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63 >
“맨시티? 좋지. 왜? 맨시티오고 싶어?”
그리고 성배는 유혹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루카쿠 개인에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리버풀, 아스날 쪽이 훨씬 낫겠지만, 성배 본인의 욕심이 우선이었다.
“첼시가 안 된다면 맨시티로 가고 싶네요. 주랑 뱅상도 있고.”
사실, 맨체스터 시티에도 딱히 자리는 없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테베즈가 한 시즌 정도 더 버텨줄 수 있었고, 앞으로 영입될 아게로까지 생각하면 테베즈, 아게로, 제코에 발로텔리까지 버티고 있었다.
루카쿠도 기회만 받으면 좋은 활약을 해주겠지만, 이름값으로 이들을 이기긴 힘들었다.
“맨시티 좋지. 카를로스는 좋은 선수지만, 언제 사고칠 지 모르는 선수고, 발로텔리 역시 마찬가지고. 제코는 너도 알다시피 아직 제 기량이 안 나와서.”
흠을 잡으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짓말도 아닌 것이 테베즈는 이제 삼진아웃 직전이었다.
보드진 역시 언제든 대체자만 구해지면 내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루카쿠만 영입된다면 테베즈를 처분할 가능성도 높았다.
“후우, 기대되네요. 빅리그에서 활약할 생각을 하니.”
물론, 그것도 아게로의 영입으로 일단 안정적인 선택을 한 뒤에 있을 일이었다.
아게로로 테베즈를 대체하고 나면 한 자리 정도는 루카쿠에게 내줄 수 있었다.
성배와 콤파니가 뒤에서 밀어주는 힘도 무시할 수 없었고.
“그래. 또 연락해. 맨체스터 시티에서 오퍼 들어왔다, 싶으면 바로 연락하고. 어느 정도는 내가 도와줄 수 있으니까.”
테베즈의 꼬장과 발로텔리의 멘탈, 제코의 선발 징크스와 아게로의 유리몸까지 감안하면 루카쿠의 합류는 맨시티에게도 꼭 필요했다.
다만,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일이 꼬여서 정 자리가 없을 것 같으면 영입과 동시에 임대 보내라고 어필하면 되겠지.’
루카쿠보다는 본인 커리어의 성공을 생각한 조언이었지만, 그렇다고 루카쿠를 썩힐 마음은 없었다.
적극적으로 임대를 요구해서라도 경기 감각을 살려주고 리그에 적응시켜 놓으면 루카쿠와 팀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일단 맨시티에 합류하는 게 먼저지만.’
그런고로 이 생각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리그와 FA컵, 챔피언스리그 성적에만 온 신경을 쏟아야 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하나 따내기 힘든 트로피들이니까.
***
“이제 곧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을 치르기 위해 마드리드로 이동하시게 되셨는데요, 기분이 어떠세요?”
AC 밀란을 1, 2차전 합계 1-0으로 꺾어낸 맨체스터 시티는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다.
시즌 전의 예상과는 달리 살아남은 여덟 개의 클럽에 속한 것이었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지만, 팬들과 선수들은 여전히 기적을 기대했다.
그리고 주장인 성배를 향한 인터뷰 요청 역시 쇄도했다.
“기분은 당연히 좋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의 예상과 달리 저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큰 무대 경험이 많은 클럽은 아니지만,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는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해냈습니다. 당연히 기쁘지 않겠습니까?”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로 맨체스터는 축제 분위기였다.
1880년 창단 이후 130여 년의 시간 동안 강호로 군림한 기간은 채 5년이 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역사.
그 역사 끝에 서광이 비춘 것이었다.
만수르의 구단 인수 이후 2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냈고, 3년째인 올해에는 리그 우승 경쟁과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약진은 그래도 아직은 역부족이라 평가했던 전문가들마저 놀라게 했는데요, 다음 상대는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대진은 별로 좋지 못한 편이었다.
사실, 여기까지 온 이상, 전 유럽에서 마지막 8팀 안에 속하게 된 이상 어떤 팀을 만나도 쉬울 수 없었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대진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좋지 않았다.
“언젠가는 만날 상대였고,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큰 충격은 없었습니다. 분명 레알 마드리드는 강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강합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8강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
8강에 진출한 클럽 중 우승확률이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팀은 바르셀로나였고, 그 다음이 레알 마드리드였다.
인테르, 샬케, 샤흐타르 등 맨시티보다 전력이 약하다고 평가되는 클럽이 세 팀이나 있었음에도 맨시티의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가 되었다.
인테르야 어차피 만날 수 없는 클럽이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 감독이 부임한 이후, 전반기에 조금 삐걱거렸지만, 후반기 들어 강력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승산이 있다고 보시나요?”
무리뉴 취임 이후 3개월 동안 무패 행진을 달리고 리그 14경기 33득점 6실점의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했던 레알 마드리드는 엘 클라시코에서 0-5로 대패한 이후 기세가 꺾였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벤제마가 각성하면서 다시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이틀 전 있었던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리그 우승은 사실상 힘들어졌지만, 경기력 자체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승산이라. 어떤 경기든, 어떤 상대와 경기하든 승산은 항상 있습니다. 승리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우리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이 더 강한지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것만 잘 해낼 수 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더 이상 약팀이 아니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다투는 강팀이었고, 스쿼드의 질이나 두께도 밀리지 않았다.
맨체스터 시티를 괴롭혔던 죽음의 조 징크스나 챔피언스리그 징크스 역시 첫 단추를 잘 꿰며 없애버린 상황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상대라고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카림 벤제마와 곤잘로 이과인, 두 명의 중앙 공격수가 모두 부상으로 빠졌는데요. 임대 신분인 아데바요르는 챔피언스리그에 나설 수가 없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알 마드리드의 최전방 공격진은 완전히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일단 이번 시즌 초반에 주전으로 나서던 곤잘로 이과인이 시즌 아웃급 부상으로 빠졌다.
