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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164화 (288/356)

< 낭만필드 - 164 >

“요즘에는 그래도 조금 괜찮아졌더라. 네가 느끼기엔 어때.”

성배는 함께 왼쪽에서 호흡을 맞춰야 할 베일과 경기 직전까지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베일의 존재는 토트넘에 남게 된 큰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토트넘은 베일의 부활이 필연적이었다.

데포, 로비 킨 등이 복귀하면서 팀의 공격력 자체도 많이 좋아졌으니, 조건도 많이 좋아졌다.

“많이 좋아진 것 같아?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네. 뭐, 전보단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니까? 내가 재능은 좀 있나 봐.”

성배의 긍정적인 평가에 베일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낯선 포지션에서 첫 시즌이기도 하고, 초반의 기세가 한풀 꺾인 상황에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던 성배까지 빠졌으니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했다.

그리고 성배가 복귀한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반가워하던 선수가 바로 베일이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 예전엔 좀 플레이가 단순했는데, 지금은 좀 다양해진 편이고. 네 재능이야 굳이 말할 필요 있나.”

베일의 재능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입에 통증만 유발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재능을 통해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아직 크로스는 좀 투박한 편이지만, 슈팅과 패스, 위치 선정 능력 등이 좋아졌고, 측면 돌파만 고집하던 단순한 플레이 스타일에 조금씩 중앙 돌파라는 옵션이 추가되었다.

“헤헤. 고마워.”

베일은 재능이 뛰어나다는 성배의 칭찬에 아이처럼 기뻐했다.

아무래도 현재 팀 내 비중이 가장 높고 연령대가 비슷한 성배를 크게 의식하는 듯했다.

1군 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이후부터 베일은 성배의 주위를 맴돌았고, 성배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성배가 부상으로 빠진 한 달 동안 이틀에 한 번꼴로 연락해 식사를 함께했을 정도였다.

“고맙긴. 사실인데.”

베일은 성배가 정말 부러워하는 재능 중 한 명이었다.

극한의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그의 플레이는 사실 부상 전에 성배가 꿈꾸던 플레이였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재능이었다.

‘자기 장점이 뭔지 확실히 아는 게 중요할 텐데.’

훗날, 레알 마드리드 이적 이후 호날두를 지나치게 우상화한 나머지 그와 같은 길을 가기 위해 과도한 벌크업으로 신체 밸런스가 망가지게 되는 베일이었다.

하지만 베일은 호날두가 아니었고, 그 일로 인해 한동안 고생했다.

‘뭐,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

딱히 조언해줄 생각은 없었다.

프로라면 자기 관리는 직접 하는 것이 당연했다.

자기 관리 능력과 자기 계발 역시 실력이었고, 본인이 본인의 앞날을 잘못 판단해서 기량이 떨어지면 그건 본인의 실력 문제였다.

“오늘 잘해. 내 복귀전인데 무조건 이겨야지.”

성배가 부상으로 빠진 이후 리그에서 네 경기를 치른 토트넘은 네 경기 연속 승수를 쌓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UEFA컵 진출 티켓을 노리던 순위도 12위까지 떨어졌다.

복귀와 함께 승리를 기록한다면, 다시 한 번 팬들에게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각인시킬 기회였다.

“주랑 같이 뛰면 나야 항상 잘하지. 하하.”

베일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시기는 성배와 함께 뛰었을 때였다.

물론, 성배가 부상으로 빠지기 직전에는 살짝 부진했지만, 그래도 성배의 백업을 받아 1인분 정도는 해주었다.

“윌킨슨은 스피드가 형편없으니까 뛰기만 해도 100% 통할 거다.”

스토크 시티의 라이트백, 앤디 윌킨슨은 ‘남자의 팀’ 스토크 시티 선수다운 선수였다.

피지컬이 좋고 신장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그 덕에 스피드는 많이 부족했다.

