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점..............57회
하루의 여유
“와~ 우리 주말에 이렇게 밖에서 다 같이 있는 건 처음 아니야?”
정시아가 케이크를 한 입 떠먹으며 말했다.
우리는 현재 영도에서 뷰가 좋은 카페에 와 있었다.
나는 아이스티를 마시며 바닷가 전경을 보며 아이들이 떠드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네.”
초코라떼를 한 입 마시는 한설휘.
“얼마나 좋아!! 내가 진즉에 밖에서 놀자고 그랬잖아!”
정시아의 목소리가 상당히 들 떠 보였다.
“근데 황금돌대가리. 너 괜찮겠어?”
정시아의 말에 고개를 박고 케익을 먹고 있던 금석이 고개를 들었다.
“우걱우걱. 뭐강? 우걱.”
“박태산 교관님이랑 훈련 중에 도망쳐 나왔잖아.”
“....”
금석의 입 근육이 활동을 멈췄다.
얘기를 들어보니 금석은 박태산과 주말 훈련을 하던 도중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정시아를 따라 왔다고 했다.
“네가 따라 온 거야. 난 분명히 꺼지라고 했다.”
“우걱..우걱..”
금석의 눈이 아래로 축 처졌다.
‘근데 케익 먹는 건 안 멈추네.’
“근데 서진아. 우리 이러고 있어도 돼? 영도에서?”
한설휘가 걱정스레 물었다.
“맞아. 나도 즐겁긴 한데 뭔가 뒤가 찜찜하다고나 할까? 채린 언니가 영도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거든.”
정시아가 걱정을 한 스푼 보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쳐다보며 괜찮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아름이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내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내 옆에 앉아 있는 박아름을 향했다.
박아름은 조용히 앉아서 커피 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온 이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원래 말 수가 없는 캐릭터긴 했지만.
“아름아. 커피가 입에 안 맞아? 다른 거 시켜줄까?”
한설휘가 상냥하게 물었다.
고개를 젓는 박아름.
박아름은 커피를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있었다.
“아름아. 마셔도 돼.”
내 말에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박아름.
다 식어버린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뭐야?”
한설휘와 정시아가 얼굴에 의문부호를 띄운 채 나를 쳐다봤다.
박아름은 수동적이다 못해, 혼자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지가 있으면 멍 때렸다.
누군가가 선택지의 답을 말해주기 전까지.
그게 박대식에 국한 된 건 줄 알았는데, 잠깐 겪어보니 아닌 것 같았다.
“아름아. 내 이름 알아? 우리 간호실에서 자주 봤잖아.”
커피를 홀짝이다가 정시아의 얼굴을 쳐다보는 박아름.
눈을 한동안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정..시아?”
“오오!!”
“아름아 아름아. 나는? 내 이름도 알아?”
“한설휘.”
“감동..”
정시아가 금석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박아름을 쳐다보는 금석.
금석을 쳐다보는 박아름.
두 사람은 한동안 눈을 맞춘 채 가만히 있었다.
먼저 시선을 피한 건 금석이었다.
“큼..크흠..”
“뭐야? 너 얼굴 왜 빨개져?”
“아..아니다!!”
“어래? 너 설마 아름이한테 반한 거야?”
“아..아니라고!!”
“어라라? 말을 계속 더듬는 게 수상한데?”
“케익 사러 갔다 오게 돈이나 내놔라. 마귀.”
“마귀는 마음씨가 고약해서 돈이 없네요~ 그리고 너 혼자서 케익 다 쳐 먹어놓고 또 먹겠다고?”
금석의 시선이 한설휘를 향했다.
“할멈.”
“할멈은 늙어서 돈이 없다네~”
금석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수중에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다.
나는 웃으면서 금석의 시선을 외면했다.
금석의 시선이 붕 떴을 때, 박아름이 입을 열었다.
“내 이름 대면 케익 먹을 수 있어.”
“....”
그녀의 말에 금석의 얼굴이 화악하고 달아올랐다.
박아름은 본인의 일에 대한 결정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 비하면 턱 없이 작지만 말은 하는 편이었다.
‘왜 저래?’
나는 금석의 얼굴을 쳐다봤다.
