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023 >
“다녀왔습니... 으앗, 깜짝이야!!”
“헤헤... 엄마가 주관하는 송별 파티!! 우리 자기랑 우리 아들이 이제 외국으로 떠나는데 파티 해야지. 파티.”
“아...”
유영민과 헤어지고 집에 들어온 성배는 갑자기 들리는 폭죽 소리에 깜짝 놀라 현관 미닫이문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도대체 어디서 난 소리인지, 소리의 원인을 찾아보던 성배는 곧 폭죽을 손에 들고 이상한 고깔모자를 쓴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곧 떨어져야 한다고 서로 우울해하면 좋을 게 없다니까? 이럴 때는 그냥 마지막까지 더 시끌벅적하게 지내야 하는 거야. 우리 자기도, 우리 아들에게도 좋은 일이잖아. 우리 자기는 승진해서 가는 거고, 우리 아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 도전하러 가는 거니까. 그러면 나랑 유빈이도 기쁘게 보내줘야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들이 고집을 부렸는데 이렇게 파티까지 준비해주셔서.”
“어머? 원래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이런 거 아니겠니? 전에도 말했지만, 엄마는 걱정을 안 할 수 없어. 하지만 지난 2주 동안 성배를 보면서 많은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기쁘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오늘은 즐겁게 보내자고!!”
성배의 어머니인 성혜진은 성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내, 이상적인 어머니의 모델이었다.
성배와 유빈이가 한창 어릴 때, 아버지가 외국에 나가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과 아이들의 육아를 동시에 훌륭하게 수행할 정도의 강단으로 슈퍼맘의 면모도 가지고 있으면서 소녀 같은 천진함과 통통 튀는 말투로 친구의 역할도 해주었다.
‘이런 어머니, 이런 아버지가 계시는데 내 인생이 실패하다니... 정말, 나라는 놈은 여러모로 부족했구나...’
호부 밑에 견자 없다는 말은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생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을 들으면서도 절대로 바보 같이 살지는 않았다.
민감한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의 원칙을 지켰고, 자신과 가족에게 큰 부담을 지우지 않았다.
자신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존경스러워 본받으려 했지만, 결국 그 '정도'라는 것을 현명하게 지키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철저하게 존중하는 두 분의 결혼 생활은 성배가 꿈꾸는 결혼 생활이었다.
하지만 결국 성배는 결혼 생활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이상적인 모습을 성배에게 보여주어 부모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지만, 성배는 결국 그를 본받지 못했다.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도요. 무리일 수 있는 부탁이었고, 저도 한바탕 떼를 쓸 각오까지 하고 드린 말씀이었는데, 이렇게 흔쾌히 믿어주시고 밀어주셔서 감사해요.”
“방금 전에도 말했지? 엄마는 아들이 그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 기뻤어. 처음에 반대한 것도 당연히 걱정되어서 그런 거고. 그렇지만, 아들이 이렇게까지 믿음직스러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절대로 반대하지 않았을 거야. 부모란 그런 거거든.”
“그럼!!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길을 갈 수 있게 길을 만들어주고, 그 길을 밀어주는 사람들이지. 간혹 반대하는 것은 아직 어린 우리 아이가 한 때의 생각에 사로잡혀 무리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뿐이야. 우리에게 벨기에로 가겠다는 말을 했던 그 날, 너는 믿음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너를 믿었을 뿐이지. 그게 전부다.”
부모의 당연한 역할을 했을 뿐이라 말하고 있는 부모님이었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성배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부모 자신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쉴 새 없이 돌리고 자신들의 시대에 성공하는 방법이었던 명문 대학 진학을 강요하는 부모들이 판을 치고 있는 시대였다.
안 그래도 부모가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에 대해 말들이 많이 나오는 현대 사회였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으니 경제권을 쥐고 있는 부모님에게 겉으로나마 복종할 수밖에 없고, 자신들끼리의 대화와 인터넷에 싸지르는 글에서나마 부모님에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을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 대해주고 자신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부모님이 있다는 것은 성배에게 큰 행운이었다.
“유빈아. 유빈아-아. 오빠 이제 내일이면 가는데 웃어줘야지.”
“히잉... 싫어!! 거기 가면 이제 못 보잖아...”