그리고 전반기에 눈이 썩는 경기력으로 욕을 한 몸에 받았지만, 최근 리그 4경기 7골을 터뜨리는 등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레알 마드리드의 후반기를 이끄는 벤제마마저도 가벼운 부상으로 빠져버렸다.
남은 공격수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임대로 이적한 아데바요르인데, 맨시티의 챔스 명단에 포함되었었기 때문에 출전이 불가능했다.
“호셀루랑 알바로 모라타? 그 선수들도 레알 마드리드에 어울리는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쁠 건 없습니다. 이과인이나 벤제마보다는 아무래도 편하긴 하겠지만, 방심하면 안 됩니다.”
이과인과 벤제마, 아데바요르까지 모두 출전이 불가능한 레알 마드리드의 최전방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
호날두와 디 마리아, 외질의 2선만 신경 써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자, 그러면 주성배 선수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볼까요? 오랜만에 호날두와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잖아요?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으신가요?”
성배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해 어느새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 논란에 이름을 걸칠 정도로까지 성장하게 되자, 호날두와의 라이벌리 역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어느새 데뷔한 지 6년이 넘은 성배지만, 그런 성배를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친 선수는 거의 없었다.
이제 갓 데뷔한 10대 선수였을 때도 당시 최고의 윙어였던 로번, 가르시아, 호아킨을 상대로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카윗이나 아스톤 빌라 시절의 밀너 등 활동량, 팀플레이 위주의 윙어들이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배의 우위였다.
즉, 지금까지 성배를 상대로 확실히 우위에 섰던 윙어는 호날두가 유일하다는 뜻이었다.
“아, 크리스요? 그러고 보니 굉장히 오랜만이긴 하네요.”
일단 호날두를 친근하게 부르면서 둘이 친하다는 정보를 주는 걸로 시작했다.
실제로 애매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친한 건 사실이기도 했고.
호날두가 워낙 스타성이 높은 선수였기에 이런 것 하나하나가 다 이슈거리였다.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크리스, 아니, 호날두가 왼쪽으로 포지션을 옮기지 않았습니까? 저랑 붙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하,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포지션을 옮긴 걸 보면, 저랑 다시 만나기 싫었나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까지는 오른쪽 윙어로 활약했던 호날두지만,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왼쪽으로 포지션을 옮겼다.
오른발잡이의 득점력을 극대화하려는 변화였다.
그에 따라 성배와 만날 일은 없어졌다.
“지금 호날두를 도발하신 건가요? 호날두 선수가 주를 만나고 싶지 않아 도망갔다고 말하신 거 아닌가요?”
성배가 던져준 꼭지에 흥분한 기자가 빠른 목소리로 되물었다.
‘경력이 얼마 안 되나? 이 정도 던져줬으면 알아서 써야지. 그래야 내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건데.’
더 이상 상세하게 말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사라졌다.
겉으로는 그저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뿐이었지만, 속으로 눈치 없는 기자를 씹었다.
“혹시 주의 이번 인터뷰를 보고 평소와 달리 오른쪽 윙어로 나오지는 않을까요? 오른쪽의 디 마리아도 왼쪽과 오른쪽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고, 원래 포지션은 왼쪽이기까지 하니까요.”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가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디 마리아를 오른쪽으로 돌려 활용했다.
본래 왼쪽 측면 자원이지만, 호날두를 왼쪽에 쓰려다 보니 오른쪽에서도 괜찮은 디 마리아를 돌린 것이었다.
“글쎄요. 그래준다면 저도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단순히 선수 한 명의 이동으로 끝나지 않고 팀의 전술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 힘들 겁니다. 아무리 레알 마드리드라고 해도 우리를 상대로 그런 여유를 부릴 순 없겠죠.”
호날두와 함께 무리뉴 감독에게까지 심리전을 걸었다.
물론, 성배의 말은 모두 실현하기 힘든 일이었다.
왼쪽의 호날두와 오른쪽의 디 마리아가 완전히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둘의 포지션을 바꾸라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팬들은 그런 상세한 내용을 따지지 않고 그저 성배의 도발에 호날두와 무리뉴가 물러났다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전은 경기 시작 전부터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었다.
무리뉴는 몰라도 최소한 호날두 정도는.
‘혹시나 반응해주면 더 고맙고.’
만약 이 심리전이 먹히면 더 좋고.
호날두와 디 마리아의 위치가 바뀌는 순간, 레알 마드리드도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
[무리뉴, “주의 도발? 좀 더 성장하면 받아주겠다.”]
[호날두, “주와의 승부는 이미 끝난 것 아니었나?”]
무리뉴와 호날두는 성배의 도발에 코웃음 쳤다.
무리뉴는 반응할 가치도 없다며 앞으로 정말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었을 때 받아준다고 말했고, 호날두는 이미 두 사람의 승부는 끝났다며 굳이 다시 붙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배의 도발이 전혀 의미가 없어보였다.
‘성공이군.’
하지만 성배는 만족스러웠다.
이미 두 사람의 귀에 이 이야기가 들어가고, 헤드라인으로 이런 제목이 뽑혔다는 자체가 크게 이슈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면 두 사람도 관련 질문을 많이 들었을 것이었다.
‘짜증이 좀 났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관련 질문들을 수없이 많이 들으면서 짜증이 좀 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스와 선장.
두 사람의 심리를 건드렸다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 일은 없었다.
< 낭만필드 - 26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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