‘진짜 박아름한테 호감이라도 있는 건가?’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
금석이 자리에서 쭈뼛거리며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폼이 꼭 목각인형처럼 뻣뻣해 보였다.
박아름은 한설휘나 정시아처럼 발육이 빠른 케이스가 아니었다.
그리고 한설휘나 정시아처럼 대놓고 예쁜 스타일이 아니었다.
볼수록 매력 있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살짝 옆으로 째진 눈이 여우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오똑한 코와 작은 입이 눈과 어우러져 보면 볼수록 예뻐 보였다.
무심하게 예쁜 타입이라고는 할까.
금석이 이런 타입일 줄이야.
“우리 그러지 말고 놀이동산 갈래? 이번에 해운대에 새로 하나 생겼다던데.”
“놀이동산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아?”
한설휘의 말에 시간을 확인하는 정시아.
“9시밖에 안됐네!! 지금 가면 몇 개는 탈 수 있겠다. 가자. 가자. 응? 설휘야 서진아. 아름이도 같이. 가자아아.”
오랜만의 여유였고,
조금 더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
우리는 금석이 가져 온 케익을 후다닥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놀이공원에 와서 제일 신난 건 여자 애들이었다.
“다음에 저거 타자!!”
“좋아 좋아!!”
날이 갈수록 정시아와 한설휘의 죽이 잘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박아름의 손을 잡고 부지런히 놀이기구를 타러 다녔다.
반면 나와 금석은 뒤에서 그녀들의 짐을 들어주고 있었다.
“난 피곤해서 별로.”
“놀이기구 보다 먹는 게 더 좋다.”
라는 이유로 우리는 여자들의 짐꾼이 됐다.
“우리 여기 앉아 있는다!!”
멀어져 가는 여자 애들에게 소리쳤다.
뒤를 한 번 쳐다 본 여자 애들이 손을 흔들면서 멀어졌다.
“진짜 17살이 된 것만 같네.”
벤치에 앉으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케익을 그렇게 먹고도 또 넘어 가냐?”
내 말에 금석이 손에 들고 있는 츄러스를 내밀었다.
“드실?”
“괜찮아.”
나는 벤치에 몸을 기대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20년 후에 이 세상은 멸망한다.
하지만 나는 5년 안에 이 세상을 구할 생각이었다.
굳이 레볼루션이 최대치까지 성장 할 시간을 줄 필요가 없었다.
그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칠 생각이었다.
현재 내 성장 기대치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달빛력’이라는 뜻하지 않은 요소가 만족에 한 몫 거들었다.
‘지금은 다시 0 포인트가 되긴 했지만.’
다시 올리면 그만이었다.
“달이 참 환하네.”
하현달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달빛 능력자라 그런지 달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잔잔하게..
“켁..켁..”
는 아니고 그래도 나름 일정한 템포로..
“서진. 좆 됐다.”
이런 낭만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놈.
나는 금석을 쳐다봤다.
“..너 거기서 뭐하냐?”
벤치 밑에 들어가서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쉿!!”
금석이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갑자기 왜 그러..”
말을 하다가 벤치 옆을 지나가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태산아. 너 오늘 금석이랑 훈련한다고 하지 않았어?”
“도망갔다.”
“아하핳!! 얼마나 네가 못살게 굴면 도망을 가냐! 아하하!! 겁나 웃기네.”
“..잡히면 두 배로 훈련시킬 생각이다.”
“너 그러다 애 잡아, 임마.”
채린. 신지수. 박태산.
세 사람이 머리에 고양이 머리띠를 하고 대화를 주고받고 하고 있었다.
‘박태산이 고양이 머리띠라니.’
그들은 우리를 발견 못했는지 그대로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라면 내일 신지수와 채린을 불러서 다음 주에 있을 일에 대해 말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왕 만난 김에 지금 말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저 교관..”
금석이 벤치 밑에서 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절박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나는 도로 벤치에 앉았다.
당장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이왕 여유를 즐기기로 한 거 금석과 교관들의 여유를 지켜주기로 했다.
교관들도 저번 주까지 중간고사 준비하랴,
다음 주는 최강자 선발전 준비하랴 여유가 많이 없었을 텐데.
금석이 내팽개친 츄러스를 집어, 한 입 먹으려고 할 때 놀이기구를 타러 갔던 여자들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야!! 서진아!! 황금돌대가리!! 바이킹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른 거 타러 갈 거야!!”