“백 밤만 자면 오빠 올 거야. 헤헤헤...”
“거짓말!! 나 이제 애 아니야!! 그게 거짓말인 건 다 안다, 뭐.”
요즘 초등학교 5학년이면 그래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였다.
이제 곧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이를 저렇게 설득하려고 하는 어머니도 참 대단한 분이었다.
시청에서도 업무 능력에 대해 인정을 받고 계신 것 같고, 필요할 때는 정말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평소에는 어딘가 맹하고 어설픈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유빈아. 오빠는 조금 더 축구를 잘 하고 싶어서 가는 거야. 응원해줘야지. 네가 응원을 안 해주면 나도 힘이 안 난단 말이야.”
“그래도... 가면... 아빠처럼 일 년에 몇 번밖에 못 오는 거잖아. 그건 싫단 말이야...”
“그래도 난 가야 돼.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거야. 그러기 위해서 가는 거야. 유빈이도 응원해줄 수 있지?”
브라더 콤플렉스나 시스터 콤플렉스가 굳이 없더라도 자신의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하면 슬픈 것이 당연했다.
유빈이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오빠가 있는 아이들은 매일매일 싸운다고 했다.
컴퓨터 때문에 싸우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라면을 끓어오라고 한다든지 심부름을 시킨다든지 하는 일로 싸웠고, 그래서 오빠가 싫다는 말을 매일 들었다.
하지만 유빈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오빠는 축구하느라 매일 늦게 들어왔고, 매일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특별히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게임하자고 떼를 쓰거나 하면 피곤해하면서도 종종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막 살갑거나 잘 대해주지는 않아도 최소한 다른 오빠들보다는 훨씬 나았고, 친구들에게 자기 오빠는 막 이렇게 해준다면서 자랑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며칠 동안 넋이 나가있던 오빠는 갑자기 전보다 훨씬 더 어른 같아졌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훨씬 더 잘해주었다.
갑자기 학교도 안 가고 혼자서 훈련하더니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떡볶이도 해주고 배가 고프다고 하면 뭔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자신과 많이 놀아주었다.
이제 아이가 아니라서 오빠보다는 친구랑 노는 것이 더 좋았지만, 그래도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줄어서 좋았다.
그런데, 그런 오빠가 이제 외국에 가야 한다고 하니까 당연히 슬플 수밖에 없었다.
“이씨... 오빠 혼자 세계 최고가 될 수 있게 놔둘 수 없지!! 나도 세계 최고의 화가가 될 거야!! 그래서 맨날 오빠 무시할 거야!!”
“그래, 그래. 그러니까 오빠 외국에 있는 동안 유빈이도 미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미술이 아니더라도 뭐든지 열심히 해야 된다? 알았지?”
“흥!! 몰라!!”
어쨌든 대충 유빈이도 달랜 것 같았다.
내일이면 헤어져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는 웃는 모습으로 헤어지고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유빈이의 마음도 대충 풀리자 그제야 제대로 송별 파티를 진행할 수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아, 벨기에 가서 우리 자기가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으면 어쩌지? 으으... 벌써부터 힘들다.”
“걱정 말아요. 택배로 보낼 수 있는 건 자주 보내줄 테니까. 마누라 없다고 밥도 제대로 안 먹고 그러면 안 돼요? 성배도 운동해야 되는데 잘 먹여야 되는 거 잘 알죠? 거기서 자기도 같이 먹어요.”
진지할 때는 서로를 여보라 부르는 부모님이었지만 가끔 분위기가 좋을 때는 ‘우리 자기’라고 서로를 불렀다.
젊었을 적에 썼던 애칭인 것 같은데,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러시니 사실 좀 불편하기는 했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항상 애정이 충만한 두 분의 모습은 좋지만, 그래도 보기 힘든 것은 힘든 것이었다.
‘하하, 음식이 맛있네...’
결국 성배는 두 분의 모습에서 고개를 돌려 음식에 집중했다.
아버지의 말처럼 벨기에에 가면 한동안 한식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자신이 요리를 좀 한다고는 하지만 주로 유럽식이었고, 아버지는 요리에 취미도, 관심도 없으셨다.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는 것이 남는 것이었다.
< 낭만필드 - 02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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