베일의 스피드라면 그를 탈탈 털어버릴 가능성이 충분했다.

“주가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그렇겠지. 그럼 무조건 뛸 테니까 패스만 해줘.”

베일은 성배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사이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베일이라면 분명 공간을 만들어내겠지.’

성배 역시 베일의 스피드를 믿었다.

그라면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스피드가 약한 상대에게서 공간을 뺏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

“드디어 주가 돌아왔습니다. 토트넘 팬들로서는 굉장히 반가울 것 같은데, 꼭 한 달 만에 그라운드 위에서 볼을 잡았습니다.”

오랜만에 그라운드를 밟은 성배에게 볼이 연결되었다.

토트넘 홈팬들은 돌아온 성배에게 환호와 함성을 보냈다.

모두가 성배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렸을 정도로 토트넘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주의 복귀는 레프트백 포지션 강화라는 측면 이외에도 여러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죠. 우선, 잠시 주춤한 베일을 살릴 수 있고, 데포, 킨 등 좋은 선수들이 합류한 공격진을 살려줄 수 있어요. 또한, 스피드 스타인 레넌과 베일에게 양질의 패스까지 공급해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받고 있죠.”

수비는 말할 것도 없고 팀의 공격 전술에서도 큰 역할을 맡았던 성배였기에 성배의 복귀는 토트넘에 큰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팬들은 물론이고 전문가들까지도 성배의 합류로 인해 토트넘이 다시 한 번 UEFA컵 출전권을 노려볼 힘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일단 감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자.’

자신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은 성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배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기에 아직 감각이 완벽하진 않았다.

‘오늘은 너무 욕심내지 말자.’

그라운드 위에서만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보내왔기에 아무리 오래 떠나있어도 그라운드가 낯설진 않았다.

하지만 한창 감각에 날이 서 있을 때보다는 무뎌진 것이 당연했다.

‘일단 베일을 살려주는 쪽으로.’

성배는 오늘 경기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감각을 살리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베일을 살리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베일은 꼭 살려내야 하는 선수였다.

토트넘의 큰 힘이 되어줄 것이었고, 성배의 평가를 또 한 단계 높여줄 것이었다.

그런 베일을 살릴 수 있다면 몇 경기 정도 조연으로 움직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 조코라에게. 무리하지 않습니다.”

오른쪽 미드필더로 나선 델랍이 성배를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 델랍 정도로는 성배를 압박할 수 없었다.

인간 투석기라는 별명으로 유니크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델랍이지만, 스로인 능력을 제외하면 평범했다.

피지컬도, 스피드도, 특별하지 않은 델랍은 체력과 활동량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성배에게 부담을 주지 못했다.

“부상 전의 주라면 분명 여기서 돌파를 선택했을 텐데, 지금은 조코라에게 볼을 넘겼습니다.”

“사실, 주의 원래 스타일이 이랬어요. 아약스 시절까지는 안정적인 플레이 위주로 하던 선수였는데, 마지막 시즌부터 과감한 플레이를 보여주기 시작했거든요? 오늘의 모습이 커리어 초반에 보여주었던 주의 모습이에요.”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되었던 포르투갈과의 A매치 전, 그러니까 자신도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던 그 경기 이전의 모습이었다.

성배의 장점이라 한다면 때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과감해야 하는 경기와 과감할 필요가 없는 경기를 구분할 줄 알았고, 그 테마에 따라 한 경기를 운영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리고 오늘 성배는 과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모드리치, 측면으로 빼줍니다. 주, 파예의 압박 전에 정면으로! 베일의 돌파!”

모드리치에게 볼을 건네받은 성배는 스토크 시티의 수비형 미드필더 파예의 압박이 들어오기 전에 빠르게 처리했다.

파예의 압박을 버티며 조금 더 시간을 끌었으면 조금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베일의 지금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토크 시티는 거친 팀이었고, 파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절묘한 공간 패스! 베일, 빠릅니다!”

