈들 때문에 마련한 장치지.”

옥타곤의 뚜껑이 완전히 닫혔다.

이제 위로는 점프 말고는 피할 수가 없게 됐다.

“남자라면 자고로 정면에서 치고 박아야 하지 않겠나? 크흐흐.”

표정이 꼭 나를 독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피도 근육으로 똘똘 뭉쳐 있나 보자고.’

나는 손톱을 세우며 박대식에게 달려들었다.

+ + +

확실히 달빛 축복과 ‘야수의 본능’.

그리고 정시아의 ‘뱀의 움직임’으로 인해 박대식 보다 민첩성에서는 우위에 서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마나가 고갈됨에 따라 움직임이 서서히 박대식에게 따라잡히기 시작했다.

마치 목숨이 하나 밖에 없는 게임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슬슬 쓰러질 때도 됐는데.’

나는 타격이 아닌 정시아의 능력 ‘맹독’을 묻히는데 주력을 했다.

그래서 꽤 많은 부위에 맹독을 묻히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괴물 같은 놈이 멀쩡하게 계속해서 내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복제가 아닌 모방한 능력이라고는 해도.

‘정시아의 독은 상급 독 수준인데.’

“잡았구나!! 크하하!!”

결국 잡히고야 말았다.

나는 박대식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공중에 떠 있었다.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초크 슬램!!”

박대식이 내 목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쿠웅!!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육중한 소리.

‘아이고 머리야.’

머리가 울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충격은 크지 않았다.

아직 달의 축복 효과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풍전등화였다.

금방이라도 축복 효과가 꺼질 것처럼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왼 손을 내 목 부근을 잡고 오른 손을 내 가랑이에 집어넣고 들어 올리는 박대식.

“바디 슬램!!”

바닥에 내리 꽂았다.

“크윽..”

연이은 공격에 저절로 입에서 고통에 찬 소리가 흘러 나왔다.

내가 고통스러워하자 박대식의 얼굴이 희열에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내 머리카락을 잡고 일으키는 박대식.

“많이 놀았나?”

“....”

내 머리를 돌려 박아름을 쳐다보게 만드는 박대식.

박아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 내가 죽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됐군. 학교 가서 친구라는 것들 만들까봐 불안했었는데. 이 자리에서 본보기로 너를 죽이면 아예 그런 생각을 못하겠지. 크흐..크하하하!!”

“쿨럭..그러면 학교를 왜 보낸 겁니까?”

“영도에는 딸내미 말고는 치유 능력자가 없거든. 그래서 저 년을 키워야 하는데 말이야. 학교 말고는 마땅히 키울 곳이 없더라고. 크크.”

나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는 박대식.

“딸내미!! 잘 봐둬라!! 네 친구가 어떻게 되는지!! 크하하하!!”

어떻게 되기는.

“고통의 희열.”

여기서 살아나가서 이 세상을 구하고 지옥을 안가겠지.

머리를 잡고 있는 손을 쳐내고 박대식의 목에 훅을 날렸다.

“컥..”

순간 호흡 곤란이 온 박대식.

나는 멈추지 않고 박대식의 목과 얼굴 부위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받은 데미지가 제법 있어서 그런지 전환 된 에너지가 제법 상당했다.

달의 축복과 고통의 희열로 중첩 된 버프를 순식간에 박대식에게 쏟아 부었다.

가드를 올리려고 치면 복부와 다리를 공략했고,

가드를 내리면 다시 얼굴을 공략했다.

서서히 박대식의 중심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몸빵이 좋다고는 해도 무적은 아니었다.

누적된 데미지.

그리고 정시아의 ‘맹독’까지.

나는 마지막으로 박대식의 턱에 정확하게 주먹을 꽂았다.

“후.”

짧은 숨을 내 뱉었다.

드디어 박대식이 바닥에 쓰러졌다.

마지막 불꽃을 전부 태웠다.

사용한 버프도 딱 끝났다.

주먹이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때렸다.

나는 박대식을 쳐다봤다.

바닥에 쓰러져서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전신을 골고루 때린 탓에 정시아의 맹독이 빠른 속도로 퍼졌을 터.

박대식은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초인적인 힘으로 일어난다고는 해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게 분명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막이 내린 여운 때문인지 관객들이 조용했다.

시선을 들어 2층에 있는 박아름을 쳐다봤다.

아버지가 바닥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여전히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웃는 모습 한 번 보고 싶긴 하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대머리 신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이 경악에 물들어 입을 쩍하니 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자..잡아. 저 자식을 잡아라!!”

그의 말에 술렁술렁하는 관객석.

한 두 명이 움찔움찔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우르르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시선은 내게 꽂혀 있었다.

내가 있는 옥타곤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하는 그들.

‘음..’

