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65화 (166/356)

< 낭만필드 - 265 >

“외질, 모라타에게 볼 넘겨주고 측면으로 빠집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도 왼쪽 말고는 제대로 경기가 풀리는 곳이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외질이 볼을 조금 더 끌어주고 기회를 만들어줬어야 했는데, 데 용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너무 빠른 타이밍에 패스를 시도했다.

“모라타, 버텨야죠! 아, 못 버티네요. 측면으로 밀려납니다.”

그리고 모라타는 예상대로 맨체스터 시티 수비진에게 꽁꽁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만능형 스트라이커 유망주로 레알 마드리드의 큰 기대를 받고 있는 모라타지만, 만능형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어느 정도 성장하지 못하면 모든 부분이 애매했다.

그리고 열여덟의 모라타는 맨시티 수비진을 상대하기엔 애매했다.

“결국, 앞으로 넘어지면서 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콤파니, 바로 주에게 연결합니다.”

콤파니의 압박에 끝없이 측면으로 밀려나던 모라타는 볼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 모라타는 계속 이러고 있었다.

중앙에서 콤파니, 보아텡과 싸워주며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계속 측면으로 밀려나면서 마무리는커녕 연계조차 해주지 못했다.

“배리에게 패스. 외질의 압박은 힘이 없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볼을 잡으면 바로 중앙으로 투입해주었다.

호날두와 마르셀루가 부담스러워서 계속 내려가 있는 밀너 때문에 오른쪽 공격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실바도 라모스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유리한 중앙 쪽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배리가 투레에게. 투레는 다시 실바에게 넘겨줍니다.”

중앙 쪽에 치우쳐있던 실바는 뒷걸음질 치면서 투레의 패스를 받았다.

중앙에 모여 있던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 역시 맨시티를 따라 측면으로 벌어졌다.

“주에게 내주면서 볼을 한 번 내리고 잠깐 숨을 고릅니다.”

수비적인 컨셉으로 나선 경기라고는 하지만 공수 밸런스가 좋은 성배는 평소와 같은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디 마리아라.’

성배를 마크하는 선수는 디 마리아.

별명으로는 Pideo. 국수 가락이라는 뜻이었다.

“적극적인 돌파! 디 마리아가 따라붙습니다!”

디 마리아의 수비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실제로 디 마리아는 팔을 쭉 뻗고 밀어내며 달리는 성배의 돌파를 방해하지 못했다.

“아, 역시 국수 가닥!”

180cm의 신장에 60kg 초반대의 체중.

프로 선수의 피지컬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지나치게 마른 디 마리아는 성배의 힘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옆에서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것도 힘든 수준이었다.

‘오.’

어느 정도 돌파해 들어간 성배는 다시 실바를 찾았다.

크로스가 좋은 선택이 아닌 경기였기 때문에 실바의 킬패스를 유도하려 했던 것이었다.

“슬쩍 옆으로!”

뒤에서 자리 잡고 대기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성배의 왼쪽 옆에서 같이 달리고 있었다.

성배의 옆으로 바짝 달리는 중이었다.

즉, 실바를 마크하던 라모스는 성배와 디 마리아를 사이에 두고 실바에게 따라붙었다.

‘움직임 좋고.’

뛰어난 센스로 라모스와의 거리를 벌린 실바에게 볼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옆으로 살짝 볼을 밀어준 성배는 방향을 바꿔 중앙으로 내려갔다.

페페와 카르발류를 속이고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테베즈의 움직임은 성배를 감탄케 했다.

‘일단 피하고.’

실바는 발목 힘으로 성배에게 볼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성배는 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볼을 잡을 생각도 전혀 없었다.

“원 터치로 넘겨주고, 주!!”

애초에 처음부터 실바의 목적도 성배가 아니었다.

성배가 목표였다면 이렇게 강하게 줄 리가 없었다.

패스의 속도와 세기, 방향을 보고 의도를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이 메시지를 읽을 수 없으면 절대 큰물에서 놀 수 없었다.

“주성배, 슈팅!!”