그리고 베일은 마크맨인 윌킨슨을 아주 가지고 놀았다.

성배는 어느새 이름값만으로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 있었다.

아무리 몸을 사리면서 뛰어도 공간은 생겼고, 윌킨슨은 발이 느렸기에 공간으로 침투하는 베일을 따라가지 못했다.

“베일, 중앙으로! 데포에게! 데포, 다시 반대편, 레넌! 골! 골입니다! 토트넘, 전반 23분에 선취 골을 기록합니다! 오랜만에 터진 선취 골입니다!”

성배도, 베일도 직접적인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이번 플레이를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해냈다.

겨우 두 번의 터치로 절묘한 스루 패스를 찔러준 성배.

상대 수비수를 간단히 제쳐내고 중앙으로 좋은 패스를 공급해준 베일.

어시스트와 득점은 데포, 레넌에게 돌아갔지만, 이번 득점 과정에서 성배와 베일의 왼쪽 측면의 지분은 상당히 높았다.

“토트넘의 선취 골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지난 네 경기 동안 답답했던 토트넘의 공격이었거든요? 그런데 주가 복귀한 바로 그 경기부터 선취 골을 넣었어요.”

성배는 왜 토트넘 관계자들과 팬들이 자신을 기다렸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었다.

성배가 복귀했기 때문에 토트넘의 경기력이 드라마틱하게 올라온 것은 아니었다.

오늘 상대인 스토크 시티가 지난 시즌과 달리 무기력한 모습으로 19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토트넘이 선취 골을 기록할 수 있었던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킹이 또 한 번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수비진에 또 한 번 구멍이 뚫렸는데, 주의 복귀는 큰 힘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킹이 이탈하면 답이 없어졌던 예전과 달리 우드게이트와 주가 합류하면서 힘을 얻었거든요? 이 두 선수 모두 카리스마가 대단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킹이 빠졌다고 흔들리지는 않을 거예요.”

성배의 부상 이후 복귀했던 킹은 본인의 이름값에 부응하며 성배가 복귀하기도 전에 다시 이탈했다.

하지만 우드게이트가 복귀했고, 성배까지도 복귀하면서 일단 한숨 돌린 상황이었다.

토트넘 선수단은 경기력과는 별개로 킹이 없는 경기에 익숙했다.

“주의 복귀가 팀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방금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킹의 빈자리를 채워줄 도슨도 좋은 선수인 만큼, 토트넘의 후반기는 한 번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후반기의 토트넘은 꽤 기대되는 팀 중 하나죠. 레드냅 감독이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여러 선수들을 복귀시켰고, 본인이 원하는 선수단을 구성한 레드냅 감독이 어떤 축구를 보여줄 지도 궁금하네요.”

겨울 이적시장에 많은 선수들이 합류했고, 여기에 성배까지 복귀하면서 토트넘의 전력이 완성되었다.

라모스 감독이 내보낸 선수들을 다시 데려온 것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적응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큰 메리트였다.

“괜찮았어. 오늘은 그렇게만 반복해도 충분히 1인분 할 거다.”

돌아오는 베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윌킨슨이 상대라면 단순히 달리는 것만으로도 1인분이 가능했다.

“그럼 1.5인분으로 만들어줘.”

베일은 성배를 바라보며 또 한 번 해맑게 웃었다.

성배라면 1인분짜리 움직임도 1.5인분으로 만들어줄 거라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내가 연금술 한 번 보여준다.”

아직은 오프 더 볼 무브가 그다지 좋지 않은 베일이었다.

그래서 베일의 오프 더 볼 무브는 그냥 달리는 것이 전부였고, 그것이 지난 몇 주 간 베일이 부진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성배와 모드리치가 동시에 출전한다면, 그냥 달리는 것도 멋진 오프 더 볼 무브가 될 수 있었다.

< 낭만필드 - 164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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