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64화 (165/356)

< 낭만필드 - 264 >

“이번 시즌의 레알은 우리가 아는 레알과는 완전 다른 팀이야. 원래 레알은 무조건 공격하는 팀이었지만, 무리뉴가 그럴 리 없지.”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

레알 마드리드는 꿈의 클럽이라 불리는, 세계 축구계에서 큰 의미와 위상을 가진 클럽이었다.

그런 레알 마드리드와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만났으니 만치니 감독과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도 최선을 다해 경기를 준비했다.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는 먼저 짜임새 있고 단단한 수비를 우선시하는데, 확실히 수비진을 짜는 능력은 대단하더라고.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는 좀 아쉬웠는데, 이번 시즌에 보니까 굉장히 단단해졌어.”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레알의 강력한 공격 위주 전술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무리뉴의 전술은 그렇지 않았다.

무리뉴는 포르투 시절부터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역습 위주의 전술을 선호했고, 레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팬들은 싫어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죠. 차라리 공격적으로 나와주는 게 편한데.”

성배도 겪어본 일이었다.

공격적인 전통에 자부심을 가진 팬들과 역습 위주의 축구로 승리를 노리려는 감독의 갈등.

아약스 시절 성배도 겪어보았던 일이었다.

그걸 감안하면 아마 선수들도 불만이 있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티 날 정도로 불화가 있진 않겠지.’

아약스 시절에도 그런 감독과 선수단의 불화가 있었다.

하지만 이름을 언급하기도 꺼려지는 그때의 그 감독과 최고의 감독인 무리뉴를 똑같이 비교할 순 없었다.

‘1, 2년 정도는 더 걸리겠지.’

불화가 없진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

사실 전생에 워낙 유명했던 사건이라 이미 알고 있기도 했고.

“그렇지. 공격적으로 나와주는 게 우린 편하지. 우리도 기본적인 컨셉은 선수비니까.”

만치니 감독과 무리뉴 감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격보다는 수비를 우선시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만치니의 맨시티도 프리미어리그 최소 실점에 득점은 4, 5위 수준으로, 수비에 더 우선하는 수비 위주의 팀이었다.

지난 시즌까지의 레알이 훨씬 더 편한 상대였다.

“일단 알론소를 지우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우리 미드필드진이라면 충분히 지워낼 수 있을 텐데요.”

똑같이 수비가 강한 상황에서 공격진은 레알 마드리드가 더 강했다.

그리고 경험의 질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로 예상은 기울어져 있었지만, 맨체스터 시티가 유리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레알 마드리드 역습 전술의 핵심이 사비 알론소인데, 알론소는 강하게 압박해주면 무력화시킬 수 있어. 우리의 장점인 중원장악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알론소도 무력화시킬 수 있고, 그러면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을 막을 수 있어.”

맨체스터 시티가 레알 마드리드를 확실히 앞선다고 할 수 있는 포지션은 딱 한 곳.

바로 중원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미드필드도 케디라와 알론소의 포백 보호 능력과 외질의 공격력 등 단점이 없었지만, 딱 하나의 단점이 있었다.

“외질이랑 알론소,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 컨트롤 타워 두 명이 모두 압박에 약하지 않습니까? 이 두 명만 잘 건드려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알론소와 외질의 탈압박 능력이 아쉽다는 것이었다.

팀의 롱패스와 킬패스, 공격적인 패스를 담당하는 두 명의 패서가 탈압박 능력이 부족했다.

알론소도, 외질도 한 수 아래의 클럽을 상대할 때는 괜찮았지만, 비슷한 수준의 팀과 만나면 압박에 고전하며 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 우리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게 바로 그거야. 야야! 알론소는 너한테 맡긴다. 알론소가 볼을 잡으면 쉽게 앞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압박해줘.”

“그러죠. 지난번에 보여주신 비디오를 보니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던데.”

야야 투레의 피지컬이면 알론소를 완전히 침묵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투레가 활동량이 많은 편은 아니라지만, 알론소도 활동폭이 넓은 선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외질은... 니헬. 너한테 맡길게. 완전히 발라버려.”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는 아무래도 맨시티가 약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수비적인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즉, 라키티치보다는 데 용이 필요한 경기였다.