멋지게 상대를 속여내고 뒤로 물러난 테베즈는 인사이드로 가볍게 볼을 멈춰주었다.

성배는 오른발 인프런트로 반대편 골포스트를 향해 절묘하게 감아 슈팅을 시도했다.

“카시야스가 날았습니다! 손끝으로 멋지게 막아내는 카시야스! 한 골을 막았습니다! 결정적인 선방! 이건 진짜 한 골을 막아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배의 슈팅은 완벽했다.

하지만 카시야스의 방어도 완벽했다.

반대편 골포스트 구석을 향해 멋지게 감긴 슈팅이었지만, 카시야스의 손끝에 닿으며 골라인 바깥으로 흘러나갔다.

“빌어먹을!”

성배도 아쉬움을 숨길 수 없었다.

경기 중 계산되지 않은 감정표현을 삼가는 성배였지만, 이번 슈팅은 100% 득점이라고 확신했었기 때문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고 말았다.

“아, 이게...”

주장 교체 이후 어색해진 테베즈가 옆에서 혼잣말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런 결정적인 기회도 못 살리냐고 비꼬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지만, 지금은 넣었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할 말은 없었다.

“미안하다. 방금 패스 좋았는데.”

코너킥을 처리하기 위해 이동하며 실바에게 사과를 건넸다.

피지컬로 붙기 힘든 라모스를 넘치는 센스로 떨쳐낸 플레이와 멋진 패스를 마무리하지 못한 죄였다.

“미안할 것까지야.”

잉글랜드에서 4년을 뛰고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 테베즈와 달리 실바는 벌써 일상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영어를 익힌 상황이었다.

“코너킥이나 잘 올려보라고.”

방금 슈팅이 막힌 건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씨익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실바에게 반할 뻔했다.

***

성배의 슈팅이 막힌 이후, 경기 분위기는 빠르게 레알 마드리드 쪽으로 기울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뜨거운 열기를 가까스로 버텨오던 맨시티 선수들이지만, 완벽한 득점 기회가 카시야스의 선방에 막히면서 끈이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챔피언스리그 8강 무대라는 것 자체가 맨시티 선수들에게는 부담이었다.

상대가 레알 마드리드라는 것도 부담이 컸는데,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 경기 역시 쉽지 않았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알론소, 호날두에게 길게 패스! 리차즈와 대치합니다.”

투레, 데 용의 압박에 고전하던 알론소, 외질도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케디라가 평소보다 한 발자국 더 움직여준 덕분이었다.

알론소와 외질도 평소보다 조금씩 빠르게 볼을 처리하려 했고, 분위기가 말리면서 투레와 데 용의 몸놀림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빠릅니다! 호날두, 강력한 돌파!”

피지컬과 스피드를 앞세운 리차즈의 수비는 항상 맨시티의 오른쪽 측면을 단단하게 지켜주었다.

하지만 피지컬도, 스피드도 밀리지 않는 호날두가 상대이다 보니, 리차즈가 밀리고 있었다.

타고난 신체 조건에 의지해 수비하는 리차즈였기에, 그 신체 조건이 먹히지 않으면 그 위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리차즈, 점점 밀려납니다! 아, 힐 찹! 슈팅하는 척! 옆으로 빠지면서 슈팅!!”

전매특허인 힐 찹에 안 그래도 무너져가던 리차즈의 자세는 완벽히 무너져버렸다.

리차즈의 자세를 무너뜨린 호날두는 방향을 바꿔 페널티박스 중앙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데 용의 태클을 슈팅 페인트로 가볍게 피해내며 다시 한 번 슈팅 자세를 잡았다.

“아! 슈팅 아닙니다! 반대편으로!”

볼이 왼쪽 측면으로 가면서 성배도 페널티박스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디 마리아가 비어있었고, 호날두는 그쪽으로 볼을 넘겨주었다.

‘크리스가 여기서 패스를.’

슈팅 찬스에서 반대편으로 넘겨주는 호날두의 패스가 성배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원래 상대 선수들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고 수비하는 스타일이었기에 예상을 벗어난 호날두의 패스는 좀 당황스러웠다.