승부가 결정 나면 이런 전개가 될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좀비 떼처럼 어슬렁어슬렁 옥타곤을 향해 걸어오는 관객들을 보다가, 입구 쪽을 쳐다봤다.

“올 때가 됐는데 말이지.”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하려고 할 때 기다리던 사람이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뭐..뭐야?! 야!! 너 거기서 뭐해!!”

정시아가 입구에서 소리쳤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엥?’

정시아의 뒤로 보이는 두 사람.

“걔네는 왜 데리고 왔어?”

정시아와 마찬가지로 소리를 질렀다.

“몰라!! 너한테 간다니까 따라 왔어!!”

한설휘와 금석이 정시아의 옆에 나란히 섰다.

‘잘 됐네.’

정시아 혼자 왔으면 수적 열세로 버거울 뻔 했는데.

“일단 나 좀 여기서 꺼내줘!! 이 사람들 다 적이니까 조심하고!!”

“진짜 너는 대단하다, 대단해!!”

정시아가 고개를 저으며 옥타곤을 향해 걸어왔다.

“너 괜찮아?”

한설휘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

나 역시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상처 난 곳은 이미 금석의 ‘자기 치유’ 능력 때문에 말끔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자기 치유’는 고갈 된 마나를 채워주진 못했다.

마나가 고갈 돼서 그런지 몸이 축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대화로 입구에서 걸어오는 이들이 나와 한 편인 걸 알아차린 관객들이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먼저 방아쇠를 당긴 건 관객들이었다.

정시아와 애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드는 관객들.

그 때 육중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멈춰라!!”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다 죽어가던 박대식이 상체를 옥타곤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이야. 진짜 몸빵 하나는 대단하네.’

아니다.

이 정도 되면 정신력이 대단했다.

박대식의 한 마디에 시간을 정지한 것처럼 관객들이 자세를 굳히며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나를 쳐다보는 박대식.

표정이 상당히 오묘했다.

열이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이 자리에 어떻게 왔다고 생각 하나?”

“....”

나야 모르지.

나는 박대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 번 뱉은 말은 지킨다.”

자신만의 신념.

뭐 그런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초선을 들고 내 눈앞에서 꺼져라.”

다 죽어가면서 멋있는 척을 하려고 하네, 이 양반이.

“박쥐!!”

“네..넵!!”

언제 바보 3인방 옆에 합류 했는지 저자세로 이 사태를 관망하던 박쥐가 나를 쳐다봤다.

“파초선 챙겨서 영도 밖으로 나가 있어! 애들이랑 같이!”

“서진님은요?!”

이제 와서 내 걱정하는 척 하네.

걱정해주는 거에 감지덕지라고 생각을 해야 하나.

“나는 할 일이 남았어!”

“알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보 3인방을 데리고 파초선이 전시 돼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박쥐.

행동이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정시아!!”

“응?”

“여기 안으로 들어와!”

내 말에 정시아가 관객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옥타곤 안으로 들어왔다.

박대식의 말은 절대적이라 그런지 아무도 정시아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늘 이후로도 절대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 ‘맹독’ 해독약 가지고 있지?”

“응. 항상 챙겨 다니지. 왜?”

“내가 이 아저씨한테 니 능력 좀 썼거든.”

정시아가 박대식을 쳐다봤다.

독이 완전히 박대식의 몸 전신에 퍼져 있었다.

몸의 색이 상당히 파랗게 바래 있었다.

나는 정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에 작은 유리병을 건네는 정시아.

“너 나 안 왔으면 사람 하나 잡을 뻔 했어. 알아? 나도 잘 안 쓰는 능력을 네가..”

“알았어, 알았어. 잔소리는 나중에.”

나는 정시아의 말을 끊으며 박대식에게 해독약을 던졌다.

해독약을 받아드는 박대식.

그가 방심하지 않았으면 결과를 알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내가 박대식에 대한 정보를 일방적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결정적으로.

박대식은 궁극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분명히 사용할 타이밍이 나왔는데도.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박대식은 날 진짜로 죽일 생각이 없었다.’

이건 확실했다.

박대식은 오늘 나라는 새파란 애송이에게 깨졌다.

약육강식인 영도라는 세계에서 박대식의 입지는 크게 흔들릴 게 분명했다.

‘호랑이의 이빨을 뽑은 건 조금 미안하긴 한데.‘

안 뽑았으면 내가 도리어 물릴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빨리 꺼져라. 마음 바뀌기 전에.”

“....”

정시아가 내 귀에 속삭였다.

“싸가지 존나 없는데 해독약 도로 뺏을까?”

나는 고개를 흔들며 옥타곤 입구로 걸어갔다.

“아.”

고개를 돌려 박대식을 쳐다봤다.

“아저씨, 딸. 잠시 빌려갑니다?”

옥타곤을 나와 곧장 박아름이 있는 2층으로 걸어갔다.

[작품후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