데 용의 수비력이면 충분히 외질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이었다.

“진짜 발라버려도 됩니까? 하하.”

“니헬. 적당히 해. 산티아고에서 괜히 진짜로 붙었다가 퇴장당할 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린치당할 수도 있고.”

“당연하지. 나도 많이 힘들었다고.”

거친 플레이 때문에 몇 번 홍역을 앓았던 데 용은 그 뒤부터는 그나마 좀 줄인 상황이었다.

물론, 아예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덮어놓고 태클부터 들어가는 습관은 어느 정도 고친 것 같아 보였다.

“알론소랑 외질만 묶으면 레알의 공격은 호날두와 디 마리에에게 집중될 텐데... 이건 뭐 어쩔 수 없어. 디 마리아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호날두는 정말 수비수들이 잘 막아주는 방법밖에는.”

호날두와 디 마리아로 가면 방법이 없었다.

그냥 두 선수와 상대할 리차즈와 성배의 수비에 모든 게 달려 있었다.

데 용은 외질을 마크해야 하고, 배리가 도와주긴 하겠지만, 평소 수준일 것이었다.

“마이카. 자신 있어? 호날두랑 만나는 건 거의 처음 아닌가?”

맨유 시절의 호날두는 오른쪽 윙어였기 때문에 리차즈는 호날두와 상대해본 경험이 없었다.

“처음이긴 한데, 방법도 따로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냥 붙어보면 어떻게 되겠죠.”

호날두를 막을 방법이라는 게 있을 리 없었다.

메시와 함께 본격적으로 전 세계를 양분하기 시작한 호날두였고, 막을 방법이 있으면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뭐, 그렇겠지. 호날두는 리차즈에게 그냥 맡기고, 주! 너는 디 마리아를 잘 막아줄 수 있겠지?”

디 마리아와 호날두의 호흡은 꽤 잘 맞는 편이었다.

외질도 외질이지만, 디 마리아의 어시스트 능력 역시 굉장했고, 호날두의 해트트릭을 홀로 모두 어시스트한 경기도 있었다.

특히, 디 마리아의 모험적인 패스는 성공률도 꽤 높았다.

“글쎄요. 요즘 디 마리아 하는 거 보면 쉬울 것 같진 않지만, 못 막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디 마리아가 최근 들어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배를 상대로 압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호날두랑 디 마리아 중에 한 명만 묶을 수 있으면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어차피 최전방의 공격수로 누가 나오든 크게 위협적이진 않을 테니까.”

일단 레알 마드리드의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무리뉴식 4-3-3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원톱에 구멍이 뚫렸다는 건 맨체스터 시티에게 웃어주는 부분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분명 부담스러운 상대일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우리도 레알 마드리드가 있는 그 위치를 노리는 클럽이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한 수 접어줄 수는 없어.”

맨체스터 시티의 목표는 그저 그런 강팀이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 등처럼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그런 강팀이 되는 게 목표였다.

이번 레알 마드리드와의 8강전은 그래서 좋은 기회였다.

***

“오랜만이네. 내가 스페인으로 넘어온 뒤에는 한동안 못 볼 줄 알았는데.”

경기 전, 입구에 줄을 서고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호날두가 성배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호날두가 이적한 후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뭘 한동안 못 봐. 이렇게 금방 보는데.”

베일과 달리 호날두는 따로 연락하는 일이 뜸한 사이였다.

심지어 스페인으로 이적하면서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였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만나면 반갑긴 했다.

성배는 반갑기보다는 지긋지긋하다고 느꼈지만.

“네가 토트넘에 있었잖아. 나는 어차피 챔피언스리그에 있을 거고, 우리가 붙어보려면 결국 여기밖에 없으니 못 붙을 줄 알았지.”

은근히 토트넘을 디스하는 호날두였다.

토트넘 소속이었기 때문에 챔피언스리그에 나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는 뜻이었다.