“디 마리아, 페인트를 써봤지만, 통하지 않습니다. 반대편으로 접은 볼을 정확히 태클로 걷어내는 주성배! 일단 한숨 돌립니다.”

오른발로 크로스할 것처럼 속이고 반대 발로 볼을 접은 디 마리아의 속임수는 성배에게 통하지 않았다.

정확히 반대 발에 옮긴 볼을 정확히 태클로 걷어낸 것이었다.

‘어디서 오른발로 약을 팔아.’

디 마리아의 오른발은 의족을 겨우 벗어난 수준이었다.

당연히 오른발 사용 빈도도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디 마리아의 오른발 크로스 페인트는 성배를 속이지 못했다.

‘오른발 크로스는 그냥 내줘도 되는 거고.’

디 마리아의 오른발 크로스는 크게 무섭지 않았다.

차라리 오른발을 내주더라도 왼발을 철저히 막아주는 쪽이 유리했다.

“디 마리아, 베이징 올림픽의 복수를 하고 싶었을 텐데, 오늘도 별 힘을 쓰지 못하네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첫 번째 재회인데, 이번에도 꽁꽁 묶입니다.”

성배와 디 마리아는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만난 경험이 있었다.

우승은 결국 월드컵급 스쿼드를 들고나온 아르헨티나가 가져갔지만, 디 마리아는 성배에게 힘을 쓰지 못했었다.

“그때는 디 마리아가 왼쪽, 주가 오른쪽에서 맞붙었었거든요? 디 마리아가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번에는 주가 왼쪽에 있네요.”

레알 마드리드가 경기 분위기를 잡고 있지만, 호날두를 제외한 공격진이 묶여있었기 때문에 아직 선취 골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만약 이과인이나 벤제마가 부상이 아니었다면, 아데바요르의 출전이 불가능하지 않았다면 이미 예전에 실점했을 것이었다.

‘후. 드디어 끝났나.’

주심이 휘슬을 입에 물었다.

한 20여 분을 얻어맞느라 고생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무실점이었다.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렸습니다. 일단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는 무승부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전반전 중반부터는 레알 마드리드의 분위기로 흘러갔는데, 일단 스코어는 동률입니다.”

레알 마드리드도, 맨체스터 시티도 불만이 많았을 전반전이었다.

골이 나오고도 남았을 분위기에서 골을 넣지 못한 레알 마드리드, 전반 중반부터 급격하게 경기 분위기를 내준 맨체스터 시티.

어떤 팀이 하프타임에 더 빠르게 정비하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결정될 것이었다.

***

“지금 뭐하자는 거야? 왜 갑자기 흔들리는 건데?”

성배는 라커룸으로 들어오자마자 정색하고 내질렀다.

전반전 중반 이후의 흐름은 완전히 최악이었다.

“뭐야? 뭐가 문제인데? 내가 기회 한 번 놓친 거? 그게 그렇게 충격이었어? 축구 하루 이틀 하나?”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팽팽하게 경기가 이어지다가 작은 계기로 그 끈이 끊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용납하는 것은 달랐다.

“말은 바른 말이지. 그 상황에서 우리 다 골이라고 확신했고, 골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놓쳤으니.”

최근 사사건건 성배와 부딪히는 테베즈가 또 한 번 태클을 걸어왔다.

주장 교체 건으로 기분이 상했던 게 아직 풀리지 않은 듯했다.

“그래. 그때 그건 넣었어야 했던 거지. 못 넣은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그건 카시야스가 너무 잘 막은 거 아니었나? 못 넣은 건 미안하지만, 내 슈팅이 어설펐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성배의 말에 테베즈를 제외한 선수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카시야스가 잘 막은 것이었다.

“그리고. 공격을 풀어주는 역할이 내 역할이었던가?”

멘탈이 약한 게 벼슬은 아니었다.

성배는 테베즈가 또 사고칠까봐 전전긍긍하며 화풀이를 오냐오냐 받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 낭만필드 - 265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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