정시아가 워낙 목청껏 말해서 그런지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그래서 혹시나 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려 교관들이 가던 방향을 쳐다봤다.
교관 세 사람이 같은 자세. 같은 표정으로 나와 금석이 있는 벤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석아. 이제 올라와도 될 것 같아.”
“....”
내 말에 금석이 벤치에 앉으면서 내 손에서 츄러스를 가져갔다.
“마지막 만찬인 것 같군. 후후.”
“내 생각도 그래. 이럴 줄 알았으면 네가 먹고 싶다던 햄버거도 사올 걸 그랬다. 그치?”
“후후..후후후....”
교관들과 여자 애들 사이에 우리는 삼각형의 꼭짓점 위치에 있었다.
삼각형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 + +
놀이공원 한 편에 위치한 카페.
교관 세 명과 학생 다섯 명이 3:5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마치 미팅이라도 나온 것처럼 교관들의 시선은 각각 한 명의 학생들에게 시선이 고정 돼 있었다.
“급한 일 있다고 훈련 하다가 나가더니. 놀이기구 타는 게 급한 일이야?”
“진짜로 급한 일이었어. 서진아, 네가 채린 언니한테 말 좀 해줘 봐.”
채린과 정시아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화장실 간다더니. 멀리도 왔군. 금.석.”
“그게..”
금석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박태산이 시선이 내 쪽으로 돌아갔다.
“우리 아름이 다 컸네 다 컸어. 언제 친구들을 이렇게 사겼어?”
박아름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자연스레 신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짝이 없던 나와 한설휘.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리자 한설휘의 시선도 군중심리인지 내 쪽을 향했다.
“..그게 말이죠.”
내가 대변인도 아니고.
“일단 먼저 말씀 드려야 할 게 있습니다.”
대변인에 앞서 웅변을 먼저 하기로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 자리에 있는 인물들을 차례차례 쳐다봤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다 제각각이었다.
몇 사람은 내가 카피 능력만 있는 줄 알고 있었고,
몇 사람은 내가 카피 능력과 더불어 예언 능력이 있는 줄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은 앞 선 능력과 더불어 내가 달빛 능력이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나에 대한 정보 중 ‘예언 능력’이 있다는 걸 모두에게 오픈하기로 했다.
그래봤자 모르고 있는 건 박태산.
그리고 박아름 정도였다.
두 사람에게 추가로 오픈을 해 봤자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닐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테지만, 저는 예언 능력이 있습니다.”
박태산만이 유일하게 흥미로운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다음주. 학교 최강자 선발전이 치러 질 때 빌런들의 습격이 있을 예정입니다.”
“....”
“....”
사람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정확하게는 5일 째 되는 날. 2학년 4강전이 치러질 때로 예상이 됩니다. 빌런의 숫자는 총 세 명으로 모두 A급 빌런들입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은..”
나는 한동안 예언으로 본 것 마냥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풀었다.
“그래서 영도에 파초선을 구하러 갔던 겁니다.”
정시아가 손을 들었다.
“걔네들이 치기 전에 학교 경비를 강화하면 되잖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빌런들이 노리는 건 서시우였다.
그런데 학교 경비를 강화해서 내가 모르는 때에 서시우를 노리게 된다면 서시우를 지킬 수가 없었다.
이번 빌런의 습격으로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서시우는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심대한 타격을 입고 꽤 오랜 시간 활동 불가능하게 된다.
내 미래 계획에서 서시우라는 인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녀석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나에게는 이득이었다.
그래서 녀석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박태산이 말했다.
“동감.”
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정보가 있겠다. 그냥 잡으면 되는 거잖아. 굳이 경비를 강화해서 놓치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어떻게 알아? 그 때는 서진이 지금처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안 그래, 서진아?”
“예.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저희만 알고 있었으면 하는데.”
빌런이 나타나 습격하는 것까지.
모든 상황은 내가 알고 있는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야했다.
‘아무런 변수 없이.’
그래야지 완벽하게 대처를 할 수가 있었다.
“정아영 교관님에게는 말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를 변수까지 대비 할 생각이었다.
빌런 습격까지 남은 시간은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