“뭐, 어쨌든 1년 만에 다시 붙네. 솔직히 나는 다시 붙고 싶지 않았는데.”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굳이 리스크가 큰 호날두와 다시 붙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85년생인 호날두는 이제 스물여섯으로 한창 전성기를 달릴 나이였다.

성배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그러게.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다기에 한동안 또 못 볼 줄 알았는데. 맨체스터 시티가 이렇게 빨리 여기까지 올 줄이야.”

맨체스터 시티의 8강 진출은 사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팀의 스쿼드나 전력을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유럽 대항전에 나오는 클럽들 대부분이 맨시티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 전력이기도 했고, 토너먼트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뭘 놀라. 오늘 붙어보면 깜짝 놀랄 텐데.”

토너먼트 경험을 제외하고 봐도 맨체스터 시티는 레알 마드리드의 한 수 아래였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성배는 그 사실 덕분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져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경기.

예전부터 그랬지만, 성배는 그런 경기를 좋아했다.

***

“선발 명단만 봐도 오늘 양 팀 컨셉 확실합니다. 중원은 맨체스터 시티, 측면, 특히 왼쪽은 레알 마드리드가 확실히 유리해보입니다.”

두 팀의 경기는 확실한 컨셉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목표는 중원장악이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2선과 마르셀루의 측면 공격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맨시티의 왼쪽과 레알 마드리드의 오른쪽.

여기가 승자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격전지였다.

“외질, 왼쪽의 호날두에게 연결합니다. 리차즈와 천천히 대치하고, 마르셀루가 올라옵니다.”

알론소와 외질을 묶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마르셀루와 호날두를 막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밀너, 아예 수비진영까지 내려와서 마르셀루를 마크하는데, 마르셀루 출발합니다!”

마르셀루가 공격수이고 밀너가 수비수인 것처럼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평소에는 중앙으로 끊임없이 움직여 중원 장악에 도움을 주었던 밀너지만, 오늘은 측면을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측면 공격이 아니라 수비에 열중하는, 수비형 윙어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호날두가 뒤쪽으로 찔러줍니다. 마르셀루의 돌파!”

밀너가 밑으로 내려오자, 역습에 대한 걱정을 덜어낸 마르셀루는 빠르게 맨시티의 오른쪽 측면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호날두는 놓치지 않고 볼을 띄워서 리차즈의 머리를 넘겼다.

“마르셀루! 밀너 태클! 아, 뒷발로!”

호날두의 패스가 마르셀루의 발밑으로 이어졌지만, 밀너도 잘 따라가서 볼을 건드려주었다.

살짝 볼을 건드린 밀너 덕분에 볼이 멈췄다.

걷어내지는 못했지만, 마르셀루가 앞으로 달려 나가는 상황에서 볼을 멈춰놓았기 때문에 수비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르셀루는 중심이 무너진 그 상태에서 뒷발로 볼을 끌어들이는 말도 안 되는 개인기를 보여주며 돌파를 이어갔다.

“마르세유 턴! 뒤로 빼주지만 데 용이 걷어냅니다!”

심지어 그 상황에서 보아텡의 태클을 마르세유 턴으로 피해내기까지 했다.

“환상적인 개인기였어요! 비록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맨시티 선수들, 깜짝 놀랐겠는데요?”

다행히 그 이후 중심을 잃었고, 패스가 부정확해 데 용에게 끊겼지만, 왜 레프트백 중 공격력 최강이라 불리는지 증명한 플레이였다.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수비라인인 밀너와 리차즈, 보아텡이 한 순간 바보가 되어 버렸다.

‘나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건가.’

성배와 한 살 차이인 마르셀루는 무리뉴의 지도를 받은 이번 시즌부터 수비력이 급성장하면서 크게 주목받고 있었다.

성배와 함께 차기 세계최고의 레프트백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가장 높은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왠지 무실점으로 끝내기는 힘들어 보이는데.’

마르셀루와 호날두의 컨디션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저 두 선수의 컨디션이 좋으면 얌전히 있을 리 없었다.

벌써부터 경기가 힘들어지는 느낌이었다.

< 낭만필드 - 264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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